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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연재수 :
3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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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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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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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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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불신의 벌판 2

DUMMY

남자는 침묵했다. 그러나 표정이 변했다. 그 말을 서로 못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이 다른 국 사람도 이 말은 알아듣는다. 그러자 앞 사람은 다시 한 번 남자에게 강요하듯이 물었다.


“고구리?”


드디어 남자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턱으로 앞 사람을 지시했다. 넌 누구냐는 의미였다. 그러자 앞 시종은 말 대신 손가락으로 저 뒤쪽 아주 먼 곳을 지시했다. 남자는 이해 못했다. 왜냐하면 남자는 남쪽 사람들을 몇 번 봤었다. 그것과 두 명은 많이 달랐다. 그 남쪽이 아니라 서쪽을 지시했다면 수긍했을 것이다. 거긴 가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그리고 그때 남자는 보았다. 뒤에 선 사람의 화려한 도포 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공포를. 그들은 어느 고을이나 궁정 지위가 높은 사람이지만 남자가 무서운 사람이란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은 구부리고 비켜나는 걸 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지 떨고 있었고, 싸우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기서 죽으면 산짐승의 먹이가 되어 남아나는 게 없다. 그리고 남자는 그들이 떠는 이유 중 하나를 알았다. 자기 칼자루와 칼집에 검은 얼룩. 그건 전에 남자에게 도전한 사람들의 피였다. 칼을 든 사람 그 자체로도 경계하지만, 그걸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무서워한다.


상대의 떨리는 소매... 남자는 이미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싸울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을 뒤쫓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지쳤다. 아직도 자기가 도망친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큰 강을 건너야 자기가 왔던 곳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강을 건넌 뒤는 생각해둔 바 없다. 어떻게 되겠지... 일단 자기가 있던 곳에서만 벗어나면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디서나 병사로 받아들일 경험과 실력이 있었다. 그것은 믿고 있었다. 만약 그걸 보이라고 하면 그들 앞에서 한 명을 죽이면 된다.


다시 앞 사람이 뭐라고 무거운 말을 했고, 이와 동시에 화려한 소매는 더 떨린다. 더 자세히 보면 화려한 의복 위에 처음 보는 모자도 떨리고 있다. 남자는 어느 국 사람인지 난감했다. 만약 어디에 자신을 의탁한다고 할 때 저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그들도 이곳이 초행인 것으로 보여 그래도 다행이다.


남자는 옆으로 물러섰다. 물론 구부리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눈빛으로 그 둘을 비웃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남자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칼이 이상하다. 옆에서 보니 칼이 부드럽게 곡선으로 휘어져 있다. 남자는 놀랐다. 남쪽에서 온 사람들은 크기와 모양만 달랐지 자기들과 같은 직선이었으며, 휘는 칼은 오랑캐를 의미했다. 그런 칼은 저 북쪽 벌판에 사는 유목민들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아주 같은 것도 아니다. 약간 묘한 느낌의 칼이었다. 남자 눈에 그 칼은 자기가 쓰던 게 아니라 베는 칼이었다. 북쪽 벌판의 녀석들은 행색이 초라하고 짐승 가죽을 뒤집어쓴다. 눈 앞의 화려한 것은 그들 모양이 아니다. 대체 저들은 무엇이지? 남자는 의아심을 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칼이 탐이 났다.


남자는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구리가 나테 주엄. 구리!”


손가락으로 그 휘어진 칼을 지시했다. 시종은 멈춰 남자를 돌아봤고, 화려한 자는 좀 더 걸어가 정지하더니 머리를 돌렸다. 남자의 손가락이 자신의 칼을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화려한 자와 시종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무언가 두려운 음성으로 또 말을 속삭이며 주고받는다.


시종이 단호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남자는 챙! 검을 뽑았고 달려가면서 날을 한 바퀴 밖으로 돌리며 상대의 어깨를 내려쳤다. 순간 칼이 박혔다. 남자는 칼을 좌우로 비틀어 몸에서 뺐고. 순간 칼을 맞은 자는 그쪽 팔이 푹 쳐지면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이내 무릎을 꿇었다. 남자가 피 묻은 검 끝을 한 발 앞으로 비스듬히 들고 화려한 자를 보았고, 칼 맞은 자는 앞으로 풀밭에 엎어졌다.


