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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6 23:32
연재수 :
255 회
조회수 :
11,479
추천수 :
693
글자수 :
1,366,115

작성
23.05.31 19:47
조회
32
추천
1
글자
11쪽

204.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DUMMY

- 고작 제사장인데 이 정도라니...


무형의 힘에 묶인 아돌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반항을 할 새도 없었다.

갑작스레 난입한 두 여인 중 근육질의 여인, 마르체호라의 힘이었다.


- 얌전히 협력해라.

- 무엇을?

- 에텔크리시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 목적은 테노부스와 숨이지만...

- 잠깐. 에텔크리시라면 에텔 시장을 말하는 것인가?

- 맞다.

- 설마 그도 제사장인가?


그의 물음에 삐쩍 마른 여자, 레플루앙시가 말했다.


- 에텔 아저씨뿐 만이 아니야. 대현자라 불리는 자는 용과 더불어 우리를 이끄시는 커다란 파편이셔.

- 대현자란 자도 너희와 한 편이라고...

- 그 뿐만이 아니야. 온 나라 온 땅에는 너희가 모를 뿐, 커다란 파편에서 비롯한 자들이 살아가고 있어.


레플루앙시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밖에서 아돌이 거하는 막사를 지키는 기사 한 명을 불렀다.

그 역시 까만 어둠의 힘을 다루는 용의 수하였다.


아돌은 시야가 아득해지며 현기증이 일었다.

용도 아닌 고작 그 수하인 제사장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을 주도한 에텔 시장, 연합전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대현자는 물론이고 그를 호위하는 기사까지 사방이 온통 적들이었다.


그 까마득한 격차에 아돌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나?


***


텔제민 본대.

잘 꾸며진 막사 안에는 수뇌부들이 모여있었다.


우선 텔제민을 대표하는 오검.

오검 중 첫 번째 검이자 텔제민의 왕자인 아돌 앙귀스의 좌우로 나머지 오검이 앉아있었다.


그 맞은편으로는 텔제민과 함께하는 골락의 지도자들이 앉아있었다.

도시 국가인 골락을 이끄는 지도자는 각 도시의 시장들인데 이 중 에텔 시장을 제외한 네 명의 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본래 이 네 명의 시장과 더불어 에텔 시장과 용병단의 단장인 용병왕까지 함께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먼저 떠난 두 사람에게서는 아직 이렇다 할 기별이 없었다.


네 시장 중 가장 존재감이 큰 사람은 도시 아우룸의 시장 아우레우스였다.

단순히 크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로 비대한 체격의 여인.

생김새도 무시하기 힘들었지만 외형을 넘어 그녀가 현재 사방에 퍼뜨리는 기세는 그 오검 조차도 마냥 넘기기 힘든 것이었다.


상인들의 나라 골락에서 용병왕을 제외하면 유일한 초월자가 바로 그녀, 아우레우스였다.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하는 겁니까?"


그녀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눈앞에 서있는 자가 일국의 왕자나 되니 그녀가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 것이다.

만약 그마저도 아니었다면 그녀는 쉴 새 없이 폭언을 늘어놓았을 터였다.


"깔짝대는 벌레같은 녀석들을 언제까지 내버려둬야 하냔 말입니다!"


분을 못 이긴 그녀가 살집 두툼한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가 무너지며 차려져 있던 찻잔이며 음식들이 지저분하게 엎어졌다.

그럼에도 오검은 가만히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세 번입니다! 무려! 세 번이요! 내가 벌레들을 쳐죽이려는 것을 막은 것이 세 번이라는 말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벌레같은 것들은 테노부스 일행을 뜻하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테노부스를 비롯하여 소수로 움직이는 별동대를 뜻하는 것이었다.

별동대는 텔제민의 본대 중 경계가 약한 곳을 파고들어 한바탕 휘젓고 도망치는 일을 반복 중이었다.


