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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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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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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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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숲속의 꿩 7

DUMMY

7


어린 용의자와 마주한 형사들은 이를 바득 갈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원하는 방향대로 흐르지 않아서였다. 조사한 바가 맞다면 용의자는 경찰청에 난생처음 왔다. 어지간한 사건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수갑까지 찬 상태로. 바깥에는 언제 자신에게 총을 쏠지 모르는 다수의 특공대원도 함께였다.


하지만 닳고 닳은 사내들이 연신 고함쳐도, 어쩐지 움츠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야말로 기선 제압에 완전히 실패한 현장이었다.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었다. 두려운 마음을 파고들어, 원하는 진술도 얻는 방법이었다. 성과에 따라서는 타협도 가능했다. 서로의 이해가 치우치지 않는 선에서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나중에 약속을 어기지 못하도록 추가로 장치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도 버거웠다. 청년의 얼굴에는 심드렁한 기색만 가득 차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골백번 그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지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사소한 행동도 녹화되는 중이었다. 불시에 공개되었을 때 논란이 될 행위가 들어가면 곤란했다. 게다가 평범한 인간이 행사하는 폭력은 어차피 그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재미로 죽였다는 거야?!”


남은 방법은 유도 심문뿐이었다. 완력으로 이기지 못하는 상대라면, 오랫동안 취조한 실력을 발휘하여 이번 용의자 또한 스스로 함정에 빠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도 형사라면 긴장하니, 의외로 공략이 간단할지 몰랐다.


“그냥 모르겠다고 한 마디 했는데··· 그렇게 해석되나요?”


동호는 여전히 당돌하게 말했다. 어른들의 사정까지 고려하기 귀찮았다. 솔직한 답이 이후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몰라도, 최대한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형사들의 수고를 덜지 않겠는가.


“죽였다며! 네 입으로 인정했잖아!”

“다만,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잖아요.”


뚝, 얼떨결에 수갑이 책상에서 분리되었다. 청년과 마주 앉은 형사들의 얼굴이 당혹한 빛으로 물들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단단히 준비한 구속이었다.


그런데 간단히 분리되고 말았다. 녹화실에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상황을 지켜보는 참관실도 마찬가지였다. 이만한 힘을 가진 오귀라면, 경찰청 내부를 곧장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잘못하면 곤지암 사태가 또 다시 발발하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조금 갑갑했는데······.”


동호는 곧바로 사과했다. 경직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멀쩡한 기물을 훼손한 일에 대한 사과였다.


이어서 아래쪽을 더듬었다. 순간적인 힘에 의하여 나사가 빠졌을 뿐이었다. 부러지지 않았으니, 수리비가 왕창 깨지지는 않겠다.


“아무튼, 그 아저씨가 먼저 덮쳤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이었다. 형사들의 기분은 상관없었다. 자신의 권리를 한껏 주장해도 불리한 공간이 아니던가. 우연하게 목격한 완력으로 그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기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 제 목을 다짜고짜 물었다고요.”


팔이 자유로워진 김에 손으로 쇄골의 위를 가리켰다. 부드럽게 목을 감싸는 옷깃까지 내리면서.


그러나 지목한 자리가 깨끗했다. 흉터조차 없는 상태였다. 증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알았다. 별안간 피습당했건만 이내 사라진 상처가 아니던가. 그래서 현실이라는 점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대단한 의도는 아니었다. 상대에게 진심을 보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저 수완이었다.


솔직히 무시하고 싶었다. 추리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어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경솔한 행동은 상황만 악화시켰다. 학교에서 익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더구나 지금은 보호자도 부재했다. 알아서 변호하지 않으면 끝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렸다.


“그러니까 정당방위죠. 물론, 똑같이 무는 정도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내가 죽겠는데 어떻게 남부터 생각해요.”


이유가 무엇이든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살해 방식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조차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다.


속절없이 피를 흘리는 상대가 앞에 있어도, 감상이 전무했다. 심지어 그것을 고스란히 취했다. 그토록 기이한 영력 덕분이었을까. 따끔했던 목의 감각도 그 즈음에 사라졌다.


“정말 살고 싶었나 봐요.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거짓이 아니었다. 자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까. 오죽하면 꿈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착각했을까. 일상에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그마저도 갑자기 찾아온 모친의 사신이 아니었다면,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터였다.


그래서 걱정되었다. 냉정한 모습의 자신이 언제 재림할지 모르니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모습이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에서 발동되는 힘이라면, 어떻게 하나. 자칫 잘못하면 주변 사람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기분과 상관이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비슷한 사건들이 수차례 일어났을 것이었다. 아마도 신체의 컨디션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듯 보였다. 사건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자신이 돌변한 원인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물린 자국이 없잖아.”

“제가 오귀라면서요. 그 사이에 나았겠죠.”


의문점을 제기한 형사의 입이 도로 막혔다. 자연한 질문이었다. 심문 대상이 오귀라서 통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귀의학 연구 센터의 기록에도 적혀 있었다. 오귀의 신체는 은이나 케라틴 성분이 있는 흉기가 아닌 이상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설령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어도, 흡혈과 수혈을 하면 일반인보다 신속한 회복이 가능했다. 사태가 일어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일반인이면 몰라도 오귀라면 상처를 감쪽같이 지울 수 있었다.


진술의 허점을 잡아내기 어려웠다. 형사는 답답했다. 꼬투리만 잡으면 되는데 그것이 당최 만만하지 않았다.


