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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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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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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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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숲속의 꿩 8

DUMMY

8


“배가 고파서··· 노숙자 한 명을 건드렸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아무도 찾지 않을 테니까.”


형사는 추리를 이었다. 줄거리만 탄탄하면 제안한 조건을 충족시킬 테니까.


흔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이는 살인은 범죄자 본인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사고를 가졌다. 대부분이 납득되는 동기가 없었다.


물론 피해자가 비교적 힘이 약한 여성이나 어린이에 국한되기는 했다. 하지만 상대는 오귀였다. 표적이 일반 남성이라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거세게 반항했어. 그래서 피해자의 등을 수차례 흉기로 찌르고, 더는 도망가지 못하게 발 하나까지 잘랐어.”


동호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상상했을 뿐인데도 기분이 나빴다. 잔혹한 행위 탓이었다. 그런데 사건의 장본인으로 자신을 지목하는 상황이 정말 기가 막혔다.


난잡한 성질은 좋아하지 않았다. 일상이든 아니든, 너저분한 광경을 접하면 자연스레 눈썹이 움찔거렸다. 충무로 사건을 까맣게 잊은 이유도 그러한 성향에서 비롯된 방어 기제가 아니었을까.


현장을 혈흔 하나 보이지 않게 정돈했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지 않았던가. 진술을 위해서 재차 상기할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가 사실 상당했다.


“그러다가 일이 틀어졌어. 병원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기척을 들은 거야. 그제야 현실을 자각했고, 황급히 집으로 도망쳤지.”

“형사님······.”


동호는 끝내 빈약한 소설에 제동을 걸었다. 웬만하면 작자의 노력을 감안하여, 집필이 모두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참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잠자코 관망할 수가 없었다.


“저를 얼마나 바보로 보시는 거예요.”


상대를 확실히 엮을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것을 이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맞은편의 사람들이 참으로 애석했다.


여타 사건을 대하는 방식이 어떠할지 대충 짐작되었다. 적당히 수집한 증거에 유력한 용의자 하나를 밀어넣고, 그럴싸한 내용을 만드는 법이겠다. 뻔뻔한 진범을 잡기에는 탁월하지만, 정작 그런 이들에게 사용되지 않아서 문제였다.


주로 가난하고 겁 많은 사람이 대상이었다. 게다가 이런 방식은 정작 법정으로 향하면 유죄 입증을 받아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기분이 언짢았다. 엮인다면 차라리 단단한 올가미가 나았다. 조금만 들썩여도 풀리는 덫이라면 억울하지 않은가. 이렇게 약한 줄을 고수하는 대한민국 경찰 공무원 일부도 가히 실망스러웠다.


그만큼 우습게 여긴다는 증거였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돕는 인맥이 없겠다, 달구어진 팬 안에 들어간 재료처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었다. 사람의 앞날을 좌우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민중의 지팡이라 불리는 자들이 고작 이런 각오로 사건에 임하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예의도 아니었다. 사건 자체가 순전히 그들의 성과를 위한 수단이 아닌가. 이런 함정은 스스로 들어갈 가치가 없었다.


“정말, 아주 정말! 배가 고팠다고 가정해요. 그랬다면 차라리 병원에서 보호 중인 유기 동물들을 이용했겠죠. 형사님이 설명하신 대로, 주인도 없겠다, 아무도 찾지 않겠다, 걸려도 벌금형에 그칠 텐데 참······.”


맹랑한 대답에도 형사들은 도통 입을 열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은밀하고 안정적인 혈액 수급 환경은 이미 완벽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굳이 위험하게 사람을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이전보다 조금 개선되었으나, 한국은 아직 동물의 권리를 그리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동물을 훔치거나 죽여도 겨우 벌금형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유기하는 숫자도 엄청났다. 그것을 전부 식용으로 섭취해도 행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냥 노숙자도 아니에요. 형사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차림새가 그래요?”


그들은 은근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심중을 어지럽히는 일말의 양심 탓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노숙자 신분이 아닌 사실을 알았다. 옷차림만 헤아린 결과가 아니었다. 시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절로 정체가 떠올랐다.


어떻게 잊겠는가. 수많은 여성을 미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 바로 탁재현이었다. 하도 꼬리가 잡히지 않아서 공개 수배까지 한 대대적인 사건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사형 선고를 받고서 복역 중이어야 하는 그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설명이 되는 이유는 하나였다. 불미스러운 일을 계기로, 탈옥에 성공했다.


