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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내가 어떻게 로맨스를 써

웹소설 > 작가연재 > 일반소설, 드라마

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3.18 10:32
최근연재일 :
2015.08.07 17: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0,090
추천수 :
235
글자수 :
86,352

작성
15.08.04 15:06
조회
542
추천
3
글자
19쪽

5화. 가자~! 사고치러~!!

DUMMY

저녁 7시를 넘긴 시간.

글고은의 원룸에서는 참치 김치찌개가 바글바글 끓고 있었고, 유나는 글고은이 몇 페이지 써 놓은 [로맨스] 소설의 계획서를 읽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은 박누리.

25살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상품 리뷰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글고은 이것이, 나이만 바꿔서 지 얘기를 쓰고 있구만.’

키도 작고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얼쑤.’

소박한 그녀의 꿈은 예쁜 스코티쉬폴드 고양이 가족을 마련하는 일이다.

‘멍청이가…. 고양이는 꿈의 범주가 아니잖아. 그런 건 그냥 희망사항이라고 써. 고양이도 딱 지가 갖고 싶어 하는 거네.’

아직 한 번도 남자와 손도 잡아 본 적 없는 순수한 아가씨.

‘이렇게 써 놓으면 저 여자가 미쳤든 세상이 미쳤든 둘 중 하나로 보이잖아.’


이런 식으로 한 줄 한 줄에 붉은 색연필이라는 딴지를 걸어 가며 원고 계획서를 살피고 있는 유나. 글고은이 식전에 출출함을 달래라고 준 초코맛 쮸쮸바를 잘근잘근 씹고 있다. 그나저나 문득 자신도 스코티쉬폴드를 키우고 싶어졌다.


“어때?”

“이건 로맨스 소설 계획서가 아니라 그냥 네 얘기를 쓰겠다는 거네. 소설로 써 놓으면 너의 망상 보고서나 위시 리스트 정도 되겠다.”

“원래 소설은 그런 거 아니야? 작가의 간절한 소망부터 시작하는 거.”

“그럼 그간 스릴러 미스터리 쓰면서, 등장하는 족족 다 죽여 버리는 게 네 간절한 소망이었냐? 그럼 지랄랄(J. R. R.) 톨킨은 병적인 난장이랑 반지 패티쉬….”

“이쒸! 자꾸 그렇게 걸고 나올 거야?!”

“딴지 없는 노처녀 빌빌 클럽(노벨클럽)은 있을 수 없다!”


유나는 불끈 쥔 붉은 색연필로 하늘을 찌르며 운동구호를 외치듯 했고, 글고은은 “하긴 맞다.” 맞장구를 쳐 주며 다 끓인 참치 김치찌개를 날랐다.


그 때였다. 글고은의 폰에서 카톡이 울었다.


“오! 펴 봐! 니 글 속 낭군인 조폭 보스 아들이다!”


글고은이나 유나나, 카톡이라는 건 거의 그 두 명 끼리만 주고받았기 때문에 둘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온 카톡 메시지는 그야말로 희귀한 경우였다.


“으오오오오!!!!”

“뭔데뭔데??!!”


글고은의 갑작스러운 허공 어퍼컷에 놀란 유나는 뜨거운 김치찌개에 혀를 데이곤 벌떡 일어나 문제의 카톡 창을 향했다.


“으오오오오!!!”

“유성호텔 2월 24일부터 25일까지. 1박 2일 커플 스파 체험권!!! 저번에 응모했던 K문고 기프트 이벤트에 당첨됐어!!!”

“이야~!!! 글고은 일생에서 쓸 행운 다 쓴 거냐!!”


노처녀 둘은 생난리가 났다.


커.플. 스파 체험권! 그 소린 즉!!! 유나도 함께 묻어가 즐길 수 있다는, ‘웃픈’ 행운인 것이다!


“자! 소주 뜯어! 축배다. 축배!!”


***


그렇게 두 노처녀의 음주가무의 밤이 깊어질 때,


나래는 책상에 앉아 프린트로 뽑은 인터넷 뉴스들을 모아서 스크랩 하는 구식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부모님이 공부에도 방해가 되고 인성에도 방해가 된다고 스마트 폰을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나래의 폰은 카톡만은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폴더폰이다.


