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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곗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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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22.11.07 17:07
최근연재일 :
2022.12.05 17:0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442
추천수 :
2
글자수 :
310,481

작성
22.11.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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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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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팔수의 눈물

안녕하세요!




DUMMY

42. 나팔수의 눈물


십오 미터의 도개교와 십오 미터의 인도교가 합치된 중간 지점에서 나와 우비싸와 그 외 장교 두 명은 만났다. 그들의 뒤쪽으로는 무장한 병력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오오! 이거 안드릭 씨가 아니신가?”


나를 대한 우비싸는 의외라는 듯 놀란 빛을 보였다. 정말 뜻밖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를 놀리려고 의뭉스럽게 구는 것인지 모호하였다. 식당까지 찾아왔던 것은 순전히 라스를 통해 보위사령관을 잡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가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한 가치를 빼 들려던 나는 그 손을 흔들어서 거절하고 말았다. 쥐새끼 두 놈이 담배를 받아 피며 시시덕거리다가 사살된 것을 봤기 때문이다.


“특수군을 상대할 만큼 용맹이 뛰어났다는 것은 미처 몰랐소이다. 경찰 출신이 아니라 전직 특수군이 아니오? 그 동양인은 누구요? 중국인? 일본인?”

“······!”

“용병이라고 했다던데?”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우비싸는 담배 연기를 내뿜어 가며 혼자 지껄였다.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다 보면 그의 의도에 말릴 수가 있기에 나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를 않았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니 케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없는 모양이었다. 쥐새끼들은 케이의 국적이 생소했기에 기억에서 지웠는지 단지 동양에서 온 용병이라고만 한 것 같았다. 그는 설마 자기들이 찾으려던 낙하산을 타고 온 자라는 건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동양인이 낙하산을 타고 이 땅에 떨어질 줄이야 그 누가 예상이나 했으리오. 더군다나 지옥의 숲에서는 내가 특수군을 상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다 긴말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듯 우비싸는 단도직입적으로 나갔다.


“그래. 협상은 뭘 가지고 하자는 것이오? 이렇게 다급하게 나오는 걸 보면 굉장한 대상이 있는 모양인데.”

“드라가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넘겨줄 테니 많은 피란민을 봐서라도 이 성에서 물러나 주시오.”

“드라가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을까? 드라가나를 감싸는 걸 보니 그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게 느껴지는구려.”


검은 안경테 너머로 우비싸의 노란 눈동자는 흐릿하게만 보였다. 즉, 초점이 없이 마약에 취해 있는 것 같은 동태 눈알은 전혀 생각을 예측할 수 없이 섬뜩하기만 했다.


“우리에겐 드라가나가 필요하지만, 그쪽에선 그보다 더 필요한, 아니 소중한 사람이 있을 텐데······.”

“흐흐! 파트릭 대통령이 볼모로 있다면 모를까. 우린 오직 드라가나만이 필요할 뿐이야.”


우비싸는 우리가 아멜리아를 납치한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식당에서 아멜리아가 사라졌고 그것 때문에 우릴 추격한 것이 아닐까 하고 여겼는데 그는 뜻밖에도 차분하게 나왔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 게 아닌가. 어쩌면 일부러 협상의 선점을 차지하려고 무관심하게 구는지도 몰랐다.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의 대상자를 밝히지 않은 채 말을 질질 끌고 나갔다. 그걸 눈치챈 우비싸는 자기가 먼저 대상자를 밝히고 나왔다.


“길게 얘기하시네. 지금 아멜리아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오?”

“그런 것 같소?”

“흐흐! 두말하면 잔소리지.”

“우린 에메랄드라고 알고 있는데······.”

“브라보! 그것까지 알아내셨군. 확실히 경찰 출신은 아니야. 정체가 미 CIA가 아니신가? 애국자로 알았더니 미제의 앞잡이였어.”


그는 가볍게 두 손바닥마저 마주쳐가며 빈정대었다.


“그건 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를 미국 프락치로 몰아붙이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성탑에서 케이는 소총으로 우비싸를 조준하고 있을 것이다. 저격소총은 아니나 그의 사격술을 믿어야만 했다. 내 몸에 지니고 있는 송수신기 리시버의 소형마이크로 모든 대화가 성안의 일행에게 중계되기에 여차하면 케이가 우비싸를 향하여 총을 쏘는 동시, 나는 해자로 뛰어들어야 한다. 심장은 꿍꽝거리고 입안의 침은 말라만 갔다.


