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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6 23:32
연재수 :
255 회
조회수 :
11,477
추천수 :
693
글자수 :
1,366,115

작성
24.01.17 20:22
조회
13
추천
1
글자
11쪽

209. 먼지가 되어

DUMMY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방.

물처럼 흘린 땀에 철떡철떡해진 옷을 대충 벗어두고 최대한 가벼운 차림의 두 사람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허억... 허억. 다시 한 번 갈게 디르앤."

"후... 알겠어. 대신 너무 무리하지는 마. 페트라."


까드득


페트라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까만 암석이 서로 맞물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그에 맞춰 디르앤의 검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륵


새하얀 불꽃에 밤하늘처럼 어두운 대지가 타올라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페트라의 몸이 기우뚱 기울더니.




손으로 몸을 지탱할 힘도 없는지 그는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페트라가 쓰러지자 그와 대치하고 있던 디르앤이 후다닥 그에게 다가갔다.

얼굴쪽으로 쓰러진 페트라의 몸을 뒤집고는 그의 상태를 살핀 디르앤은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디르앤은 슬그머니 이레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벌써 세 번째에요."


페트라가 히펠을 뽑아내면 그걸 디르앤이 불태우는 작업을 하다가 페트라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횟수가 세 번째라는 소리였다.

그녀가 들어오기 전에 이레에 의해 쓰러졌던 것까지 합하면 네 번째.


디르앤이 말 그대로 죽고 살아난 후에 얻은 히펠은 어둠을 불태우는 불꽃이었다.

페트라의 히펠을 상대로 꽤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그녀이기에 페트라의 힘을 소모시키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그의 힘을 소모시키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있는대로 힘을 써버린 페트라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쯤하면 이레님께서 말씀하신 상태가 된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이 대련 아닌 대련을 하고 있는 동안 혼자 앉아서 부채질을 하고 있던 이레는 페트라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답했다.


"글쎄... 그거야 나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겠지."


아니.

저기요 할머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무책임한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하세요.


차오르는 불만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고 있으니 이레가 말했다.


"이것아. 오냐오냐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저 아이에게 필요한 건 그런 물러터진 동정이 아니야. 저 아이를 구하고 싶다면 너 역시 각오를 하려무나."

"그치만..."

"더군다나 여태 손발이 움직이는 거 보면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손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큰일 아닌가?

본인이 지금 한쪽 다리가 없다고 말을 너무 막 하시는 거 아닌가.


디르앤이 이런 불손한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으니 어느새 정신을 차린 페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괜찮아."


저거 보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이레를 뒤로한채 디르앤은 페트라가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뭐가 괜찮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아냐. 좀 더 할 수 있어... 어. 어라?"




디르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던 페트라는 다리가 풀렸는지 다시 한 번 쓰러졌다.

그런 그에게 이레가 넌지시 물었다.


"어떠냐 몸에 힘을 줄 수 있겠느냐?"

"... 아니요 이제 정말 한계인 모양입니다."


그제야 부채질을 멈춘 이레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안되나 보구나. 디르앤 넌 이제 물러나거라."


디르앤을 뒤로 물린 이레는 물감으로 달린 다리까지 만들어내며 페트라 옆에 섰다.


"제가 뭘 잘못한 겁니까?"

"아니. 네 잘못이 아니다. 그저 내 예상보다 네 의지가 더 강할 뿐이다."

"... 예?"




가벼운 이레의 손짓에 방을 이루던 물감 중 일부가 디르앤의 몸을 꽉 붙들었다.


"!"


한발 늦게 반응한 디르앤이 검끝으로 히펠을 꺼내려 했지만 이레의 물감은 그녀의 손을 억지로 벌려 검을 손에서 떼어놨다.

디르앤은 손으로나마 그녀의 히펠인 새하얀 불꽃을 피워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의 불꽃이 가진 능력이 오로지 어둠만을 태운다는 것이었다.


이레의 물감은 어둠과 관련이 없는지 꽤나 뜨거운 열기에도 타오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디르앤의 입을 막아 조용히 시킨 이레는 말을 이어갔다.


