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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04 22:09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11,099
추천수 :
684
글자수 :
1,309,674

작성
22.06.27 12:00
조회
40
추천
3
글자
12쪽

36.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DUMMY

-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뱉는 청년의 눈가로 땀이 흘러 내렸다.

그는 습관적으로 손등을 들어 눈을 훔쳤다.

찰팍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등에 있던 붉은 것이 눈에 묻고 말았다.

곧 비릿한 냄새가 흘러내렸다.

피였다.


- ...수고했다.


유스 유람 8조장은 시험을 무사히 치러낸 청년에게 형식적인 말을 건넸다.

사실 청년이 한 일이 그다지 수고라 할 것도 없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를 찔러 죽인 것뿐이니 말이다.


이제는 유람이 조장에 오른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일개 대원시절부터 유람은 다른 대원들의 속죄제를 숱하게 지켜보았다.

원하지도 않는 치안군에 어쩔수 없이 들어온 대원들은 속죄제를 치르고 많이들 힘들어했다.

그런 대원들을 보며 축적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처음으로 속죄제를 치른 대원에게 건넬 적절한 말 몇 마디를 알게 해주었다.


그러니 눈앞의 청년에게도 그가 알고 있는 말을 하려 했지만 청년은 좀 경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청년은 다른 선택지를 놔두고 굳이 치안군에 자원한 경우라는 것을 말이다.

할 말이 궁색해진 유람은 피로 제 눈을 칠한 청년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제 손을 덮고 있는 피처럼 붉은 머리를 한 청년이 유람에게 물었다.


- 그러면 이제 저도 치안군인 겁니까?

- ...일단 속죄제를 마무리 하고 와라. 이후에는 대장님께서 말씀해주실 것이다.


빨간 머리의 청년은 고개를 주억이며 제 앞에 죽어있는 조그마한 시체를 깨끗한 천으로 감쌌다.

이어서 유람은 제 옆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 퀴 듈름.


그의 부름에 조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몸을 흠칫 떨었다.


- 네가 여기 들어온지 벌써 4년이다. 너보다 어린 친구가 여기 들어오겠다고 속죄제를 직접 치른 거 보고 느끼는 바가 없나?

- 죄송합니다.

- 하아... 언제까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셈이냐. 네가 속죄제를 피할수록 이곳의 생활이 더 힘들어 진다고 내가 누차 말했잖나.

- 죄송합...니다.


듈름은 고개를 푹 숙인채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할 뿐이었다.

심성이 고운만큼 유약하기도 한 아이였다.

그런 그녀가 살아남기에 치안군에서 하는 일은 잔인했고 대원들은 거칠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그녀 스스로가 바뀌어야 했다.


- 율레와 함께 끝까지 속죄제를 마치고 오도록 해라.

- ...네.


유스 유람이 떠나고 남은 자리.

천에 아기 시체를 감싸던 율레가 돌연 구석으로 달려갔다.


- 우웩.


한참이나 그는 몸을 구부린 채 속을 게웠다.


- 저... 여기 이거 쓰세요.


어느정도 진정이 된 율레가 몸을 일으키니 어느새 그의 뒤로 예의 쪼끄마한 여자가 서있었다.

퀴 가문의 듈름이랬던가.

4년차 대원이라던데 속죄제를 치르는 내내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도움 안되는 여자였다.

그녀가 건넨 손에는 깨끗한 천이 쥐여 있었다.


- 고맙습니다.


율레가 천을 받기위해 뻗은 손이 여자의 손에 닿았다.

손에 남은 피가 그녀의 손에 옮겨 묻자 그녀가 흠칫하며 천을 떨궜다.

깨끗한 천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본 그녀가 호들갑을 떨었다.


- 아니... 그 죄송해요. 피 때문에...


율레는 괜찮다며 천을 주워들어 눈을 닦았다.

천이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제 머리색을 보는 것 같았다.


- 저기...


듈름이 제 소매를 잡고는 손을 뻗었다.

때묻지 않은 하얀 소매로 그녀는 그의 눈가에 남은 피를 조심스레 닦는 것이었다.

문득 짜증이 솟은 율레는 일부러 심술을 부렸다.


- 그 피, 제가 죽인 아기의 피입니다.




조심스럽던 손길이 멈췄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입술에서 자조 섞인 미소가 흘러나왔다.


- 그쪽도 제가 참 못났다고 생각하시죠?

