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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우스

마법을 베는 천재기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뇌비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13 17:13
최근연재일 :
2023.12.08 11:3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7,246
추천수 :
499
글자수 :
190,785

작성
23.11.23 17:47
조회
530
추천
15
글자
19쪽

검의 성소(3)

DUMMY

꽈릉!


창을 들고 있던 황동인형이 쓰러지면서, 앨런의 입 밖으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허억... 허억!"


눈 앞에 드러누운 세 구의 잔해.

그리고 소년의 몸 곳곳에 그어진 새빨간 선혈과, 쉼없이 흐르는 땀.

이것으로 그간에 일어났던 싸움의 치열함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검, 활, 그리고 창병.'


세 개의 인형을 쓰러트렸다.

앨런의 시선이 쓰러진 인형들의 파편을 훑었다.

바닥에는 인형의 특성을 상징했던 무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앨런은 이윽고 전방을 향해 눈을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둘. 방패병 하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맨손의 인형.

다른 인형보다 약 1.5배 더 큰 그 인형이, 특유의 텅 빈 동공으로 앨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앨런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기긱,


"...빌어먹을."


한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곧 네번째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자신의 오른손에 꼬나쥔 방패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궁-


깊게 퍼지는 쇳덩이의 울림.

마치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앨런은 방패병의 보석이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삽입 위치는 복부.'


가로로 나란히 박혀 있다.


'1423.'


곧이어 파괴할 순서를 빠르게 파악했다.

주황, 빨강, 보라, 파랑 순.

비로소 응전할 준비가 완료 되었다.


허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다름 아닌 놈이 내는 속도였다.


기긱...

기기기기긱!!



방패병은 앨런을 향해 두어 걸음 다가오더니, 한순간 벼락처럼 거리를 좁히며 방패를 휘둘렀다.

놀란 앨런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둔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재빠른 움직임.

이제까지 접했던 인형들 중 가장 인간에 흡사한 몸놀림이다.

곧 앨런의 두 발에 척의 묘리가 실리기 시작했다.


슝- 휘릭!


따라붙는 적의 공격을 피한 앨런이 뒤로 물러나 자세를 다잡았다.


"그래. 누가 빠르나 한번 붙어보자."






*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며, 앨런은 짧게 갈무리한 한숨을 토해냈다.


"처치했어."


마침내 방패병까지 물리쳤다.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놈의 사지엔 검상과 결손으로 가득하다.


끼이익... 콰륵!


놈이 앞으로 기우뚱하며 몸 전체가 와르르 무너졌다.

파괴 부위에선 각기 다른 크기의 태엽 같은 것과 구리선 같은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사람으로 치면 피와 뼈를 토해내는 듯한 광경이었다.


"...좋아."


앨런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검술이야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잇따라 황동인형들을 상대하다보니 왠지 켄과 척을 이용한 싸움에 부쩍 능숙해진 기분이었다.


'이젠 오러기사답게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접전에 접전을 거듭하다 보니, 상대방의 움직임에 리듬과 패턴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엔 힘들지만, 몇 번 맞부딪히다 보면 각자 휘두르는 투로, 속도가 정형화 되기 시작해.'


앨런의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검, 활, 창, 방패.


각기 다른 병장기로 위협했던 인형들의 공격 패턴은 곧 앨런의 머릿속에 기계처럼 입력되었고,

그렇게 공격이 훤히 읽히니 싸움을 거듭할수록 앨런의 회피력도 상승했다.


"좋은 경험이었어."


향 후에 맞닥뜨리게 될 실전 전투에 요긴한 초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마냥 승리감에 젖어 있을 때만은 아니었다.


기긱.


맨손의 황동인형.

마지막 하나 남은 그것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기긱.


다른 인형들에 비해 절제된 움직임. 그럼에도 앨런은 놈이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슈웃, 슛!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놈의 발 아래 공기가 찢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만큼이나 속도며 위압감이며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어떻게 공격해오려나.'


설마 불이나 암기 같은 걸 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마법 같은 걸 쓰는 건 아니겠지?

앨런은 어느 때보다 바짝 긴장하며, 나름의 대비를 위한 여러가지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유념해야 할 관건은, 역시 오러의 총량을 조절하는 것.'


