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연재수 :
385 회
조회수 :
22,698
추천수 :
234
글자수 :
2,170,259

작성
20.03.27 14:00
조회
45
추천
0
글자
11쪽

칠월 귀뚜라미 4

DUMMY

4


일단은 관련한 생각을 접었다. 자초지종을 아는 입장은 오귀가 아닌 수인들 쪽이었다. 아마도 사태가 진정되어야, 자세한 사정을 이해할 자리가 마련되겠다. 어째서 진작에 말하지 않았냐고 언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당장 중요한 쟁점은 그런 과거가 아니었다.


“엄마가 사랑한 분이잖아요. 분명히 남들과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으시겠죠?”


더구나 이야기만 들어도, 생모는 어지간히 독특한 성격이었다. 서울 광장에서 별안간 일을 벌였을 때만 해도 일국의 시민으로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가. 그녀가 과감하게 혼인을 결심한 남자라면, 똑같이 예사로운 성격은 아닐 것이었다.


재물과 외모로도 설명이 불가했다. 한남동, 그것도 전망이 제일 찬란한 자리에 떡하니 저택을 소유한 그녀였다. 상대가 가난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생김새는 어떠한가. 그것은 세월이 지나면 다른 상대로 갈아탈 구실과 같은 것이었다. 동호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싶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관찰한 장면에서 유추하기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사실 본인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만났는지, 서로의 어디서 호감을 느꼈는지, 왜 어려움까지 감수하고 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는지, 이토록 무수한 의문들을 누가 일일이 설명하겠는가.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남동 저택까지 찾았다. 그런데 이렇게 무기한으로 약속이 연장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억이··· 아예 없어?”

“어렴풋이 잔상은 있어요.”


떠오르는 기억은 고작 두세 가지 정도였다. 어깨만큼 큰 꽃들이 많은 정원에서 생모와 다정히 대화했다. 그토록 좋아한 동굴에서 느낀 시원한 바람과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생부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가림막 하나가 있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아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따뜻하고··· 자상하셨어요. 그렇게 분위기만 떠올라요.”


그 얼굴이 분노로 얼룩지는 경우가 없었다. 부부 싸움이 본래 흔하다는 사실도 학교에 입학하고서 알았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할 때마다 항상 웃었다. 세상에 오로지 셋만 있듯이 매일을 행복한 표정으로 지냈다. 난데없이 사고가 나거나 일이 꼬이는 순간에도 그러했다.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생부는 종종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아이가 끼어드는 바람에 갑자기 그 시간이 망가져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남들이 봤다면 실로 부러운 한 쌍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엄마를 사로잡을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에게 친절한 남자는 어디를 가도 흔했을 테니까.”


평범하며 평범하지 않은 사내였다. 이토록 노력한 이를 찾으라면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것이 모친의 마음을 잡은 진정한 요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혼인과 출산에 얽매일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집안이나 나라를 위해서 재촉하는 웃어른도 없겠고, 개체는 순전히 흡혈로 늘리면 그만이었다. 친절한 사람과 예사로운 일상을 살려고 만났을 리 없었다.


“아······ 틀린 말은 아니구나.”


상명도 자연스럽게 동의했다. 그녀와 직접 만났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수많은 경찰을 긴장시킨 기백이었다. 청년이 설명한 대로 보통내기가 아니고는, 감히 그녀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혹시··· 우리를 시험하시는 걸까요?”

“시험? 우리를?”


예상치 못한 가설에 상명은 상당히 놀랐다. 그러다 자연히 두 경찰과 눈까지 마주쳤다. 급격히 달라진 반응에 둘이 다소 미심쩍은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 내용을 그대로 기록하는 듯했다. 이전과 다르게 나름 치밀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부모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헤어진 후로 재회하지 못해서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도리어 동호에게 해가 될 부분도 전무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딱히 근거는 없어요. 일종의··· 감? 비슷한 녀석이네요. 하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보니까··· 이제는 생각을 포기했나.”


