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캐 공격 원툴 파티
“ 필모 아저씨 생각은 어떠십니까? ”
“ 솔직히 인원이 부족해서 전투에도 참여시키는 게 정배긴 하죠. ”
“ 그건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직업은 뭘로 해야 할지가 참··· ”
빙빙이한테 나 같은 도적을 시키자니 돌진하다가 죽어버릴 거 같고, 그렇다고 전사를 시키자니 칼질이 너무 하찮을 거 같고, 딱히 떠오르는 직업이 없었다.
얜 그냥 천성이 농부와 요리사 인 거 같은데...
“ 전면으로 나서는 것보단 뒤에서 보조하는 궁수 아니면 법사가 나을 거 같습니다. ”
역시 사람 눈은 거기서 거기라고 아직 전투를 시켜본 것도 아닌데도 우린 빙빙이의 하찮은 전투력을 이미 완벽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궁수에 관한 부분에선 난 의견이 달랐다.
“ 그 활이 우리한테 맞으면요? ”
궁수란 적중이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였다. 아직 적중률을 높이지 않은 궁수를 데려가봤자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히지도 못 하고 계속 죽기만 할 거다. 난 우리 빙빙이를 밥만 축내는 식충이로 만드느니 차라리 전투에서 제외하는 게 낫다는 마인드였다.
“ 그럼 빙빙이는 법사가 좋겠네요. ”
그렇게 빙빙이의 전투 직업은 법사가 됐다.
그러려면 또 지팡이를 사와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무기 강화석이 없어서 당분간은 0강 법사로 어떻게든 비벼봐야 할 거 같다. 일단 1차 보스까지는 머리수와 몸빵으로 버텨볼 거다.
“ 근데 이거 직업 밸런스가 영.. 도적 하나에 법사 둘은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는데요... ”
공격캐보다 힐러가 많은 길드는 아마 우리 길드가 유일할 거다. 내가 보기에도 공격력이 너무 X밥 같이 보여서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이렇게 힐러를 과하게 뽑아 놨으니 다음은 반드시 공격캐를 데리고 올 거다.
“ 제가 방금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 나쁜 조합도 아닌 거 같습니다. ”
그런데 필모 아재는 꽤 낙관적이었다.
자기가 힐러라서 그런가.
“ 어째서요..? ”
“ 힐이 가능한 법사가 둘이면 대장님의 생존률이 더 높아질 거 아닙니까. 용캐이신 대장님이 치명타를 계속 날려서 공격한다면 보스도 금방 녹을 겁니다. ”
“ 한 마디로 용캐 공격 원툴 파티란 말이죠? 좋은데요..? ”
나도 주인공병이 있어서 그런지 앞으로 활약할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피가 끓어 올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차 보스는 무조건 내가 캐리해서 깨고 말 거다.
***
다음 날, 우린 상점에서 급하게 마법사의 지팡이를 사와서 처음으로 셋이 보스 트라이를 하러 갔다.
그 전에 동굴에서 귀찮은 원숭이들을 내쫓고 우린 보스방 앞에서 잠시 작전을 짰다.
“ 오더는 아저씨가 해주세요. 전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
과거에 나도 한동안 대장병이 걸려서 오더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희한하게 우리 용캐 길드원들이 물살에 휩쓸리듯 한 번에 전멸하는 괴상한 현상과 마주해야 했다.
그때 난 결정을 해야 했다. 우리 길드가 1등 길드가 되느냐, 아니면 나만 랭킹 1위가 되느냐.
결국 난 우리 길드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해 미친 오더 본능을 봉인해야 했다. 그 결과 우리 무적 길드는 게임이 망하기 전까지 명실상부 1위 길드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난 우리 길드원들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기로 했다.
난 무조건 필모 아저씨의 오더만 따를 거다. 그게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이었다.
“ 일단 제가 은둔진을 써서 대장님을 보스에 접근할 수 있게 해드릴 겁니다. 그때부터 대장님은 다른 생각 말고 보스를 집중 공격하면 됩니다. 깎이는 피는 저와 빙빙이가 대장님께 몰빵으로 채워드리겠습니다. ”
“ 좋습니다. ”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컨트롤 걱정없이 화려한 용캐 기술을 뽐낼 수 있을 거다. 시도해 보기 전까진 그럴싸한 계획인 거 같았다.
“ 그리고 빙빙이 너는 마법진이 펼쳐지는 거리 안에서 최대한 보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우린 한 대만 맞아도 치명상이야. 알았지? ”
“ 예! 저 잘할게요! ”
처음이라 그런지 빙빙이는 화이팅이 넘쳤다. 쟤가 아직 보스한테 맞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아픈지 몰라서 저러는 거다.
게다가 첫 보스 트라이를 나같은 서버 1위 용캐와 하다니. 적어도 이 게임 내에선 다이아 수저를 문 거나 다름없었다.
“ 그리고 힐은 무조건 대장님한테만 쓰는 거야. 자힐은 금물이야. ”
“ 네! ”
빙빙이 같은 전투 초보에게는 이런 세세한 행동 방침까지도 하나하나 머리에 입력해줘야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필요한 오더는 그때 그때 필모 아저씨께서 잘 내려주실 거다. 그게 바로 오더의 역할이었다.