- 남발하지 마라.


기억 속 쉬리더가 남겼던 말이 새삼스레 앨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 아직 풋내기 햇병아리 주제에. 없는 살림 아끼고 아껴도 모자랄 판이니.


그 말 그대로였다.

앨런은 이제 막 오러를 깨우친 초보자.

그렇기에 스승처럼 오러를 언제고 마구 발출할 순 없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적재적소에만.'


그러니 냉철한 판단력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앨런은 유념하며 상대와 대치했다.

마침내 놈이 드러낸 실체는 여러모로 예상 밖이었다.


챙,

차라랑!


순식간에 좌우로 돋아난 두 쌍의 팔.

원래 있던 팔 한쌍까지 합치면 총 세 쌍이 된 셈이다.

곧 앨런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이건 좀 심하잖아."


이쯤 되면 인형이 아니라 '거인'이다.

놈은 이제까지 상대했던 인형들이 사용했던 모든 무기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원래 있던 팔에는 검..'


그 아래 팔에는 각각 창과 방패,

그리고 맨 위 팔엔 활이 재어져 있었다.


기리리릭...!


황동거인의 화살이 앨런을 조준했다.

활을 든 팔은 황동거인의 등 뒤, 정확히는 우뚝 올라온 승모근 후면에 거미처럼 길게 돋아난 상태.

그래서 남은 팔들과 엇갈리지 않게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추확!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자극적인 격사음.

앨런은 몸을 우로 굴러 피했고, 그 뒤를 잇따라 네 개의 화살이 퍼버벅 박혔다.

앨런은 빠르게 훅 털고 일어났다.


"..."


화살의 피격지점을 보니 가관이었다.

돌로 된 바닥을 뚫은 것도 모자라, 맨 끄트머리 꽁지깃까지 깊게 박힌 모습.

저걸 맞았다간 머리통이며 몸뚱이며 그대로 떨어져 나갈 판이었다.

긴장으로 점철된 침을 꿀꺽 삼키며, 앨런은 손과 다리 위로 켄과 척을 발동했다.


"이번엔 피땀 깨나 흘리겠..!"


거인의 창이 앨런을 훅 찔러왔다. 빠르다. 창의 특성을 십분 살린 날카로운 직선형의 공격.

앨런은 왼쪽으로 반 걸음 물러나며 거인이 내지른 창을 흘려냈다.


'창격은 위력적이지만 단순해.'


쐐액!


창격에 이어 쉬지 않고 휘두른 거인의 검. 희뿌연 무지개를 그린다.

허나 가른 것은 빈 허공 뿐. 앨런은 그보다 열 발 자국은 더 멀어진 상태였다.


후웅...


앨런의 두 다리에 어린 척의 오러가 온몸을 바람처럼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검격은 가장 매섭지만 거리가 짧고.'


기리리릭!


잇따라 빚맞춘 공격들에 격분이라도 한듯, 이번엔 거인의 세번째 팔이 활을 재기 시작했다.


추화학!


반달 모양의 만궁이 된 활에서 쏘아진 화살.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며 이내 앨런의 머리통을 향해 직행했다.


지잉-!!


허나 앨런의 왼손 위로 빠르게 발동 된 켄.

살짝 손을 비틀자 꽂혀오던 화살의 방향이 틀어졌다. 곧 화살은 '퍽' 소리를 내며, 엄한 땅에 박힌 채 꼬리만 부르르 떨어댔다.


"그리고 화살은, 궤도를 바꿔버리면 그만이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여러가지 무기와 패턴들의 조합.

결국 앞전에 겪어 온 선행학습의 반복에 불과하며, 기억력과 오감이 비상한 앨런에게 이 난관은 그저 가슴 뛰는 도전일 뿐!


"자 그럼, 슬슬 보석 사냥을 시작해볼까?"


이후 촌각을 다투는 접전.


끼이잉... 콰르릉!


응전과 반격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스듬히 동강이 난 거인이 털썩 쓰러졌다.


"하. 으아!"


앨런도 두 무릎을 꿇었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에 온몸이 떨려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도망치고, 반격하느라 온종일 긴장했던 양 손과 다리엔 마구 경련이 일어났다.


