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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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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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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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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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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키리아(2)

DUMMY

2.

“안녕하세요, 사제님.”


오전.

쾌활한 인사와 함께 레렌이 성당의 문을 두드렸다.

마치 전날 밤에 일어났던 비극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쾌활한 목소리.

오늘도 소녀의 바구니는 가득 차있어.

맑게 게인 하늘에 어울리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레렌이었다.

하지만 좁아터진 마을이다.

분명 떠들썩한 동네의 소문을 들었을 터.

더욱이 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깔린 참혹한 흔적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불길한 핏자국.

평화를 부수는 공포의 상징.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이상하다.

사실 이런 레렌의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는 단지 스스로를 향한 자기암시.

즉,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다.

이렇게 한결같은 인사를 건네면 평범한 일상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아.

몰려드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레렌. 어서 오세요.”


레렌의 방문에 넬은 최대한 웃음으로 반겼지만 그 속에 감춰진 무거운 감정까지 숨길 순 없었다.

사제의 얼굴에는 전날 밤을 꼬박 지새운 피곤함이 역력해보였다.

이 착실한 남자는 분명 장례의식을 치르고 나서도 곧바로 새벽기도부터 했을 것이리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레렌. 모처럼 초대해주셨는데···.”


난처한 표정.

차마 소녀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한다.

···사제는 저녁식사를 권하러 온 소녀의 기대에 찬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함박미소.

분명 기대했을 테지.

그러나 넬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연히 소녀의 실망은 기대한 만큼이나 컷을 것이다.


“에이, 괜찮아요. 전 신경 쓰지 않는걸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레렌···.”


다행히도, 지금 레렌의 모습에서 화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레렌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했다.

그의 부득이한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레렌의 신경은 전날의 저녁 약속보다 넬이 구한 소녀에게 향해있었다.


“그 아이는 좀 괜찮아요?”


요괴의 잔혹한 습격에서 살아난 소녀의 부양은 넬이 일임하기로 했다.

누구든 출신을 모르는 타지의 아이를 맡아주기를 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갑작스레 방을 비워 잠자리를 만드는 일 또한 번거롭기 그지없어.

때문에 결국 넬이 스스로 소녀를 도맡기로 한 것이었다.


“네, 키리아 양은 무사하답니다.”

“키리아··· 그 아이의 이름이 키리아로군요.”


전날 구출된 소녀의 이름을 읊으며 레렌은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여기 선물이요. 별 것 아니지만··· 입이 하나 더 늘었으니까 넉넉하게 담아왔어요.”


그것은 파이와 과일이 든 바구니였다.

애플파이, 전날 넬이 참석하지 못한 저녁 식사의 메뉴였다.

약속의 유무보다 요괴에게서 구출된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마음씨 착한 소녀,

기특한 소녀의 마음씀씀이에 감동한 넬은 그제 서야 레렌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항상 고마워요, 레렌.”

“뭘요! 서로 돕고사는 게 변방의 정이죠! ···아, 그래도 그 아이는 정말 행운아네요? 그 무서운 요괴를 만났는데도 무사하다니!”

“네. 가끔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긴 하는 모양입니다. 목숨을 잃은 세 사람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그는 여전히 희생자들에게 대해 생각 중이었다.

그러나 레렌은 넬이 다시 깊은 한탄에 빠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 사람이 살아난 것만 해도 어디에요? 여신님의 손길이 닿은 게 틀림없어요. 그 아이가 사제님에게 구출된 걸 보면요! 이건 틀림없이 하늘의 뜻인 거예요!”

“레렌은 저보다 더 사제 같은 말을 하는군요.”

“헤헤,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마을에서 바른 말만 한다고 유명한 저라고요. 에헤헤, 제가 너무 주제넘었나요?”

“아뇨, 그게 레렌 다움이니까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다워요?”

“어느 때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모습.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 어려운 말은 잘 몰라요.”

“아하하. 간단해요. 제가 레렌의 밝은 모습을 참 좋아한다는 이야기랍니다.”


좋아한다.

그 한 마디에 레렌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주어에 대해선 이미 잊은 모양이었다.

이 사제는 가끔씩 뭔가 계산된 듯이 마음을 흔드는 소리를 해.

물론 그것이 레렌이 생각하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오히려 의도가 없기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레렌은 분명 이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처녀를 여럿을 울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아우. 사제님도 참··· 놀리지 말아요, 정말!”

“네? 놀리다뇨?”

“그, 그것보다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넬에게, 레렌은 얼른 자신이 온 진짜 볼일을 꺼냈다.


“그런데 저··· 사제님. 지금 그 아이를 좀 만나 봐도 될까요?”

“키리아 양을요?”

“실은 제가 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줄리 아줌마가 그 아이를 씻겨 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아, 그랬었군요. 항상 수고가 많네요, 레렌.”

“에이, 뭘요. 마을이 이런 때이니 만큼 제가 나서야죠!”


사실은 레렌 스스로가 넬을 만나기 위해 자처한 일이었지만.


“음.”


넬이 무거운 신음을 흘린다.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의 키리아가 다른 사람과 만나도 좋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그녀는 지난 밤에 큰 고난을 겪은 처지였기에···.


“왜요? 제가 그 아이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아서요?”


열 개의 손가락을 펼쳐 고양이의 흉내.

