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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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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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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횃불처럼 2

DUMMY

오후 햇볕이 누그러지는 황량한 대지.


장소를 정한 셋은 곧바로 준비에 들어간다. 몸을 저온과 이슬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특전조끼 등낭에 각자 휴대한 판초가 전부다.


자리에 낙엽을 깔고 누워 판초를 덮는데, 깐 낙엽 소리 때문에 누운 그대로 잠들어 움직이지 않고 자다 일어나야 하며, 이동할 때는 깔았던 낙엽을 퍼트려 흔적을 없앤다. 낙엽이나 풀을 깔지 않으면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 습기가 몸을 먹통으로 만들 수 있다. 어지간해서 피로가 안 풀린다. 세 명 모두 팔 뻗어서 닿는 거리에 눕는다. 낙엽은 깔았지만 총 놓는 자리만은 낙엽을 총 모양으로 치우고 맨땅에 놓는다. 가슴에 안고 자기에는 북한 땅 가을에 너무 차갑다. 잘 때는 부무장 권총이 최고인데, 총알이 떨어져 땅에 묻어버렸다.


이 산에서 생존하려면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첫째, 먼저 간파해야 한다. 먼저 보고 먼저 듣고 먼저 냄새를 맡는다. 어떤 기술과 감각이던 먼저 간파하는 사람이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 다음은 꼬리를 밟히지 않는 것. 만약 꼬리를 밟혔다는 걸 본인이 모르면 이미 반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 아무 이상 없다고 생각해도 지형이 변하는 곳에 잠시 숨어 눈과 귀를 열고 확인한다. 경계는 지나칠 정도로 신경 써야 하며, 흔적제거도 동일하다.


언젠가부터 상당히 훈련된 애들이 근처에 나타났다. 밟힌 수풀, 부러진 가지, 사람이 앉거나 누웠던 자리, 불 자리, 땅 판 흔적, 먹은 흔적, 똥 싼 자리. 모두 흔적제거에 최선을 다한다. 사회에서 형사가 범인 잡을 때도 아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당하지 않으려면 건물 코너를 돌 때 건물에서 떨어져 돌아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그 코너에서 노리고 있다면 반드시 건물에 붙어 있다. 도망치는 자는 길이 굽어지는 곳의 교통거울과 차량 백미러, 가게 쇼윈도로 항상 뒤를 확인하며 간다. 쫓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다 조심해야 한다. 앞은 보이므로 뒤를 조심하는 거다.


도시에 비해 산과 들에서 피하고 숨는 건 훨씬 감각적이다. 아무리 그런 곳에서 경험이 없다 해도, 숲이나 산길에서 멈추어 눈을 2분만 감고 있으면 새로운 것들이 느껴질 것이다. 눈감은 것이 두려워 1분도 못 채우고 보통 눈을 뜬다. 눈을 감으면 바람과 소음이 확대되어 들리고 자신의 숨소리와 긴장도 금방 알게 된다.


밤에 산길을 가다 뭔가 섬뜩하고 등골이 서늘하면, 어떤 짐승이 집중해서 당신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귀신이 아니라, 그 동물도 저것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동물인가 놀라서 심각하게 주시하는 것. 당신을 잡아먹으려 노리는 것보다는 동물이 더 놀란(두려운) 게 맞을 거다. 물론 등골 서늘함의 원인 상당수는 본인의 공포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당신을 신으로도 만들고 병신으로도 만든다.


조금만 긴장을 풀고 느껴보면, 뭐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산에는 항상 뭐가 있다. 없는 게 이상한 거다. 산중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다는 육감이 느껴질 정도가 돼야 살아남는다. 그건 그냥 정지된 화면 같은 데 무게감이 더 실리는 것과 비슷하다. 부피에 비해 질량이 이상하다! 뭐가, 뭐가, 좀 이상하다. 같은 화면에 느낌이 이상하다. 발길이 자꾸 멈추려 한다.


