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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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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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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해파리 three (1)

DUMMY

[여기 박쥐 원. 2차로 직방. 입감?]


수신자는 숨을 죽이고 송화기에 속삭인다.

[중간 합류 없다는 뜻인가?]


[완료. 1차 위험, 2차로 직행. 요해?]

[최와 윤!]

[... 자력갱생. 현재 우리가... 도울 수 없다.]


전중사는 의구심에 빠진다. 얼마 남지 않은 1차를 지나쳐? 지휘조는 근처에 있나? 그래, 사방에 적이 깨어났다. 해상퇴출이 아니라면 누가 봐도 내륙으로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이치. 우리가 갈 5대대 구역도 이미 타격이 들어갔을 것이니 공공연해졌다. 분초를 다툰다. 하지만 최와 윤. 말하자면 두고 가는 거 아냐? 안 봐도 뻔하다. 슈트도 아닌 젖은 군복에 오리발로 군장 물질 30분. 사람 체력 반 죽었단 소리다.


‘얼음처럼 굳었을 거야. 뜨거운 거 먹고 몇 시간 쉬어야 돼.’


한여름에도 불판 콘크리트에 자반구이 시키고 소주라도 한 컵 줘야 신체 이상을 방지한다. 심한 놈은 한여름 뜨거운 보트에 누이고 판초까지 덮어 줘도 덜덜 떤다. 해변에서도 놔두고 왔는데 1차에서 만나 전중사 조가 도우며 가야 정상이다.


[질문. 2차에서 면접 캔슬되면?]

[당연... 다섯 브라보 나와바리로. 교... 끝!]


키 172에 목과 뼈가 굵고 땅땅한 전형추와, 이에 비해 키 180이 넘고 훤칠한 진영배. 오지에 떨어진 이 통신주특기 사수와 조수를 굳이 설명하자면 프로야구로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수 전형추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수비와 타격 다재다능했던 전 KIA 이순철 해설위원을 닮았고, 조수 진영배는 LG 트윈스였던 김재현과 비슷하다.


통신 주특기라 하면 야전에서 식은 밥 먹고, 오시레타 두들기는 사수와 그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부사수를 떠올리리라. 장대위가 해안에 접안하는 두 명에 대한 지원조를 내보낼 때, 혹시 모르니 통신 사수 전형추를 남기고 진영배와 조은솔을 내려 보내는 것이 온당하나, 둘은 아직 중사도 못 단 관계로 책임을 맡겨도 전형추였다.


전과 진은 원래부터 같은 할로팀에 근무하던 사이로, 정찰대 팀 중에서 통신 사수 부사수로는 ‘막강’했다. 여기서 막강이라 함은 사수도 잘해야 되겠지만 조수도 능력이 모자라지 않아야 하고 또한 뭉쳐야 한다. 군대는 본능 밖에 남지 않는 밑바닥이 드러나는 바, 서로가 사회생활처럼 적당히 안면을 유지하는 건 안 통한다. 진짜 사람이 맞아야 한다. 서로 진심을 보이고 노력해야 한다. 같은 베레모에 군복 입었다고 능력이 균등하지 않다.


능력은 외모가 아니라 해당 지역대에 직접 물어봐야 안다. 그럼 누구누구라고 말해준다. 전과 진이 아삼육으로 1 + 1 이상의 뭉쳐진 힘이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장대위는 돌고래 출항 무선보고를 전형추가 한 상태였기에, 1 + 1 = 3~4 정도 되는 둘을 택해 군장을 들고 가라고 했다.


둘은 긴 말 필요 없고 눈으로 금방 의사교환을 한다. 부대 안에서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부특기 교육. 둘은 통신 외에 (팀의 해당 주특기가 전사할 경우를 가정한) 부특기로 화기를 잘 소화한 것을 장대위는 옆 중대장으로 잘 봐왔다. 이 사수와 부사수는 출신지역이나 성격 모든 것이 다르지만 잘 뭉쳤고, 영외 숙소도 같은 방을 쓰는 과음 사수 조수이기도 하다.


그렇게 둘은 자체 판단 요구시점을 만났다.


무전이 끝나고, 컴컴한 고립무원의 땅에서 엄습하는 공포에 소매가 떨린다. 서로 숨길 수가 없다. 옆에서 진영배가 벌어진 입에 미간 쪼이고 사수 전중사를 쳐다본다. 전중사 표정은 묘했다.


‘그건 그렇고, 기분 이상하네...’