레렌의 장난스런 모습에 넬은 미소와 함께 결론을 낸다.

결국 상대가 레렌 이라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쩌면 자신보다는 동년배 아이가 많은 도움이 되리라.

무엇보다 성격 좋은 레렌이다.

홀로 떨어진 마을에서 마음을 기댈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몰랐다.


“2층에 안 쓰던 창고를 비워서 그 안에 방을 만들어두었답니다. 키리아 양은 거기서 쉬고 있어요.”


넬이 가리킨 방향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너머 헐거운 문이 있는 방이 있었다.


“급조하긴 했지만 마을 분들께서 침대나 가구를 놓아 주셔서 그런대로 해결되었죠.”


레렌은 잠깐 넬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잠깐만요. 창고요?”

“물론 청소는 깨끗이 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도끼눈.

레렌이 쏘아보며 말했다.


“여자아이를 저런 곳에 재워두면 어떡해요? 쥐라도 나오면 어쩌려고요?”


넬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그렇다고 종당이나 예배실을 비울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남은 곳은 자잘한 도구를 넣어두었던 창고와 사제 전용의 방뿐이었다.


“···그럼 차라리 사제님이 쓰시는 방으로 옮기도록 해요.”

“으음, 저도 그걸 생각 못 한건 아닌데요···.”

“옷은 모두 기도실에 있죠?”


소녀는 막무가내로 사제의 등을 떠밀었다.

레렌의 말처럼 당연히 사제의 방을 비우는 것이 옳은 결정이리라.

레렌은 예배당 옆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넬의 방이 있다.

그리고 레렌은 깨달았다.

키리아를 넬의 방으로 옮기는 쪽이 숙녀에게 더 실례가 되리란 사실을.


“이보세요, 사제님.”


사제의 방은 좁았다.

아니, 정확히는 혼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방안은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주인 때문에 서고인지 침실인지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

온갖 잡동사니들에 의해 침식당한 것이다.

심지어는 쌓아올린 책들이 창문을 막은 탓에 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여기저기 널 부러진 책들과 이상하게 배치된 가구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은 걸릴 것처럼 보였다.


“이게 뭐예요? 완전히 엉망진창이잖아요? 말이 되나요? 창고 정리보다 방을 치우는 게 더 힘든 일이라뇨?”


소녀는 지금 막 사모하는 사람의 결점을 발견했다.

기가 막혀, 정작 방의 주인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키리아 양의 방은 이층에 두었죠.”

“그게 문제가 아니라요!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하하하, 그렇죠? 아까 새벽에 오신 마을 분들께서도 레렌과 같은 말을 하시더군요.”

“대체 잠은 어디서 주무시는 거예요?!”


사제는 천연덕스레 말했다.


“저기, 저 책들을 조금 밀어내면 아슬아슬하게 자리가 생긴답니다.”

“하아, 정말···.”


전날 성당에서 창고를 정리한 마을 사람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레렌은 차마 단 둘이서 이 많은 짐들을 정리할 엄두가 나질 않아 문을 닫아버렸다.


“세상에··· 사제님한테 이런 면이 있으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하하하. 면목 없습니다.”

“웃지 말아요! 사제님 정도 되시는 분께서 그러시면 안 되죠!”

“그런 이야기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더군요. 나름대로 정리도 몇 번 해봤는데 책을 하나 둘 씩 들여놓다보니 어느새 또 저렇게 되어버려서···.”


레렌은 넬이 처음 부임하던 날에 옮겨진 짐들이 대부분 책들뿐이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다 큰 어른이 그러면 못써요.”

“음, 맞는 말씀이에요. 면목이 없네요.”


레렌은 툭 하고 사제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리해요. 청소 도와드릴게요.”

“어, 어어? 지금 말인가요?”

“왜요? 싫으신가요?

“아뇨, 레렌. 그건 아니지만··· 폐를 끼치는 게 아닐지.”

“에이, 저는 집안일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고 하진 않았어요. 지금은 축제준비도 그렇고 그 아이를 씻겨야하니까요. 정리는 축제가 끝난 다음에 하기로 해요.”


넬은 소녀의 호의를 차마 무시하지 못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함께 힘 내봐요!”


다시금 사제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만들어낸 레렌이었다.


“자아, 그럼 안내부터 해주세요. 얼른 씻겨주러 가야겠어요.”

“저기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이 남자는 정말 여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레렌은 다시금 사제에게 눈치를 줬다.


“저 혼자 들어가면 키리아가 놀랄 거예요. 사제님이 함께 하셔야죠.”

“저는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같은 또래인 레렌이라면 오히려 제가 함께 있는 걸 불편하게 여길 것 같은데요?”

“에잇, 두 아가씨가 처음 만날 때는 기사님이 소개 해주는 게 수도의 예법이잖아요?”

“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도의 예절이었다.

귀부인끼리의 첫 만남에선 중간에서 서로를 주선해줄 사람이 필요해.

콧대 높은 귀족 여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것을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즉,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자존심 싸움.


“얼른요.”


물론 레렌은 단순한 농부의 딸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의미 없는 귀족의 흉내에 불과할 터···.

레렌이 이런 고집을 부리는 아이였던가?

본래 숨김없고 쾌활한 레렌의 성격이라면 분명 바로 소녀에게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갔을 것을.

결국 넬은 끝까지 레렌이 키리아에게 향한 묘한 감정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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