그들은 즉시 곤지암 사태와 재현의 관계를 탐색했다. 신수 일보가 들추어낸 명단에서 재현의 이름을 찾았을 때는 가히 아찔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지금 정부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협정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모자라, 시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뻔했으니까.


그래서 피해자의 신원을 은폐했다. 뒷일은 구태여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대의라고 여겼다. 오귀들이 자유롭게 날뛰는 일상을 허락하면 언젠가 이보다 더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더구나 용의자 본인도 혐의에 대해서 일부 시인하지 않았나. 곤지암 시설에서 탈출한 죄수들이 어디서 또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마저 신경 쓰기는 피곤했다.


행정부는 현재 각 지휘자들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느라 바빴다. 언제 정권이 뒤집힐지 모르는 가운데서 그 부분까지 깊이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그럼, 흉기는 어디 있어요?”


여전히 대답이 없자, 동호는 거들먹거렸다. 기분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불리한 점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 태도를 뭉개고 싶었다.


어이없는 주장도 아니었다. 그로서 충분히 제기할 만한 의문이었다.


일차적으로 의심할 근거는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한 남자가 별안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오른발 하나가 잘린 상태였고, 등에는 예리한 흉기에 수차례 찔린 상처가 있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현장에 머무른 청년을 의심하는 흐름은 응당했다.


그렇다면 흉기는 어디에 있는가. 다짜고짜 체포할 정도로 확신하면서, 정작 그것조차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만큼 확실한 증거가 더는 없을 텐데도.


“네가 감췄겠지!”

“저는 그 사람 등에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도 지금 알았는데요. 형사님께서 친히 설명해 주셔서.”

“지금까지 입을 다문 건 아니고?”

“하아, 그것도 제가 했다고 쳐요. 카메라에 찍혔어요? 현장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제가 가지고 떠났다는 뜻인데, 어디, 수상한 점이 있었어요?”


사건 당시 마주한 모습은 오직 정면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상대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눈에 띈 장면은 절뚝이는 발이었다. 피해자를 그 지경으로 만든 존재가 정확히 누군지 몰라도, 수인이나 오귀일 것이었다. 일반인은 절대로 그만한 완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추정을 고백하면 경찰이 고이 수긍할까. 아무래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재 경찰은 단 하나의 실마리라도 자신과 맞추기 위해서 혈안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목격된 유일한 용의자였다. 인내가 부족한 대중을 진정시키려면, 다른 용의자 후보를 찾기보다 그나마 붙든 쪽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워야 편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피해자를 살해한 범인은 자신이었다.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잔혹한 방식 때문에 엄중한 처벌을 받을지 몰라도, 당장은 복잡하게 걱정하기 싫었다.


그저 사실 관계만 정확하게 알리고 싶었다. 특히나 피해자의 특징에 관련해서. 훤칠한 성인 남자를 단번에 휘어잡을 만큼 강력한 완력의 소유자였다. 틀림없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돌연 살갗을 무는 행동까지 보이지 않았는가. 고스란히 당했다면 자신은 정말 죽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꾸준히 주장하고 있었다. 조금은 지나쳤지만 자신은 순전히 목숨을 지켰을 뿐이라고.


쾅!


그러나 형사는 무시했다. 도리어 상관없는 책상만 내리쳤다. 설득이 불가하자 곧바로 작전을 교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동호는 동요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입이 거친 편이었다. 그렇게 해야 부족한 점이 들키지 않으니까. 형사는 그 당돌한 눈빛도 마음에 걸렸는지, 돌연 삿대질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점만 강조했다.


“잘 들어. 네 장난에 놀아날 정도로 만만한 사람이 아니거든? 네 운명은 정해져 있어, 알아?! 변명해 보았자 소용없어. 카메라에 떡하니 찍힌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형사는 손가락으로 다시 책상에 둔 사진을 두드렸다. 카메라 영상에서 추출한 장면에 영락없는 청년의 모습이 있었다. 슬금슬금 골목에서 나오더니, 주변의 시선조차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성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말씀드렸잖아요. 고양이가 비명을 질러서 골목으로 들어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런 상태였다고. 현장에 있었던 건 맞지만, 이 사진이 제가 잔인한 살인자라는 증거는 되지 못하죠.”