- ...

- 맞아요. 전 제 손을 더럽힐 용기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놓고는 다른 사람의 더러워진 얼굴은 지나치지 못하는 위선자죠.


뭐 어쩌라고.

율레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제자리에 멈춘 자들의 자학적인 말이 신물이 난 참이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여기까지 온 것인데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이 그와 꼭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 그쪽과 다르게 저는 제 손을 더럽힐 각오를 하고 이곳에 들어온 것입니다. 죽어야 할 아기가 죽었다고 슬퍼할 여유가 제게는 없습니다. 또 그걸 보며 질질 짜는 당신을 동정할 시간은 더더욱 없고요.


그는 아직까지 제 눈가에 머물고 있는 하얀 소매를 쳐냈다.


- 그러니 거치적거리지 말고 제 앞에서 꺼지세요.


율레가 그녀를 지나쳐 죽어있는 아기를 향해 걸어가니 뒤에서부터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 당신도! 당신도 괴롭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죽였다는 사실이 힘든 거잖아... 그런데도 이 미친 짓을 계속 하겠다고?


어떤 면으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은 제 마을에서 겨우 2년을 일하고도 그들의 역겨운 자기 연민을 견디지 못해 빠져나왔는데 저 여자는 무려 4년이라는 시간동안 꽃밭인 머릿속을 지켜냈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뭐가 되었든 간에 그녀의 말은 율레가 보기에 뭐랄까, 참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 그쪽은 아직 더 떨어질 곳이 남았나본데. 난 태어날 때부터 바닥이었어.


퀴 가문 출신이랬으니 엄청 부유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풍요로운 삶을 살았겠지.

부족함 없이, 미움받는 일 없이.

자신과 다르게 말이다.


율레, 그의 부친은 그가 명문가의 자제와 연인 사이였다는 이유로 죽었다.

엄밀히 말하면 부친의 죽음은 몸싸움이 격해지다 일어난 사고였지만 그의 출신 때문에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전 연인의 부모가 그의 가정을 찾아온 것이 사고의 발단이었으니 말이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 그가 속한 빨간 머리 가문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보여주지만 더 황당무계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집행처의 처벌은 가벼웠다.

그의 가정에 일어난 비극에 누구보다 앞장서 항변해야 할 가문은 뵈나에서 보상이라고 제공한 쥐꼬리만한 돈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빨간 머리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세상이었다.


권력이 필요했다.

반편이에 불과했던 그가, 빨간 머리를 한 그가 그나마 권력을 쥘 수 있는 곳이라고는 치안군 뿐이었다.


- 바닥에 떨어지면 힘들고 말고 할 일이 없어. 그냥 움직여야 한다고. 눈 앞에 기회가 있으면 잡아야 하고 누군가 앞을 막으면 치워야 해. 바득바득 기어올라가야 한다고.


그는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죽은 아기의 시체 옆에 떨어져 있는 단검으로 걸어갔다.


- 미친 짓을 계속할 거냐고 물었지?


그는 땅에 떨어져 있는 단검을 집어들었다.

치안군에 들어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 대장이라는 작자가 시험이랍시고 건넨 것이었다.

단검으로 직접 아기를 죽일 것.


그는 피가 엉겨붙은 단검을 그대로 죽은 아기의 시체에 박아 넣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팔목에 시큰한 통증이 일었다.


- 얼만든지!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박힌 단검을 억지로 뽑으며 칼날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부러진 단검을 미친놈처럼 작디 작은 시체를 향해 휘둘렀다.


광인과도 같은 그의 행동에 듈름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러도 듣지 않기에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때렸다.

별 힘도 실리지 않은 손이었는데 율레의 얼굴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던 그 두 눈이 하릴없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 제발... 제발 그만 해요. 아기를 잃은 부모를,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가는 아기를 생각한다면 이럴 수 없는 거잖아요...


울며 무너져 내리는 그녀는 망신창이가 된 아기의 시체를 품에 끌어안았다.


- ...우리는 인간이지 괴물이 아닌 거잖아요.


율레를 탓하듯 빗방울이 투둑하고 그의 얼굴을 때렸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에서 듈름은 오래도 울었다.

율레의 몸을 덮은 핏자국이 씻겨 내려갈 정도로 오랜 시간이었다.


***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네요."

"그래요? 저는 두고두고 기억할 일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기에 더 그런가봐요."

