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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내가 어떻게 로맨스를 써

웹소설 > 작가연재 > 일반소설, 드라마

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3.18 10:32
최근연재일 :
2015.08.07 17:27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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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
추천수 :
235
글자수 :
86,352

작성
15.08.0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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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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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9화. 조폭(?). 그리고 호텔 사장님의 짬짜면

DUMMY

그러던 3월의 어느 주일.

나래는 글고은과 근처 마트에서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란히 걷고 있는 글고은의 시장주머니에는 야채들과 우유가 들어 있었고, 나래의 주머니에는 심부름 때문에 산 두부와 콩나물과 상추가 들어 있었다.


그렇게 그냥 걸을 뿐이었는데… 거리 맞은편에서 남자 셋 일행이 시끌벅적 잡담을 나누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두 명은 젊어 보였지만 한 명은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래는 문득 영화나 드라마처럼. 외로운 글고은 고모가 어쩌다가 그들과 몸이 부딪히고 넘어지고. 그러고는 서로 괜찮냐. 죄송하다. 어디 다친데 없느냐. 하면서 막 그러면서 ‘인연’ 이라는 게 엮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를 얼굴로 보지 않는 착한 남자와 만나서 서로 마음과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로맨스가 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물론 저 앞에 사내들과 엮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문득 어디까지나 문득 든 생각일 뿐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거짓말 같이, 뜻하지도 않게 상상 속에 잠겨 있던 나래는 장바구니에 가려져서 발밑을 보지 못 했던 탓에 인도에서 툭 튀어나와 있던 보도블록에 발이 걸리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중심을 잃어 저도 모르게 옆에서 걷고 있던 글고은에게 온 몸으로 태클을 걸듯이 부딪쳤다. 그러자 나래보다 키가 작은 글고은은 그 바람에 비틀비틀 하다가 마주 오던 남자 하나에게 거의 안기는 꼴로 온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마치 도미노처럼….


“으악! 고모! 괜찮아요? 미안해요!”


결국 허황된 망상에 빠져 있다가 발밑을 살피지 못 한 나래가 원인이라, 급히 바닥에 쓰러진 고모를 일으켜 세우려 글고은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문제의 사내들은….


“아오 X발! 새로 산 옷인데! 새 신발인데! X발 재수 없게! 카악- 퉤! 어디서 이런 썩어 터진 호박 같은 게 X발 내 발을 밟았어?!”


뭐, 뭐라고?!

순간 나래는 눈에 불이 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글고은은 비굴하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소리만 거듭할 뿐이었다. 남자들이 자신을 보면 재수 없어 한다는 것을 평생 너무나 잘 알아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잘도 나온다.


“뭐야!? 야! 너 지금 우리 고모한테 뭐라고 했어! 뭐? 재수 없다고? 어디서 이런 똥 양아치 같은 것들이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

“얼쑤? 뭐야 이 미친 년은?!”

“나래야! 뭐 하는 거야! 쉿! 하지 마! 우리가 잘 못 했잖아!”

“고모! 미쳤어? 우리가 뭘 잘 못 해! 어쩌다 부딪친 걸로 저 거지 발 싸게 같은 게 고모한테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건 불행하게도 나래 뿐 만이 아니었다.


“하아~ 나 참. X발. 이게 다 뭐야. 길 가다가 뭐 이런 어이없는 년들을 만나?”

“형. 그만하자. 저 년들 대가리 돈 거 같다. 똥 밟았다 샘 쳐.”

“그만하긴 뭘 그만해! 너 같으면 저런 면짝 더러운 년한테 발 밟히고도 그런 소리 나오겠냐? 이건 새 신발 신고 개똥 밟은 것 보다 더 한 경우잖아!”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는 걸까.

글고은은 초조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떡하지? 상대는 건장한 남자 셋이고 이쪽은 17살짜리 여자애와, 그 17살짜리 보다 작은 키를 한 보잘 것 없는 자신뿐이다.


“죄송합니다! 무조건 죄송합니다. 조카가 좀 성격이 더러워서요.”

“존나! 퉤! 니 년은 면짝이 더럽고!”

“뭐야 이 새끼가!!! 니 면짝은 뭐 대단하다고 자꾸만 우리 고모한테 !”


결국 완전히 뺑 돈 나래가 그 작은 주먹을 쥐고 문제의 사내에게 돌진한다. 순간, 글고은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용했다?