“파코반 중령과 가깝다고 들었는데······.”

“그년이 그럽디까?”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감출 게 뭐가 있소. 차기 대통령감이 죽고 못 사는 애인이 이곳에 인질로 있다는 걸 당사자는 알아야 하는 게 아니오?”

“흐흐흐! 그건 그러네. 잠깐 기다리시오.”


우비싸가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폴더를 연 다음 통화를 시도하였다. 그는 일부러 통화내용을 다 들으라는 듯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접니다! 아멜리아를 가지고 협상을 하자고 나옵니다! 어찌할까요?”

“어찌하긴! 에메랄드는 쌓였어! 거 요즘 떠오르는 샛별 있잖아! 안젤리나 갤 키우면 돼!”


쩌렁쩌렁한 파코반의 음성이 스피커폰을 통하여 흘러나왔다.


“드라가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잖아!”

“알았습니다!”


우비싸는 전화를 끊으면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런 후 나를 향해 능글맞게 굴었다.


“허리우드에 금발의 미녀가 줄을 섰듯 여기도 그렇지. 국민은 늘 새로운 우상을 바라거든. 거기다 라이벌이 있으면 서로가 개처럼 물고 뜯는 걸 즐기지. 정치가 그런 것처럼.”


아멜리아가 버려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 몸에 부착된 소형마이크를 통하여 스피커로 그녀도 들었을지 모른다. 그 기분이 어떠할까. 그렇게 파트릭 정권의 나팔수를 자청하고 옹호했건만 이젠 그녀의 용도가 쓸모없이 처참하게 버려지는 순간이었다.


파코반이 통화로 얘기했다시피 미모의 나팔수는 줄을 섰다. 그렇게 나팔을 불어댔던 아멜리아는 드라가나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납치 전보다 비중이 낮아져 버렸다. 파코반은 사랑한다는 애인보다는 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와 케이의 계략에는 상당한 착오가 생기는 셈이었다. 이놈들이 아멜리아를 선택해야만 밀고 당기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 할 수 없었다.


“알았소. 들어가서 일행을 설득해 보고 답을 주겠소.”


하며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돌아서려는 자세를 취했다. 우비싸가 총을 빼 들어서 나를 인질로 삼을지도 모르고, 한편으로는 협상은 끝났다며 총을 쏠지도 몰랐기에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런 조짐은 보이지가 않았다.


“삼십 분 안에 답이 없으면 초토화가 된다는 걸 명심하시오.”

“문화재라는 걸 모르시는 모양이오?”

“흐흐흐! 문화재는 다듬고 가꾸기에 따라서 역사적인 값어치가 상승한다오. 반정부 역도들이 저항하다가 소탕된 장소라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에.”


하긴 이놈들에게 문화재 따위가 뭐가 중요할까 보냐. 배가 부른 호사일 뿐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애인도 희생양으로 삼는 놈들이다. 일부러 이 순간을 부드럽게 처리하기 위해서 나는 그리 말을 던졌을 뿐이다.


성문을 향하여 도개교의 나무다리를 건너가면서 나는 뒤통수가 신경 쓰였다. 금방이라도 총소리가 울리면서 탄알이 머리에 박힐 것만 같았다. 안전을 맡길 만큼 신뢰할 수 없는 우비싸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놈은 내가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가도록 놔뒀다. 자기 수중에 있는 성이라고 여긴 것인지 아니면 막강한 병력을 믿어서인지는 몰랐다.


***


우리 일행은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역시나 일행은 소형마이크를 통해서 나와 우비싸와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그걸 듣고 충격에 빠진 건 당연히 아멜리아였다. 그런 그녀를 매몰차게 몰아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케이였다.


“그토록 바라던 바가 아닙니까! 잡지 않겠으니 자유롭게 가란 말입니다!”


케이가 손가락으로 성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울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아멜리아가 애원했다.


“싫어요! 여기 있겠어요! 아니 나도 미국으로 가겠어요! 그렇게 해줘요!”


비로소 현실을 직시한 그녀는 자유롭게 여길 나가라는 케이의 강요를 거절하고 나왔다. 그러나 케이는 냉정하게 밀어붙였다.


“당신을 데리고 다니기엔 우리가 위험합니다! 이젠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가요!”


급기야는 우측에 든 소총을 좌측 손으로 넘겨 쥔 케이가 우측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더니 성문이 있는 쪽으로 끌었다.


“악! 싫어! 싫단 말이에요!”