전중사 마음속에 왠지, 왜인지는 모르나, 이 무전이 지휘조와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기분... 상황 급박해지고 이제 죽었다! 생각하니 무수한 생각들이 일시에 쏟아져 정리가 안 된다. 둘이라도 전중사는 조장이다. 이어폰으로 교신했지만 조수는 이미 알아들었다.


불혹의 땅. 어디로 가나.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적과 조우하지 않고 5대대까지 도달한다고? 또한, 어디로 간다고 이런 게 달라지나? 일단 해안지대는 벗어나야 한다.


흔히들 중국 상하이와 농촌의 차이를 얘기하는데, 여기도 같다. 여명거리는 여명거리, 여기는 70년대 필름을 보는 듯한 풍경, 수목이 드무니 공기가 말라 질식할 것 같다. 갈라진 특수정찰조 여섯 모두 5대대와의 합류를 진심 불안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도만 봐도 안다. 비파곶에서 수평으로 북한 서해안의 내륙 대동강 물길로 들어가면 곧 남포항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북으로 강이 꺾이면서 평양까지 이어진다.


비파곶은 평양의 군수공장에서 나오는 물품이 자연적으로 전달되는 위치. 비파곶과 우리는 대동강 남쪽 - 5대대 섹터는 북쪽, 5대대와 합류하려면 어떻게든 북쪽으로 도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황해북도에서 평안남도로 넘어가는 것. 북한이 새로운 무역항으로 개발한 남포 부근은 직할시로 설정되어 엄청난 경계가 있기에 피해야 하고, 물의 폭이 굉장히 넓다. 서해안에 가까울수록 대동강 폭은 강이 아니라 바다에 가깝다.


그러므로 강폭이 좁아지는 동쪽으로 가다가 도하해야 하는데, 우린 지도상 폭이 좁아지는 몇 군데를 설정했을 뿐 가봐야 안다. 급조도하로 한강보다 넓은 강을?... 맨몸 수영이라면 조류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병기와 군장을 어찌 버리나. 어디 비켜갈 곳 없는 구역에서 발버둥치는 셈, 도피탈출하다 물길을 만나면 자연스레 배수진이 된다.


사령부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거라 아무도 생각하지 않지만, 여섯을 온전히 살리려면 해상퇴출이 정석이었다. 침투 전부터 이 합류가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6인 팀은 소수였고 더 이상 자세한 합류계획은 설정되지 않았다. 알아서 찾아가라. 알아서 하라. 자력으로 해결하라... 먼지로 풀로 급조폭약을 만들어라. 어쩌면 작계들 모두가 그러하다.


‘폭약보다 소이수류탄 가져가는 게 좋겠어. 불 지르는 게 낫겠다. 1개 팀으로 이걸 부수라고.’


‘우리 교량이야. 불도 못 질러. 폭약 실은 트럭을 번들로 투하해라.’


황해남도 은율군을 벗어나려면 멀었다. 5대대보다 구월산이 더 가깝다. 우리는 작계연구 동안 가상했었다. 누군가 잡혔을 경우 설정한 몇 개 도하점을 누설할 경우 서로를 죽이는 거라고. 허나 그건 그리 관심 없었다. 비파곶이란 단어 자체가 이미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포에서 한참 동으로 가서 폭 좁은 곳을 찾아 도하해야 한다. 강변엔 당연히 보초도 있을 것이고 가능이나 한지 모르겠다. 모두 오리발이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도하점을 누설하면 나머지가 죽는다...]


멀다. 스토리가 너무 멀다. 강변에 우글거리는 적을 피해 도하, 5대대를 만나? 한숨과 함께 눈앞에 검은 산 그림자가 괴물처럼 압박한다.


‘뭔가는 해야 한다. 안 그럼 죽는다.’


장대위 통보를 받은 지 하루가 지났다. 도하는커녕 일직선으로 도피탈출도 못하고 적을 피해 계속 틀고 있다. 아마도 1차에 팀장과 조은솔이 도착했고, 주변이 위험해 무전을 날린 것 같다. 작전무전기로 교신이 된 것 보니 그리 멀지 않았다.


전중사와 진하사는 조준경이 있어도 해안에 도착한 두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도착했다는 최상사 무전만 들었다. 팀장의 조치가 옳았다. 만약 지휘조에 군장을 놔두고 왔다면... 둘에게 아무 것도 없는 거다. 완전히 털리고 몸만 남는 거다.


