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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연재수 :
3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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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34

작성
20.11.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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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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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복수불반 1

DUMMY

복수불반 (覆水不返) :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북에서도 똑같이... 은거지를 찾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일주일 정찰감시/항폭이 끝나고 이제 은거지 들어가 잠도 뻐드러지게 자면서 팀들 합류를 기다리면 된다. 오르다 그늘 무성한 수풀을 발견하고 지역대장은 잠시 휴식하자고 했다. 일곱 명이 사주경계 형태로 앉았는데, 그때 내가 지역대장 옆에 앉은 게 잘못이었다. 담배 때문...


격식을 별로 따지지 않는 지역대장은 내 라이터를 빌리면서 나더러 그냥 피우라고 했다. 그렇게 앉아 담배를 피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 입이 문제였다. 그리고 지역대장의 중단 없는 공격적 성향. 이런저런 얘기 하다 순간 뭐가 걸려들었다. 그 순간, 남은 다섯 명이 조용해지면서 공기가 꽉 막히는 걸 안 보고도 느낄 수 있었다.


“자세히 설명해봐.”


난 아차 싶었다. 괜히 말을 꺼냈나? 지역대장 동공이 축소되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그 작은 눈동자 정중앙에서 불똥이 튄 듯 매서워진다. 볼이 쑥 들어가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지역대장은 자연스러우려 노력하는 티가 난다.


“글쎄...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고.”

“조중사, 내 눈을 봐... 다시 해 봐.”

“그냥, 색깔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뭔데. 정치? 보위부?”

“아닙니다.”

“한 번에 훅 가자!”

참, 사람 전염된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질렀다.

“계급장 녹색!”


“어허... 이거 봐라. 군발이가 아냐?”

“내무죠. 군복은 뭐 같으니까요.”

“보고 딱 감이 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무게는 맞다는 쪽이지?”

“모자도 녹색 아닙니까? 이상하다 자세히 봤습니다.”

“아니 우리로 치면 경찰인데 그럴 수가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여긴 뭐 내무나 군대나.”

“북한군복 물 빠지면 다 비슷비슷하죠.”


“그 내무가 동영상에서 주민 패고 그러는 거죠?”

지역대장이 행보관에게 고개를 돌린다.

“맞습니다. 여긴 보위부나 내무 놈들이나.”

“민생만 좆뺑이 까는 거죠 뭐.”


지역대장의 가무잡잡한 얼굴이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검은 지역대장 얼굴에 열이 오르면 색이 덧칠되어 더욱 검붉어진다. 옆에서 귀동냥을 하고 있던 정작장교는 이미 덩어리가 온다는 걸 눈치 챘다.


“정작장교! 지도 줘봐.”

“행정구역 보시는 거죠?”

“그래, 어디에 지역 내무국이 있겠어?”

“제 생각에는... 여깁니다.”

“여기? 음, 그럴싸...”

정작장교 표정은 심각했다.


노동당 전체회의가 또 소집되었다. 그저 사주경계 상태에서 좁혀 앉은 것뿐. 정작장교가 먼저 설명했고, 지역대장이 시선을 돌려 최하사를 응시한다.


“최하사 스코프가 더 좋지. 조중사 말 맞아?”

“...... 맞습니다.”

“군관을 식별한 거야?”

“네. 저는 정확히 본 것 같습니다.”

“내무가 맞았냐고!”

“맞습니다.”

“그리고?”


“그리고라뇨?”

“그리고.. 라고 내가 물었는데!”

“... 아예 뭐 경황이 없어서...”

“뭘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 압니다.”

“왜 물어보는 지도 알지?”

“... 네.”


“우리가 못 본 걸 최하사는 봤지?”

최하사는 한숨을 쉬면서 하늘을 본다.

“제 스코프로는 다 보였죠.”


그때 난 깨달았다. 지역대장이 무엇을 묻고 최하사가 무엇을 대답하려고 하는지 감이 왔다. 뒷목이 찌릿하다. 마음이 찬바람에 시리다. 지역대장이 거의 꽁초가 된 담배를 이빨로 물었다. 꽁초를 씹으며 수염이 말미잘처럼 움직인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뭐가 터질 것 같다. 최하사와 내가 동시에 발포하는 순간 지역대장은 느낀 것이 있었다. 예리했다. 남다르게 사고한 게 있었다. 내가 본 것과 최하사가 본 것은 다르다. 스코프 배율이 많이 다르듯이. 하지만 나도 못 본 것은 아니다...