그녀는 딸려가지 않기 위해서 두 발로 땅바닥을 굳게 디디는 한편 상체를 뒤쪽으로 길게 기울였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외쳤다.


“도와주세요! 앞으론 말 잘 들을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걸 보고 우린 착잡함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말릴 수도, 그렇다고 악의 소굴로 보내기도 사람으로서는 할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평소 얄미운 짓을 하면 선뜻 말리려 드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그녀는 케이의 힘을 이기지 못하여 팔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깔끔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의 옷은 땅에 끌려서 흙이 묻고 급기야는 눈물마저 보였다.


“흐흐흑! 잘못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배신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흐흐흑!”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싸해 왔다. 사람이란 이처럼 자기가 직접 겪어야만 피부로 느끼는 아둔한 존재란 말인가. 달콤한 유혹의 뒤에는 뭐가 있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지성을 갖출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어른들은 감히 나서지 못할 판에 밀리카가 달려가서는 케이의 앞을 턱 하니 막아섰다.


“그만 하세요! 잘못 했다고 하잖아요!”

“맞아! 울고 있잖아요!”


루이스 마저 쪼르륵 달려가서 밀리카의 손을 잡으며 앙증맞게 소리쳤다. 두 어린이의 방해에 동작을 멈춘 케이가 그녀의 팔을 놓았다. 미간을 찡그린 굳은 표정으로 마음을 다잡는 듯 소총을 소리가 나게 퉁겨 잡아가며 우리의 곁을 스쳐지나 가려고 할 때, 스칼렛이 그의 팔을 잡으면서 진정하란 모습을 보였다.


“흐흐흑!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영원할 것 같았던 동지를 이렇게 취급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요! 저놈들이 부르짖는 쇄신은 다 허구였어요! 흐흐흑!”


아멜리아는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고개를 끄덕여가며 꺼이꺼이 울었다. 깊은 후회와 반성에 잠긴 자의 눈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성 바깥으로 내팽개쳐졌더라면 어찌 됐을까. 존재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즉석에서 사살되어 해자로 던져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거늘.


양자택일을 선택할 경우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아멜리아를 지목하는 게 극히 자명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과 같이 드라가나를 선택하는 정치적인 경우도 있겠으나, 아멜리아는 관념적인 부류에 이용만 당하고만 셈이다.


울고 있는 아멜리아에게 듀르지카와 마르시아가 가서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가며 달랬다.


“이제라도 놈들의 흉심을 알아챘으니 다행이지 뭐예요.”

“그래요. 우리 앞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이용하는 그런 세상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 가요.”

“흐흑! 고마워요······.”


그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스칼렛이 케이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동방의 예지자가 드디어 인도하셨군요. 축하합니다.”


케이가 멋쩍게 웃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옳은 감이 들었다. 냉정하게 케이가 아멜리아를 몰아치지 않았다면 그녀가 저런 모습을 보였을까. 파코반이 저런 배신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감싸 안고 포용하려 했다면 외려 그녀의 콧대가 높아졌을지도 몰랐다.


스칼렛은 이러한 상황을 예측이나 했을까. 그랬을 리는 없다. 단지 아멜리아가 통한의 눈물을 흘려가면서 후회의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우리처럼 가졌을 것이다. 그런 소망이 이뤄진 순간 나는 아멜리아에 대한 동정심이 한없이 우러러 나왔다. 그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그녀에게 보이는 안쓰러운 관심을 보면 말이다.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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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지도자의 길 22.11.29 31 0 12쪽
45 일심동체 22.11.29 26 0 12쪽
44 여전사 22.11.28 26 0 12쪽
43 철없는 다툼 22.11.28 28 0 12쪽
» 나팔수의 눈물 22.11.27 29 0 12쪽
41 협상 22.11.27 25 0 12쪽
40 빛이 동방에서 오듯 22.11.26 28 0 12쪽
39 독 안에든 신세 22.11.26 27 0 12쪽
38 캘리포니아 드리밍 22.11.25 29 0 12쪽
37 고성(古城) 22.11.25 29 0 12쪽
36 육박전 22.11.24 28 0 12쪽
35 지옥의 숲으로 22.11.24 26 0 12쪽
34 무덤 22.11.23 27 0 12쪽
33 도발 22.11.23 28 0 12쪽
32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자처럼 22.11.22 30 0 12쪽
31 허를 찔러라 22.11.22 29 0 12쪽
30 브라키아의 참상 22.11.21 28 0 12쪽
29 브라키아의 총성 22.11.21 30 0 12쪽
28 한국군의 의리 22.11.20 3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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