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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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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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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글자수 :
309,390

작성
21.05.1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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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조우(7)

DUMMY

9.

지금, 요괴가 서 있는 골목 주변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역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먹다 실증이 나 던진 고깃덩어리와 질퍽한 체액들이 바닥을 온통 차지해···.

평범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라면, 이렇게 짓이겨진 동족의 시신을 보자마자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도망치지 않아? 왜?’

‘별종이군. 상황 파악이 덜 됐나? 보통 나자빠질 텐데?’


이 남자는 아니었다.

죽어버린 시체들이 아닌 오직 소녀만을 바라본다.

그저 비위가 좋고 나쁨을 넘어서.

요괴는 눈앞의 인간이 왜 자신의 안위를 묻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대체 왜···.”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있을 리 없는 외상에 대해.

왜 이런 장소를 서성이고 있었는지 따위를 끝없이 물어왔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남자의 행동에, 소녀도 그저 눈을 크게 뜨고서 사내의 얼빠진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남자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녀의 모습을 한 요괴와 또 하나의 아가리는 서로에게만 들리는 주파수로 대화를 했다.


‘오호라, 이 녀석··· 완전 반대로 생각하고 있구나?’

‘응? 무슨 말이야?’

‘아직 눈치 채지 못했단 소리야.’

‘그러니까 뭘?’

‘드물게 있지? 지나치게 어리석어서 남을 의심할 줄도 모르는 등신 같은 놈들이 말이야.’

‘흐응?’

‘살아있는 개체로서 중요한 자각이 결여된 열성인자. 무리를 위해 희생하도록 교육받은 쓰레기들 말이야.’

‘아하··· 후후후, 그런 거야?’

‘킥, 키키킥! 이거 가관이네. 이 상황에서도 너를 괴물로 보고 있지 않아! 저 표정을 보라고! 의심조차 못하는 건가? 멍청한 놈이야! 그것도 엄청나게 둔한 머저리다!’


그랬다.

남자는 눈앞의 참사를 일으킨 것이 바로 소녀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의심은커녕···.

오히려 피범벅이 된 소녀의 모습을 보고서 이 사건에 휘말려 든 피해자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확실히 요괴는 지금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야.

온전한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하지만 기분 나쁜 걸?’


요괴는 뒤늦게 자신 실수를 깨달았다.

남자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만 긴장을 풀어버린 나머지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고 만 것이었다.

사실 당황할 이유는 전혀 없어.

오히려 사내 쪽에서 접근해왔다면 잘 된 것이 아닌가?

단두대에 모가지를 가져다 댄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상대는 이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요괴는 슬슬 조바심이 났다.

한시라도 눈앞의 이 인간의 숨통을 끊어놓고 싶어.

얼른 비명소리를 듣길 바랐다.

···허나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아, 요괴는 자신을 놀래게 만든 대가또한 톡톡히 치르게 하고픈 욕망이 끓어올랐다.


“당신은 대체···.”


얼빠진 얼굴로 정신없이 안부를 묻긴···.

그에겐 여전히 일말의 의심하는 기색조차 없어보였다.

여기서, 요괴는 한 가지 돌발행동을 했다.


“···무서웠어요!”


갑자기 간절한 대사를 내뱉으며 남자의 품에 안겨든다.

거기엔 사악한 속셈이 있었다.

요괴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요괴를 막 위기에서 벗어난 여자아이로 오해하고 있어.

그렇다면 이런 행동은 남자의 기대에 충분히 맞는 것이리라.

그리고 요괴는 그런 착각 속에 빠진 남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으려 했다.

상상.

그것만으로도 요괴는 황홀경에 빠진다.

생각지도 못한 소녀의 기습에 겪을 혼란···.

그에 남자가 얼마나 큰 절망을 느끼게 될 지를!

요괴는 벌써부터 남자의 정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괜찮아요, 당신은 이제 안전해. 더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예상대로 남자는 요괴의 몸을 다독였다.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다.


‘아하하하, 정말이다! 이놈은 멍청해!’


요괴는 자신의 몸에 닿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요괴는 처음부터 괜찮았고 걱정 따윈 한 적도 없었다.

요괴는 남자의 목 언저리를 더듬었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준다면 남자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숨통을 끊을 수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만 인간의 최후가 다가왔다.

천천히 손이 위로 올라간다.

예정된 죽음을 거행하는 처형대와 같이 소녀의 작은 손은 날카롭게 남자의 목을 향해 내리꽂혔다.


“다행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요괴의 손가락은 남자에게 닿지 못했다.

또 다시 사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소녀를 품에 안은 사내의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로군요!”


목소리가 흩어져내려.

···남자는 오열하고 있었다.

그는 흐느낌과 함께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째서?

무엇이 그렇게나 다행이라는 것일까?

요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눈물이란 슬픈 감정을 운다는 형태로 풀어내는 게 아니었던가?

공포나 절망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었나?

하지만 이 사내의 행동은 지금까지 요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굉장히 격한 감정이 서린 울음이었지만, 요괴의 눈에 그것은 어째서인지 매우 기쁘게만 보였다.

안도감을 참지 못하고 뿜어내는 것.

말 그대로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남자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


혼란스러운 와중에 요괴는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인간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이건 모두 꿈이야. 그래, 꿈이 틀림없어. 거짓말일거야. 눈을 뜨면 따뜻한 아침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분명 그럴 거라고. 이히, 이히히···. 이건 악몽에 불과해···.’