그동안은 그게 그토록 싫었고 또래들에 뒤처지게 하는 부모님이 미웠는데, 지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래의 엄마 아빠는 어쩜 자신에게, 배 아파 낳은 자식 키우는 부모들 보다 훨씬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자신이 생모처럼 삐딱한 여자가 될까봐. 어떻게든 건전하게 키우려고 그동안 정말 온 마음을 다 쓰셨던 것이다.


“…….”


그래서 인터넷은 마루에 있는 가족 컴퓨터로만 가능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퇴근해 돌아온 마루에서 유성호텔 관련 기사를 헤집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 나래가 정리하는 프린트물의 정보는 이렇다.

2월 24일의 오후 2시. 유성호텔 4층 블루 다이아몬드 홀에서 유성그룹 임원진들의 세미나가 있을 예정이란다. 그룹 규모의 행사라면, 해당 호텔의 사장으로서 얼굴 한 번은 비추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딱히, 가서…. 뭐 얼굴 좀 보자. 내가 당신 좀 봐야 할 일이 있다. 그런 소리 할 필요도 없어.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죽어도 못 보겠지. 하지만 저런 행사 때 층을 헷갈린 고객처럼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는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아마 붙잡혀 쫓겨나겠지만, 타이밍만 좀 잘 맞출 수 있다면……. 그렇다고 나 혼자 100미터 밖에서 서민용을 흘끔 보는 것만으로도 안 돼. 단 몇 초라도, 서로가 얼굴을 봐야 한다고. 아 미치겠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래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방문 밖에서 엄마가 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유성호텔 스파 이용권이라니! 어머, 축하해요. 정말 부럽네~!”


이젠 유성호텔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한다.

나래는 헉! 하고 가슴을 움켜쥐며 엄마의 전화 목소리를 엿듣기 위해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전화 상대는 고모인 모양이다.


‘고모가 거기 스파 이용권에 당첨됐다고?’


나래는 카톡창을 열었다 닫았다 이틀을 고민했고,

글고은은 회장 아들을 죽이냐 살리냐 이틀을 고민했고,

유나는 호텔에 뭘 입고 갈지. 가서 어떻게 놀 건지를 이틀간 고민했다.


- 고모.

- 어머! 나래야! 이제 좀 괜찮니? 고모 많이 걱정했어 ^^*

- 저기 있잖아.

- 어 그래. 말 해봐*

- 얘기 들었는데 24일에 유성호텔 커플 스파 당첨 됐다면서요.

- *^^*

- 저랑 가면 안 돼요?


헐?!

글고은은 웃는 얼굴로 카톡창을 보다가 헉! 하고 손가락이 뻣뻣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나래랑 가면 곤란하다는 게 아니라, 이미 그 날 휴가를 내 놓고 매일매일 뭐 하고 즐길까를 고민하고 있는 유나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 뻔해. 유나 고모랑 가기로 했지요?

- 어, 으응…….

-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스파는 말고, 고모들 갈 때 같이 따라 가는 것 정도는 괜찮아요? 거기, 지하철 내려서는 택시로 가야 한다는데 저 택시비 없음. 산 타고 걷기는 너무 멈.

- 아니, 그런데 얘. 갑자기 거긴 왜?

- 고모.

- 어 뭐든 말해봐.


이 정도 내용이면 그냥 카톡 전화로 해도 되겠구먼….


- 오늘 저녁에 고모 집 가도 돼요?

- 엄마아빠한테 말 하고 올 거지?

- ㅇㅇ


***


그렇게 해서 어쩌다 보니 또 글고은과 유나와 나래 셋이 모이게 된 저녁이 되었다. 하지만 그 날은 장소가 글고은의 좁은 원룸이 아니라, 부모님이 제주도로 내려가셔서 빈 집이 된 유나의(부모님의) 58평형 넓은 아파트였다.


유나가 도중에 넓은 집에서 파티를 하자고 카톡을 치는 바람에, 나래도 싫.........지 않다 하니 그리 되기는 했는데….


“너무 넓으니까 공황장애 걸릴 것 같노.”

“자고 가도 돼.”


촌티를 내는 글고은과 자기 집도 아니면서 인심 쓰는 유나의 사이에서 나래는 다시금 몇 번이고, 앞으로 자신이 뱉을 말에 대해 스스로 용기를 내느라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래를 여기서 볼 수 있게 되어서 좋네!”


유나가 웃으며 아직 해동도 안 된 냉동 치즈케이크를 내민다.