“자, 말해.”

최하사가 주변 팀원들을 둘러본다.

“괜찮아. 말해.”

“에... 아군 맞습니다.”

내 숨이 턱 막힌다. 허 씨.

“군복 정확히 식별했어?”

“조준 직전에, 스코프 이빠이 당겨서 식별했습니다.”

“뭐야. 으? 뭐였어?”


“머리 맞은 사람. 디지털 픽셀 맞습니다."

지역대장 눈에서 표정 감정이 싹 가신다. 그러자 원사님이 끼어들었다.

“요즘 북한도 비슷한 거 일부 입지 않나?”

“아닙니다. 무늬 색상. 우리 겁니다.”


고요... 지역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멈춰 골똘히 생각한다. 잠시 후 몸과 얼굴을 정지한 상태에서 꽁초를 퇘! 뱉었다. 그리고 입으로 딱 딱 딱 딱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하늘 한 번 보고 가느다란 가지를 주어 땅에 직직 긋기 시작했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우리 상상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우리가 긴장하는 가운데 지역대장 입이 다시 열린다.


“인원... 식별했쓰?”

우리 여섯은 순간 더 놀랐다. 아니, 최하사를 빼면 다섯이다.

“음, 완료입니다.”

내 호흡이 떨리기 시작한다. 귀가 더 열린다.

“누군지 알아봤어?”

“네.”

지역대장이 한숨을 길게 쉬더니 다시 최하사를 본다.

“누구였어?”

“지역댐.., 지역대장님...”

“괜찮아. 말해. 본 걸 말해.”

“3중대.”


“3중대 누구!!!”

최하사가 지역대장 눈을 정확히 응시한다.

“강하사입니다.”


모두의 침묵. 공통적으로 한 사람을 떠올린다. 강하사, 즉결처형? 아니, 우린 군인이고 교전법을 적용하니, 포로의 머리를 쏜 것은 명칭 즉결‘처형’이 아니다. 아주 예전 어떤 생각 없는 또라이 기자가 중동의 한국인 인질 목이 잘린 걸 ‘처형’이라고 텔레비전 자막에 올렸다. 처형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죽음의 형벌을 가한다는 뜻이니 포로 강하사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군인이 적을 공격하고 죽이는 건 전쟁에서 죄가 아니다. 포로를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건 죄다. 정해진 명칭은 모르겠다. 포로 불법살해! 게다가 머리를 쏴? 손이 묶인 사람 머리를?


강하사는 열아홉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봄 기수로 바로 입대해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그래서 넘어오기 전에 신경 많이 썼던 하사로, 아마도 목표타격 도중 적에게 잡혔던 모양이다. 그래, 그렇다고, 폭격 당했다고 포로를 백주대낮에 사람 보는 데서 대가리를 쏴?


최하사가 강하사라고 말을 하자마자, 일은 모종의 불투명한 사건에서 흉악한 증오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안구에 들어간 힘이 풀어지지 않는다.


‘아, 불쌍한 놈... 아...’



“최! 곁에 다른 내무들이 있었나?”

“몇 봤습니다. 녹색 계급장.”


이게 다르구나 난 생각했다. 난 목표만 봤고 최하사는 정황까지 다 봤다. 최는 조준이 오래 걸린 게 아니라 정황을 보고 판단한 다음 조준했다. 그 정황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저격의 효력과 추격 가능성을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짜 우수한 저격수는 상대 무리의 심리를 읽고 그 허를 찔러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거다. 그게 나와 달랐다.


“그 군관만 있는 거 하고는... 다르네.”

“그럼, 그 내무들이 강하사를 거기 데려온 거겠죠.”

“어쩌면 현역에게 넘기려고 했던 건가?”

“아, 그럴 수 있구나 씨발.”

“3중대 목표를 내무들이 지키고 있었나 보네요.”