“저기, 조금 전부터 좀 지켜봤는데 말이야….”

“뭐야 너 이 새끼는!”


뭐지!? 새롭게 등장해 나래가 날린 펀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펼친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훤칠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 옆으로 등장한 또 다른 남자. 두 남자 모두 주름 하나 없이 검은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래의 펀치를 막은 남자는 새까만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다.


순간 글고은과 한나래는 혹시 블루 사파이어 호텔의 관계자가 아닐까? 하는 소설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계속 나래의 삶을 어디선가 관찰하는 사장 서민용의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아무튼 너무나 단정하게 입은 훤칠한 남자 둘이 공간 어디선가에서 튀어 나온 것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젠 글고은과 한나래 VS 건장한 남자 셋 이 아니라 검은 양복 남자 둘 VS 건장한 남자 셋. 그렇게 되었다.


“새끼들이 돌았나. 야. X팔. 죽고 싶냐?”


결국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화가 난 새 신발 남자가 그렇게 외치며 선글라스 남자의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니, 선글라스 남자는 아무 표정도 없이 한 손으로 그 남자의 두 팔을 휙 밀치며 미끄러지듯 글고은과 나래의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힘 좀 있다고 으스대는 더러운 벌레들이네.”

“뭐야 이 새끼가!”

“형. 그만하자, 뭔가 이 새끼들 분위기 이상해.”

“뭘 그만해! 나랏밥 먹더라도 오늘 피 좀 봐야 쓰겠다!”

“최소, 쌀 아까운 소리는 하지 마라….”


선글라스 남자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데 그의 동료인 듯 보이는 다른 한 남자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팔짱만 끼고 있었다.


글고은과 한나래는 그제야 후덜덜한 마음이 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저 양아치 같은 세 남자가 검은 양복 남자 두 명. 아니 저 선글라스 남자 한 명도 이기지 못 할 것이라는 감은 ‘확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두 처녀를 공포로 옭아맸다. 양아치 같은 남자들은 정말 험악하고 상스럽고 위험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저 양복 남자들이 과연 자신과 나래를 지켜준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둘 다 위험했다. 아니, 양복 남자들이 더 위험해 보였다.


글고은은 양아치 같은 남자에게는 용감했으면서, 양복 남자들의 등장에는 심하게 떨기 시작한 나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냥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금슬금 나래의 손을 잡아끌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글고은은 입술과 코 사이에 땀이 송송 맺히는 것을 느꼈다. 무서웠다. 달리기에는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서 고모가 되어 조카인 나래를 지켜주지 못 할 까봐 더 무서웠다.


‘왜야! 왜! 우리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데!’


글고은과 나래가 패닉에 빠져 있을 때.

해병대 머리의 선글라스 남자.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양복 남자가 글고은을 돌아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키는 선글라스 남자 보다 작아서 177cm 정도쯤 되려나? 젊어 보이는 건지 동안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한 피부에 검은 생머리를 한 맑고 개구쟁이 소년 같은 이미지였다. 글고은은 그런 이미지의 남자가 시커먼 양복을 입고 그리 서 있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옆에 용감하시던 분은 아마 발목이 접질렸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그 남자가 나래를 돌아보며 그리 말했다. 나래가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린 것부터 본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써 주고 있는데 글고은은 미침의 아리랑 깔딱 고개를 넘는 기분이었다. 뇌 속에서 뭔가 쏴아아- 하고 얼음물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는데 둘 중 한 남자가 자신들을 신경 쓰니 틀렸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그냥 지나가다가 상황을 봤을 뿐입니다. 제가 좀 성격장애가 있는지, 저 놈들처럼 힘 좀 있다고 아무한테나 까부는 것들을 웃으면서 넘기지 못하는지라….”


젊은 남자가 그렇게 웃어 보이는 동안, 그 남자 어깨 뒤로 ‘새 신발’남자가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별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 남자가 뻗은 주먹을 선글라스 남자가 손가락 몇 개로 잡아 살짝 빙글 돌렸을 뿐인데, 덩치 큰 남자가 손목부터 시작해 온 몸이 돌리는 방향대로 꺾이면서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누가 보면 새 신발 남자가 그냥 굉장한 엄살을 부리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선글라스 남자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데 새 신발 남자가 혼자 원맨쇼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


“고작 이따위 힘으로 떵떵대는 너희들이야말로 추하고 역겹다. 생긴 걸로 사람 함부로 대하지 마라. 다시 이런 짓 하는 게 눈에 보이면 그 땐 목이다.”


