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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용캐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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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3.10.07 21:12
최근연재일 :
2023.10.30 21:15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592
추천수 :
1
글자수 :
80,622

작성
23.10.0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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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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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굶어죽은 용캐

DUMMY

" 오케이. 지금 허비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자고. "


키카루스의 실물을 본 적이 없지만 난 이 게임의 1등 용캐였다. 지금 맞짱을 떠도 30분 안에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 죄송하지만 키카루스에게 가려면 그 전에 있는 보스들부터 물리치셔야 합니다. "


" 무슨 소리야. 그건 이미 예전에 다 깼잖아! "


" 죄송하지만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서 데이터가 일부 소실되었습니다. 따라서 무적님께서는 첫 관문 보스인 코쿵카부터 깨셔야 다음 관문으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


죄송하면 그냥 지나가게 스킵해 주던가. 얜 죄송하다면서 지 할 말 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었다. 하도 시간이 많이 흘러서 코쿵카가 어떤 기술을 쓰고 어떻게 생긴 보스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6관문까지 통과했던 이력을 보건대 나 혼자서도 충분히 10컷을 낼 수 있을 거다. 조금 귀찮을 뿐 못할 것도 없는 하찮은 난이도였다.



" 그럼 코쿵카부터 깨러 가자. "


" 그럼 코쿵카가 있는 던전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난 로라를 따라 코쿵카가 지키고 있는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 그럼 전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


" 알았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거기 꼼짝 말고 있어. "


난 자신만만하게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칼을 든 원숭이들이 하나 둘 나에게 달려들었다.


난 적혈의 개사기 기술 중 첫번째 무한 표창 던지기, 무표환으로 그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이 기술로 말하자면 초당 최대 30개의 표창을 사방으로 던져서 주위에 있는 적들을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는 사기 기술이었다. 쿨타임도 2초 밖에 안 돼서 시간의 구애없이 적들을 마구잡이로 갈아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기술 에임만 잘 맞추면 컨트롤이 필요없다는 점에서 템빨 용캐인 나에겐 딱이었다.


그렇게 수십 마리의 원숭이 병사들을 단숨에 물리치고 난 보스가 있는 방 입구에 도달했다. 이 방으로 들어 가면 코쿵카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야 생각나는 건데, 코쿵카는 주먹을 날리거나 몸통 박치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오랑우탄형 괴수였다. 워낙 파워가 세서 나도 게임 초반에는 꽤나 애를 먹었던 보스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서버 최초 12강 단검과 서버 최초 필로트 11강 전신 갑옷과 적혈이라는 용캐가 있었다. 이 정도 스팩이면 쟤가 보스가 아니라 내가 보스라 해도 무방했다.


난 그냥 동네 마실 나온 기분으로 보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내 몸집에 20배가 넘는 코쿵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날 보자마자 코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거대한 몸을 움직여 나에게 돌진했다. 오랜만에 보는 압도적인 체격에 난 살짝 쫄았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었다. 적혈에겐 10초동안 캐릭터를 무적으로 만들어주는 개사기 스킬이 있었다.


난 코쿵카가 주먹을 날리기 직전에 무적기를 써서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앞으로 10초 동안 난 무적이었다. 이제 첫번째 개사기 기술인 무표환으로 녀석을 갈아버리기만 하면 됐다.



" 히얍!! "


난 우렁찬 기합과 함께 무수한 표창을 밖으로 꺼냈다. 그 순간 내 세상은 다시 어둡게 변하더니 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현생으로 돌아온 건가..?! '


난 기대감에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보이는 건 내가 처음으로 눈을 떴던 그 들판이었다. 로라는 어느새 다시 내 옆에 와 있었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벌써 깬 거야?! "


못 해도 5분은 갈 거라 생각했는데 1분도 안 돼서 깬 거 같아 살짝 아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보스가 이렇게 약한 건 운영진들이 잘못 설정한 거 같았다.



" 아닙니다. 무적님께서는 보스와 싸우던 도중에 아사로 죽으셨습니다. "


" 무슨 소리야. 내가 굶어 죽다니! "


" 무적님께서 잊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용사들이 활동을 할 때마다 에너지와 피가 닳아서 회복을 하려면 음식이나 포션을 드셔야 합니다. "


그제서야 난 날 위해 음식과 포션을 만들어줬던 지난 날의 나의 동료가 떠올랐다. 너무 오래 지나서 아이디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요리사 주제에 필로트 갑옷 올 10강을 찍어서 보스한테 아무리 맞아도 쉽게 죽지 않는 체력 괴물이었다. 그녀만 찾는다면 음식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동료들부터 찾아야 했다. 걔네들만 있으면 키카루스 따윈 아무것도 아닐 거다.



" 우리 길드원들은 다 어디 있는데? "


" 죄송하지만 무적님의 길드였던 '무적 길드'에서 접속한 인원은 무적님 혼자입니다. "


안돼!!!!


아무래도 그 자식들도 나처럼 열심히 현생을 사느라 이 게임을 완전히 잊은 거 같았다. 이미 20년 전에 망해서 없어진 게임이니 나처럼 꿈속 세상에 빠지지 않는 이상 다시 접속하기도 어려울 거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이 게임에서 나름 용캐였던 동료들과 재회하는 건 포기해야 할 거 같다.



" 됐고. 그럼 음식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 "


내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본 기억이 없었던 난 그 간단한 정보마저도 로라에게 물어야 했다.