"페트라야 이제부터 난 널 죽일 것이다."


물감이 그녀 손에 모여들더니 날카로운 창을 만들었다.


"농담이 아니다. 네가 지금 당장 일어나 내 공격을 쳐내지 않으면 넌 이 자리에서 죽는다."


물감으로 된 창을 양손으로 그러쥔 이레는 이내 창을 높이 들어 페트라의 심장께로 찔러 넣었다.


콰득


"끄윽!"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드는 창을 본 페트라는 있는 힘 없는 힘 모조리 끌어모아 몸을 틀었고 심장을 찔렀을 창은 팔을 찌르는 것으로 끝났다.


"이게 무슨...!"


팔뚝에 꽂힌 창을 뿌리친 페트라가 대번에 이레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거칠게 몰아쉬는 그의 호흡에는 어느새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 다음 공격이 어디로 공격이 들어올지 살피는 페트라.


"허억. 허억. 허억."


눈을 깜빡이는 것 조차 참으며 이레를 주시하고 있었건만.


슈르륵


꺼지듯 이레의 몸이 사라졌다.

이미 그녀의 능력이 무엇인지 전해들은 페트라는 사방으로 그의 감각을 퍼뜨렸다.

과연 그의 뒤로 창이 날아들고 있었다.


우득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다리에 힘이 붙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가볍게 움직이는 몸에 페트라는 아예 반격을 가했다.


까드드득


손에서 바위가 압축되어 만들어진 것은 대검이었다.

새까만 대검.


쩌엉

챙그랑


그가 휘두른 검에 이레의 창이 부러졌다.


"이건..."


자신이 한 일에 놀라 제 몸을 내려다본 페트라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몸에 까만 기운이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흘러나온 힘은 그의 육체를 뒤덮었고 그의 육체에 간섭하는 힘이 강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끄윽...! 안 돼!"


페트라가 빈틈을 보이자 이레는 수십 자루의 창을 만들어 페트라에게 쏘아냈다.

가장 먼저 쏘아낸 창이 페트라의 다리에 박히는 순간.


까드드드득


그의 주변으로 두꺼운 바위 벽이 만들어졌다.


"... 같은 편 아니었나요? 왜 이 아이를 죽이려 하는 거죠?"


마침내 페트라의 영혼에 자리잡은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와 동시에.


화륵


파편의 위로 하얀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위를 올려다 본 파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같은 수법에 또 당하다니. 수치네요."


하얀 불에 파편이 다시 한 번 녹아내렸다.


***


"어... 안 죽은 거 맞죠?"

"걱정말거라. 살아있다."


'... 방금 뒤에 조그맣게 '일단은 말이지' 라고 조그맣게 덧붙이신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하하하 설마.

그렇게까지 무책임 하시려고.


죽은 듯이 쓰러진 페트라를 보며 디르앤은 도무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페트라의 치료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모든 힘을 소진하는 것이었고 그 힘 중에는 페트라의 몸 속에서 쉬면서 힘을 보충하고 있을 파편이 가지고 있는 힘도 포함되어 있었다.


- 만약 이렇게 소모전을 벌이는데도 파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페트라가 세 번째로 기절했을 때 디르앤이 한 질문이었다.


- 좀 거칠더라도 억지로 끄집어 내야지.

- ... 억지로 어떻게 하시게요?

- 죽여야지.


디르앤은 자신이 물감에 묶일 때에는 정말 이레가 페트라를 죽이려는 줄 알았다.


"죽일 거라는 말이 죽일 것처럼 위협을 한다는 말이었으면 진작 설명 좀 해주시죠... 전 진짜 놀라서."

"진짜 죽일 생각이었다만."

"... 에?"

"그만 좀 놀라거라. 어차피 파편이 있는 이상 잘 죽지도 않는다."


허.

참나.

뭐 이런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 다 있어.


디르엔이 이레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인식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디르앤아. 싸울 때에는 표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숨기는 편이 더 좋다."

"제. 제가 뭘요."

