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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18 17:21
연재수 :
248 회
조회수 :
11,200
추천수 :
686
글자수 :
1,321,598

작성
22.08.17 12:00
조회
34
추천
5
글자
11쪽

66. 그 날

DUMMY

저주받은 마법사.

모든 마법에 능한 자.

최강이자 최악의 마법사.

최근에는 넷에게 스승님이라고도 불리는 이.

트리아트 셋.


넷은 내심 그가 인간을 초월한, 불가해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이 마냥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의 근원에 닿아있다는 '파편'이 어땠는가?

온전한 모습의 지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추정되는 이 파편이라는 존재는 몸이 뚫려도 재생하고 목이 잘려도 살아있는 그런 존재였다.

마법의 근원에 닿을 정도로 강하려면 인간을 초월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 가슴팍을 찔러 들어오고 있는 거대한 검도 스승님의 육신에는 별다른 해를 입히지 못하지 않을까?

넷은 그렇게 생각했다.


콰드득


'아... 아니었네.'


거대한 검은 스승님의 살가죽을 너무도 손쉽게 파고 들어와 뼈를 분지르고는 심장을 찢었다.


'아니 뚫린 이후에 금방 회복할 수도 있지...!'


넷은 거듭 희망을 가지고 상황을 주시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거듭해서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커헉."


심장을 꿰뚫은 거대한 검이 다시 뽑히자 스승님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스승님의 양쪽 팔을 붙들고 있던 두 기사는 쓰러지는 스승님을 붙잡지 않았다.


'뭐야. 진짜로 이대로 죽는 거예요? 스승님! 저기요!'


그녀가 외치는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엎어져 있던 스승님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집었다.

어렵사리 몸을 일으킨 그의 가슴팍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양 손을 위로 뻗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행동에 영웅왕이 말했다.


"네놈이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괜히 허튼짓하지 말아라."


영웅왕은 무언가 하려는 스승님을 막으라는 의미로 양쪽에 서있던 기사들에게 손짓하였다.


"...?"


하지만 그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할 기사들은 어째서인지 주춤거리기만 할 뿐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뭣들 하느냐! 어서 멈추지 않고!"

"하... 하지만..."


아득히 멀어지는 의식에 스승님의 귓가에 울리던 영웅왕의 호통이 점차 사라졌다.

의식의 끝자락에서 온전히 홀로 선 스승님은 그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였다.


기어코 양팔을 머리 위로 뻗어올린 스승님은 무언가를 붙잡듯 두 손을 말아 쥐었다.


우우우웅


그때였다.

무언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죽어가는 그의 몸 속에서 빛의 결정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빛의 결정이 몸에 흐르는 피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 그의 피 자체가 빛의 결정으로 화하고 있었다.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빛의 결정으로 바뀐 그의 피가 곧 새하얀 빛을 내며 터졌다.


쿠구구구구궁


온 세상을 뒤덮으며 터져나가는 빛에 땅이 흔들렸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거체의 용이었다.


"크아아아아!"

"...!"


용의 포효를 들은 영웅왕이 뒤늦게 검을 들어 스승님을 향해 휘둘렀지만 스승님에게서 터져나오는 빛에 그의 검은 맥없이 막혔고.


"크악!"


그대로 튕겨져 날아가고 말았다.


이윽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빛은 스승님의 손 끝에서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 검이었다.


스승님이 그러쥔 손에는 새하얀 검의 자루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자루 위로는 거대한 날밑이 펼쳐져 세상의 이쪽과 저쪽을 잇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날밑 위로 우뚝 선 검신은 하늘을 뚫고, 우주를 뚫고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아니.

치솟는 게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잇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데클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곳, 말하자면 인간의 인지 범위를 뛰어넘은 가장 높은 곳과 땅 위에서 위태롭게 서있는 스승님의 손 사이를.


아득히 먼 두 곳을 빛으로 이뤄진 검이 잇고 있었다.


"크아아아!"


빛으로 이뤄진 검을 본 용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다급하게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은 마치 두려움에 떠는 것 같았다.


스승님은.

트리아트 셋은 말아쥔 손을 틀어 검날을 용에게로 돌렸다.

이후 그는 손에 쥔 검을 있는 힘껏 앞으로 내리그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줄곧 두려움으로 가득한 괴성을 지르는 용의 위로, 그 거대한 몸체 위로 빛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

빛의 검은 용을 가름과 동시에 사라졌으며 그와 함께 용이 내던 괴성 역시 사라졌다.

용의 몸은 반으로 갈라져 땅에 널부러져 있었다.


다른 모든 생명체들은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그저 숨 죽여 바라 볼 뿐이었다.


고요해진 세상.

검이 가르고 지나간 길.

하늘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하늘의 틈으로 하얀 빛이 쏟아져 내려 세상을 뒤덮었다.


이내 스승님의 눈이 감겼다.


***


넷은 스승님이 죽기 직전에 해낸 일에 압도되어 잠시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 거대했던 용의 몸체가, 수많은 마법과 검이 뚫지 못했던 그 두꺼운 비늘이 스승님의 마지막 마법에 갈라졌다.

그냥 상처를 낸 것도 아니다.

스승님이 휘두른 거대한 빛의 검은 용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놓았다.