“그렇지. 이제 앞뒤가 맞네.”


지역대장이 피식 웃었다. 우린 안다. 저럴 때가 진짜 화나셨다는 걸.

“하여간, 뭐 일이, 간단히 넘어가기 힘드네.”

“지역댐, 일부러 말 안 한 거 아닙니다. 군관도 제꼈고.”

“알았어. 그건 됐어. 그게 문제가 아냐.”

이제 슬슬 시선이 행보관 쪽으로 모인다.

“행보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슨 말이 나올까.

“쉽지 않겠지만, 되를 받았으면 말로 주어야 게릴라죠.”


아 씨.


“그렇죠?”

“게릴라가 무서워야 게릴라지.”

“우리 기본 정찰감시는 끝났고, 이제 골프 모이는데 이틀 시간이 있어.”


지역대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갈 분위기였다. 행보관이 다시 입을 연다. 혹시나 자기 말에 지역대장이 불편해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지역댐 뜻 알겠습니다. 다만, 신중해야 합니다. 이제 곧 생존 병력 데리고 지역대장님은 2차 작전을 지휘해야 합니다. 내려간다고 누가 꼭 죽고 다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일곱으로 추가 작전 수행할 때 성공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 하더라도 피해 입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내려갈 경우 우리 본부팀은 정상 건제가 무너지고 항폭/감시 기능도 저하됩니다. 팀 정작들 중에 쏘텍(SOTAC) 받은 사람 있지만 우리 정작장교만 못합니다.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회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있을 겁니다. 누가 이걸 잊겠습니까.”


지역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관 얘기 해봐.”

“전 돌려서 말 못합니다. 응답 하죠!”

“진심이야?”

“지역댐은 하고 싶으시죠? 네, 저도 하고 싶습니다.”

“난 가만히 못 있겠어. 하지만 억지로는 안 해.”

“우릴 그딴 식으로 죽였을 때 어떤 게 가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지.”

“모르면 가르쳐 줘야죠. 미친개는 법전 버리고 전기충격 좀.”

“뭐 포로가 현역 보위부로 넘어가도 성치는 못했겠죠.”

“그것과 대낮에 병사들 보는데 쏜 거는 다르지.”

“마이 다르지. 그건 모욕이야. 모욕. 학대 모욕 치욕.”

“이미 알아버렸는데, 3중대 만날 때 면목이...”

“그렇지. 3중대는 모를 거야. 에 이런 씨...”


“지역댐, 결정하시죠. 정확히.”


“그래. 말할게. 산으로 가고 있었지만, 발길을 돌려 잠시 내려간다. 무장은 했겠지만 내무국을 이 전시에 군인이 지키진 않아. 관건은 침투라고 본다. 민가를 통과해야 하니까. 강하사는 물론, 우리 남은 작전을 위해서도 보복 한번 하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긴 재래식으로 겁을 줘야 돼. 우리가 민사를 준비하지 않았지만, 민사 대신 공포로 굴복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리 하시죠. 기분 막장이네요.”

“행보관이 마지막으로 말해보세요. 반대표 던져도 됩니다.”

“가야죠. 마음이... 그 장면이 안 지워집니다.”

“그 군관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미개한 겁니다.”

“행보관 밝힙니다. Go!"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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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횃불처럼 3 20.11.19 38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390 23 14쪽
140 횃불처럼 1 20.11.17 425 22 12쪽
139 마지막 개구리뜀 20.11.16 402 17 17쪽
138 복수불반 4 20.11.14 367 24 14쪽
137 복수불반 3 20.11.13 343 25 12쪽
136 복수불반 2 +4 20.11.12 365 23 11쪽
» 복수불반 1 20.11.11 433 25 12쪽
134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2 20.11.10 432 21 12쪽
133 용미리에서 만납시다 1 20.11.09 426 18 13쪽
132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5 20.11.08 391 25 15쪽
131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4 20.11.07 401 18 12쪽
130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3 20.11.06 430 18 12쪽
129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2 +1 20.11.05 428 18 12쪽
128 너희가 총력전을 아느냐 1 20.11.04 526 21 11쪽
127 나의 투쟁 2 20.11.03 374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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