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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곗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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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22.11.07 17:07
최근연재일 :
2022.12.05 17:0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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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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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0,481

작성
22.11.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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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독 안에든 신세

안녕하세요!




DUMMY

39. 독 안에든 신세


낡은 담요를 어깨에 두른 병색이 완연한 중년의 드라가나는 흰빛과 검은빛의 수염이 얼굴에 덥수룩하게 혼재돼 있었다. 영화로웠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토굴과도 같은 성탑의 한 작은 방에 앉아 있던 그는 들이닥친 우리 일행을 보고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올 게 왔다는 듯 생을 포기한 자가 보이는 여유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의 옆에는 금발의 머리를 양옆으로 땋아 늘어트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우르즈의 말에 의하면 10살 먹은 딸을 부탁한다고 했다니 바로 그 아이인 것 같았다. 아버지보다 외려 그 딸의 푸른 빛 두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의 옆으로 바짝 붙는 것이 그것을 더해주었다.


“밀리카. 손님들이 왔잖니. 커피를 내와야지······.”


드라가나 전 대통령이라고 추정이 되는 그자가 허세가 섞인 공허한 목소리로 딸에게 얘기하였다. 어둑한 작은 방의 총안구로 바깥 햇살이 실낱같이 비집고 들었다. 그 빛이 새어든 조악한 나무 탁자 위에는 이가 빠진 사기그릇 두 개와 찻잔 두 개가 놓여 있는 것이 형편이 썩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타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는 분노로 가득하였으나, 그래도 한때는 대통령이었다는 전직이 신중을 기하게 하였다.


“어디서 오셨소?”


그는 내 말의 뜻은 헤아리지를 않았다. 그 정도로 말을 비췄으면 자기가 드라가나라고 밝히던가, 아니면 이러 이러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건만 뜻밖에도 케이를 향해서 묻는 것이었다. 그건 날 모독했다는 치욕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성질을 부릴 수도 없었다. 케이가 대답했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습니다.”

“음~! 동방에서 오셨군요.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이 나라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약간은 알고 있는 듯했다. 동방이란 말이 나온 걸로 보면 말이다. 덥수룩한 수염에 까치집과도 같은 갈색의 고수머리로 피부는 병색이 깃들었건만, 눈동자만은 살아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니 마치 그 옛날 현자가 예언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스칼렛이 재빨리 그를 거들었다.


“맞습니다. 동방에서 오신 예지자입니다. 메마른 광야에 샘이 솟게 하고 나무를 심게 할 것입니다. 이제 나가시지요. 세계가 기다립니다. 망명 정부를 세우십시오.”


스칼렛은 케이를 동방에서 온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추켜세웠다. 그 한편 그녀는 그를 드라가나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케이를 그리 과대 포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의욕을 잃은 드라가나에게 용기를 심어주려는 방편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일행이건만, 아멜리아만은 빈정거렸다.


“호호! 차라리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이 재림하셨다고 하시지요!”

“맞습니다······.”


드라가나라고 예측되는 그가 아멜리아에게 형형한 눈초리를 보내었다. 웃음을 멈춘 그녀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먼저 답을 들려줬다.


“이 성이 바로 알렉산더대왕의 군대와 맞서서 싸웠던 곳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 비록 몰살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런 곳에 동방에서 온 손님이 발을 디뎠으니 알렉산더와 예지자가 재림한 것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그는 아멜리아가 대꾸를 못할 정도로 사실에다가 궤변을 맞춰버렸다. 더군다나 그녀에 관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확실히 드러내었다.


“행정부 장관이 당신을 추천했을 때는 유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 뒷말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나고 나니 무능한 아나운서였다 라는 내용이 뻔할 게 아닌가. 대놓고 상대를 모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는 머리인지는 모르지만. 그와 더불어 확실히 그가 드라가나 전 대통령이라는 게 증명이 된 셈이었다. 행정부 장관의 추천이었음을 운운할 정도라면 말이다. 그는 괴로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웅얼거렸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을······내 무능인 것을······.”


