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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fMango13

네메시안 테일즈 - 수인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망고반쪽
작품등록일 :
2018.02.16 23:34
최근연재일 :
2019.04.13 10: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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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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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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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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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36: 죽음을 맞이하며

DUMMY

보복의 숨소리가 검은 연기를 흔들었다. 연기를 뚫고 나타난 새빨간 손톱은 아직 살아있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에인을 날려 돌더미들 사이에 파묻어버렸다.

"에인!"

테나의 다급한 날개짓이 그녀를 그의 곁으로 데려갔다. 숨은 아직 붙어 있었지만 방금 그 일격에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의 몸은 박살나 있었다. 거기다 운도 없었는지 그의 손을 떠났던 그의 검은 그의 허벅지에 박혀 있었다. 아직 연기가 그들을 가려주고 있는 것을 본 테나는 그의 검을 뽑은 뒤 그와 함께 피아와 펠리시아를 숨겨둔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마룡이 날개를 펼치자 일대에 있던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에인의 일격을 맞았던 그녀의 목과 얼굴의 일부분은 근육과 뼈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그녀의 온몸을 뒤덮어 은색 비늘을 붉은 유리조각 처럼 바꿔 놓았다. 비록 무한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죽음을 극복하고 인간의 피와 살을 재생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는지 그녀의 몸은 어른의 세배 정도의 크기로 줄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서슬퍼런 눈에 서린 분노는 그 어느 때 보다 차갑게 얼어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손을 들자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하늘은 마치 쪼개지기라도 한듯 번개가 사방으로 내리치기 시작하였고 그것의 소리는 공간 자체를 깨뜨려버릴 듯 사정 없이 울렸다. 마룡은 자신의 드러난 상처에서 피가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활력을 잃은 표정과 함께 그녀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제길... 부족했던 건가."

테나가 에인을 피아와 펠리시아 옆에 뉘이며 한탄했다. 그 상황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을 했지만 결국 그것도 이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체 없이 내려올 죽음 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으-음..."

그때 놀랍게도 피아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파란색과 금색 눈을 드러낸 그녀는 귀를 찢어버릴 듯 한 굉음에 벌떡 일어나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피아?"

"이게 어떻게-오빠?!"

만신창이가 된 에인에게 다가가려고 한 그녀가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엎어졌다.

"언니?"

"아리아?"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말투와 서로 다른 행동이 섞인 그녀는 기억도 더듬으며 몸 안의 두 영혼의 존재를 확인했다.

"맞다, 우리-"

"-정말 언니 몸에-"

"피아! 아리아! 성공이었구나, 다행이야."

테나도 곁에 와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질문을 하려 하는 모양이었지만 둘이 동시에 말을 하려고 해서 그런지 그녀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이만 나왔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한 그녀는 에인의 몸의 가장 심한 상처들에 붕대를 묶으며 답을 해주었다.

"실패했어. 일이 꽤 잘 풀리긴 했지만... 마룡을 쓰러뜨리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야."

그들이 다시 에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 살아는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살아 있어도..."

그녀가 말을 이어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항상 자신감에 넘치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옛적에 펠리시아를 제대로 구하지 못했던 때 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오빠..."

그들이 에인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몸이 되어 느끼는 안타까움과 슬픔도 배가 되었는지 그들은 한 목소리로 울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테나도 안타까움에 지쳐 고개 만을 저으며 마음 속으로 한탄하였다. 그렇게 괴로움에 찌든 삶을 살아 왔는데도, 그렇게 세상의 몸부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이 아이들, 그리고 펠리시아도 이렇게 끝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테나가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피아, 아리아. 내 말 잘 들어."

그들이 여전히 훌쩍이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들의 파란색과 금색 눈은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구슬 처럼 눈물에 젖어 반짝이고 있었다.

"너희 아직 마법 쓸 수 있지? 내가 저놈의 시선을 끌 테니까 너흰 에인을 데리고 여기서 빠져 나가."

"그-아-그게 무슨-"

"펠리시아는 두고 너희 셋이 도망쳐. 살아 나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거야."

그녀가 눈을 돌려 그들이 숨어 있던 건물더미 밖의 상황을 살폈다. 아직 나갈 수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날개를 펼쳐내 검은 깃털을 휘날렸다.

"시간이 없어. 서두르는게 좋을 거야."

"ㅇ-왜..."

"미안해. 나랑 펠리시아가 그날 너와 네 오빠를 구해주고 조금만 더 신경 써 줬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고생 많았어. 혹시라도 살아 남아 이 일을 해결한다면..."