그때부터 기술만 잘 쓰면 대상은 나에게 죽는다. 반대로 내가 느꼈다는 걸 상대가 깨달으면 두 배로 위험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겨내려면, 내가 느꼈다는 걸 상대가 알았다는 걸 조심해야 하나, 말처럼 쉽지 않다. 커피숍에서 내 앞의 상대만 봐도 이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 말을 한다는 걸 느끼듯이, 노력해서 집중하면 그 말과 그림에 안 보이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산에 오래 있을수록... 두 대상의 소리 없는 싸움에서 먼저 관측당하는 자가 이길 수도 있다.


내가 너를 느낀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고, 내가 보여준 걸 보고 반응하는 감정을 느끼면 상대는 진짜로 불안에 떤다. '니가 보고 있는 거 알어.' 자기가 숨어 있다는 이점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공포로 떨어진다. 자기가 숨어서 보고 있는데 역으로 간파당하는 기분이 들어 돌연 공포에 빠지는 것. 이 말 없는 싸움에서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자가 패한다. 그런 사람은 실수로 상대 오감에 한두 개를 주고 만다.


소리. 소리는 여러 명 중에서 나만 듣고 다른 사람은 못 들을 때도 있다. 바람 때문이다. 상대가 맞바람을 맞으며 나에게 접근하고 있으면 소리 냄새가 나에게 안 오는데, 휙 바람이 나에게 불어 그게 짧게 날아올 때 바로 캐치해야 한다. 훈련의 시작은 딱 하나. 이상하면 일단 숨어서 눈 코 귀를 열어라. 도시에서도 조금만 시각 장악력을 덜어내면 상대 체취가 코에 들어오고 발자국 소리의 변화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도 황홀한 여성이 지나갈 때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체취만 또렷하게 들어오는 것과 같다.


자연에서는 한 사람이 지나간 지 몇 시간이 지나도 맡을 체취가 남아 있다. 과거 인디언들은 그걸 맡았다. 개는 하루 이틀 지나도 맡는다. 인간을 어려서부터 벌거벗겨 야생에서 키우면 살기 위해 자연적으로 발달한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사람들은 동물체 감각에 강하다.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어디로 시선을 돌리는 것 - 뭔가에 반응하는 거다. 개는 200미터 거리 버스에서 내린 주인을 발자국 소리를 땅에 귀를 대고 있다가 간파하고 주인을 향해 존나게 뛴다. 특히 시골 개들. 산악 게릴라는 인간과 개 중간 정도의 오감 취득력이 필요하다. 자기 오감은 감춰야 한다. 게릴라는 개부터 없애야 한다.


이 산중에서 매복을 하더라도 매복자가 너무 긴장하고 날카로우면 저쪽이 육감으로 받을 수 있고, 육감은 벌레나 새가 본능적으로 금방 받는다. 아우라를 뿜기 시작한 뭔가 강한 것에게 자기가 먹힐까봐 멈추어 소리를 안 낸다. 살려고 그러는 것. 산중에서 차분한 놈은 그만큼 간파하기 힘들다. 그런 사람은 산과 나무와 하나가 되어 다른 동물이 거의 눈치를 못 챈다.


밤길에 등골이 서늘해서 내가 긴장해 몸에 힘이 들어가면 주시하는 상대는 더욱 우위에 선다. 긴장하면 방법이 안 떠오른다. 내 앞에서 어떤 놈의 얼굴 핏기가 가시면서 하얗게 변하면, 기절 직전이거나 주먹에 힘을 주어 날 치기 직전인 것처럼. 사람도 동물이며 기가 있다. 과학적으로 어떤 전자기파일 수도 있다. 전장은 그걸 주고 받는다.


살기 위해. 당하지 않기 위해. 베트남전에서 정찰병으로 최고는 시골에 살았고 어려서부터 혼자 사냥을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모든 적대적인 동물들의 기가 넘치는 숲을 다니며 총으로 쏴죽이기까지 한 경험. 자기를 죽이려고 주시하는 동물이 관심을 끊게 하는 방법도 체득한다. 간단하다. 적개심을 버리면 된다. 개도 처음 만난 사람이 사랑으로 쓰다듬는 호감을 안다. '맹수'는 그런 상대의 호의나 동요에 철저하게 무관심하며 무조건 잡아먹으려는 종류다.