누굴 탓하라는 뜻일 것이다. 한 가정을 파탄 내도 오장육부가 뒤집어질 판인데 하물며 권력의 통수권자로서 한 나라를 말아먹었으니 그 속이 오죽하랴. 아멜리아를 빼고는 그의 심정을 십분 헤아리고도 남으리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그러던 차 케이가 본론적인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부 측에서 브라키아 초등학교 학살 사건 현장에 각국 기자를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함정이었습니다. 특수군이라고 여겨지는 자들이 자승대를 가장하여 기자단을 총살하고 여기 이 세 분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 집히는 게 있습니까?”


그는 놀라는 모습을 보이다가는 곧 미간을 찡그리며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가는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추론을 펼쳤다.


“금시초문입니다만, 뻔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자승대가 기자단을 사살했다는 것을 빌미로 눈치 볼 것 없이 대대적으로 토벌하려는 거지요. 그들은 그런 자들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아요.”

“딱하게도 그들이 그런 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며 케이가 슬쩍 아멜리아 쪽을 살폈다. 드라가나가 그의 의중을 알아채고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졌다.


“동방의 예지자가 인도해 보시지요.”

“하하! 그럴 여자가 아닙니다. 뼛속까지 파트릭 정권 추종자도 모자라서 권력의 개 파코반의 애인 노릇에다가 대통령까지 만들려고 합니다.”


세페가 아멜리아를 조롱하였다. 드라가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쯧! 파트릭 하나도 벅찰 텐데 파코반까지. 그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지는 몰라도, 용도가 다하면 패기처분할 겁니다.”

“조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쇄신에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는 않습니다. 꿋꿋한 정신적 국가관을 금전으로 매도하지는 마십시오. 파트릭 대통령은 제게 국가관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가리켜주신 분입니다.”


아멜리아는 마치 파트릭이 자기의 앞에라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턱을 추켜 올린 채 환희로운 빛을 보였다. 꿋꿋한 정신적 국가관이 아니라 세뇌를 시킨 것 같았다. 그걸 그냥 보고 있을 세페가 아니었다.


“파코반의 애인이 아니라 파트릭의 애인 아니야?”


아멜리아의 날카로운 눈매가 홱 하니 세페에게로 향했다. 세페가 고개를 움츠리며 시선을 돌리던 때였다. 갑자기 케이가 판목으로 된 문을 확 열어젖히면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그러다가는 곧 케이가 서른 중반쯤 된 텁석부리의 등에 총구를 겨눈 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바깥에서 우리말을 다 듣고 있던 놈입니다. 아십니까?”


드라가나는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대신 마르시아와 드류지카가 동시에 외쳤다.


“쥐새끼 중의 한 명이야!”


케이가 그자의 몸을 뒤졌다. 조립한 듯한 두께가 두툼한 사제 워키토키와 권총 한 자루가 나왔다. 케이가 영어로 신문 해 나갔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파코반은 알고 있지? 언제 연락했어?”

“나는 모, 모르오.”

“모를 리가. 너흰 보위사의 끄나풀이잖아?”

“아니오!”


숨어서 남의 말이나 엿듣는 임무만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비교적 수더분하게 생긴 텁석부리였다. 케이가 그자의 워키토키를 내게 건네주었다. 무슨 뜻인지를 알고서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키를 누르며 당당히 말하였다.


“칙~! 헤이! 쥐새끼 한 명이 잡혔다. 우리가 나갈 수 있도록 도개교를 내려놓으면 이놈을 풀어주겠다. 어때?”

“치~익! 늦었다. 가짜 특수군이 있다고 신고했더니 거들떠도 안 보다가 드라가나 전 대통령이 있다니까 벌떼 같이 몰려 온단다. 미안하다. 히히!”


팔에 힘이 빠진 나는 워키토키를 입에서 떼며 밑으로 내렸다. 케이가 잡힌 놈에게 물었다.