후웅....


1관문 한 가운데 자리한 원의 불빛이 사라졌다.

곧이어 바닥 아래 사라졌던 비석이 '솻'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비석엔 새로운 문구가 적혀 있었다.



- 1관문 통과.




뒤이어 들려온 쩌저적 소리와 함께, 멀쩡한 비석이 앨런의 눈앞에서 두쪽으로 나뉘어 쪼개졌다.


와르르-


무너진 비석의 잔해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이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웬 상자 하나가 있었다.

앨런이 그것을 열어 보니 안에는 장작과 수통, 그리고 요기할 만한 식량이 담겨 있었다.


"건량, 토끼고기... 좋았어. 감자도 있네!"


건량은 애피타이저, 고기와 감자는 장작불에 태워 화식으로.

지친 와중에 그럭저럭 요긴하게 배 채울 만한 양식이었다.


"..대박!"


기력이 잔뜩 떨어진 와중에도 앨런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된 이유는 분명했다.

상자 안엔 식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어즈 오브 럭키'!"


한때 마스터와 눈에 불을 키고 찾아 먹었던 그 귀한 영삼이, 자그마치 세 뿌리도 넘게 들어 있었다.

앨런은 들뜬 마음으로 부싯깃을 꺼냈다.


"불. 빨리 불 올리자."




*





종전까지 치열한 싸움을 했던 1관문.

이곳은 어느새 간이 쉼터가 되어 있었고, 앨런의 두 눈에도 생기가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좀 살겠다."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은 어느새 잉걸불로 차게 식어갔다.

그 근처엔 살이 깨끗하게 발라진 작은 뼈다귀 몇 개들과, 이런저런 부스러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앨런이 먹어 치운 식량의 잔해였다.

앨런은 주먹을 쥐었다 피고, 몸에 난 이런저런 상처들도 몇 개 어루만져 보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고갈된 오러도 좀 회복된 느낌이고... 여러모로 한숨 돌렸어."


영삼의 효능 때문이리라.

예전엔 뿌리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원기가 왕성했었고, 지금은 그 세배를 복용했으니.

충분히 이런 호전을 기대할 만 했다.

이제 앨런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2관문..."


아무것도 보이는 것 없이 휑 뚫린 통로.

저곳을 지나면 아마 그 다음 시험인 2관문으로 통하게 되리라.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어둠 속을 헤아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제2 관문이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조.

1관문과 비교했을 때 공간의 구성이 사뭇 달랐다.


"양쪽에 벽이 있네.'


좌우 각각 하나씩 들어선 벽. 반듯하고 견고했다.

일정한 크기의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누가 봐도 어엿한 건축물이라 불릴 만했다.

투박한 굴 형태였던 1관문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앞은 뚫려 있고... 역시 바닥 한가운데엔 원이 그려져 있구나."


앨런이 저 원 위에 서는 순간, 곧장 새로운 시험이 시작될 것이다.


"뭔지는 알고 시작해야지."


마찬가지로 2관문의 초입에도 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제2 관문」


- '모난 돌을 밟아라'.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

- 준비된 자는 원 위로 위치하라.




"...이건 또 뭔."


1관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역시나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힌트였다.


"모난 돌을 밟아.. 앞으로 나가라고?"


모르겠다. 순 불길하기만 할 뿐이지, 도통 감을 잡조차 수 없는 말.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건. 또 '원 위로 위치하라'는 것 하나뿐인가."


떨리는 숨을 갈무리한 채, 앨런은 천천히 움직였다.


"..."


원에 가까워질수록 양벽의 중압감이 느껴졌다.

뭔가 대리석처럼 매끈한데, 색깔은 또 흑요석처럼 새카맣다.

불길하다. 꼭 저기에서 뭔가가 확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 같다.


쿠릉!


원 안에 서자 또다시 비석이 땅으로 쑥 꺼져 사라졌다. 이윽고 원의 둘레 위로 푸른빛이 솟아 올라왔다.


지웅-!


동시에 예기치 못했던 현상이 드러났다.

양벽 사이로 뻥 뚫린 통로.

그 통로에 별안간 새파란 장막이 생겨난 것이다.


