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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6 23:32
연재수 :
2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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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5
추천수 :
693
글자수 :
1,366,115

작성
23.06.0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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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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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05. 어디에요 여기에요

DUMMY

텔제민 본대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는 숲 속 어딘가.

울창한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에 테노부스 일행이 모여있었다.

백 명이 넘었던 일행은 어디가고 소수의 몇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마차를 몰던 인부들은 가까운 마을로 향했으며 나무뿔사슴단의 기사들을 비롯하여 당장 전투를 이어갈 수 없는 자들은 먼저 죽음의 숲을 향해 떠났다.

지금 남아있는 자들은 텔제민 본대의 발을 묶어두기 위한 별동대였다.


이레와 테노부스가 사슴의 영지 루베오에서 출발할 때만해도 텔제민이 연합군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죽음의 숲으로 향하는 도중에 우연하게 텔제민의 기사와 대치하고 있는 사슴 일행을 보고 도운 것이었다.

겨우겨우 제사장들을 몰아내고 사슴 일행을 구한 후 서둘러 텔제민 본대를 피해 달아난 것이고 말이다.


텔제민 본대에서 멀어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테노부스는 그가 줄곧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가 카리타를 보내 요엠가움의 본대를 이끌고 죽음의 숲으로 오라고 했다는 것을 말이다.

비단 요엠가움만이 아니었다.

프로토케의 본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레님.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텔제민이 저희를 무시하고 승리의 벽으로 향한다면 요엠가움과 프로토케는 저희들 없이 제사장들과 싸워야 합니다.


기사단끼리의 전투라면 히펠렌스의 수를 생각해도 텔제민보다 이쪽이 유리하지만 제사장이 낀다면 문제가 달라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별동대를 꾸려 텔제민의 발을 묶는다는 것이었다.


조건은 첫째로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여야 한다는 것.

둘째로 당장 몸을 움직이는 데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것.

이 두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꾸리니 생각보다 그 수가 적었다.


기사쪽으로는.


테노부스 요엠가움.

디르앤 페룸.


이상 왕과 디르앤이 남았으며 마법사 쪽에는.


오르디나 이레.

뵈나 디넷.

펠페림 디율.

떼르 딜람.


이상 정규군의 세 대장과 딜람이 남았다.


사슴, 유드바, 이센은 싸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어서, 세슈람은 죽었던 디르앤을 살리기 위해 재현한 마법의 여파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별동대에 들어오지 못했다.

조건은 충족하지만 별동대에서 빠진 경우도 있었다.

죽음의 숲 쪽으로 향하는 무리를 지휘하기 위해 빠진 숨 가드나와 떼르 이시아가 이에 해당했다.


소수 정예로 텔제민을 치고 빠지는 전술은 의외로 잘 먹혀들어갔다.

특히나 오르디나 이레의 물감을 통해 확실히 몸을 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은 더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무려 영웅왕의 재래라 불리는 테노부스와 정규군 대장을 맡고있던 마법사들이 날뛰는 것인만큼 텔제민 측에서도 무시하기 힘든 타격이었다.


텔제민 본대의 움직임은 한없이 늘어지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별동대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맡은 임무가 임무인만큼 처음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별동대원들도 지금은 꽤나 긴장이 풀린 모양새였다.

모두가 좋은 분위기에 각자 무장을 점검하고 있었지만 오르디나 이레만큼은 안색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이레님. 어. 어디. 안 좋으세요?"

"너! 너 때문이다. 이놈아. 네 녀석 말고 내가 걱정할 것이 또 있을까!"


별동대는 여섯 명이지만 사실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이레가 타박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페트라 으누어였다.


"하... 네가 언제 파편에게 다시 몸을 빼앗길지 모르니 걱정이 안 될 수 있겠느냐."

"저.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이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면 지금 당장 히펠을 꺼내보거라."

"그. 그건..."


페트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히펠만 쓰지 않으면 괜찮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리석은 것. 어쩌자고 악의에 네 몸을 넘긴 게야."


그녀는 페트라를 꾸짖고 있긴 했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한계에 맞닥뜨리는 것은 필연이다.

페트라 역시 그 한계에 마주했을 뿐이다.