동물을 먹기 위해 칼로 해체해보면 느낀다. 동물은 뒈지기 직전까지만 강할 뿐. 어쩌면 나무보다 천 배는 허약한 약체라는 것. 사자도 호랑이도 죽는 과정은 짧고 허무하다. 거기에 인간은 더욱 약체다. 동물은 발이 잘려도 달려든다. 그러므로 적이라는 것도 똑같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으면 무섭기보다 어떻게 죽일까 방법론이 짜증날 뿐이다. 맨 처음이 힘들 뿐이다.


이렇게... 현재 이 세 사람의 상태를 설명했다.


밤이 추워졌기 때문에 몸을 붙여 자고 싶지만 뭉쳐서 자면 부스럭 소리가 잘 난다. 추워도 참는다. 잠이라고 하기 뭐한 지속적인 가면이었다. 푹 자는 일은 많지 않은 습관적인 가면. 이 산악은 남한처럼 두꺼운 나무와 관목이 여기저기 막힌 그런 게 아니다. 민가가 가까울수록 모양만 산이고 모든 나무가 잘려져 없다. 그러므로 남한처럼 산에서 추격할 때 꼭 산길이 아니라도 적이 마구 돌아다녀 나타난다. 충분히 숨을 수 있었던 남한의 산들이 그립다.


판초 속에서 따닥 성냥 소리와 함께 옆에서 후~~~ 소리, 중사는 중위가 담배를 점화했음을 들었다. 당연히 K1 권총손잡이에 넣고 피운다. 그 연기 내뱉는 소리에 회한과 불안이 스며있다. 호흡에 감정이 듬뿍... 중사는 별을 본다.


‘달이 없어. 다행이야.’


원래는 셋이라도 불침번을 세워야 하지만, 이제 세우지 않는다. 이 피곤하고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몇 시간 동안 세우기도 힘들고, 오랫동안 밤에만 움직였더니 아무 것도 없는 날에도 자정이나 넘어야 눕고 싶다.


'왜 그리로 가?'

'가장 당겨.'

'안전빵으로 가. 미래를 생각해.'

'군인이 미래를 생각하는 게 올바라?'

'현실이잖아. 전쟁은 없어.'

'전쟁은 없을 거라며 전부다 났어.'

'그렇다 하더라도 더욱 생각해야지.'

'생도. 이봐 동급생도. 하지 말아야할 말을 했어!'


동이 트고 태양은 익숙한 얼굴을 내밀고, 셋은 누운 상태로 정신이 먼저 일어나 코와 귀를 열고 있다. 깨어나면 먼저 자신에게 묻는다. '총 위치!' 그리고, 벌레와 새소리를 듣고 안도한다. 따사해지자 천천히 판초를 얼굴에서 내리고 간밤의 한기를 녹인다. 무척 떨었다. 판초는 습기가 빠지지 않아 눅눅하고 축축해진다.


판초를 서서히 걷어내 몸을 말린다. 몸은 천근만근 뻑뻑하고 힘겨운 신음이 목에서 난다. 몸이 장작처럼 굳었다. 하지만 어제 먹은 것으로 몸에 도는 새로운 기운을 장딴지가 조인다. 뛰지 않고 몸을 뉘여 잔 것은 운 좋은 날이다. 그래도 푹 잔 것이다.


그래봤자 어쩔 일도 없고, 셋은 판초를 걷어내고 몸을 말리기 시작한다. 자반으로 돌리면서. 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밥 할까요?”

“그래 먹자. 또 보투하면 되지.”

“꾸준히 먹는 게 체력에 좋아.”


중간의 하사가 몸을 일으켜 반합을 찾는다.