"..길이 막혔어? 갑자기 이게 무슨-"



정작 놀랄 건 다음 단계였다.

멀쩡히 서 있던 양벽이, 갑자기 앨런을 사이에 두고 확 좁아져오기 시작했다.


쿠드드드득!


그것도, 매우 가파른 속도로.


"...이, 이렇게 되면!"


압사壓死! 앨런은 손도 못 써본 채, 육포처럼 온 몸이 찌그러질 것이다.


"안돼, 물러나!"


쾅! 쾅!


다급해진 앨런이 양벽을 번갈아 가며 발로 찼다.

혹여나 좁혀오는 벽이 밀려날까 싶어서였다.

허나 역부족이었다.


"망할!"


꽝, 꽈광!


이제 앨런은 두 발에 척을 실은 채, 온 힘을 다해 걷어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벽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쿠드드드...


마치 돌로 된 거인처럼, 아무런 거리낌없이 인간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하는 양벽.

순간 앨런이 머릿속이 하얘졌다.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텐데...'


그렇게 궁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툭'하는 단절음이 들려왔다.


"!"


순간 발휘되는 앨런의 예리한 청각. 시선은 정확히 소리의 진원지로 향한다. 왼쪽 벽 상단부다.


"...저거!"


반듯하게 다듬어진 돌벽. 그 사이로, 벽돌 하나가 툭 튀어나온 채 도드라져 있었다.

이를 본 앨런의 사고회로가 빠르게 회전했다.


"'모난 돌을 밟아라'..."


그것이 앞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

앨런은 비로소 무언가 알게 됐다는 듯, 곧장 왼쪽 벽을 향해 훅 뛰어 들었다.


휙, 파바바밧!


척을 실은 발걸음으로, 3여 미터 되는 높이를 날쌔게 타고 올라갔다.

뒤이어 '얍' 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외따로 튀어나온 그 벽돌 하나를 냅다 걷어찼다.


꽝!


두 귀가 시원해지는 격타음.

이내 벽돌이 다시 제자리로 쑥 들어갔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쾃, 쿠르르르...!


점점 거리를 좁혀오던 양벽이, 갑자기 주춤 뒤로 물러난 것이다!


"좋았어!"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푸른색 장막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두웅-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장막이 가지고 있던 푸른색의 농도가 한층 옅어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수십 개로 이뤄진 겹층의 한 꺼풀이 벗겨진 듯한 효과.


툭.


또 다시 벽돌 하나가 튀어 나왔다. 이번엔 반대쪽 벽의 중단부였다.


"..이제 알았다!"


제 2관문.

이 시험의 요체는 척과 순발력을 이용해 양벽의 압박을 방어하는 것.


'튀어나온 벽돌은, 양벽의 전진을 저지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


그러니 벽돌이 튀어나올 때마다 밟아 넣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눈 앞에 가로막힌 장막을 차츰 파괴, 탈출로를 여는 것이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




두우웅....



마침내 장막의 마지막 겹층마저 파괴되었다.


"됐어!"


뻥 뚫린 통로. 양벽의 움직임 또한 멎었다. 두 벽은 앨런을 사이에 둔 채 거의 2m 남짓한 간격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이걸 스릴 있다고 해야 할지."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니 그제서야 지나온 난관을 복기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절체절명의 순간이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른다.


"처음엔 한 벽에서 하나씩. 그 다음엔 양벽을 번갈아서. 또 그 다음엔 무작위로 여러 개씩."


밟아야 할 벽돌의 형태와 위치가 다변화 되면서, 그야말로 진땀을 빼는 상황을 거듭했다.

특히 마지막 페이즈는 극악이었다.


"'변칙돌'."


모난 돌 사이로 느닷없이 튀어나온 빨간색 벽돌.

그것이 후반 난이도를 말도 안되게 상향시켰다.


변칙돌.

실수로라도 이 빨간 벽돌을 밟는 순간, 양벽의 전진 속도가 1.5배 정도 빨라졌다.


"아무튼.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험이었어."


앨런은 손으로 쓰다듬으며 양벽의 질감을 새삼스레 느껴보았다.

말도 안되는 강도다. 이 벽에 그대로 깔렸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아 몸서리가 날 정도였다.