그러자 포크도 안 찔러지는 그것을 받아 제 앞에 당기고는 나래가 자신의 용건을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고모들. 오늘 저 뭔가 큰 결심 하고 왔어요. 고모들한테 라면 엄마아빠보다 더 말하기 편할 것 같아서. 그리고 고모들은 소설을 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통 사람보다 더 잘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고 저렇게 비장하게 시작하는 걸까?

유나는 그 밤에 카페인이 듬뿍 함유된 고급 녹차 세작을 우리며 글고은을 바라보았다. 둘은 ‘소설을 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에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설을 쓰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아니! 전혀! 이해하기 힘들어!!!!


글고은과 유나는 입을 떡 벌리고 굳어져 버렸다. 뭐라고? 나래의 생부가….


“그래서, 그래서 그 날. 저 거기 4층에 꼭 가보고 싶어요. 묵을 필요는 없고요. 그러니 절 데리고 가 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절 도와 주세요. 고모들. 17살짜리가 복도에서 서성거려도 쉽사리 쫓겨나지 않도록 보호자처럼 붙어 있어 주신다던지….”


하아……. 글고은은 소름이 오싹 돋았고 유나는 갑자기 눈빛이 초롱초롱 해 지더니 의욕이 불끈 솟는 표정이 되었다. 뭔가 [모험]이 시작 되는 건가!? 그 소설 같은, 그 만화 같은, 그 막장 드라마 같은 장면 속으로 자신도 참여 할 수 있단 말인가! 두근두근… 모험 활극이라니! 두근두근두근……. 그런 유나의 ‘위험한’ 표정을 보며 글고은은 어휴~ 하며 한숨을 토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녀는 늘 그랬다. 유나는 언제나 [모험]이라는 것을 갈망했다. 결국 그 드높은 담장을 뛰어넘는 모험으로는 손목 골절. 학생주임을 피해 달리면서 라면을 먹는 모험에서는 손등 화상. 체육관 옆에서 키우던 셰퍼드의 밥 그릇 훔치기 모험에서는 발목을 물리고, 삥 뜯기는 후배 도와주러 달려들어선 자기까지 삥 뜯기던 그놈의 모험. 늘 깨지기만 했는데도, 정유나는 어떻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트라우마도 생기지 않는 거냐.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다시 모험의 냄새를 맡은 거니까….

글고은은 어째, 이번 스파 체험은 [쓰바]로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나가 문제의 행사장에서 “여기 호텔사장 나와!” 이 짓만 안 하면 참 좋겠다 싶었다.


“나래야! 내가(유나) 완전 밀어줄게! 보호자 역할은 나한테 맡겨!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 있지!”

“안 돼 언니야! 그게 무슨 아이디어건 하지 마!!!”


하지만 나래는 몹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유나를 향해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망울을 돌렸다.


“내가 나래 고모인거지. 나래랑 4층 행사장에 시간 맞춰서 등장을 하는 거야. 몹시! 관광객스러운 차림으로 말이야. 그러면 당연히 행사 진행하는 요원들이 막아서던지 뭐 어떻게 하겠지? 그러면 살짝 요란을 떠는 거야. 우리는 층을 헷갈렸고 마침 나래 네가 설사를 만난거지. 그럼 고모로서 당연히 화장실부터 찾아야 할 것 아니야? 옥신각신할 때면 그 일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우리 쪽을 쳐다보겠지? 나래는 지금 당장이라도 쌀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나는 막아서는 사람들에게 ‘그럼 지금 이 바닥에서 싸라는 거야 뭐야!’ 고함을 질러. 그럼 분명 그 사람들은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나랑 나래를 화장실로 일단 끌고 가겠지. 그럼 나래는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 있고 나는 그 밖에 복도에서 기다려 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 봐. 네 생부가 있는지 없는지 레이더 역할을 하는 거지! 그러다가 네 생부가 그 자리 어딘가에 있다면 오너로서, 내가 양복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행사장에서 혼자 관광객 모습으로 서 있으면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지 않겠니? 시선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좀 파닥파닥 거린 후에 그럴게. ‘나래야~ 아직 이니?’ 그럼 그게 신호야. 네가 쨘! 하고 나와서 네 생부를 보는 거야.”


이 무슨…….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류의 아동틱한 아이디어인가.

하지만 나래는 그 방법에 엄청 감동을 먹은 모습이다. 얼굴이 발그레 해져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손뼉을 친다.