하지만 이 사진도 역시 결정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형사들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그만한 일을 치른 범인치고 옷차림이 너무 말끔했다. 죽음을 앞둔 피해자가 병원에서 들을 정도로 격렬하게 반항했다면, 옷이나 피부든 어디라도 흔적이 나올 텐데 미세한 살점도 없었다.


“그럼 피는요? 형사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피해자를 공격했으면 제 옷에도 피가 많이 튀었을 텐데.”


거기다 제일 중요한 피해자의 피가 없었다. 발 하나를 완전히 절단했을 정도로 끔찍한 범행이었다. 굳이 상의가 아니라도 바지나 신발에 그 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아야 했다.


신분을 알아내서 체포했을 정도면, 기숙사 방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겠다. 그럼에도 지금껏 범행과 관련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순전히 이 진술에 의존하는 것일까.


“설마··· 세탁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겠죠? 제 방을 뒤져서 찾았다면 아시겠지만, 등이 지저분할걸요? 다음 날 지각해서 정신없이 나갔거든요. 빨래도 아직 모이지 않았고.”

“오귀잖아! 이상한 요술이라도 부렸겠지!”

“아··· 이를 테면 부분 세탁 요술 같은······.”


다시금 말문이 막힌 형사는 이를 악물었다. 옆에서 가만히 숨죽이던 동료 형사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자리에서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자연스레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고 싶었는데, 어깨가 멋대로 들썩였다.


그래도 머지않아 진정을 되찾았다. 공기가 여전히 위중한 탓이었다.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에 본인은 동료만 괜히 눈으로 째렸다. 그리고 참관실의 유리를 의식했다.


사실상 가장 까다로운 의문이었다. 마주한 용의자가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것만큼은 확실한데, 살해한 증거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피해자를 처리했나.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사용했어도, 시신의 상태가 상당히 엉망이었다. 분명 어딘가에 흔적이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사건 현장부터 시작해 기숙사 방을 샅샅이 뒤져도 소지품 대부분이 티끌 없이 깨끗했다. 그래서 언론에 떠들어대는 만큼 확실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질문 드릴까요? 대체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를 죽였을까요.”


동호는 천연하게 되물었다. 물론 친절하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은 가히 최후의 보루였다.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전까지는 패를 보이면 안 되었다.


자칫하면 도통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까지 이쪽에게 뒤집어 씌웠다. 지나친 걱정이면 좋겠지만, 당장의 작태만 보아도 가능성이 충분했다.


손대지 않고도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이한 힘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입하기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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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6 20.04.10 43 0 14쪽
204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5 20.04.07 43 0 13쪽
203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4 20.04.07 41 0 11쪽
202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3 20.04.03 41 0 12쪽
201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2 20.04.03 39 0 15쪽
200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1 20.03.31 39 0 13쪽
199 칠월 귀뚜라미 5 20.03.31 41 0 17쪽
198 칠월 귀뚜라미 4 20.03.27 45 0 11쪽
197 칠월 귀뚜라미 3 20.03.27 40 0 11쪽
196 칠월 귀뚜라미 2 20.03.24 38 0 13쪽
195 칠월 귀뚜라미 1 20.03.24 42 0 14쪽
194 바위라도 7 20.03.20 40 0 14쪽
193 바위라도 6 20.03.20 39 0 15쪽
192 바위라도 5 20.03.17 38 0 11쪽
191 바위라도 4 20.03.17 39 0 11쪽
190 바위라도 3 20.03.13 48 0 13쪽
189 바위라도 2 20.03.13 39 0 14쪽
188 바위라도 1 20.03.10 45 0 12쪽
187 숲속의 꿩 10 20.03.10 40 0 12쪽
186 숲속의 꿩 9 20.03.06 42 0 11쪽
» 숲속의 꿩 8 20.03.06 40 0 12쪽
184 숲속의 꿩 7 20.03.03 40 0 11쪽
183 숲속의 꿩 6 20.03.03 42 0 13쪽
182 숲속의 꿩 5 20.02.28 40 0 13쪽
181 숲속의 꿩 4 20.02.28 40 0 12쪽
180 숲속의 꿩 3 20.02.25 39 0 11쪽
179 숲속의 꿩 2 20.02.25 40 0 12쪽
178 숲속의 꿩 1 20.02.21 40 0 14쪽
177 곰이 피는 나무 8 20.02.21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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