디르앤의 하얀 불꽃, 백화로 페트라 안에서 깨어난 파편에 타격을 줘 억지로 잠재우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며칠을 꼬박 기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린 페트라는 다행히도 제 육체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은 상태였지만 그가 히펠만 쓰려고 하면 파편이 힘을 되찾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파편은 사람의 뒤틀린 욕망에 반응하여 움직인다.

당장 페트라가 마르체호라를 대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도 아님에도 히펠에 반응하는 것은 이상했다.

이에 테노부스가 내놓은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 아무래도 의지라고는 없던 혼돈에 의지가 깃든 모양입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악의가 담긴 히펠에 파편이 반응하는 거고 말이다.


"하여튼 히펠을 쓸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여기서 얌전히 통로만 막고."

"... 네."


하지만 이 역시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히펠이 알아서 몸에 들러붙는 특이한 체질인 그는 일정량 이상 히펠이 쌓이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히펠이 흘러나온다.

그가 파편이 되면서 쓴 히펠의 양이 꽤나 많았는지 아직까지는 폭주의 전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간 문제였다.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 마법석인 셈이었다.


적의 본대를 습격하고 빠져나와야 하는 위험천만한 현장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 마법석과 같은 페트라를 데리고 온 것은 그게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실력자가 현재 별동대로 나온 상태다.

만약 죽음의 숲으로 향하는 일행 중에 페트라를 놔뒀다가 그가 폭주라도 한다면 실질적으로 숨 가드나와 이시아 두 사람이 막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짐이 너무 무거웠다.

디르앤의 백화나 딜람의 성벽 마법 정도는 있어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것이었다.


이레는 의기소침해진 페트라는 놔두고 별동대를 둘러보며 말했다.


"준비 되었으면 슬슬 움직이자꾸나. 오늘은 하얀색이 탈출구다. 이번에는 사번대 대장... 디율이 시작한다."


디율이 물감이 든 병을 받아들었다.

그가 든 것은 하얀 물감이 아닌 다른 색의 물감으로 텔제민 본대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할 물감이었다.


혼자 텔제민 본대 안으로 숨어든 디율이 본대로 통하는 통로를 열면 별동대가 난입, 본대를 습격한다.

그 사이 페트라는 본대로 이어지는 물감을 치워 적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탈출용 물감을 준비한다.

이레는 형형색색의 물감을 사방에 뿌려 탈출구를 숨김과 동시에 탈출구 역할을 하는 색은 별동대 근처에 뿌려 언제든 탈출할 수 있도록 한다.


충분한 타격을 주었거나 적의 주요 전력이 도착하면 그 즉시 탈출용 물감으로 몸을 빼낸다.

모두가 빠져나오면 페트라가 다시 통로를 닫고 이로써 추격을 뿌리치는 것이다.


매번 다른 물감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힘을 소모해야 했기에 이레는 정작 습격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활약해 주었기에 위력 면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적들이 탈출용 통로를 알아채서 따라 들어오면 곧바로 별동대의 은신처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적의 본대 한복판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인만큼 조금의 위험도 없는 완벽한 탈출법은 없었다.

이레의 물감으로 안정성이 훨씬 더 커졌으니 오히려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다.


별동대원들이 모두 준비를 마치자 이레가 한 마디 덧붙였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특히 이전 습격에서는 매복하고 있던 초월자들의 코앞에서 탈출했으니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되었다.

물감, 그 중에도 특별한 색이 탈출구라는 것을 눈치챈다면 그만큼 대응이 빠를 것이고 그 뜻은 은신처에 적들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 더... 제사장들이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더 조심해야 하느니라."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제사장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그런 행운이 오늘도 이어진다는 법은 없었다.

이런 위험한 일일수록 최악을 가정해야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무리하지 말고 곧바로 몸을 빼내거라."


그녀가 말을 마치자 디율이 빠르게 멀어졌다.


***


텔제민 본대 주변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 위로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음?"


조금의 소리도 없었음에도 감이 좋은 병사 하나가 하늘을 올려다 봤다.

이미 그림자는 본대 안으로 들어간 이후였기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병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왜 그래?"

"아니. 뭐가 지나간 거 같아서."

"어제 또 어떤 머저리가 침입자라면서 난리를 피웠던 거 알지?"