화려한 자의 손은 칼자루를 쥐었지만 떨리고 있었다. 혼자 남게 된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본다. 항상 누가 곁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무익함을 알아차렸다. 화려한 자는 칼을 뽑아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상대가 그래도 도나 예가 있다면, 칼을 가졌으나 뽑지 않은 사람을 베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갈등이 왔다. 칼에 피를 묻힌 사람은 분명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화려한 자는 눈을 떼지 못하고 약간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는 방법을 달리했다.



남자는 쪼그려 앉으면서 칼날의 피를 땅 풀밭에 닦았다. 그러면서 조용히 뇌까렸다.


“구리...”


그러자 화려한 자는 말보다 몸짓을 했다. 손으로 자기 목을 잡아 보였다. 묻고 있었다. 그러자 쪼그려 앉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화려한 자는 허리춤에서 칼집을 뽑아 남자 앞에 던졌다. 남자는 다시 놀랐다. 칼집에, 허리빠에 거는 고리와 쇠사슬이 없다. 거는 것이 없이 그냥 허리띠에 꼽아서 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리빠에 묶을 수 있는 얇은 실로 된 매듭만이 묶여 있었다. 의아했다. 그런 형태는 처음 보았다. 왜 귀중한 칼의 칼집에 고리를 안 달았을까? 남자는 새벽이슬 묻은 풀에 닦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화려한 자가 던진 칼집을 잡았다. 일어나 어깨 높이로 들어 칼을 바라본다.


화려한 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무언가 물었으나, 남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저 대충 손짓으로 이제 가라고 했다. 상대가 멈칫하자 고개를 끄떡이며 저 멀리 가라고 했다. 그러자 화려한 자는 뒷걸음질로 몇 걸음 가더니, 이내 몸을 돌려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잠시 뒤, 남자가 소리쳤다.


“어이~~~!!!”


가던 화려한 자가 멈췄고, 천천히 뒤돌아본다. 남자는 땅에 떨어진 시종의 칼을 들어 화려한 자 앞으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어흥~~!!” 산짐승 흉내를 낸다.


바닥의 칼과 남자를 번갈아 보면서 약간 주저하던 화려한 자는, 그걸 집어 들고 빠르게 삼십육계 걸음아 나 살려라 산세로 사라진다.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는 새로 생긴 칼을 화려한 자가 했던 그대로 허리춤에 사선으로 꼽았다. 그리고 천천히 원래 가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남자가 멈춰, 뒤돌아 쓰러진 자의 엎어진 등을 바라본다.


“어흥~~!!!”


최악이다. 우린 최악이다. 모든 게 안 맞는다. 모두가 서로 불편하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상황이 지속될 줄은 몰랐다. 농담처럼, 올라가면 어쩌겠다 했지만 말만 그렇지 사실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먹는 것 자는 것 함께 있는 것 모두 불편하다. 그래도 한 탕 성공한 게 놀랍다. 분산탈출 상황이 오길 바란다.


중대장과 담당관은 그림자도 안 쳐다볼 정도로 서로를 극도로 혐오한다. 결코 같이 앉아 먹지 않는다. 담당관과 고참 중사 둘은 항상 같이 한다. 중대장은 권위를 강하게 내세웠고 부사관을 특별한 중간 계급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제 강제로 우릴 통솔할 생각도 자신도 없다. 중대장은 자기보다 나이 어리면 계급이고 뭐고 다 밑이며 하발이로 본다. 처음부터 담당관과 맞지 않았다. 그게 전부도 아니다. 중대 담당관은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다. 팀 하사들에게 별 관심 없다. 성격 좋은 것 같지만 각자에게 아무런 개인적 관심이 없다.