별동대에 몇 번 당하고 난 후 텔제민 측에서는 경계가 약한 곳에 매복을 했다가 그들을 덮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매복을 했던 인원 중에 아우레우스를 포함한 히펠렌스가 다섯 명이었다.


한쪽 팔을 잃은 다섯 번째 검과 총지휘를 맡은 아돌, 첫 번째 검이 빠진 것이니 실상 모든 히펠렌스가 투입된 것이나 다름 없는 작전이었다.

적들도 매복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히펠렌스들이 제대로 된 공격도 하기 전에 적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언제나와 다름없이 말이다.


"도망치는 데 물감같은 것을 이용한다는 것도 알았겠다. 도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겁니까?"


아우레우스도 그렇고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로 바보가 아니다.

저들 가운데 마법사가 있으며 그 원리는 몰라도 방법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적들이 어떤 함정을 파놨을지 알 수 없다."


아돌 앙귀스의 이런 소극적인 대처였다.


"우리가 더 많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까? 함정이어도 충분히 뚫고 갈 수 있어요. 그 함정 내가 나서서 뚫겠다고요."


아우레우스는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얼마나 강하게 내리치는지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녀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다려라. 당신은 모르지 않던가. 그들의 강함을. 제사장들을 이길 정도로 강한 자들이다."

"그놈의 제사장! 제사장! 원래 그들은 이번 일과 무관한 자들 아니었습니까? 첫 번째 검이라는 이름이 울겠습니다!"

"그리 말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기다려라."

"골락만 따로 움직이게 해주세요. 내가 잡아오겠대도!"

"안 된다."

"이 답답한!"




부러진 탁자를 기어코 산산조각을 내버린 아우레우스는 씩씩 거리면서 막사를 나섰다.

다른 시장들 역시 그녀와 비슷한 입장인지 그녀를 뒤따라갔다.


"괜찮겠습니까?"


아돌에게 우려섞인 목소리로 물은 것은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군을 이끌던 두 번째 검이었다.


"괜찮지 않지."

"저들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계속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군의 사기에도 영향이 갑니다."

"안다."

"..."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두 번째 검, 캐롤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한대륙을 차지할 거라며 연합군과의 전쟁을 준비할 때만 해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어찌보면 인류를 배신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그는 확고했고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돌의 표정은 수심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가 이런 고민 가득한 얼굴이 된 지는 사실 좀 되었다.

행군 중 부대에 난입한 제사장들을 만난 이후로 쭉 저런 표정이었는데 테노부스네와의 싸움에서 지고 난 이후에는 고민이 한층 더 깊어진 얼굴이었다.


지금 아돌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 속에서 걸음을 내딛기를 망설이는 사람같았다.


"몸은 좀 어떠세요?"

"난 괜찮다... 그나저나 그들은 어떻지?"

"제사장들이요? 남자 아이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지만 여자쪽은 어제 깨어났습니다."


때마침 막사가 걷히며 누군가 들어왔다.

삐쩍마른 외형에 젊은 여인, 레플루앙시였다.

그녀의 뒤에는 좀 전에 자리를 비웠던 아우레우스가 함께였다.


다만 아우레우스 몸에 까만 줄이 칭칭 감겨 그녀의 비대한 살집을 파고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아우레우스는 레플루앙시에게 묶여 꼼짝도 못하면서도 줄을 끊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거 당장 풀어라! 내가 나가기만 하면 당장 네년을 쳐죽일 것이다! 흐아아아아! 읍! 읍!"


레플루앙시가 손을 휘젓자 시끄러운 아우레우스의 입에 까만 힘이 덕지덕지 붙어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아돌이 먼저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몸은 좀 괜찮나?"

"아니. 나빠. 나쁜데 이 돼지같은 것이 옆에서 떽떽거려. 그래서 말인데 죽여도 될까?"


제사장이 자신에게 와서 허락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이전에 그가 손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게 제압하고 겁박하던 자 아니던가?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아돌은 할 말을 했다.


