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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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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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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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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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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의 봄 (2)

DUMMY

163화


멀리 크레인데일이 보이는 크레인강 기슭에 도착한 하지운이 행렬을 멈춰 세웠다.

이곳은 구 개월 전 로저 드레이시가 목숨을 잃었던 바로 그곳, 월링퍼드주 크레인데일 인근의 강변길 한가운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칠 수 없듯, 하지운도 이런 뜻깊은 자리를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섯 연놈들을 마음껏 괴롭혀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수 없는, 구타의 까닭이 있는, 값진 공간에서 로저의 대리인 하지운은 성대하게 원수들을 학대해 주었다.


행렬이 갑자기 멈춰서, 마차에 매달려 있던, 여섯 짐짝들도 맛이 간 눈깔을 뒤룩거리며 주위를 살펴 댔다.

행렬이 멈출 때마다 누군가가 와서 못 살게 구니, 이제는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짐짝들이었다.


갑자기 거버스 영감이 미친 듯이 발광을 시작했다.

금세 이곳이 어딘지를 알아채 버린 것이다.


행렬을 뒤따르고 있던 마차가, 휴식 중인 일행들을 지나쳐, 선두에 있던 하지운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오두방정을 떨고 있던 거버스 때문에, 이곳의 의미를 깨달아 버린, 연놈들이 눈물범벅이 된 채 갈라진 목소리를 쥐어짜 가며 자비를 구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학대의 달인 로저가, 자신의 묏자리에, 원수들을 끌고 왔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 일인지는 사실 모두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먼지 나도록 처맞을 게 뻔한 당사자들로서는 이보다 불길한 장소가 또 있을 리가 없었다.


“아휴, 우리 귀여운 버러지들. 여기 어딘지 알지? 그냥 지나갈 수는 없잖아. 두어 시간만 놀다가 갈 거야. 알잖아, 죽이지는 않을 거야. 대신 낚시를 좀 할 거야. 이제 날도 많이 풀렸으니까, 낚시하기에 딱 좋은 날씨잖아. 내 즐거움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협조해. 알아들었지, 이 버러지들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러지들의 새로운 사육사 볼드윈 경이 채찍을 들고 나섰다.

근래에 스트레스가 많아 배출구가 필요했던 청년은 버러지들을 통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요량인 듯싶어 보였다.


울화가 가득 차 있던 청년이 암수를 가리지 않고, 혼신의 열정을 담아, 신들린 듯 채찍을 휘둘러 댔다.

신분만 놓고 보면, 버러지 여섯 마리 중에, 볼드윈 경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종자는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새로운 주군의 포로들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미 뒈져서 언데드가 된 청년에게 그딴 자잘한 게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용의주도한 하지운이 한 달 전쯤, 버클랜드주에 거주 중이던, 대런스 가문 사람들 모두를 콘체스터로 강제 이주까지 시켜 버리고 말았다.

사전에, 대런스 가문의 차남인, 청년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던 건 말할 것도 없음이었다.


청년의 가문 사람들도 웃긴 것이 막상 장원을 서른 개나 하사받자, 금세 마음들이 풀어져서는 굉장히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한 지 보름도 안 돼서 가주이자 볼드윈 경의 형인 오웬이 알현을 청한다기에 만나 줬더니, 그새 벌써 가문의 이름을 웨스털랜드주에 위치한 새로운 거성지(caput)의 이름을 따서 ‘골드클리프’로 바꿨다고 공손하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어지간히도 새로운 영지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가문의 차남이 롬니 성에서 전사했다가 하지운의 권속이 되었다는 말에 단체로 곡을 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서부에 적응할 준비를 착실하게 해 나가는 골드클리프 가문 사람들이다.


그들로서는 지나치게 남다른 차남을 위해, 없는 살림에 가진 것을 다 긁어모아서, 소 피를 사 먹인 대가를 족히 수십 배의 가치를 가진 부동산으로 돌려받은 상황이다.

거기다 하지운 옆에서 수행원 노릇을 하고 있는 늠름하고 거대한 청년을 지켜보고 있자니, 더욱 심정이 복잡미묘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따로 걱정할 거리가 아예 없어진, 청년이 요즘은 아예 제 꼴리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뒈질 날 받아 놓은 포로 따위의, 신분은 전혀 괘념치 않고, 죽통을 다짜고짜 돌려 버린다든지 하는 행동 말이다.


청년이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한 반대급부로 여섯 버러지들은, 생식기를 제외한, 전신을 시뻘건 피로 코팅을 해 버리게 되었다.

채찍이 손에 익은 무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볼드윈 경의 괴물 같은 운동 신경이 금세 손에 착착 감기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피비린내를 물씬 풍기는 미끼 두 마리를, 염동력으로, 양손에 든 하지운이 콧노래를 부르며 강물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고는 일언반구도 없이 두 미끼를 강물 속으로 푹 담가 버리고 말았다.

물론 미끼 두 마리가 대경실색하여 지랄 발광을 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강 하류에 분포하는 어종들에 비해 덩치만 작다 뿐이지, 치아의 튼튼함에 있어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 것들이 이곳의 민물고기들이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이런 같잖은 장난을 걸어오는 하지운에게 이곳의 터줏대감들이 노발대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세 수백 마리의 개빡친 민물고기들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알몸으로 피와 토사물, 똥오줌을 뿜어 대면서 청정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버러지들에게 대자연의 분노가 들이닥친 것이다.