침입을 알린 병사에 의해 본대는 발칵 뒤집혔으나 밤새 내부를 수색했음에도 침입자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녀석 다른 놈들한테 두들겨 맞아서 실려간 거 알지?"

"알지. 아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 아냐."


습격자들이 습격을 하는 데에는 규칙성도 없고 순 제멋대로였다.

그러다보니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조금만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기겁을 했으며 어떤 이는 경계를 설 때마다 침입자가 온 거 같다며 동료를 괴롭히기도 했다.


서로가 날을 세우다보니 이제는 확실하지도 않은 일 가지고 사람들을 깨우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


"쓰벌. 이러다 진짜 오기라도 하면 우린 다 뒈지겠지?"

"... 저번 습격으로부터 며칠째지?"

"오늘이 나흘째."

"오늘 뭔 일이 나도 날 거 같은데..."

"쓰읍. 무슨 불길한 소리를..."


경계를 서는 병사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환한 빛이 터짐과 동시에 귀에 삐익 하고 이명이 남았다.


***


테노부스가 터트린 빛에 쌓아 둔 식량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식량을 쌓아 둔 곳은 기사들이 번갈아 지키는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항상 경계가 느슨한 곳을 노리다가 이번에는 변칙을 준다고 기사들이 지키는 곳에서 일을 벌인 것이 통했는지 넋놓고 있던 기사들은 디율에 의해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이후 통로가 열리고 별동대원들이 미리 준비해뒀던 공격을 펼치자 사방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과연 습격의 횟수가 늘면 늘수록 적의 대처가 기민해지고 있었다.



쿠웅


멀리서 비대한 몸집의 여성이 발을 박차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돌아간다."


큰 공격을 한 번씩 터트린 이들은 더 욕심부리지 않고 하얀 물감을 찾았다.


아우레우스의 주먹 끝에 맺힌 막대한 양의 히펠이 터져나오더니 이내 이레가 펼쳐둔 물감 전체를 뒤덮으며 날아들었다.

저들이 들어가기 전까지 탈출구가 어딘지 모르니 아예 통째로 지워버리겠다는 속셈이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거칠기 그지없는 그녀의 히펠이 별동대가 있던 자리를 가루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빠져나가고 난 이후였다.


"으아아아악!"


분을 이기지 못한 아우레우스의 고함 소리가 울려퍼졌다.


***


한편 텔제민 본대 내 어느 막사.

막사 안에는 에텔크리시 혼자 앉아있었다.

밖에서 굉음과 함께 난리가 났음에도 그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동전을 튕기며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막사에 조약돌 크기의 무언가가 조금씩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약돌들은 곧 하나로 뭉쳐 사람의 형상을 이뤘다.


"어떻게 되었나? 아가씨?"

"됐어."


제 모습으로 돌아온 레플루앙시는 제 얼굴을 한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의 볼에는 조약돌 크기의 홈이 파여있었다.


"위치는 알았고 이제 꼬맹이만 깨면 되겠군."

"응."


별동대의 은신처에는 이제껏 없던 조약돌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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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11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9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7 1 11쪽
215 215.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24.01.29 7 1 11쪽
214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24.01.25 10 1 12쪽
213 213. 함정 24.01.24 8 1 12쪽
212 212.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24.01.23 11 1 11쪽
211 211. 진짜 나다운 게 뭔데 24.01.22 8 1 11쪽
210 210. 고고고 고집쟁이 24.01.19 13 1 10쪽
209 209. 먼지가 되어 24.01.17 14 1 11쪽
208 208.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24.01.16 12 1 13쪽
207 207. 알아들었으면 끄덕여 24.01.15 12 1 13쪽
206 206. 한 입만 23.06.05 23 1 12쪽
» 205. 어디에요 여기에요 23.06.02 84 1 12쪽
204 204.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23.05.31 33 1 11쪽
203 203. 기억 셋 23.05.30 25 1 12쪽
202 202. 연합군 집합 23.05.25 30 1 11쪽
201 201. 싸움은 장비발 23.05.23 25 1 11쪽
200 200. 오스트랄로암사쿠스 23.05.22 44 1 11쪽
199 199. 왜 뼈는 때리고 그러세요 23.05.17 2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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