글고은은 17살 나래와 39살 유나의 정신연령이 한 선상에서 만나는 기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나가 나래의 보호자가 된다면 그건 그림이 괜찮을 것 같다. 실제 고모는 글고은이었지만, 그렇게 둘이 서 있으면 사실 누가 봐도 혈육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나이 무관히 오히려 나래가 보호자로 보일 위험도 있고….


키 173cm의 정유나와 171cm의 한나래.

둘 다 모델 뺨치는 외모의 관광객으로 그 칙칙한 행사장에 서 있으면 누구의 눈엔들 띄지 않을 리가 없다. 거기다가 서민용 호텔사장이 정말 그 장소에 얼굴을 비치게 된다면, 행사도 중요하지만 층을 헷갈리고 배가 아픈 고객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 고객 둘이 화장실에 가겠다는데, 그게 행사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세미나가 열리는 블루 다이아몬드 홀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기업 스파이 따위의 누명으로 쫓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 일일 시트콤 분위기가 될 것 같기는 하지만 해 봄 직한 모험일지도 모른다. 어디 깨지고 맞고 할 일도 없을 거고. 하지만 글고은은 나래가 생부를 보기 위해 그런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에 오빠가 떠올라 조금 마음이 적적해졌다. 나래가 생부를 찾아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아이가 아닌 건 안다. 그것 때문에 지금의 아빠에게서 멀어질 일도 없을 거고. 아는데도 괜히 마음이 좀 그랬다.


생부를 봐도 된다는 허락을 한 오빠 부부의 가슴은 얼마나 더 그럴까? 그래도 애가 고등학교 들어가서 다시 마음잡고 학업에 전념을 하려면, 지금 이 시기에 딱 마침표를 찍어 놓는 게 좋겠다 싶어 허락을 했으리라. 하지만 오빠 부부는 나래의 생부가 서민용이라는 건 모르고 있다. 나래가 계속 비밀로 해 달라고 하는 걸 봐서….


만약 나래의 생부가 대 재벌가의 호텔 오너라는 걸 알았다면, 오빠부부가 과연 생부를 봐도 좋다는 허락을 해 줬을까?


***


2월 24일. 오후 한 시 반.

한글고은과 한나래와 정유나는 지하철 역 앞 김밥하늘에서 저렴한 것들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드디어 그 거대한 왕국에 입성했다.


유성 블루 사파이어 호텔.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유성호텔. 혹은 사파이어 호텔이라 줄여 부르지만 정식 이름은 블루 사파이어 호텔이었다. 그렇다고 건물이 파랗다거나 하지는 않다. 그건 유성그룹의 초대회장이 그냥 지은 이름이니까. 하지만 이름의 유래로 도는 풍문으로는 호텔을 지을 때 초대회장이 터 어딘가에 먼저 떠나보낸 부인을 기리며 주먹만 한 사파이어를 묻었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마법 같은 전설이 있다. 그 덕에 매력적인 호텔의 인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호텔의 웅장함에 1층 로비에서부터 완전 쫄아든 서민 처녀 셋이 있었다. 한글고은과 정유나는 커플 스파 패키지로 왔고, 한나래는…. 결국 제 아빠에게 졸라서 고모를 따라 저도 스파 패키지로 따라오게 되었다. 나래의 부모도 고모들에 딸려 보내는 거라 안심도 되고, 1인 패키지라 가계에 큰 부담이 될 만큼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졸업과 입학 선물을 겸해서, 요즘 마음이 마음이 아닐 딸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체크인까지 호텔 주변을 둘러 봐도 될 것 같았다. 미리 체크인을 해 놓고 노닥거려도 되겠고. 하지만 한 번도 그런 대형 호텔의 경험이 없는 두 노처녀는 서로 안내 데스크로 등을 밀면서 아까운 시간을 티격태격 보내고 있었다. 오죽하면 보다 못 한 나래가 성큼성큼 안내 데스크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1층 로비.

밝은 크림색 대리석으로 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중세 유럽풍의 거대한 성과 같은 건축양식이었다.

요즘은 젊은 층을 겨냥한 모던한 건축 디자인의 호텔들이 많아지는 추세이지만 유성 블루 사파이어 호텔은 클래식한 분위기와 전통적인 서비스를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밟기에도 황공한 고급 카펫의 폭신폭신함. 거대 대리석 기둥들과 실내 분수대와 정글처럼 푸르게 꾸민 싱그러운 뜰. 품위와 교양이 뚝뚝 흐르는 고객들과 호텔리어들. 눈이 죄송스러울 만치 모든 것이 다 고급인데도 마음은 편안해 진다…. 마치 공기마저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그런 공간. 고작 1층 로비에 서 있을 뿐인데, 그곳만 보고 집에 가도 돈이 아깝지 않을 것만 같은 황홀한 기분이 드니….