어딘가의 남자는 눈앞에 놓인 공포에 모든 걸 놓아버렸다.

현실을 거부하고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했다.

그 눈물에는 극도의 절망이 담겨있었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아직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단 말이야! 살려줘, 나는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그저 살려는 의지만을 내뿜던 남자도 있었다.

이생에 깊은 미련이 남아 절대로 못 죽는다고 몇 번이나 소리쳤다.

필사적으로 목숨을 애원하면서 요괴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 눈물에는 삶에 대한 집착이 담겨있었다.


‘나는 죽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부탁이야. 이 아이만은 제발···. 내 아들만은 살려줘, 부탁이야!’


최근 요괴가 목숨을 빼앗은 어떤 여인.

자신의 죽음보다도 혈육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방패를 자처한 어미가 있었다.

하지만 요괴는 여자를 베고 그녀의 앞에서 아들을 잡아먹었다.

요괴는 자식의 몸이 난도질당할 때의 여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인은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아들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더니 온갖 저주의 단어들을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내뱉었다.

그 때의 여자가 흘렸던 눈물에는 분노와 증오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요괴는 그런 여인을 바라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이것들이야말로 그녀가 알고 있는 인간의 울음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였다.

결국 눈물이란, 인간의 단말마와 항상 붙어 다니는 것···.

자신의 죽음.

혹은 믿고 있던 것이 무너져 내릴 때의 절망과 공포를 울음로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 남자만큼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해있지 않았다.

저 눈물에 담겨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째서 웃음이라는 모순된 행동과 겹쳐져 나타나는 것일까?


‘···이상해.’


요괴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살아있는 인간과 이렇게 가까이, 이만큼이나 오랫동안 살려둔 적은 없었다.

요괴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남자를 향한 살의가 가라앉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격렬하게 끌어 오르던 수치심이 모두 거짓처럼 누그러졌다.

이유는 모른다.

죽이기 직전의 긴장이 급속도로 풀려버려서?

아니면 사내의 기행 때문에 쓸데없는 의문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기 때문에?

···어쩌면 둘 다 정답일지도 몰랐다.


‘···관둘래. 흥이 식었어.'

‘뭐라고? 이 상황에서 변덕?“

‘시시해. 죽여 봐야 하나도 재미없을 거 같아.’

‘···아하, 알겠다. 이것도 언제나처럼 또 같잖은 농담이지? 하마터면 네 연기에 속을 뻔 했네.’

‘후, 후훗··· 아니야. 이번만큼은 정말이야. 나는 이 녀석을 죽이지 않을 거야. 방금··· 아주 좋은 생각이 났거든.’

‘하?’


그때 요괴의 뇌리에 어떤 잔혹한 계획이 스쳐지나갔다.

요괴의 입가가 히죽하고 웃었다.


‘···후후후, 그래. 이 멍청한 남자를 이용해서···.’


요괴는 힘이 들어가 있던 손을 내렸다.


‘직접 인간의 놀이를 해보는 거야!’


요괴는 자신의 천재적인 번뜩임에 몸서리쳤다.

달빛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조화였을까?

사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옆면의 벽에 비친 소녀의 그림자는 서서히 악귀의 형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흉물스럽게 벌어진 입과 대각선으로 찢어진 눈.

불꽃처럼 일렁이는 머리카락은 결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린 지금 충분히 배가 불러. 이걸로 당분간 허기질 일은 없지.“

‘···그래서?’

‘평소대로라면 이미 동굴이라도 찾고 있었겠지. 그 다음은 지루하게 소화가 끝날 때까지 머물러 있었을 거야.’

‘그게 우리의 일상이니까.’

‘모처람 인간의 마을에 들어왔잖아? 그러면 얻을 수 있는 건 모조리 얻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 전부 쓸데없는 짓이야.’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좋은 기회잖아?’

‘시끄러워. 넌 제정신이 아니야. 인간의 무리에 들어가겠다고? 그딴 게 우리에게 대체 뭔 의미가 있는데?’

‘맞아! 마침 옷도 필요하니까 이 멍청이를 통해서 받아내자. 화려한 장식이 많은 옷을 입은 인간은 십중팔구 부자겠지.’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거냐? 아니면 귓구멍에 방금 처먹은 사내새끼들 X이라도 박힌건가?’

‘어머, 말을 조심해줘. 그렇게 경박한 태도는 나빠. 때론 혀가 창보다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단다.’

‘켁! 그건 또 무슨 흉내냐? 설마 저번에 먹은 창부의 말버릇은 아니겠지?’

‘어라, 어색했어?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역겨우니까 당장 집어치워.’

‘우후후, 아무튼··· 기왕이면 뭘 하든 재미있는 쪽이 좋잖아?’

‘어설프게 인간을 따라 하기나 하고···.’

‘아아, 이걸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그러면 더 즐겁게, 더 많은 먹잇감을 홀려낼 수 있겠지, 후후, 우후후후···.’


어느새 잔인한 미소와 함께.

요괴는 자신을 구했다고 착각에 빠진 남자의 얼굴을 흘겨봤다.

그는 여전히 요괴를 끌어 앉은 채 소녀의 무사함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사악한 요물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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