이 장면은 그녀가 이미 보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맨 처음 신비에 의해 우연히 죽음의 숲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녀는 스승님이 용을 죽이는 장면을 봤었다.

그녀가 맨 처음 세웠던 계획, 용을 죽이고 가문을 재건하여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장면을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그때는 스승님의 관점이 아니라 멀리서 스승님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 중 한 명이 되어 보았던 것이었다.

장면 자체도 스승님이 높이 치켜든 검으로 용을 베어 내는 그 순간일 뿐이었다.


그 전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용과 함께 서있는 영웅왕이라니.

서로 적대해야할 둘이 왜 같은 곳에 서있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영웅왕과 용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는 것을 말이다.

스승님 곧 모든 마법에 능한 자의 죽음.


'역사서에서는 이 순간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


다만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용과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영웅왕은 트리아트 셋이 이 세상에 용을 풀어놓은 원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들킨 트리아트 셋은 폭주하여 인간 연합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였고 이에 맞서 인간 연합은 힘을 합쳐 트리아트 셋을 죽였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나왔으며 트리아트 셋에게 최강이자 최악의 마법사란 호칭이 붙었다.


이후 인간 연합은 영웅왕을 중심으로 용을 한대륙에서 쫓아내었다고 하고 말이다.

마법사들이 트리아트 셋과 같은 족속이라는 죄명으로 인간들의 나라에서 추방당한 것은 이 직후의 일이다.


'흐음...'


용과 인간 연합이 잠시 협력을 하여 스승님을 죽인 것일까?

이를 그대로 역사에 남기기에는 논란이 될 수 있으니 기록에서 지운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영웅왕은 왜 굳이 용과 손을 잡는 선택을 했을까?'


막말로 스승님의 자작극이었다고 하더라도 스승님은 끝까지 인간들의 편을 고수했다.

애초에 자작극의 목적이 용을 잡고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며?

그렇다면 스승님이 용을 죽이기 전까지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용과 협력하지 않으면 스승님을 죽일 수 없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일까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은 것일까?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넷은 곧 이런 의문들을 잠시 제쳐두었다.


지금 당장 확실한 한 가지 사실.

스승님이 용을 죽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용을 죽이는 마법.'


오래도록 넷이 배우기 열망했던 마법을 배웠다는 뜻이었다.

용을 죽이고 가문을 재건하여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마법.

물론 처음과 다르게 이 계획을 이루기에는 그녀의 상황이 애매해지긴 했다.


첫째로 용이 실제로 용인지부터가 확실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로 연합전이고 뭐고 넷은 당장 카밀로테의 존망과 자신의 목숨을 내건 암투 중에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설령 이 암투 중에 살아남는다고 해서 그녀가 연합전에 참전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그녀가 살아남는다는 뜻은 카밀로테가 멸망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용을 죽이는 마법을 배웠다면 흥분에 몸을 떨며 기뻐해야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가장 강한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마법의 실체를 깨달은 넷은 그러지 못했다.

이 마법을 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넷은 스승님의 몸 속에서 경험했기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을 가르는 빛의 검은 단순히 힘과 의지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빛의 검을 만들기 위해 스승님이 내건 것은 바로 스승님 자신의 목숨.

목숨을 대가로 재현한 마법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스승님은 빛의 검으로 용을 두 동강 낸 이후 눈을 감았고 눈을 감은 순간과 비슷하게 그의 심장은 완전히 멎었다.

평범한 인간과 다름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지금 넷은 용을 죽이는 마법을 배웠다는 흥분보다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며 용을 죽이려 한 사람이야. 스승님은... 트리아트 셋 나의 선조께서는 사실...'


역사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게 사기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륙을 구한 영웅이 되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사람이 과연 목숨을 걸어 용을 죽이려 했을까?

극적인 연출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다?

영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그녀의 마음은 스승님이 사기꾼이 아니라 진정으로 용을 죽인 영웅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 그나저나 왜 난 안 깨어나는 거야?'


넷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죽었다는 뜻은 곧 그의 기억이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니 넷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새하얀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


그녀의 의문에 답하듯 곧 새하얀 빛이 걷혔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빛이 걷히고 나온 곳은 빛으로 가득한 공터가 아닌 스승님이 용을 죽인 그 장소 그대로였다.

다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였는지 이곳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고 없었다.


이곳이 좀 전에 봤던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던 것은 멀찍이 놓여있는 두 동강이 난 용의 시체때문이었다.

피처럼 보이는 끈적한 검은 액체가 시체 주위로 웅덩이져 있었다.


'내 몸으로 돌아가고 있던 게 아니었어? 왜 아직도 여기에 남아있는 거지?'


마치 기억 속에 있는 스승님이 넷에게 직접 말을 걸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그녀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시체 옆으로 돌연 하얀 빛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 마법?'


빛이 사그라든 자리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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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4. 갖기는 쉽지만 버리기는 어려운 것 22.08.15 31 4 11쪽
63 63. 적당히들 해라 적당히들 +1 22.08.11 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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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 몸에 좋고 맛도 좋은 22.08.09 3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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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 아 안돼 22.08.04 37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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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 자 이제 누가 왕이지 22.07.26 3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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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 해치웠나 22.07.21 3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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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 믿고 있었다고 22.07.18 36 3 12쪽
47 47. 일이야 나야 선택해 22.07.14 3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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