“ 그럼 파이팅 하고 들어가죠. 자, 다들 손 모으시고. 아자, 아자, 파이팅! ”
이 유치한 기합 만큼은 역대 우리 무적 길드 중에서 지금이 가장 합이 잘 맞는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린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첫 보스 트라이에 들어갔다. 이미 지난 번에 개죽음을 당한 경험이 있던지라 난 괜히 떨렸다.
제발 오늘이 코쿵카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 은둔진 폈습니다! 들어가세요! ”
난 필모 아저씨가 보스 바로 앞에 깔아 둔 은둔진 위로 가뿐이 뛰어올라 기척을 숨기고 보스에게 접근했다. 이제 5초 동안 보스는 내 기척을 느끼지 못할 거다. 그 틈을 노려 난 도적 전설 캐릭터의 필사기 기술인 무표환을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수십개의 표창이 생기며 내 주위에 있는 공기마저도 산산이 갈아버렸다. 물론 그 중앙에 있는 코쿵카도 결코 무사할 수는 없었다.
이 공격으로 코쿵카의 피가 5분의 1정도 깎였다.
“ 계속 공격하세요! ”
필모 아저씨는 내 주위에 방어력을 높이는 마법진을 깔면서 계속 공격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다시 쓰려면 쿨타임 2초를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면 도적의 기본 공격인 베어가르기로 녀석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용캐의 베어가르기는 적중률 30%이 높아지고 공속이 30%나 빨라져 거의 영웅급 기술과 맞먹었다. 난 쿨타임이 돌 때까지 계속해서 녀석을 베어 갈랐다. 사냥터에서 열심히 연마를 한 덕인지 미스도 전보다 덜 뜨는 거 같았다. 드디어 나도 1인분 하는 날이 온 거다.
‘ 얘들아, 나 이렇게 성장했어! 다시 돌아오면 1인분 제대로 해줄 테니까 제발 돌아와..! 얘네들은.. 너무 약해···! ’
혼자 똥꼬쇼를 벌이고 있으니 일당백이 되어 나란 통나무를 들어줬던 옛동료들이 너무 그리웠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진해서 사냥도 나가고 간간이 농사 일손을 도울 의향도 있었다. 어차피 녀석들은 템이 다 맞춰져 있어서 딱히 돈들 데도 없을 거다.
“ 웅우웅우우우우!!!! ”
내가 한눈을 파는 사이 피가 반 이상이 깎인 코쿵카가 폭주해서 어그로가 끌려 있는 나에게 강펀치를 날렸다.
“ 억! ”
옆구리를 정통으로 맞은 난 입에서 비명이 절로 세어 나왔다. 이 새끼가 덩치만 남산만 한 줄 알았더니 파워 또한 우습게 볼 수준은 아니었다.
급하게 피를 확인해 보니 3분의 1이나 깎여 있었다. 이렇게 2방만 더 맞으면 난 사망이었다.
이럴 땐 무적기가 필요했다. 난 무적이 되어서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 거다.
“ 저희가 여기서 힐에 몰빵할 테니까 대장님은 방어할 생각 말고 공격만 하세요! ”
“ 하지만 무적기가 필요할 거 같은데··· ”
“ 공격하세요! 여기 힐 하는 법사가 두 명입니다! 저흴 믿으세요! ”
“ 에이씨. 모르겠다! ”
뒤에서 자꾸 닦달을 하니 나도 모르게 용기가 솟아 올라 멋지게 위로 점프를 하며 무적기 대신 무표환을 썼다. 그리고 홧김에 한 그 공격에 치명타가 떠서 보스의 피를 반이상이나 깎아 버렸다.
예전에도 이런 치명타를 날린 적이 100번에 1번 꼴로 있었지만 그때마다 에임이 안 좋아서 결국 치명적이지 않은 공격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그새 에임 연습 좀 했다고 이번엔 역대급으로 제대로 들어갔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이 놀라웠다.
그때부터 갑자기 뽕이 차올라 이 한 몸 아끼지 않고 가능한 공격들은 모조리 쏟아 부으며 난리 부르스를 쳤다.
그러다 간혹 코쿵카의 주먹에 맞아 허공을 날아갔지만 뒤에 있는 힐러들을 믿고 다시 앞으로 돌진해서 무표환으로 녀석을 갈아버렸다.
“ 으으으으!!!! ”
드디어 코쿵카가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이 한 놈을 잡기 위해 수십 번의 무표환과 수백 번의 베어가르기를 날려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지만 그래도 멋진 필사기들을 시연해 볼 수 있어서 난 몹시 만족했다.
잠시 후, 녀석이 시체 위로 무기강화석 10개가 떠올랐다. 이거면 필모 아저씨와 빙빙이의 지팡이를 강화할 수 있을 거다.
물론 필모 아저씨가 이번엔 무기강화석을 몇 개나 먹을지 모르겠지만 트라이를 해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축복 받은 거였다.
난 빼앗길세라 아이템부터 챙기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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