선글라스 남자가 나지막이 그리 한 마디를 던지니 다른 남자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새 신발 남자를 일으켜 세우곤 후다닥 골목길 저 너머로 도망을 쳤다.


큰일이다. 이제 남은 건 자신들 뿐이다. 글고은은 난리통 속에 아픈 것도 잊고 있었던 나래가 그제야 발목이 삔 것을 느끼곤 절뚝거리는 걸 보며 가슴이 덜컥했다.


“병원에 데려다 드릴까요?”

“아뇨?!!”


젊은 남자의 한 마디에 글고은과 나래는 동시에 그렇게 외쳤다.


“형님. 가시죠.”

“어어. 좀 신경 쓰이는데…….”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마! 알아서 하겠다니! 뭘!’


사실은 두 남자가 두 여자를 도와 준 것인데도,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고맙다는 마음 보다는 낯선 힘을 목격한 공포심이 더 컸다.

글고은은 우는 얼굴이 되었고 씩씩한 나래는 그래도 절뚝거리면서 선글라스 남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선글라스 남자는 딱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리곤 길옆에 세워둔 거대한 고급세단의 차 문을 열어 ‘형님’이라고 부른 젊은 남자가 타기를 부동자세로 서서 기다렸다.


그…… 말로만 듣던. 글로만 썼던 [조폭]인가?! 글고은은 온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젊은 남자가 그런 모습을 보며 살짝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저희를 보고 저기… 조폭이냐!? 하는 얼굴인데 말입니다. 그런 거 아닌데…. 뭐, 아무튼 많이 놀라셨을 텐데 몸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조카분 말입니다. 고모님을 위해 용감하게 나선 건 멋졌지만 사실 위험했어요. 앞으로는 그런 상황에선 생각을 좀 하셔야 할 겁니다.”

“앗, 네…….”


젊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여전히 무표정한 선글라스 남자는 차 문을 닫아주고(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저 남자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운전석으로 검게 빨려 들어갔다. 모습대로라면, 젊은 남자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더 들어 보이는 남자는 고작의 운전기사인데 그렇게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젊은 남자에게 ‘형님’이라고 한 것이다. 조폭이잖아!


그 때였다.

차가 출발하려는데 다시 문이 열리곤 젊은 남자가 나와서 부랴부랴 글고은의 장바구니에 손을 쑥 넣었다가 꺼내더니 다시 부랴부랴 차를 탔다. 그리고 차는 붕- 출발했다. 남자는 차가 움직일 때 차창을 열고 장난스럽게 한 마디를 남기고 갔다.


“조카 분 아파 보이니까 한의원이라도 데려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급하게는 냉찜질 파스라도요!”


뭐 이런 경우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굳어졌던 글고은과 한나래는 검은 세단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정신이 든 나래가 흘끔. 곁눈질로 고모의 장바구니의 열린 틈을 들여다보니, 뭔가 봉투 같은 게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조폭 같은 사람들이, 대체 뭘…….


“고모. 괜찮아요?”

“아? 어? … 응?”


정작 발목이 삔 건 나래인데, 글고은은 그보다 더 안 괜찮아 보였다.


“정신 차려요 고모. 그나저나 장바구니 안에 봐요. 아까 그 아저씨가 뭐 넣었어요.”

“어? 뭐?”


눈을 뜨고 정신을 잃었던지, 글고은은 그 남자가 자신의 장바구니에 손을 넣었다 뺀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뭐? 뭐? 만 반복했다.

결국 나래가 문제의 봉투를 꺼내보니, 이건 뭐…….


“고모. 돈 봉투. 뭔가 많아.”

“뭐!?”


그 남자의 의도라면, 그걸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라는 선한 뜻이었건만…. 글고은은 자신이 순간 마약 운반책이라도 된 것 마냥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나래의 손에서 그걸 얼른 앗아다가 서둘러 다시 장바구니 안에 박아 넣었다. 길 가던 누군가가 보면 경찰에 신고라도 당하고, 관계 당국에서 잡으러 올 것만 같았다.


“이, 이런 돈은 못 써. 지지야.”