쿠르르르르!!


갑자기 벽이 물러섰다.

빠른 속도로 물러난 양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맨 처음의 넉넉한 간격을 둔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솻!



중심원의 불빛이 사라지고, 이내 비석이 올라왔다.




- 2관문 통과.



콰직!


이후 비석은 무너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보상이 주어질까?'


다소 기대하는 마음으로, 앨런은 비석의 잔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앨런은 몇 걸음 걷다 물러나고 말았다. 아까완 달리 뭔가 이상한 조짐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잔해 사이로 솟아나온 푸른색 광선.

일직선으로 쏘아진 그 광선이 깔때기 모양으로 촤악 펴지더니, 이내 그 가운데로 인영 하나를 만들어냈다.


- 앨...


지직, 지지직!


점점이 이루어져 지글거리던 인영. 그것은 서서히 섬세한 윤곽을 갖추더니,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건... 통신체인가?"


- 앨런.


마침내 완벽한 모습을 갖춘 통신체. 그는 앨런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인물이었다.


"마스터!"


서리가 내린 듯 깨끗한 백발에, 덥수룩한 턱수염과 특유의 넉넉한 풍채.

마스터 쉬리더였다. 그가 푸른빛 오러로 이뤄진 통신체의 형태로 앨런을 마주보고 있었다.


- 그래. 여기까지 잘 왔구나.


쉬리더가 말했다. 입가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 많이 어렵더냐?


"네."


'겁나게요.' 앨런은 이렇게 뒤에 붙이려던 사족을 애써 붙들었다.


- 너도 잘 알겠지만, 난 지금 템파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스승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 대수림이라는 곳으로 향하고 있지. 제법 짧지 않은 여행이 될 것 같구나.


"네. 거기에서 마스터 퀸린을 만나게 되시는 건가요?"


- 그래.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앨런은 어쩐지 이렇게라도 스승과 재회하니 반가웠고, 이런 저런 말들도 많이 나누고 싶었다.


"처음엔 웬 황동인형 떼거리에, 그 다음엔 움직이는 벽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지나온 시험에 대해 스승에게 설명했다.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어쩌면 모합과 싸울 때보다 더."


앨런은 두 가지 시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가만 듣고 있던 쉬리더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다, '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썹을 곤두세웠다.


- 좀 이상한데?


"뭐가요?"


- 난이도.


쉬리더는 수염을 천천히 쓸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 달라. 내가 알던 난이도가 전혀 아니야.


쉬리더는 설명했다. 1관문과 2관문 모두 오러기사가 되기 위한 공통적인 시험이지만, 그렇게까지 어려운 수준은 아니라고.


- 가령 1관문만 해도, 본래 배치된 황동인형은 총 3기뿐이다.


"3기요?"


앨런은 잠시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그, 그러니까. 원래는 세 개가 전부란 말씀이시죠?"


- 그래. 1관문은 사실상 기본적인 켄의 운용을 시험해보는 취지라, 인형들의 움직임도 매우 느린 편일 뿐더러 상대하기 까다롭지도 않지.


'덧붙여 2관문은...' 쉬리더가 계속 이어 나갔다.


- 변칙돌? 그런 건 나오지도 않는다. 뭐 벽이 좁아지면서 장막을 열어야 하는 건 맞는데... 이것 역시 기본적인 척의 운용만 확인하는 요식 단계라, 크게 어려울 것 없는 시험이지.


"...아닛!"


앨런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이런 미친!'이라는 일갈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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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검의 신탁(3) 23.11.19 646 21 20쪽
8 검의 신탁(2) 23.11.18 654 23 12쪽
7 검의 신탁(1) +2 23.11.17 720 27 14쪽
6 훈련 +1 23.11.16 822 29 17쪽
5 당기는 손, 밀어내는 발 +1 23.11.15 920 27 13쪽
4 네 능력이 참 유용하구나 +1 23.11.14 1,073 25 14쪽
3 심장을 먹는 마법사(2) +4 23.11.13 1,283 34 16쪽
2 심장을 먹는 마법사(1) +4 23.11.13 1,517 38 19쪽
1 모두에게 천재로 불리웠다. +3 23.11.13 2,341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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