조용한 가운데 저격총 소리는 또렷했다. 이제 큰일 났구나, 기도비닉 깨졌다. 전에 못 느낀 인생의 1막 커튼이 내려온다! 능선 아래 두 초소를 조준해 사격하다 퇴출명령 받고 바로 다시 올라가 군장을 짊어지는데, 보다 북쪽 해안에서 총소리가 진동했다. ‘저기 누가 있어. 있다고!’ 심미적 추정 확실했다. 심미적... 저게 남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스쳤고, 전중사가 전영배 눈을 보니 같은 생각이었다. 조수는 칠흑 같은 얼굴 하얀 눈동자로 말했다. 어쩝니까. 저거 최상 아니면 윤중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가정은 했었다. 막상 닥치니 어떤 게 내가 사는 길인가, 그것 밖에 안 떠오른다. 속에서 어서 튀라고 고함친다. 나침반 꺼내 방위각 한번 보고 - 그 방향으로 조준경을 들어 참고점을 찍었다. 전중사는 새롭게 떠오른다. 브라보 투 제로. 203 총열덮개 옆에 덕 테이프로 발라놓은 소형 사제 나침반. 경험이 대단한 거다...


여전히 등 뒤가 간질간질하다.

‘둘을 버리는 건가?’


쉬지 않고 뛴다. 새로운 판가름이 요구되면 전중사가 하나를 택해 수기하고 둘은 계속 뛴다. 군장에서 물품을 덜 버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뛴다. 능선에서 군장을 짊어질 때, 전중사는 갑자기 판단했다.


“영배야 침낭 버려.”

“예?”

“부피 줄여. 우리 죽어!”


하지만 결정적인 ‘주저’가 왔다. 통신 주특기. 군장을 확 줄이려면, 부피는 침낭이 크지만 실제 무게는 무전기와 부속자재다. 부피가 줄면 군장이 흔들리는 폭이 줄어들어 뛰는데 확실히 편하다. 하지만 진짜 날아가려면 장거리 무전기를 버려야 한다. 무거운 배터리와 안테나 발전기... 게다가 이 무전기는 중요한 돌고래 출항을 상부에 통보한 영웅이다.


침낭과 의복 생활용품을 버렸다. 무전기 못 버린다. 세상과의 소통 - 남쪽과의 연결. 이 문제는 최상사의 지시이기도 했다. 교전하면 무조건 군장 무게를 줄여라.


최상사... 전과 진은 예정된 접안지점에서 대기했지만 잠입조는 보다 북쪽에 접안했다. 전형추는 달려가 보초를 제거하고 둘을 직접 도울 각오까지 했지만 눈으로 보지도 못했다.


등 뒤에 뭘 두고 온 것 같은 한 줄기 찬바람 같은, 창피함. 같이 밥 먹고 똥 싸고 훈련질하던 고참과 동료. 맹방 교육명칭 그대로 진짜 combat scuba로 떡이 되어 해안에 널브러진 두 사람. 나 살기 위해 가는 거냐. 누가 더 친하고 안 친하고는 거추장스러운 조합이다. 갑자가 상사가 중사가 ‘사람’으로 가정된다. 군인이 아닌 그냥 사람. 태어나서 자란 어느 집안의 자식 두 명. 담당관과 윤성룡. 병원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있다. 각자 고유의 그것! 거지가 살기 위해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는 것 같은 처절한 생존권. 그것이 느껴지자 가슴을 조인다. 접안을 직접 봤다면 이렇게 못 도망간다. 서로를 죽일 수도 있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 각자 고유의 ‘그것’이 살고자, 더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자명, 우린 그렇게 먹고 살고 발버둥 치며 조금이라도 더 미래로 지속하려 한다. 걸린다. 그 사람의 내력과 앞으로 살아야할 권리,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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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불신의 벌판 1 20.10.27 565 19 12쪽
119 해파리의 유령 2 20.10.26 393 21 11쪽
118 해파리의 유령 1 20.10.25 406 23 11쪽
117 해파리 three (2) 20.10.24 382 18 11쪽
» 해파리 three (1) 20.10.23 419 21 12쪽
115 해파리 넘버 Two (2) 20.10.22 429 21 13쪽
114 해파리 넘버 Two (1) 20.10.21 468 21 11쪽
113 내추럴 본 : 종결 2 +2 20.10.20 469 26 13쪽
112 내추럴 본 : 종결 1 20.10.19 459 25 12쪽
111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2 20.10.18 448 23 12쪽
110 내추럴 본 : 인민군복으로 1 20.10.17 525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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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마천령 산맥 1 20.10.15 537 21 11쪽
107 블랙홀 속으로 : Baseball sign 20.10.14 485 2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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