번개가 내리치는 하늘을 앞에 두고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행복하길 바래."

그곳을 나선 그녀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마룡에게 다시 향했다. 하지만 구름들이 이미 마룡의 수족이 된 것인지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사방에서 번개가 그녀를 향하기 시작했다.

'이래선 녀석들이 빠져나갈 수 없을텐데...'

이를 악물고 속도를 더 낸 그녀는 다시 마룡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룡은 상처가 오히려 더 악화된 듯 시체 처럼 창백한 안색과 생명을 잃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이, 그 쯤 해 두지? 사람이 잠을 못 자잖아!"

그때 자신의 위치로 번개가 떨어질 것을 느낀 그녀가 급강하 하며 착지하여 그것을 피하였다. 그녀의 조롱에 대꾸 조차 하지 않았던 마룡은 계속해서 테나의 머리 위로 번개만 떨어뜨리며 그녀를 죽여버리려고 하였다.

"야야, 이거 너무-?!"

갑자기 땅에서 푸른 화염이 솟아 오르더니 그녀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피할 곳이 없자 그녀는 결국 얼마 남지도 않은 마력으로 보호막을 세워 시간을 벌어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한꺼번에 내리친 여섯개의 번개들은 그녀의 보호막을 단번에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날개와 온몸이 잿더미가 되어 가까스로 살아나온 그녀는 마룡이 자신을 들어 올리는 것을 느꼈다.

'아프다... 망할 놈. 끝까지 짜증나게 하네.'

이제 받아들이는 것만 남은 그녀가 눈을 감고 끝을 기다렸다.

----------

"아-안..."

테나가 사라지는 것을 본 피아와 아리아는 그녀를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가눠지지 않는 몸으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언니, 어떡하지?'

'나도 모르겠어. 도대체 이게 뭐야...'

테나는 목숨을 버리려 떠났고, 에인은 죽지 않은게 기적이었다. 이제 모든게 끝난 거나 다름 없는데, 이 상황에서 도망쳐 봤자 어딜 가겠는가.

그때 그녀의 눈에 펠리시아가 들어왔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어딘지 모를 곳에 갇혀 있는 펠리시아. 그녀라도 있었다면 뭔가 바꿔주지 않았을까.

'아리아, 잠깐만 가만히 있어.'

피아가 갑자기 눈물을 닦아내더니 마법을 사용해 펠리시아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펠리시아와 에인은 편히 사용하는 마법이었지만 그녀는 얼마 사용해보지 않았기에 펠리시아의 어깨를 지탱하여 일어서는 것 만 해도 힘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언니, 뭐하는거야?'

아리아의 물음에도 피아는 대답 없이 펠리시아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테나는 자신의 말대로 마룡의 앞에 서서 그녀의 시선을 끌고 있었고 그 덕분인지 모든걸 재로 되돌릴 것만 같았던 번개들은 잠시 멈추었다.

그들이 잘 보이는 곳에 피아가 펠리시아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손으로 펠리시아의 눈을 억지로 띄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려 하였다.

"펠리시아 씨, 보이세요? 지금... 지금 테나 언니가 혼자서 싸우고 있어요. 에인 오빠는 죽을 뻔 했고, 비질들도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번개가 테나가 있는 곳에 직격했고 마룡이 그곳으로 다가가 테나를 들어올렸다. 피아는 떨리는 입으로 펠리시아 라는 희망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제발 도와줘요... 이젠 아무도 없다고요. 저도, 오빠도... 테나 언니도 전부 죽고 말 거예요."

마룡이 테나를 찢어버리려는 듯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나 그것을 하기 전에 마룡은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피아가 있는 곳을 쳐다 보았다.

"펠리시아 씨!"

----------

그녀는 모든 것을 듣고, 보고 있었다.

네메시스 검사가 그녀와 피아를 납치해간 것도,

에인과 테나가 그들을 구하러 다시 온 것도,

지금 놈이 테나의 목숨을 끊어버리려는 것도.

'움직여! 움직이란 말야!'

그러나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비탄의 소용돌이에 묻혀 있었고 그녀의 몸은 그녀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소용돌이의 방향을 바꾸어 보고자 그녀는 계속해서 그 안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다.

'제발 움직여! 내 말을 들으란 말야!'

하지만 그것의 방향을 바꾸기는 커녕 그녀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그녀의 모든 힘을 필요로 했다. 그녀가 느끼는 억울함도, 슬픔도 모두 순식간에 다른 감정들에 묻혀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영혼은 다시 아비규환의 밖으로 날려보내졌다.

