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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30 01:09
연재수 :
250 회
조회수 :
11,266
추천수 :
688
글자수 :
1,333,769

작성
22.06.24 12:00
조회
39
추천
3
글자
12쪽

35. 우리의 처음을 그리며 나는

DUMMY

휴가가 끝나고 별대로 복귀한 이후 넷은 줄곧 목을 움츠리고 다니고 있었다.


"야. 너 그러다 목 없어지겠다."

"다가오지마! 죽여버린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온 세슈람이 넷 옆에 앉으려고 하니 넷이 이를 드러내며 그를 쫓아냈다.

그녀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들어 손에 조심스레 올려놓더니 손끝으로 루비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 보물... 내꺼야... 나만의 것이야... 캬아악"

"에휴... 저것도 정상은 아니야."


4월 마을에서 돌아온 이후로 계속 저 상태였다.

오죽하면 다른 대원들은 물론 세상 두려울 게 없는 율레 부대장까지 그녀를 슬금슬금 피해다닐 정도였다.

세슈람은 멀찍이 떨어져서 넷에게 말했다.


"이제 적당히 하고 정신차려. 오늘 지원인력 온다고 한 거 잊었어? 빨리 먹고 모이래."

"아 맞네."


넷은 조심스레 루비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어 옷 안으로 집어 넣었다.

먹던 빵과 스프를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고 있으니 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와는 다르게 집합을 의미하는 소리로 좀 더 낮은 소리로 길게 울려퍼졌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먹던 것을 놔두고 곧바로 집합소로 나갔다.

30여명의 대원들이 모인 집합소.

큰빛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있는데도 대지는 여전히 그 열기를 무차별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입 다물고 똑바로 서라. 머저리들."


율레 부대장은 별대의 대원들 앞에 서자마자 다짜고짜 폭언을 날렸다.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것이 지원이 온다는 사실이 굉장히 못마땅한듯 했다.


"어제도 말했듯 오늘부터 별대에서 지내게 될 사람들은 무려 정규군의 수습 대원들이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시비 붙지마라. 너희가 죽는다. 혹시나 이긴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결국 피를 볼 사람들은 너희들이니 제발 이렇게 부탁하는데 사고 일으키지 마라."


대원들 역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율레의 말에 답했다.

때마침 별대의 목책 너머로 열댓명 남짓한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왔군."


은빛의 철투구, 펄럭이는 적갈색 망토, 그 안으로 언뜻 빛나는 은빛 철갑, 마지막으로 손에 쥔 제다카까지.

정규군 수습대원 열네 명이 완전 무장을 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는 의외로 검은 망토의 마법사, 즉 치안군이었다.


율레 부대장이 무리를 이끌고 온 조그마한 치안군을 향해 말을 걸었다.


"퀴 듈름 부대장님을 여기서 보게 되는 날이 다 있네요."

"그러게요. 항상 본대에서 뵙던 분을 여기서 보니까 느낌이 색다른데요?"


수습 대원을 이끌고 온 것은 작은 성녀, 퀴 듈름이었다.

그는 듈름 옆에 있는 또 다른 치안군을 보며 말했다.


"듈름 부대장님에 유스 유람 조장님까지 자리를 비우시다니... 본대는 지금쯤 짐승들 소굴이 되었겠군요."

"... 다른 조장들이 잘 할 겁니다."


유스 유람은 이제 막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세기 시작한 초로의 남성이었다.

현재 치안군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기도 한 그는 도통 눈에 띄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사람인 그는 부대장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하기도 한 특이한 사람이었다.


치안군 대장이 본대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성실한 두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지원 인력 건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정규군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정규군의 수습 대원을 지원 인력으로 보낸다는 대장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농담인가 싶었다.


- 크크큭. 그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이지...


아이가 속죄일에 태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율레 부대장을 비롯하여 넷과 세슈람은 12월 마을에 갔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마법사들이 등장해 그들을 공격했었고 말이다.

그들은 모두 정규군의 정식 대원들이었으며 뵈나 측에서 나온 결과에 따르면 이들 모두 상당 수준으로 '꿈'에 중독되어있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꿈 중독자, 그들의 이상 행동, 무단으로 반출된 마법석, 거기에 이들을 조종한 배후로 보이는 또 다른 정체불명의 마법사.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정신 조종 마법이 이뤄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해 보였지만 문제는 정작 정신 조종 마법이 이뤄졌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정식으로 문제 삼기에는 근거가 없고 그렇다고 들입다 덤비기에는 덩치가 훨씬 큰 정규군 쪽이 유리할 것이니 대장은 받을 거나 최대한 받아내자는 마음으로 정규군을 찾아갔다.


예상대로 정규군 측에서는 꿈 중독자들의 개인적인 돌발 행동이라 주장했고 남은 습격자는 자체적인 조사를 실시해 밝혀내겠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습격이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이라 생각한다며 12월 마을에는 파손된 재산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약속 했다.

거기에 사과의 차원으로 치료사를 포함하여 이번 일에 엮인 네 사람에게 각각 10크뤼씩.

치료소와 치안군에는 각기 100크뤼의 보상을 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카밀로테에서 가장 많은 월봉을 받는 업 중 하나인 정규군 대원들이 매달 1크뤼씩 받는다.

이를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뵈나 측에서는 충분치 않다고 거절하더니 기어이 치료소에 들어가는 보상을 150크뤼까지 올려 받았다.


물론 이것도 정규군 내에 정신 조종 마법이 이뤄졌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피하는 댓가 치고는 싸게 먹힌 것이다.