"내 부하였다면 바로 뒤통수를 때렸을 게야."


따악


"아악! 전 부하도 아닌데 왜...!"

"... 미안하구나. 평소라면 이미 뒷통수를 때려도 수십 번은 때렸을 터라 나도 모르게 그만 손이 나갔구나."

"..."

"이센이가 보고 싶다니. 죽을 때가 되었나보군."


엄격, 근엄, 진지한 목소리로 농담을 하는 이레의 모습이 낯설어 디르앤은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이대로 두고 보면 되는 건가요?"

"음? 그래. 그렇지."


거의 모든 기운을 소모하고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

세상에서 흡수할 수 있는 힘도 없고.

파편이 모아놓은 힘도 없고.

본인의 육체에 남은 힘도 더 이상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페트라가 어디에선가 힘을 받아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너희 둘이 이어지면 꽤나 재밌는 한 쌍이 되겠구나. 한 명은 죽었다 깨어났고. 다른 한 명은 거의 죽은 거나 다름 없다가 깨어난 것이니 말이야."


스스로 한 말이 퍽 웃겼는지 낄낄대던 이레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디르앤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어디까지나 페트라의 치료는 부차적인 일이다.

그들은 별동대로서 텔제민의 본대를 상대해야 했고 지금 바깥의 상황은 어딘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


다섯 번째.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것이 그 짧은 사이에 다섯 번째다.


아무리 치료를 위한 거라고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마지막에는 이레가 자신을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파편의 힘까지 끌어다 썼고 그 결과 파편에게 몸을 다시 넘겨줘야했다.


'다시는 하고싶지 않았던 경험이었는데.'


투덜거리면서 눈을 뜬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어지러이 얽혀있는 묵색 기운이었다.


묵색 기운 한 가운데에는 꼬마가 서있었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체형.

익숙한 눈동자.


어린 시절의 페트라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파편에게 빼앗긴 몸을 아직 되찾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건가?'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이든 혹은 환상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이 묵색의 히펠을 휘둘러대는 어린 시절의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몸이 나선 것은 무심결이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그의 몸은 최상의 상태였다.


쭈욱 늘어나듯 앞으로 나아간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부모님 사이를 가로 막았다.


"두 분 모두 물러 서세요."


어릴 적에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지 지금의 그에게 이 정도의 히펠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양이었다.

자신감있게 손을 뻗은 그는 어린 시절의 그가 만들고 있는 히펠을 틀어쥐었다.


"!"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순간이었다.


분명 평생토록 통제하고 다녔던 혼돈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손에 닿은 묵색의 히펠은 그가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멍청한 놈. 작디 작은 먼지같은 네놈이 감히 이 몸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저것이 말하고 있었다.

묵색의 히펠이.

혼돈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후회할 것이다. 먼지여."


냄새가 사라지고.

소리가 사라지고.

빛이 사라졌다.


"내 안에서 흩어져 사라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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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1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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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24.01.25 10 1 12쪽
213 213. 함정 24.01.24 8 1 12쪽
212 212.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24.01.23 11 1 11쪽
211 211. 진짜 나다운 게 뭔데 24.01.22 8 1 11쪽
210 210. 고고고 고집쟁이 24.01.19 12 1 10쪽
» 209. 먼지가 되어 24.01.17 14 1 11쪽
208 208.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24.01.16 12 1 13쪽
207 207. 알아들었으면 끄덕여 24.01.15 12 1 13쪽
206 206. 한 입만 23.06.05 23 1 12쪽
205 205. 어디에요 여기에요 23.06.02 83 1 12쪽
204 204.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23.05.31 32 1 11쪽
203 203. 기억 셋 23.05.30 25 1 12쪽
202 202. 연합군 집합 23.05.25 30 1 11쪽
201 201. 싸움은 장비발 23.05.23 25 1 11쪽
200 200. 오스트랄로암사쿠스 23.05.22 44 1 11쪽
199 199. 왜 뼈는 때리고 그러세요 23.05.17 24 2 10쪽
198 198. 질척거리지 좀 마 +1 23.05.16 2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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