그녀의 곁으로 왔던 작은 영혼도 그녀를 돕기 위해 모든걸 쏟아내고 있었지만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겨우 두 물방울이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마음이 지치자 다시 눈이 감기려고 하였다. 나아갈 힘이 거의 바닥난 그녀는 항상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기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펜릴, 너라도 있었더라면...'

하지만 그는 사라진지 오래,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그는 지금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발악을 하고 자신을 한계 넘어로 밀어붙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도대체 왜 난 항상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야 하는거지?'

문득 펠리시아의 눈이 소용돌이가 아닌 그녀의 마음 속 풍경을 향했다. 그곳은 펜릴에게 진실을 듣고 그를 용서해 주었을 때 처럼 하이우드에서 자주 보았던 숲과 비슷한 풍경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에 이끌린 그녀가 나무 한그루에 손을 얹었다.

'아빠도. 엄마도. 하야신스도. 펜릴도.'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감정이 사무치기 시작했다. 너무도 익숙했던 그 감정은 그녀가 여태까지 유지하려고 했던 다른 감정들 과는 다르게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지만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이제는 테나 까지?'

그녀의 호흡이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맹렬히 그녀의 몸을 벗어나려는 호흡을 타고 몸 속의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것은 네메시스와 섞였을 때 느꼈었던 기억 조차 희미하게 만들고, 그녀의 몸을 제멋대로 움직였던 업화였다. 자신이 무엇을 불러오려는 것인지 자각한 그녀는 잠시 주춤하며 나무에서 손을 떼었다.

'웃기지 마.'

하지만 지금 그것이 그녀를 움직여줄 유일한 힘인 것을 느낀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다시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다시 나무에 닿자 그것에 작은 불이 붙더니 이윽고 이글이글 타오르며 주위 나무들을 모두 불태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 화에 내 몸을 맡기는 한이 있더라도, 난 내 몸을 되찾아야 해!'

그녀의 외침을 들은 작은 영혼이 불타오르는 나무들 사이로 자신을 내던졌다. 그것을 집어먹은 화염은 더욱 더 강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의 열기는 소용돌이의 다른 영혼들에게 미치기 시작했다.

'보이시나요? 저 괴물이 당신들을, 우리 모두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하나둘, 다른 영혼들이 그 열기에 이끌려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펠리시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자기 자신이 다시 혼돈 속으로 뛰어들어 그 영혼들의 기억에 몸을 담갔다.

눈 앞에서 자식이 네메시스에게 먹히는 것을 본 부모.

자기들이 살아남고자 부모에게 버려진 자식.

친구를 지키기 위해 네메시스에게 몸을 던진 여자.

오랜 세월 동안 세워온 꿈을 잃어버린 남자.

그들 모두 마룡에 대한 억울함, 슬픔 그리고 두려움으로 이곳에 묶여 있었지만, 전부 자신들의 감정에만 얽메인채 서로에게 휘둘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곳의 중심에 선 펠리시아는 그들 모두에게 손을 뻗었다.

'지금 이 불길만이 우릴 하나로 묶어줄 수 있어요! 어서, 제게 힘을 주세요!'

결국 더욱 강렬한 힘에 이끌린 영혼들은 새로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광염의 소용돌이가 된 그들은 마룡을 쓰러뜨리겠다는 분노로 하나가 되었다.

'이젠 아무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

펠리시아의 입에서 거친 숨이 나왔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건가 눈을 떠 본 피아는 그녀가 눈을 뜬 채 마룡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적이 벌어진 것에 피아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페-펠리시아 씨?"

갑자기 그녀가 피아를 뿌리쳐 땅에 넘어뜨렸다. 그러더니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녀는 갑자기 괴성을 내지른 후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살의로 찬 눈으로 마룡을 노려봤다.

"크-으아아아!"

땅에 나뒹굴렀던 피아는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웃기 시작했다. 펠리시아가 정신을 차렸다면 무언가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마룡도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었는지 손을 멈추고 다시 그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을 보자 얼어붙었던 마룡의 표정에 옅은 당혹감이 번졌다.

그때 펠리시아가 뭔가 이상한듯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그것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챈 피아가 일어서서 다시 에인의 곁으로 향했다. 다행이도 테나가 그의 검도 함께 챙겨와 그의 곁에 놓았었고 피아는 그것을 챙겨 펠리시아의 곁으로 돌아왔다.

"가서 죽여버려요."