당장 소문이 이상하게 흘러 부대장이, 혹은 운이 나빠 대장이 책임을 지게 된다면 300크뤼 가까운 돈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뵈나도 이를 알고 있기에 배짱을 부린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힘이 있는 뵈나 가문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치안군은 뵈나에서 한 것처럼 똑같이 할 수가 없었다.


- 근데 마침 나한테 번뜩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더라니까!


치안군 대장이 호기롭게 미카 경계를 위해 별대에 지원을 보내기로 했지만 사실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본대에서 지원을 보내기에는 본대 역시 인력이 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본대 인력을 줄이자면 못 줄일 것도 없었지만 줄이게 되면 본대에서 져야하는 부담이 너무 커졌다.

고민하는 차에 보상 관련해서 정규군과 이야기가 오간 것이다.


- 항상 우리를 용보듯 하던 정규군에서 인력을 지원받는다. 얼마나 짜릿해! 우리가 그 자존심 높은 싸가지들을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다면!


물론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진 말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연합전이다.

전쟁을 대비하여 수습대원을 포함하여 지금 정규군은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훈련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이라면 지원할 용의가 있음.'


이렇게 답이 온 것이다.

이후 몇 번의 조정 끝에 도달한 합의점이 바로 수습 대원들의 부분적 지원이었다.

별대에서 지내며 미카 경계를 돕지만 그 외에는 정규군의 일정을 그대로 소화한다는 것이었다.

수습 대원들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소식일리가 없는게 훈련은 그대로인데 거기에 더불어 주기적으로 밤을 새며 미카를 경계해야하는 일이 추가된 것이다.


"이상한 냄새 나. 씨발."

"진짜 싫다..."


듈름 부대장과 유람 1조장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습 사이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들 대부분은 현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넷!"


물론 아주 극소수 이 상황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다.

도열해 있는 별대 대원 사이로 넷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드는 떼르 듀시아처럼 말이다.

넷은 애써 그를 무시하며 다른 곳을 보았다.


찌릿


듀시아에게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떼르 딜람이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그냥.

눈을 감아야지.

그래야 속이 편하지.

눈을 감으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으니 율레 부대장이 입을 열어 부산스러운 수습 대원들을 조용히 시켰다.


"조용히 해라. 너희들이 여기에 온 이상 좋은 싫든 내 명을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나 내 명에 불복한다면..."

"불복하면 어쩔 건데요?"


수습 대원 중 한 명이 율레의 말에 끼어들며 앞으로 나왔다.


'와. 미친놈, 아니 미친년인가.'


눈을 감고 마음을 추스리던 넷은 놀란 마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말을 끊은게 누구인지 몰라도 무려 율레 부대장의 말을 끊은 것이다.

그냥 끊은 것도 아니고 어쩔 거냐며 도발까지 했다.


얼굴을 보니 딜람 주위에서 얼쩡거리던 재수없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머리가 까만 것을 보아하니 저 아이도 떼르인 모양이다.

하지만 듀시아나 딜람같이 넷이 기억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저냥 평범한 떼르라는 말이다.

워낙 가문의 위세가 드높다보니 떼르 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업적이 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라."

"싫다면?"


그녀는 카밀로테 제일의 광인, 패륜아 율레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광인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별대의 대원들은 물론 그녀와 같이 온 정규군의 수습대원들까지 그녀에게 그만하라고 눈치를 보내고 있었다.


겁 없는 수습 대원의 도발에 율레가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키이이잉


정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순간 율레의 제다카 끝에서 쏘아진 정의의 숨결이 그녀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악!"


정의의 숨결이 스쳐지나간 그녀의 정강이받이는 한 쪽이 찢어져 있었고 종아리로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진짜 쐈어...! 당신 미쳤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그녀의 모습에 뒤에 있던 그녀의 친구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키이이잉


그러자 율레는 정의의 숨결을 또 다시 준비하더니 이번에는 달려온 수습의 머리에 겨눴다.


"제자리로 돌아가라."


그의 서슬 퍼런 기세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급하게 숨을 집어삼켰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붉은 빛덩이에 달려나온 수습은 곧바로 쓰러진 친구를 부축하여 제자리로 돌아갔다.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그리고 여기 퀴 듈름 부대장이 너희들의 상관이다. 부디 착오없기를 바란다."


불만으로 가득하던 수습 대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들어찬 것은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단번에 분위기를 가져온 율레는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이제야 좀 볼만하군."


그는 별대에서 지내는데 필요한 것들에 관한 설명은 제 부하에게 맡기고는 듈름 부대장과 유람 조장을 데리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다만 유람은 자기는 한낱 조장일 뿐이니 남아서 다른 사람들과 조율하는 것을 돕겠다고 빠졌고 결국 집무실에는 부대장 두 사람만 남았다.


퀴 듈름은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그의 집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집무실을 이렇게 꾸며 놓으셨구나."


그녀가 집무실을 구경하는 사이 율레가 따뜻한 차와 빵을 준비했다.

밀반죽을 작고 동그랗게 떼어 기름에 튀겨낸 빵과 함께 꽃향기가 나는 꿀이 같이 놓여있었다.


"당신께서는 달콤한 것을 좋아했죠."


그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에 듈름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응접용 소파에 앉았다.

손가락 끝으로 따뜻한 빵을 들어 꿀을 듬뿍 찍은 듈름은 빵을 낼름 입속으로 가져 갔다.


"으으으음. 너무 맛있다. 그래도 사람 왔다고 대접도 하고 예전에 비하면 율레씨 많이 늘었어요."

"언제적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냥. 뭐... 지금도 좋지만 전 옛날의 율레씨도 좋았거든요. 기억나요? 우리가 처음 대화한 날. 전 가끔 떠올려요."


입으로 가져가던 율레의 찻잔이 멈칫했다.


"아직도 생생해요. 당신의 첫 살인...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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