“응…. 찝찝해.”

“아무튼 한의원은 가 보자. 너 내일 학교도 나가야 되는데 발목 그래가지고 어쩌니? 빨리 가서 침 맞고 찜질하고 그러면 그래도 좀 괜찮아 질 거야. 하이유…. 고모 십 년 감수했다.”

“응…….”

“나래야. 그럴 땐 그냥 굽실굽실 넘어가야지. 갑자기 그렇게 열을 내면 어떡하니? 힘이 없는 여자는 그저 어쩔 수 없어. 그런 건 자존심 문제가 아니야. 현실적으로 죽느냐 사느냔데…. 나래 너 그러다가 정말 몹쓸 일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여자는 한 방이면 끝이야. 푹- 찍- 이라고. 그러니까 성질 죽여야 돼. 알았니?”

“하지만 그 놈들이 고모를 그렇게…….”

“고마워…. 고모보다 더 화 내 준건 고마워. 하지만 나래야. 고모는 그런 소리 듣는 것 보다 네가 다치는 게 더 싫어. 알았니? 그런 소리는 그냥 귀로 듣고 귀로 흘리면 되지만 나래 네가 다쳤으면 어쩔 뻔 했니? 평생 가슴에 못 박고 살라는 거니?”

“음…. 미안해요. 고모.”

“됐어. 가자. 요 근처에 괜찮은 한의원 있더라.”


글고은은 키가 훤칠한 나래를 제대로 부축해 주지도 못하는 제 작은 키를 탓하며, 평소에 지역지 광고로 보아 뒀던 한의원 간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고모.”

“응?”

“아까 그 사람들 뭘까?”

“뭐긴 조폭이겠지.”

“평생 처음 봤어. 그런 사람.”

“나도…….”

“신기한 게, 고모 글 속에 나오는 조폭이랑 이미지가 살짝 비슷하려나?”

“깜짝 놀랐어 정말. 하지만 조폭은 조폭이야.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이지. 우린 절대 그런 사람들이랑 엮이면 안 돼!”

“응. 그런데 나 아까 솔직히 기욤 뮈소의 [종이여자] 떠올랐다?”

“쿡쿡! 왜. 고모 글 속에서 튀어 나온 조폭이라고? 종이 조폭?”

“쿡쿡쿡!! 비슷했잖아. 멋있지 않았어? 동안에다가 오지랖 넓은 조폭 보스 아들.”

“어휴 얘~ 하지만 난 저런 사람 정말 딱 싫어 얘~. 로맨스 소설계의 단골 코드라니까 조립중이지, 솔직히 저런 사람. 누가 좋아하겠니? 오늘의 경우는 우리로선 분명 고마운 일이었지만 말이야.”

“아… 정말 아까는 너무 무서웠어요.”


나래는 다시금 몸서리를 치며 글고은의 손을 꼭 잡았다.


***


오후 1시.

서민용 사장의 프라이베이트 룸에는 몹시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나이 지긋한 호텔리어. 프라이베이트 룸 캡틴이(사장 전속 집사) 사장의 방만 전문으로 담당하는 다른 팀원들과 재빨리 사장의 점심 식사 상을 차리고 있었다.


본래 호텔의 VIP 식당의 룸에서만 식사를 하던 사장이 오늘은 어째서인지…. 직원들은 땀이 다 났다. 오랜 호텔리어 생활 중에 처음으로 겪어 보는 일이었다.


호텔 사장의 방에서 외부 중국집의 배달 음식을 차리는 일.

행여 식을세라. 그들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신속하게 짬짜면 그릇의 비닐 랩을 벗기고 군만두와 탕수육, 그리고 탕수육 소스 그릇의 비닐을 벗겼다. 그리곤 둘둘 싸인 춘장과 단무지 양파…….


과연 중국집으로서도, 배달부도 난생 처음 있는 경험일 것이다. 너무 황당해서 어쩔 줄 몰랐었지. 그런 일류 호텔에 음식배달이라니. 처음에는 다들 장난 전화인줄 알 정도였으니까…. 그 호화로운 1층 로비로 철가방을 들고 들어올 때의 그 난감함을 뭐라 표현 할까?


직원들도 너무너무 당황스럽고 궁금했지만,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장의 사적 문제니까. 다만, 호텔 내의 중화요리팀장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스칠 뿐.