펠리시아는 그것을 보자 마자 낚아채 버리더니 자신의 팔을 그어 피를 주위에 흩뿌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대로 그것에 자신의 몸을 실어 마룡을 향해 달려나갔다.

마룡이 테나를 죽이려는 것을 멈추고 손을 뻗어 펠리시아를 향해 수많은 번개들을 하늘에서 쏟아냈다. 하지만 번개가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곳에 그녀의 시체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를 찾으려 분주히 눈을 움직이는 마룡의 팔에 그녀의 다리가 작렬했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마룡의 손이 테나를 놔버렸다. 그녀를 다시 붙잡으려고 마룡이 손을 뻗었지만, 방금 펠리시아가 사라졌던 것 처럼 테나도 공중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리번 거리던 마룡은 테나를 안은 채 서 있는 펠리시아를 발견했다.

"... 어떻게 되살아난거지?"

마룡의 건조하고 얼어붙은 목소리가 울었다.하지만 펠리시아는 대답하기 전에 테나를 잠시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뒤 다시 순식간에 마룡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녹색이 아니라 온갖 색들이 합쳐져 거의 완전한 백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거기다 그 빛은 어찌나 밝았는지 펠리시아의 꼬리와 머리카락, 그리고 귀를 마치 유리인 듯 반투명하게 만들었다. 몰골이 되어있던 마룡과 대비되는 그녀의 모습은 유난히 아름답고 고결하게 보였다.

"우릴 이렇게 만들어놓고 대답을 원해? 웃기지마."

하지만 그녀의 입을 나선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듯 강렬하였다.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던 마룡은 이윽고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고 헛웃음을 내었다.

"그래, 다 같이 화라도 내면 되나 보구나. 하지만 그렇게 마력을 불태우면 몸이 오래 가지 못할걸?"

"그 전에 네놈을 박살내버릴 거야."

"그게 된다면 말이지."

갑자기 마룡이 두 손을 모으더니 자신의 앞에 거대한 벽을 세웠다.

"어차피 이몸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가 될 거고, 네놈은 자멸할 것이다! 어디 발버둥-"

마룡을 도발을 듣던 펠리시아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룡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산산히 조각나 무너져 내리는 보호막이었다.

"어-어떻게..."

"우리가 말했지? 그 전에 네놈을 박살내버릴 거라고."

마룡이 손을 다시 올리자 또 하나의 더 두꺼운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펠리시아의 손바닥에 그것도 곧바로 산산히 조각나 사라졌고 마룡은 그녀를 멈출 수 없다는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두렵다고? 내가?'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가 자신이 사용하던 모든 마법을 멈추고 자기 자신의 몸에 모든 마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겨우 인간들 따위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웃기지 마라!"

그녀의 몸이 천천히 회복하는 것을 보고 펠리시아는 더 이상 그녀에게 시간을 줄 수 없었다. 상체를 낮춘 그녀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왼손의 검을 자신의 등 뒤로 뺀 뒤 마룡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신의 마음 속 화염을 더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한 그녀는 그들의 격노와 울분을 자신과 동화 시키며 더욱 더 강렬한 마력을 방출해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녀의 온몸 뿐만 아니라 에인의 검에서도 그들 모두의 마력이 간헐천 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과 마룡의 손톱이 격돌했다. 그들이 일으킨 충격파는 원형으로 땅을 뒤집으며 퍼져 나갔고 그것의 진동은 멀찍이서 보고 있던 피아와 아리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룡도 자신의 모든 힘과 마력을 담아 그녀의 일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녀가 쉽사리 밀리지 않는 것을 보고 마룡의 마음 속 두려움이 더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재미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인간이 하찮다는 생각도, 펠리시아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발악도 펠리시아의 공격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손은 조금씩 밀리고 있었고, 그녀의 마력은 죽었어야 할 육체를 보존하느라 원체 있어야 할 무한한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내가... 죽는다고? 겨우 인간의 손에?'

한편 펠리시아의 태양은 그녀의 몸 속 영혼들을 연료로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뜨겁게 불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 때문에 몸 안의 영혼들이 하나씩 새하얀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과 그녀의 육신도 이것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돌이키지 못할 문을 지나온 것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굽혀지지 않는 불굴의 의지는 이미 그 수많은 영혼들을 그녀의 손아귀에 붙잡고 있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우리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소리 조차 집어 삼키는 찬란한 섬광이 네메아를 뒤덮었다. 그리고 물러서지 않는 두 힘의 대결도 결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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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죽음을 맞이하며 +2 19.03.23 46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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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9: 첫번째 희망 +2 18.12.15 7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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