중대장이 남은 하사들을 어떻게 자기 휘하에 넣으려고 강권을 저지르지만 고참들은 제지도 관여도 안하고 방치했다. 중대장이 하사들을 함부로 다뤄도 커버해주는 거 좆도 없었다. 어쩌면 담당관은 중대장에게 대항할 힘이 없는 나약한 사람이다. 우리 팀은 태어나지 말아야, 구성되지 말아야 했을 팀이다. 서로가 숨이라도 쉬려면 해체되어야 한다. 지역대 모든 부사관이 우리 중대장을 싫어한다. 중대장 아버지는 같은 임관 출신으로 계급이 많이 올라간 사람이다. 아버지 덕 봤다고 모두 쑥덕거린다. 심지어 같은 출신 장교조차도 중대장을 부끄러워하고 행동을 못 본 체 한다. 솔직하게 말해 능력 없고 성격 괴팍하고 변태스럽다. 일단 사용하는 언어가 더럽고 저급하기 짝이 없다.


난 원래 그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우리 중대장은 거기서 뭐 저런 사람이 나왔나 싶다. 결국 그건 임관 출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였다. 정확히 사람의 문제다. 그 사람이 3차원 중대를 2차원으로 추락시킨다. 전투적이지도 않고 명석하지도 않고 폭력적이다. 특히 약자에게만 폭력적이다. 힘 있는 밑에 사람이 개기면 그도 방법이 없다.


거기에 연달아 담당관까지 자기 생각만 하면서 항상 술 퍼먹고 아래 애들이 어쩌건 말건 모른다. 중대장과 불화가 생기면서 더욱 심하게 방치하고 관여 안 한다. 중대장에게 계속 당하던 우리 하사들은 참다 참다 언젠가부터 우리끼리 모이면 그 뭣 같은 자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보통은 또라이라고 부른다. 말만 하는 게 아니다. 작대기로 하사를 대가리 톡톡 치고, 화가 나면 지나칠 정도로 갈긴다. 잘하자 어쩌면서 툭툭 치다가 지가 흥분해서 가학적으로 갈기기 시작한다.


이런 개 같은 팀이 어디 있나. 북으로 오기 전에 빨리 소원수리로 해체시켜 대원들을 필요한 팀에 찢어야 했다. 난 중대장도 싫고 담당관도 거리가 멀다. 담당관은 밝은 성격 같지만 선천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영내에서도 야전훈련에서도 매일 술을 마신다. 친한 것 같으면서도 수박 겉핥는 기분이다. 우리 하사들은 항상 암적으로 말했었다. 올라가면 중대장 바로 쏴 죽이자고. 점프하고 DZ에서 바로 쏴 죽여 버리자고. 그때 농담 아니었다. 말 할 때 하사들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계급으로 사람 개무시하고 개인 신상을 꼬집어 비하하는 저급하기 이를 데 없는 중대장 말에 죽이고 싶은 적이 모두 한두 번 아니었다. 그에게 하사는 계급체계에 없는 장난감이다. 계급이 깡패라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장교인가 넋이 나갈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허리에 배둘레햄 가득 달고 행군 구보 낙오하지 않나, 퍼져서 팀원들이 군장 나눠들어도 고맙다 소리 없고, 복귀하면 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그러면서 말은 존나게 많다. 말로 항상 누구 깎아내리면서 자기는 그럴듯한 장교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결론이 서술방식의 주 메뉴다. 내 생각에 이런 개같은 상황의 60%은 중대장 책임 30%은 담당관과 고참 중사들 책임. 10%는 중대장을 태어나게 한 하느님 책임이다. 부모의 책임이란 말은 애써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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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불신의 벌판 3 20.10.29 379 21 12쪽
» 불신의 벌판 2 20.10.28 389 20 11쪽
120 불신의 벌판 1 20.10.27 565 19 12쪽
119 해파리의 유령 2 20.10.26 393 21 11쪽
118 해파리의 유령 1 20.10.25 406 23 11쪽
117 해파리 three (2) 20.10.24 382 18 11쪽
116 해파리 three (1) 20.10.23 418 21 12쪽
115 해파리 넘버 Two (2) 20.10.22 428 21 13쪽
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68 21 11쪽
113 내추럴 본 : 종결 2 +2 20.10.20 469 26 13쪽
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59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48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25 26 12쪽
109 마천령 산맥 2 20.10.16 440 23 11쪽
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37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485 2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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