‘에이씨 이 거지근성.’


갑자기 정신을 차린 유나가 그간 쫄아 있던 양 어깨를 확 폈다.

고작 로비의 분위기만으로 기가 죽을 정도라면 나중에 4층에서 있을 모험은 어떻게 소화시키겠는가. 당당하게, 당당하게!


“…….”


그렇게 세 처녀가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1층 로비 군데군데에 있는 소파 한 곳에서 그녀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일류 호텔이라고 해서 늘 우아하고 고상한 고객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저렇게’ 시골에서 막 상경한 것처럼 컬쳐쇼크에 방황하는 촌스러운 고객들도 있다. 하지만 유성 호텔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


최근 다른 호텔들이 종종 시골 고객들에게는 모멸감을 줄 정도로 지나친 서비스를 폭력 대신 행사하는 곳도 있다고. 제법 언론에 부정적으로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이 곳’은 다르다. 이 호텔을 세운 초대 회장인 서유성 회장 자신이 완전한 시골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흙 밭을 일구다가 맨 손으로 키워낸 대그룹의 일류호텔….


세 처녀들을 바라보던 눈은 살짝 웃음을 머금곤 다시 살피고 있던 서류들로 시선을 옮긴다. 오후 4시에 있을 세미나에 앞 서, 사장은 3시쯤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받아 두었다. 그 때 서둘러 결제를 받아야 할 춘계 삼호그룹 간부총회의 일정표에 관한 서류였다.


“총지배인님. 시간입니다.”

“음. 알았네.”


총지배인 황석모는 VIP 주방장 회의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곁에서, 아직도 세 처녀들은 우와! 우와! 거리면서 정신없이 셀카를 찍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들은 계속 한 자리에서만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그래서 그는 일부로 주방 회의실과는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그녀들에게 길을 스치는 행인처럼 다가가 슬쩍 한 마디를 흘렸다.


“숙녀 분들. 사진은 여기 보다는 저쪽 실내 정원 뒤의 연못가가 훨씬 예쁘게 나올 겁니다. 거기 가면 예쁜 새끼 오리들도 있고요.”


그러자 그녀들은 움찔! 놀란 모습으로 완전 반듯한 신사인 총지배인을 돌아보았다. 그녀들은 눈으로는, ‘아저씨 누구세요!?’ 표정으로는 ‘진짜요!? 고마워요!’를 외쳤다. 그리곤 두다다- 앞을 다퉈가며 추천받은 포토 스팟을 향해 달렸다. 마치 여고생 수학여행단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흐뭇해진 총지배인은 그제야 뒤돌아서 제 갈 길을 걸어갔다.


오후 2시 10분.

세 처녀는 각자의 짐 가방을 놓아두고 커플 룸에 모여, 허브오일 마사지 프로그램에 관한 팜플렛을 훑어보고 있었다. 본래는 시간을 예약해야 했지만 스파 패키지 이용자들은 아무 때나 1회 이용이 가능했다.


“‘거사’를 마치고, 저녁 먹고 맘 편할 때 가자.”

“아니면 ‘거사’ 전에 마음의 릴렉스를 위해 먼저 가던가?”

“안 돼. 결국 ‘거사’를 치룬 후엔 다시 근육 딱딱하게 굳어질 거라고.”


성공 하든 못하든. 어쩌다 보니 모두는 스파 프로그램 보다 ‘거사’

를 더 우선하게 되었다. 그 날 안에 오일 마사지와 실내풀장도 이용해야 하는데, 거사 시간이 4시니 이래저래 애매해 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실내풀장은 24시간 이용가능하다는 거.


“음…. 그럼 나랑 나래는 우선 그걸로 갈아입자. 하와이안 패션.”

“네!”


작가의말

출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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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국제전화 15.08.04 442 2 20쪽
3 3화. 출생의 비밀? 하! 그게 뭐? 어쩌라고? 15.08.03 613 3 17쪽
2 2화. 하늘이 내린 루저들 15.08.03 846 3 19쪽
1 1화. 일란성 쌍둥이 15.08.03 1,270 1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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