그러자 중사가 하사의 손을 눌렀다.

오른손...?


하사가 중사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오른쪽에 누워 있는 중위 손을 눌렀다. 모두 멈췄다. 하사는 앉아서 굳었고 중위와 중사는 누운 상태로 하늘을 응시한다. 돌연사한 시체의 눈처럼 크게.


중사가 소리를 죽이며 일어선다. 하사와 중위는 어떤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중사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일어나, 양팔로 땅을 짚어 몸을 앞으로 밀면서 일어나 쪼그려 앉는다. 손을 펴고 천천히 잡아 드는 총. 잠들기 전에 소리를 없애기 위해 총기끈을 완전히 조여 놓았다.


중사는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왼손을 땅에 짚고 오른손으로 총을 든 상태에서 무릎으로 약간 기었다. 앞 수풀로 다가가 정말 느리게 머리를 내밀며 살피기 시작한다. 중위와 하사도 같은 동작으로 조용히 일어나 수풀로 붙었다. 둘에게는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린다. 아무 일이 아니길 빈다.


둘은 중사에게 시선을 모으고, 중사가 돌아보며 눈을 맞추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오른쪽 아래를 지시했다. 둘이 머리를 빼 보지만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둘이 눈을 맞추고 어깨를 으쓱하자, 중사가 입모양으로 ‘기다려!’


중사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나 적이 올라오고 있었다. 큰 군장 없는 단독군장 형태. 저 멀리 아래 수풀에서 북한 군모가 톡톡 치솟았다 내려갔다 반복하더니 드디어 몸을 드러냈고, 선두의 적은 신중하긴 하나 여유가 있다. 이어 다음 것이 솟아올랐다. 셋. 넷. 다섯. 마지막은 군관의 징후. 군관은 권총을 차고 있지만 손에 보총도 들었다.


저들이 어떤 제대 정찰조라면, 이거 건드리면 좆된다. 문제는 군관이다. 총 다섯 명인데 군관이 하나 섞여? 계급장은 안 보이지만 정치장교는 아니다. 무슨 일일까? 만약 저들이 그저 다섯이라면 무슨 뜻인가.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군대에서 장교 포함 다섯 명 가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그들이 그 방향 그 길로 계속 올라오면 수풀 속 셋에게 50미터 측면으로 완전히 노출된다. 그곳은 사실 길도 아니고 그냥 걸어갈 만한 곳이다. 나무가 별로 없으니까.


그들과 셋의 거리 현재 100미터.

중사가 중위를 향해 손가락 다섯 개를 펴고 흔들었다.

‘그냥 다섯인 것 같은데요.’


중위는 고민했다. 얼핏, 뒤에 병력이 없어 보이지만, 만약 총질을 해서 추격이 붙으면 낮에는 굉장히 힘들다. 서로 시야가 트여 정말 힘들다. 다만 장점이 있다면, 그늘만 아니면 총구화염이 잘 안 보인다.


중위는 미간을 조인다. 어떻게 해? 마음은 조지고 싶다. 대신 해가 지기 전까지 뛰어야할 지도 모른다. 상대 수준도 모른다. 그냥 보내려 했다가 간파할 수도 있다. 다섯의 아우라가 그렇게 강해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빨리 판단해야 한다. 중위는 전날 하사

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한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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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394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72 2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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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393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82 23 15쪽
» 횃불처럼 2 20.11.18 391 23 14쪽
140 횃불처럼 1 20.11.17 425 22 12쪽
139 마지막 개구리뜀 20.11.16 402 17 17쪽
138 복수불반 4 20.11.14 367 24 14쪽
137 복수불반 3 20.11.13 343 25 12쪽
136 복수불반 2 +4 20.11.12 365 23 11쪽
135 복수불반 1 20.11.11 433 25 12쪽
134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2 20.11.10 432 21 12쪽
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26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391 25 15쪽
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01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30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28 18 12쪽
128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26 21 11쪽
127 나의 투쟁 2 20.11.03 374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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