" 농사를 지으셔서 요리를 하시면 됩니다. "


로라가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 웃기지마! 나 이 게임 넘버원 도적 용캐 무적이야! 근데 나보고 농사나 지으라고?! "


" 아니면 보스를 찾으러 가다가 또 굶어 죽고 말 겁니다. 그럼 다시 여기에서 깨어나고 또 굶어 죽고, 그렇게 영원히 반복하시겠죠. "


용캐가 배가 고파서 죽다니. 쪽팔려서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거다. 일단 코쿵카를 무찌를 수 있는 식량과 물약만이라도 어떻게든 마련해 보기로 했다.



" 그 농사는 어떻게 하는 건데. "


" 그럼 무적님의 성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잠시 후, 난 로라가 만든 텔레포트를 타고 20년 전 길드원들이 대신 지어준 내 성으로 이동했다.


20년 전만 해도 날 따르는 길드원들이 100명은 넘었는데 그 아이들이 이 성을 지어주겠다며 이주일 동안 산을 깎아 뼈대를 올리고 바다에서 물을 길어와 드넓은 호수를 채웠었다. 그렇게 완성된 게 바로 이 무적성이었다. 지금은 나밖에 없어 적막하고 쓸쓸했지만 그때는 모두가 한 번씩 와 보고 싶었던 관광 명소이기도 했다.


여기 있으니 지난 날 나와 함께 했던 14인의 정예 부대가 너무도 그리웠다.


걔들만 있었다면 코쿵카같은 피라미는 10초 컷도 낼 수 있을 텐데..



" 이미 지하에 길드원들이 만들어 둔 밭이 있더라고요. 거기로 모시겠습니다. "


우린 다시 텔레포트를 타서 지하로 이동했다. 그러자 내 눈 앞에는 미국 대농장에서만 보던 광활한 밀밭이 펼쳐졌다. 어떤 미친놈들이 내가 사는 성 아래다 거대한 농장을 만들어 놨다.



" 우선 여기서 곡식과 채소를 채취한 다음에 요리대로 가셔서 음식을 만드시면 됩니다. 농사에 필요한 도구는 보관함에 준비돼 있습니다. "


얘가 진짜로 나한테 농사를 시킬 셈인지 꽤나 의욕적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 거짓말 하지마.. 용캐인 내가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잖아...! "


난 아직도 이 잔혹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용캐인 내가 비전투인원들이나 하는 농사를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러니까 게임이 망하지.



" 아니면 3시간 후에 아사해서 다시 그 들판에서 깨어나실 겁니다. 그 전에 얼른 배고픔을 해결하세요! "


" X발, 나한테 왜 이러는데! "


현생에서도 공장이나 공사 현장 같이 험한 일만 도맡아 해왔는데 여기서도 난 결국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난 하는 수 없이 곡괭이를 들고 밀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 여기서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뭐야? "


난 열심히 곡괭이를 놀리며 옆에서 구경 중인 로라에게 물었다.



" 가장 쉬운 요리는 야채죽입니다. 야채죽에는 밀3개와 당근, 그리고 양파가 하나씩 들어갑니다. "


" 가장 쉽다며! 뭐 그렇게 들어가는 게 많아! "


" 아니면 240분 후에 굶어 죽어서 그 들판에서 깨어나시게 될 겁니다. 그 전에 배고픔을 해결하세요. "


" 됐다 그래! "


이젠 말할 힘도 없어서 난 열심히 밀을 베고 당근과 양파를 수확했다. 그리고 로라가 말했던 대로 요리대로 가서 밀 3개와 당근과 양파를 각각 1개씩 올려 놓고 조리를 시작했다.



[ 야채죽이 파괴되었습니다 ]


그런데 나오라는 야채죽은 안 나오고 이상한 알림음만 울렸다. '



" 이거 왜 이래? 내 야채죽은?! "


" 모든 요리가 백퍼센트 성공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확률로 만들어집니다. 요리사는 총 5성급으로 구분되는데 용사님께서는 1성급 요리사도 되지 않아서 50%의 확률로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


극악의 확률에 참아왔던 난 화가 폭발했다.



" 그럼 내가 캐온 농작물을 50퍼센트 버려야 한다는 거야?! 그딴 게 어디 있어! 못 해도 90퍼센트는 돼야 요리할 맛이 나지! "


지금까지 날 따르던 요리사들이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어서 요리가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작업인지 몰랐는데 직접 농사를 하고 요리를 해서 작물의 50%를 허공에 날려 보니 묵묵히 우리 곳간을 채워줬던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물론 걔들은 전부 5성급 요리사들이어서 나랑 확률을 달랐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루한 일을 하루 종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 죄송하지만 시스템 설정상 확률을 바꾸는 건 어렵습니다. 그런 건 운영자분들께 문의해 보세요. "


" 말을 말자... "


미안하지만 그 운영자분들께서는 나 때문에 이미 20년 전에 이 게임에서 손을 떼시고 뿔뿔이 흩어지셔서 문의를 받아줄 곳이 없었다. 결국 난 이 개창렬인 확률로 요리를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농부들은 극악의 확률과 싸우며 남모를 눈물로 하루를 지새워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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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지론 23.10.16 14 0 9쪽
7 운명을 건 강화! 23.10.15 20 0 10쪽
6 사냥 테스트 23.10.15 23 0 10쪽
5 용캐 전용 힐러 23.10.11 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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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난 도적이야! 23.10.08 35 0 10쪽
» 굶어죽은 용캐 23.10.07 51 0 10쪽
1 20년 전 용캐 부활하다 23.10.07 9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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