정말로 시험이라면, 시작은 갑자기 떨어진 직후겠다. 생모는 별안간 자신을 성당으로 데려갔다. 남편이 외출하는 즉시 이루어진 절차였다.


오랜 시간 아이를 도맡아 키울 신부에게도 정확한 사연조차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식을 짐처럼 넘기더니 이제 와서 만나고 싶다고 사신(使臣)까지 보냈다.


철없을 때까지만 해도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버지가 다른 살림을 차려서 실망했나, 아이의 얼굴에서 그 생김새를 발견하는 것조차 치가 떨려서, 드라마에 나올 법한 상황을 여럿 상상했다.


그런데 인과 관계를 다시 조합하니 이상한 구석이 무수했다. 어째서 생부는 가족들을 수소문하지 않을까, 그러지 못하는 사정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성당에 자신을 떠넘긴 그 시점과 생부의 죽음이 관련되어 있겠다.


‘죽음을 각오한 싸움이잖아. 수단은 당연히 가리지 않는 거야.’


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리한 칼날에도 충분히 견디던 손톱이었다. 더 집중했다면 온몸이 털로 뒤덮였겠다. 손등에서 자라던 갈색 털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어쩌다 사망했을까. 보통의 방법은 절대로 불가할 것이었다. 자연사나 사고가 아니면 누가 개입하는 방식뿐이었다. 설마 원장이 남몰래 자신을 보호한 까닭일까. 그렇다면 귀왕의 사신을 다짜고짜 공격한 이유도 알 만했다.


자신은 분명 어떤 세력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아버지의 생명마저 강탈한 장본인일지 몰랐다.


‘재미있잖아.’


그럼에도 모친의 대처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식을 성당에 내버리고 떠났다. 성당이 아무리 불가침의 영역으로 유명해도, 다소 무책임한 조치가 아닌가.


‘똑바로 자라서는 재미없어.’


차라리 그녀의 슬하에서 자랐다면, 이토록 고생하지 않았을 터였다. 처음 맞닥뜨렸을 당시 수호와 상명의 반응으로 보아 차별이 만연한 집단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설령 있어도 당신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이해 안 되지?’


당신의 목숨만 지키겠다고, 아이까지 버릴 그릇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광장 소동에서 그녀의 위력은 증명되지 않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홀리도록 만들 정도였다. 적의 숫자는 의미 없는 요소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단서라도 얻고 싶었어요. 그나마 가까운 사람이니까, 엄마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아실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의도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점에서 직접 낳은 자식에게 그녀는 무엇을 기대할까. 아마도 기존의 개체들이 도통 도달하지 못한 목적지겠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혼혈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안개가 서서히 거치듯 보일 것도 같은데 좁은 식견으로는 아직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그녀가 특별히 여긴 남자에게 아주 작은 단서라도 얻고 싶었다.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하던 상명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다지 완벽한 기억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분명 인상적인 장면들이 존재했다. 그것이 일련의 사건과 정확히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잘만 설명하면 동호의 머릿속에 텅 빈 상태로 있는 기억들을 기어이 채우겠다.


“너도 느꼈겠지만, 감염되면 단순히 불사의 육신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야.”


진중한 음성에 동호는 바로 귀를 기울였다. 경찰들도 조용하게 경청했다. 오귀에 대한 정보라면, 비록 사소해도 긁어모아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필요할 때 이용이 가능했다.


“그 혈액이 가장 강렬하게 품고 있던 기억도 함께 넘어와. 틀림없이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닌데··· 꿈이라도 꾼 것처럼.”

“아··· 그래서······.”


그 말을 듣자마자 동호는 불현듯 떠오르는 광경에 얼굴까지 구겼다. 그래서 여태까지 힘겨웠나. 느닷없이 기습한 작자의 혈액을 취한 뒤부터 이따금씩 구역질이 날 정도로 참혹한 사태가 떠올랐다.


모조리 피의 주인에게 받은 기억일 줄이야. 불상사는 당연히 없어야 하지만 만약 다시 사용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대상을 가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처영 성당까지 찾았고. 풍경만으로 위치를 특정하기가 좀 어려웠지만.”