“드라가나 전 대통령이 여기에 있다는 건 언제 알았지?”

“그동안 긴가민가하다가 당신들을 감시하면서 확신했소. 그래서 우리 두목이 당국에 연락한 모양이오."

“그럼 얼마 안 됐다는 건데······.”


하다가 케이가 바깥으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뭔 일인가 싶어서 나도 그를 따라나갔다. 그 틈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텁석부리가 후다닥 도망을 쳐버렸다.


케이와 나는 7층 높이에 이르는 성벽로에서 허리를 숙인 채 성 아래를 내려다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자 건너편으로 군 트럭이 속속히 도착하면서 병사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젠장! 독 안에든 신세가 됐네!”


나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그때 일행이 우르르 나와서 그 사태를 내려다보고는 안색들이 파리해졌다. 그 중 침착하게 구는 사람은 드라가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만 나가면 되니까 잘들 숨어 계시면 됩니다.”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저놈들의 생리를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케이가 고개를 흔들다가는 드라가나의 딸 밀리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그 손에다가 루이스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너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들을 놓으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밀리카가 앙다문 입술과 결기에 찬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루이스도 그녀를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로 보아 케이는 이 난국을 어떻게 하든 돌파하려는 것 같았다.


불안에 잠긴 피난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성벽로와 성탑 및 그 외의 곳곳에 숨어서 사태를 관망하였다. 성문 앞 도개교가 놓이는 인도교 쪽으로 군 수뇌부쯤 되는 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군복을 입은 장교 대여섯 명 외에도 유독 눈길을 끄는 자가 있었다.


그자는 언제나 검은 테 안경에 까만 플랫 캡과 레인 코트를 입고 다니는 101 보위대장 우비싸였다. 그렇다면 저 병력의 지휘관은 우비싸가 되는 셈이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보위사가 우선이기 때문에.


그때 도개교가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마치 우리의 운명이 저 다리처럼 내려가는 것만 같은 착각에 잠겼다. 아니 쥐새끼들에 의해 우비싸에게 팔려가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개교가 완전히 해자 중간쯤의 인도교에 맞닿자 성문이 열리면서 쥐새끼 두 마리가 우비싸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가서 살펴봐야겠습니다.”


케이가 그리 말하면서 소총을 든 채 허리를 숙여가며 성문이 있는 쪽의 성벽로를 따라서 달렸다.


“야! 야야!”


나는 케이를 부르다가는 어쩔 수 없음에 그의 뒤를 따르면서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우르즈! 잘 지켜!”

“네!”


어쨌거나 우르즈가 힘차게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놓였다.


***


숨을 헐떡거리며 케이의 뒤를 쫓아간 곳은 바로 성문 위쪽의 성탑 돌출총안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화살이나 총을 쏘는 구멍을 내놓은 사이로 눈만 내밀어서 아래를 살폈다. 인도교와 도개교가 도킹한 부분에서 쥐새끼 두 마리와 우비싸가 낀 장교의 무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유롭게 장교들에게 담배까지 받아 피우는 쥐새끼 두 마리는 협상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드라가나 전 대통령은 브라키아 초등학교에서 사살됐다는 소문도 있었고, 제3국에 숨어 산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무튼, 그에게는 거금의 현상금이 붙어 있으니 정체가 밝혀진 이상 쥐새끼들이 탐낼 만하였다. 그렇지만 정부를 상대로, 그것도 보위사를 상대로 협상을 벌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곧 증명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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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협상 22.11.27 25 0 12쪽
40 빛이 동방에서 오듯 22.11.26 28 0 12쪽
» 독 안에든 신세 22.11.26 2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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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고성(古城) 22.11.25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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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자처럼 22.11.22 30 0 12쪽
31 허를 찔러라 22.11.22 29 0 12쪽
30 브라키아의 참상 22.11.21 28 0 12쪽
29 브라키아의 총성 22.11.21 30 0 12쪽
28 한국군의 의리 22.11.20 3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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