상을 모두 차리(?)니 그제야 사장이 남산 도서관의 바코드가 붙어 있는 허름한 소설책의 읽던 부분에 손가락을 끼운 채 티셔츠 바람으로 식탁에 다가왔다. 직원들은 새 가슴으로 두근두근… 사장의 변모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흠…. 다음엔 이 집의 깐풍기를 한 번 시켜 봐야겠군.’


서민용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무젓가락을 쪼갰다.

그러곤 맞은편에 앉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새삼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멈칫. 했다.


나래는 이런 음식들을 좋아할까? 맞은편에 나래가 앉아 있다면 무엇에 가장 먼저 손이 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사장은 탕수육 한 조각을 집었다. 개인적으로 소스를 부어 먹는 것에 긍정적이지 않은 그였기에 소스에 푹 담갔다가 입에 넣어 본다.


사실 서민용도, 이런 ‘배달음식’을 먹어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인 것이다. 정말…, 호텔 중식당에서 먹었던 탕수육과는 너무나 다른 맛. 반죽은 너무 많고 눅눅하고 고기는 딱딱하고 소스는 너무 달고…. 짬뽕에서는 화학조미료 냄새가 확 올라온다. 하지만 그는 그런 류의 음식을 즐겼을 나래를 떠올리며 열심히 먹어 보았다. 맛으로 먹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왼 손에 차고 있던 세이코 손목시계.

가슴이 순간 먹먹해짐을 느끼며 그것을 손목에서 풀었다.


요즘 시세로 아마 37 만 원 쯤 하려나? 시계 때문에 늘 비서실장에게 혼이 나는데도 고집스레 차 왔던 것이다. 호텔 사장씩이나 되어서 그런 거 차면 안 된다고. 그건 소박한 것도 절약도 아니라고. 대외적으로 봐도 큰 결례라고. 제발 다른 걸로 바꾸라고 늘 구박을 먹었건만 고수했던 것을, 이제는 스스로 풀었다. 그것은 나래의 생모인 송진경이 선물해 주었던 시계에 가장 흡사하게 닮은 것이었다.


달동네에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녀가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병 든 아버지 약값만 대어도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당시에는 큰돈을 썼을 시계. 젊었던 언젠가 친구들과 술 먹고 다니던 시절 잃어 버렸던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서 그 때 부터는 늘 그 모델을 사서 찼던 것이다. 그것도 나중엔 단종이 되어 버려서 비슷하게 생긴 것을 어렵게 구했지만….


서민용은 긴 세월동안 손목에 파고 든 녹슨 수갑을 벗듯 그것을 풀어 식탁 저 옆에 놓고는 다시 열심히 후루룩 짬뽕을 먹었다. 매워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쩐지 눈물이 났다. 훌쩍 거리면서 한 젓가락. 또 훌쩍거리면서 한 젓가락….


식사 수발을 드는 직원들은 진심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띠링- 하고 스마트 폰에 메시지가 들어와서 살피니, 남산 도서관에서 온 도서 반납안내 메시지였다. 읽고 있는 것을 내일 안에 반납하라는 엄중한(?) 경고장. 지금 그가 빌려 읽고 있는 것은 A.J. 크로닌의 [성채]라는 작품이었다. 사실 책 같은 것은 그냥 돈 주고 사서 봐도 되지만 그는 일부로 남산 도서관에서 근무한다는 유나 고모를 만나 보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거리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에리어가 커서 그런지, 아직 한 번도 유나 고모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부로 그녀를 찾아가기도 그림이 묘해지는지라 답답해도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기다리는 처지였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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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조폭(?). 그리고 호텔 사장님의 짬짜면 15.08.06 492 4 20쪽
8 8화. 서민용의 눈물 15.08.06 549 3 18쪽
7 7화. 필요하다면 흐트러지세요 15.08.05 508 3 21쪽
6 6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15.08.05 488 3 19쪽
5 5화. 가자~! 사고치러~!! 15.08.04 542 3 19쪽
4 4화. 국제전화 15.08.04 441 2 20쪽
3 3화. 출생의 비밀? 하! 그게 뭐? 어쩌라고? 15.08.03 612 3 17쪽
2 2화. 하늘이 내린 루저들 15.08.03 845 3 19쪽
1 1화. 일란성 쌍둥이 15.08.03 1,269 1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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