평화롭던 강 표면을 삽시간에 흉포한 이빨 괴물들의 각축장으로 만들어 놓은 하지운이 버러지 두 마리를 가지고 미친 듯이 강물을 휘저어 댔다.


두 마리의 버러지는 초공동 어뢰라도 되는 듯 상식을 벗어난 속도로 강물을 갈라 버렸고, 분노한 식인 물고기들은 그들의 꽁무니를 쫓으며 말 없는 악다구니를 해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염동력 훈련을 독특한 방식으로 수행하는 하지운을 보며, 소피아를 비롯한 새로운 드레이시 가문의 동량들이 공포심과 경외심을 가득 담아 장탄식들을 쏟아 냈다.

휴식 시간에 재밌자고 하는 장난이 이 정도이면, 왕성에서는 무슨 장난을 칠지 가늠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마왕 놈이 미친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나가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 하지운은 이 순간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버러지들의 면상과 생식 기관은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방뎅이의 살점 정도는 민물고기들을 위한 육보시 차원에서 얼마든지 넘겨 줄 수 있다.

그만큼 하지운은 자비롭기 때문이다.


‘뭔 상관이야, 씨발. 내 살도 아닌데.’


하지만 면상과 생식 기관은 반드시 지켜 내야 했다.

언젠가 이들을 가지고 만들 키메라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물속에서 느껴지는 생명체들의 기운 하나하나까지 다 관찰하며 미끼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어찌 됐든지 간에, 하지운은 또다시 우연한 기회를 통해 대오 각성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원효 대사 해골 물이구나... 깨달음의 계기는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을... 우리는 항상 먼 곳에서만 찾으려 애쓰는구나. 옴마니밧메훔.’


짧은 깨달음의 시간이 지나고 뭔가 진지해진 하지운은 두 고깃덩어리를 물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깔끔한 소머리들이 버러지들의 엉덩이와 등판에 달려 있던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을 떼어 내고는 마차로 질질 끌고 갔다.

그 와중에 철퇴 두 자루를 허리에 찬 골드클리프 경이 새로운 버러지 두 마리를 하지운의 발 앞에 대령해 놓았다.


“수고했다, 금 부장.”

“뭐라는 거야? 이 미치광이가.”

“수고했다고...”

“닥쳐!”


아무래도 금절벽 부장의 마음을 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해 보였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암수 한 마리씩을 식인 물고기 소굴에 담가 버렸다.


민물고기 중에는 항문이나 생식기를 통해 체내로 밀고 들어가려는 습성을 가진 것들도 여럿 존재한다.

그래서 한층 더 컨트롤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만약 두 버러지 중 암컷의 체내에 물고기가 침투할 경우 하지운은 미련 없이 마저리 양을 폐기 처분 해 버릴 작정이기 때문이다.

저승에 계신 분을 생각했을 때, 쓸데없는 의료 행위에 목숨을 걸 정도로 하가 놈이 용기 있는 사내는 아니었던 것이다.


참고로 하지운은 승아가 깻잎 논쟁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깻잎을 굳이 처먹으려 하는, 그 가상의 친구 년 모가지를 일 검에 따 버리겠다고 대답했었다.

하지운은 자신과 승아 사이에 분쟁거리가 끼어드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연쇄 살인을 하던 미친년을 대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하지운의 감각이 베일 듯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신이 나갈 듯한 놀이에 극도로 몰입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니, 친동생조차 오라비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각지의 잔당들을 소탕하러, 파견 나갔던 열세 명의 복제 인간들이 하나둘 행렬에 합류하였다.


두 발 달린 소 호소인들이 끄는 소달구지를 앞세운 복제 인간들이 멈춰 있는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가이 다가왔다.

그러다 본체의 염동력 수련을 보고는 긴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분신인 자신들이 아무리 미친 짓을 고안해 봤자, 오리지널의 지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아 버리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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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5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7 1 10쪽
195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11 1 10쪽
194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6) 24.05.04 13 1 10쪽
193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5) 24.05.02 13 1 10쪽
192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4) 24.04.30 13 1 10쪽
191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3) 24.04.28 13 1 10쪽
190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2) 24.04.25 14 2 9쪽
189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1) 24.04.23 14 1 10쪽
188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1) 24.04.21 14 1 9쪽
187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0) 24.04.19 15 1 10쪽
186 새 역사 창조의 건아 (9) 24.04.17 18 1 9쪽
185 새 역사 창조의 건아 (8) 24.04.16 16 1 10쪽
184 새 역사 창조의 건아 (7) 24.04.13 19 1 10쪽
183 새 역사 창조의 건아 (6) 24.04.11 16 1 9쪽
182 새 역사 창조의 건아 (5) 24.04.09 17 1 9쪽
181 새 역사 창조의 건아 (4) 24.04.07 16 1 9쪽
180 새 역사 창조의 건아 (3) 24.04.05 19 1 10쪽
179 새 역사 창조의 건아 (2) 24.04.03 20 1 10쪽
178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 24.04.02 21 1 11쪽
177 웬도버의 봄 (15) 24.03.28 22 1 12쪽
176 웬도버의 봄 (14) 24.03.26 21 1 10쪽
175 웬도버의 봄 (13) 24.03.25 22 2 10쪽
174 웬도버의 봄 (12) 24.03.22 22 1 10쪽
173 웬도버의 봄 (11) 24.03.21 24 1 10쪽
172 웬도버의 봄 (10) 24.03.18 24 1 10쪽
171 웬도버의 봄 (9) 24.03.17 27 1 10쪽
170 웬도버의 봄 (8) 24.03.15 2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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