“그럼 저 어렸을 때도 아시겠네요?”

“완전히는 아니고··· 조금? 어머니를 정말··· 닮았더구나.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이렇게 자라기 전에는 더?”

“아하하······.”


동호의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장기 이식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발견하기 드물었다. 알아서 떠오르는 기억으로 살인 사건의 진범도 잡았다고 들었는데, 기증한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성격이 갑자기 변한 사연도 존재했다.


오귀에게 혈액은 주식이자, 유대의 유일한 증거였다. 그래서 특히나 예민하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상명도 신생일 것이었다. 적어도 귀왕이 자식을 성당에 두고 떠난 이후였다. 그래야 그동안 쌓인 기억이 혈액을 매개로 전달되었을 테니까. 칼잡이에 비해서 다소 신중히 움직인 이유가 설명되었다.


“잠깐잠깐 본 장면으로 느낌만 말해 줄게. 네가 기대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 이상은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기 나름 같아.”


상명은 은연중에 생각했다. 오늘을 위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이 역할을 위임한 듯했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가족과 이별한 입장이었고, 오귀의 특징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임무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당시의 결정이 지금 이 때가 되어서야 납득되었다.


물론 지엽에게 의문을 품고 미행한 행동과 위기에서 지엽이 감행한 선택까지, 모두가 그녀의 계획 안에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라도 괜찮아. 내가 잘 생각해서 말할 거고··· 말해서 곤란해질 내용도 딱히 아니니까.”


하지만 장소의 특성상 무리일 수도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을 경찰이 곧장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은 당사자의 의사부터 확인해야 옳았다.


동호는 별다른 간섭 없이 자신들의 대화만 얻어듣는 경찰들을 살폈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 감시와 정보 수집이었다. 아무리 트집을 잡아도 변사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연까지 끌어다 쓰지는 않을 터였다.


어차피 이제는 다 지나간 부모의 과거였다. 그것들이 어떤 형태로 소문을 탈지 몰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상명이 알아서 그럴 것이었다. 우연하게 만난 청년의 마음까지 걱정할 만큼 그는 배려가 깊은 성품이었다.


“말해 주세요.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6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7 20.04.10 41 0 14쪽
205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6 20.04.10 43 0 14쪽
204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5 20.04.07 43 0 13쪽
203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4 20.04.07 41 0 11쪽
202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3 20.04.03 41 0 12쪽
201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2 20.04.03 39 0 15쪽
200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1 20.03.31 39 0 13쪽
199 칠월 귀뚜라미 5 20.03.31 41 0 17쪽
» 칠월 귀뚜라미 4 20.03.27 46 0 11쪽
197 칠월 귀뚜라미 3 20.03.27 40 0 11쪽
196 칠월 귀뚜라미 2 20.03.24 38 0 13쪽
195 칠월 귀뚜라미 1 20.03.24 42 0 14쪽
194 바위라도 7 20.03.20 40 0 14쪽
193 바위라도 6 20.03.20 39 0 15쪽
192 바위라도 5 20.03.17 38 0 11쪽
191 바위라도 4 20.03.17 39 0 11쪽
190 바위라도 3 20.03.13 48 0 13쪽
189 바위라도 2 20.03.13 39 0 14쪽
188 바위라도 1 20.03.10 45 0 12쪽
187 숲속의 꿩 10 20.03.10 40 0 12쪽
186 숲속의 꿩 9 20.03.06 42 0 11쪽
185 숲속의 꿩 8 20.03.06 40 0 12쪽
184 숲속의 꿩 7 20.03.03 40 0 11쪽
183 숲속의 꿩 6 20.03.03 42 0 13쪽
182 숲속의 꿩 5 20.02.28 40 0 13쪽
181 숲속의 꿩 4 20.02.28 40 0 12쪽
180 숲속의 꿩 3 20.02.25 39 0 11쪽
179 숲속의 꿩 2 20.02.25 40 0 12쪽
178 숲속의 꿩 1 20.02.21 40 0 14쪽
177 곰이 피는 나무 8 20.02.21 3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