이제껏 접한 또래들과 반응이 너무 달랐다. 겉으로 아무리 단단한 척해도 법의 공포는 곧잘 알기에 적당히 구슬릴 수가 있었는데, 용의자는 그런 두려움조차 없었다.


애초에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내세울 만한 물증은 오직 현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뿐이었다. 피해자의 시신 어디에도 그 흔적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진술을 이용할 참이었는데, 청년이 방심하지 않았다. 시원한 타개책이 없다면 무턱대고 우길 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여기까지 와서 뭐 하러 거짓말을 해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너한테 유리한 대로 피해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 아냐?!”


고성을 질렀다. 이번에는 제대로 먹혔을까. 형사는 슬쩍 참관실을 의식했다. 보이지는 않아도 이 광경을 지켜보는 눈들이 많았다. 청장도 직접 자리한 만큼 최소한 청년에게 말리고 있다는 인상을 자아내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 호통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안 했다고 말했겠죠. 결정적인 증거도 부족한 것 같은데······.”


동호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라도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갑자기 화부터 내었다. 덕분에 그들이 어디에서 막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확실한 물증을 얻지 못한 상황이겠다. 생각해 보니 갑자기 기습을 당했던 시점만 제하면 피해자와 따로 접촉한 적이 없었다. 손톱으로 상처를 만들지도 않았고, 상대의 피를 전부 취하는 과정에서 이도 사용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진즉에 다리를 절뚝였다. 그러니 그들이 그렇게 찾고 싶어하는 흉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피해자의 정체가 오리무중인 만큼, 이쪽이 부러 해쳤다는 증거 또한 완벽하지 못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몰아서 진술을 얻으려는 수작은 시도하지 않았을 테니까.


“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제가 피해자를 어떻게, 왜··· 죽였을까요?”


동호는 역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유도하는 정답이 존재할 것이었다. 차라리 일찍이 의도를 파악해서 이 답답한 대치를 모조리 풀고 싶었다.


조금은 황당한 질문에 형사 둘은 반박조차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확신하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어디 좀, 듣고 싶어요.”


세 명이서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동호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음성도 낮추었다. 내부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모든 내용이 참관실로 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관련한 드라마 몇 개만 시청해도 익숙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어질 제안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연출이었다. 그래야 실상 황당한 제안까지 의미심장해 보였다.


“내기할까요?”

“새파랗게 어린 자식이 경찰을 상대로···.”

“제가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잘 설명하시면 그냥 다 인정할게요.”

“뭐?”


당돌한 태도에 얼굴을 구기던 형사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직전의 제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둘은 재차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주한 표정을 보아하니, 각자가 파악하는 내용이 비슷한 듯했다.


“설령 제가 하지 않았어도요.”


그들의 모습에 동호는 만족한 듯이 웃었다. 어지간히 이쪽을 범죄자로 만들고 싶은 듯 보였다.


누구에게 이로운 작업일까. 정부와 이해가 상충하는 오귀는 아니었다. 오귀를 통제할 도화선이 필요한가. 그래서 여타 불의들을 제치고서 이 사건만 물고 늘어지는 중일까.


거듭 생각할수록, 고된 머리싸움 한복판에 끼었다는 점이 실감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의사 결정이 가능한 나이대가 되기 무섭게, 모친이 그런 사신들을 파견했을까.


“참나, 지금 여기가 네 놀이터인 줄 알아?!”

“어차피 증거가 나오면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감방으로 가지 않아요? 서로 피곤하지 않게 돌아가지 말자는 뜻이죠.”

“우리가 뭐··· 없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그래서 의연하게 행동했다. 의자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대고, 양손마저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돌아올 답을 기다리듯 가만히 둘만 지켜보았다.


형사들은 서로 시선만 주고받은 채 곧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이쪽에서 제안하지 않은 이상 용의자와 거래는 보통 금하고 있었다. 초대한 쪽은 함정을 마련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준비한 덫으로 손님을 끌어 들였다.


하지만 거절하기 힘들었다. 지금 시점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제안인 탓이었다. 여기서 잘만 풀리면 자신들이 만든 틀에 확실하게 용의자를 가둘 수 있으니까.


“이제 보니까··· 완전히 또라이네. 여기까지 와서 말하는 꼬라지만 봐도 알겠어. 그래서 친구가 없었나? 행적을 물어도 뭐, 잘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

“김 형사··· 방금 한 말은 너무······.”


흥분한 형사가 몰아붙였다. 어쩐지 입장이 뒤바뀐 듯해서 분했기 때문이었다. 먹잇감 앞에 미끼나 그물망을 던지는 쪽은 순전히 자신들이어야 했다.


그런데 자꾸만 입장이 뒤집혔다. 현장에서 보다 확실한 증거가 나왔다면 이런 곤경은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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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칠월 귀뚜라미 4 20.03.27 45 0 11쪽
197 칠월 귀뚜라미 3 20.03.27 40 0 11쪽
196 칠월 귀뚜라미 2 20.03.24 38 0 13쪽
195 칠월 귀뚜라미 1 20.03.24 4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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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바위라도 4 20.03.17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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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숲속의 꿩 8 20.03.06 39 0 12쪽
» 숲속의 꿩 7 20.03.03 40 0 11쪽
183 숲속의 꿩 6 20.03.03 42 0 13쪽
182 숲속의 꿩 5 20.02.28 40 0 13쪽
181 숲속의 꿩 4 20.02.28 40 0 12쪽
180 숲속의 꿩 3 20.02.25 39 0 11쪽
179 숲속의 꿩 2 20.02.25 40 0 12쪽
178 숲속의 꿩 1 20.02.21 4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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