"전환점이라... 그 일 이후 당신은 작은 성녀가, 전 패륜아가 되었죠."


듈름은 싱긋 웃더니 남은 빵 한 조각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녀는 우물거리는 입으로 말했다.


"그건 사람들이 당신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잖아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패륜아라 부르지 못 할 걸요?"


그러면서 그녀는 품에서 조그마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서 율레에게 건넸다.


"아직 남았을 거 같긴 한데 제가 여기 오는 김에 미리 챙겨 왔어요."


율레가 주머니를 슬쩍 열어보니 그 안에는 파란색의 말린 꽃이 수북이 담겨있었다.


"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네. 여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안좋다구요."

"맞아요. 알면 좀 들으세요. 잠이 안 온다고 무조건 쓰지 말고 노력이라도 좀 해봐요."


주머니에 든 것은 '테네브라이'라는 꽃으로 말린 꽃을 태워 향을 맡으면 강력한 수면 효과가 있는 꽃이었다.

퀴 가문 출신답게 그녀는 이런저런 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았고 이를 치안군에서 충분히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그 중에도 테네브라이 꽃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테네브라이 꽃 농축액인 파란 액체가 그녀가 아기의 생명을 취할 때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수면 효과를 보이는 테네브라이 꽃을 농축시킨 액체를 쓰면 성인도 하루는 꼬박 잠에 든다.

그런 액체를 아기에게 쓰면 아기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잠에 들고는 다시는 깨지 못하는 것이다.

율레와 비교하면 인도적인 방법으로 속죄제를 드리는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성녀로 불리게 되었다.


치안군에 들어온 이후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율레는 이렇게 듈름에게 소량씩 꽃을 받아서 쓰고 있는 신세였다.


"그냥 주는 거 아니에요. 한동안은 여기서 신세 좀 질 거 같으니 그동안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드리는 뇌물이에요."

"...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전 이만 가볼게요. 방은..."

"3층 아무데나 쓰시면 됩니다. 좁으면 적당히 트시고요."


밖으로 나가려는 듈름을 배웅한다고 율레도 덩달아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 듈름이 서있는 상태에서 그가 손을 뻗어 문을 여니 두 사람의 몸이 서로 가까워졌다.

그 거리감에 듈름이 얼굴을 붉혔다.


"잘... 자요."


그녀는 문을 닫고서 한참이나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진땀을 빼야했다.

이미 완연한 밤, 집합소에는 사람 한 명 없이 적막함이 맴돌고 있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 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집무실 옆에 있는 작업장이 들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작업장에 다가갔다.


석판에는 탄내가 배어있었다.

많은 아이를 여기서 제 손으로 불 태웠을 것이다.

패륜아 율레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어느 시점 이후로 그는 이제 아주 미친 사람처럼 산채로 아이를 태우는 자가 되었지만 오랜 시간 그를 봐온 그녀는 그를 단순히 광인으로만 볼 수 없었다.

아직도 떨어지는 빗속에서 하염없이 울던 어린 그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석판을 손으로 쓸며 듈름이 나직하게 웅얼거렸다.


"불쌍한 사람."


그녀는 잠시 석판 앞에 앉아 신에게 율레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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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가학적 성격 장애 22.08.18 35 5 12쪽
66 66. 그 날 22.08.17 34 5 11쪽
65 65. 대검은 사람을 찔러 +1 22.08.16 44 4 12쪽
64 64. 갖기는 쉽지만 버리기는 어려운 것 22.08.15 31 4 11쪽
63 63. 적당히들 해라 적당히들 +1 22.08.11 38 4 12쪽
62 62.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22.08.10 35 4 12쪽
61 61. 몸에 좋고 맛도 좋은 22.08.09 36 4 12쪽
60 60. 귤 22.08.08 32 4 13쪽
59 59. 아 안돼 22.08.04 37 5 12쪽
58 58. 야근하면 추가수당 주나요 22.08.03 40 5 12쪽
57 57. 직관형 망상 22.08.02 33 5 12쪽
56 56. 헌화 22.08.01 35 4 11쪽
55 55. 거봐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 22.07.28 3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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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 자 이제 누가 왕이지 22.07.26 37 5 13쪽
52 52.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1 22.07.25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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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 일이야 나야 선택해 22.07.14 3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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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지옥에서 온 뒤틀린 물약 22.07.12 4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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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 그게 나야 22.07.06 3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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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이여 22.06.30 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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