"안 된다. 그자는 골락의 초월자다."

"근데?"

"당신에게야 별 상관 없겠지만 이쪽에게는 중요한 전력이라는 소리다."

"그러면 죽이면 안 돼?"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는듯이 아우레우스를 바라보던 레플루는 갑자기 제 손을 내려다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비어있는 손이었다.


"아저씨다."




묶어둔 아우레우스를 한쪽에 대충 던진 레플루가 서둘러 막사를 떠났다.

순 제 멋대로 굴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멀어지는 레플루를 지켜보던 아돌은 그녀에 의해 구석에 처박힌 아우레우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왕이면 저 괴물들에게는 이를 드러내지 마라."

"... 내가 알아서 해요."


아우레우스는 발을 거칠게 구르며 막사를 나섰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땅이 울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녀가 내는 소리에 겁을 먹었겠지만 아돌은 아니었다.

분명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부디 자존심을 세우지 않으면 좋겠군."


***


"아저씨!"


까만 밤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에텔크리시였다.

원래도 말랐던 사람이 고생을 좀 했는지 더 말라있었다.


"늦었어."

"미안하네. 힘을 좀 보충하고 오느라."


라페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던 그였다.

페트라에 의해 신체 일부가 찢겨나가며 망신창이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원래대로 돌아와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힘을 회복시킨다고 그가 집어삼킨 사람들이 몇 명인지 셀 수 없었다.


"아가씨 덕에 살 수 있었네."


그는 그가 쥐고 있던 레플루의 손을 건네주었다.

힘을 다해 간간히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만 알려주던 손은 꾸물거리며 날아가더니 레플루의 비어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저나 아가씨도 꼴이 말이 아니군."

"응. 정말 짜증나. 칼리다도 아직 자. 그리고 또. 그... 마르가 죽었어."

"... 저런."


담담한 말투였지만 에텔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슬픈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나도 내가 아들처럼 여기던 것을 잃었네."

"아하하! 욕심쟁이 아저씨가 아들이라니 농담도."

"그렇군. 농담이 너무 지나쳤어."


헛웃음을 지은 에텔은 품에서 자루만 남은 칼을 꺼내들었다.


"이걸 고쳐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마르가 죽어서야 그것도 못하겠군."

"... 아저씨 울지마."

"울다니 그런 의미없는 짓을 하겠나. 그나저나 마르를 죽인 자는 누구지?"

"아저씨도 아는 사람이야."


그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설마."

"맞아. 페트라 으누어가 그랬어."


정확히 말하면 그 안에서 깨어난 파편이 한 일이지만.


"거참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복수할 거야?"

"해야겠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내 것에 손을 대는 거잖은가."

"히히 나도 도울래. 우리 같이 그 녀석의 가죽을 벗기자."

"좋지. 가죽을 벗기면 살점을 한 점 한 점 저미는 걸세."

"산 채로?"

"그럼. 산 채로 해야지."

"신난다. 아! 눈은 남겨두자!"

"눈을?"

"응. 그래야 그 녀석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 녀석에게 보여주지."

"아주 좋은 생각일세."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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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1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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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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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24.01.25 10 1 12쪽
213 213. 함정 24.01.24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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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210. 고고고 고집쟁이 24.01.19 12 1 10쪽
209 209. 먼지가 되어 24.01.17 14 1 11쪽
208 208.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24.01.16 1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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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23.05.31 33 1 11쪽
203 203. 기억 셋 23.05.30 25 1 12쪽
202 202. 연합군 집합 23.05.25 30 1 11쪽
201 201. 싸움은 장비발 23.05.23 25 1 11쪽
200 200. 오스트랄로암사쿠스 23.05.22 44 1 11쪽
199 199. 왜 뼈는 때리고 그러세요 23.05.17 24 2 10쪽
198 198. 질척거리지 좀 마 +1 23.05.16 2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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