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31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26

작성
22.12.22 12:00
조회
52
추천
2
글자
11쪽

136. 됐어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DUMMY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 넷은 저를 감싸던 빛무리가 걷히고 나서야 자신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천년목이 뿜어내는 파란 빛망울이 방울져 솟아나 어두운 숲 속을 밝히고 있는 곳이었다.

미카의 가장 깊은 숲.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서있는 곳은 미카와 죽음의 숲, 그 경계였다.


"하..."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때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고자 했던 장소가 이곳이라니.


고작 몇 개월.

그녀는 그 짧은 사이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정체도 잘 모르는 선조의 기억에 들어가 세상에 없던 마법을 배웠다.

그랬더니 십여 년간 변함이 없던 그녀의 관계는 격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몰랐던 모습이 트리아트 셋 스승님을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파편을 위시한 무리는 그녀를 죽이려 했고 혁명단이라는 사람들은 그녀를 지키려 했다.

심지어 그 싸움이라는 것은 그녀가 인지하기 전부터 이뤄지고 있던 싸움이었다.


두 세력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 역시 이 격렬한 싸움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

편을 골라 싸움에 참가하거나.

혹은 싸움에 휩쓸려 목숨을 잃거나.


싸움에 참전하면서 그녀는 힘을 얻었고 그 힘을 이용해 카밀로테의 지도자인 대현자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이곳.

죽음의 숲에서 부터였다.


새삼스러운 감정에 그녀는 이미 죽음의 숲에 발을 내밀고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행동에 넷은 의식적으로 몸에 제동을 걸었다.


"..."


복잡한 심정이었다.

혁명단과 함께 강해져 대현자가 된 그녀는 이제 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것은 책망하는 눈동자였다.

저를 바라보며 슬퍼하는 부모님의 눈을 그녀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모두 안일한 것인지 그녀는 도통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적들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상황에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말인가?


"내가 지금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섭섭함에 눈물이 비져나왔다.

그녀는 손을 들어 눈물이 흐르지 못하게 닦아 냈다.

내심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에게 가볼까 싶었던 마음도 고쳐먹었다.


만나서 들은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그분이라고 그녀에게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다시 제 몸에 빛을 둘러 미카를 벗어났다.


'지금은 혼자있고 싶어.'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누구 하나 자신을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던 어린 시절 말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것에 관심 갖는 것 조차 꺼리는 자들로 인해 혼자 외로울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저를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듀시아를 찾아가 옆에 붙어있는 것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몇 없는 방법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 조차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더 많이 쥐고 있었는데 어느새 보니 혼자였던 옛 시절보다 형편이 더 나빠져 있었다.

공허함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택한 곳은 성전이었다.


성전에 도착하자 성전 옆에 붙어있는 호위군 숙소에서 쉬던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복도에 시립해 섰다.


'아... 그러고보니 대장이랑 다 밑에 두고 왔네. 습격자들 심문도 해야 하는데.'


할 일들이 많았다.

특히나 습격자들의 배후를 밝히는 일은 서두를수록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역시 내일 하기로 했다.

그녀는 너무 지쳤다.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위군이 시립해 있는 복도를 지나, 천년목 지팡이들이 심긴 정원을 지나.

보좌가 놓인 방에 들어섰다.




보좌의 방으로 들어선 그녀는 문을 걸어 잠궜다.

막대한 양의 힘이 저장되어 있는 백수정으로 된 보좌는 빛을 뿌려대며 방 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빛과 함께 퍼지는 은은한 온기에 넷의 차갑던 몸이 조금씩 녹았다.


외롭던 마음도 어쩐지 함께 녹아내리는 기분에 그녀는 조심스레 보좌에 가서 앉았다.

어미의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넷은 몸을 웅크렸다.

다리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졸려."


그녀의 나직한 바람을 듣기라도 한 듯 보좌에 들어찼던 빛이 깜빡거리더니 꺼졌다.

온기를 머금고 몸을 감싸는 어둠에 넷은 까무룩 잠에 들었다.


***


벗어난 자들의 마을 엑살라니스.

아직 어둑한 밤.

계속 뒤척이던 에우랄이 잠에서 깨어났다.


트리아트 다날, 소위 미친 여자라고 알려진 이의 숨겨진 딸.

미래를 보는 아이.

좀 더 정확히 말해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보는 소녀인 에우랄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이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한 능력은 지금까지 꽤나 유용하게 쓰였다.

그녀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면 로구르스라는 말을 먹고 사는 곰, 카콜이 듣고 쓴다.

복잡하게 적힌 경우의 수를 신비가 혁명단에 전달하면 혁명단은 그 중 최선의 길을 택한다.


한 번 미래를 보면 다시 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에우랄이 알기로 이 방법으로 혁명단은 파편과의 싸움에서 꽤나 많은 이득을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 능력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가장 오래된 파편의 존재였다.

그녀가 경우의 수에 난입하는 순간 장면들은 암전한다.

이전에 봤던 모든 장면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 잠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봤던 것까지 포함해 최근들어 그녀는 총 세 번의 미래를 봤다.

하지만 첫 번째 경우를 제외하면 그녀가 미래를 봤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처음 에우랄이 본 미래는 트리아트 넷 언니가 대현자가 되는 장면이었다.

어떤 경우로 흐르든 결국 넷은 대현자가 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후의 모든 장면이 까맸다.


엑살라니스와 카밀로테를 오가는 신비에게서 가장 오래된 파편이 넷의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파편의 정체를 아는 어른들은 소식을 믿지 않았다.


- 가장 오래된 파편은 죽일 수 없다.


장로님의 말대로였다.

가장 오래된 파편을 살아있었으며 무슨 짓인지는 몰라도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이 사실을 신비를 통해 알렸다.


돌아온 대답은 대비하겠다는 말 한 마디 뿐이었다.


이후 에우랄이 본 두 번의 미래는 봤다고 할 수 없었다.

여전히 가장 오래된 파편은 그녀가 보는 경우의 수에 난입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적은 여전한데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혁명단에게 알리긴 했지만 그들 역시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래를 볼 수 없다는 불안감에 에우랄은 침대에서 벗어나 장로의 집으로 찾아갔다.


잠긴 적이 없는 집문을 열고 들어가자 본래 크기로 돌아가 커다래진 카콜에 기대어 잠들어있는 장로가 보였다.

그녀는 잠든 장로의 품을 파고 들어갔다.


"으음...? 에우랄이구나."


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잠에서 깬 그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잠시 할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던 에우랄이 조심스레 물었다.


"할아버지... 넷 언니가 꼭 그 길을 걸어야 해요?"


미래를 볼 수 없는 그녀는 어째서인지 앞으로 넷이 걷게 될 길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었다.

에우랄의 질문에 장로가 나직이 숨을 뱉으며 잠기운을 쫓았다.


"애야. 옛말의 아이... 넷이 너무 힘들까봐 걱정인 게야?"

"네. 가장 오래된 파편이 넷 언니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왜 언니를 지키지 않아요?"


미래를 볼 수는 없지만 혁명단은 가장 오래된 파편인 '기만'의 목표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옛말의 아이의 몸을 차지하는 것.


에우랄의 질문은 이거였다.

파편이 넷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몸을 차지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왜 넷에게 알리지 않는가?

왜 파편으로부터 넷을 보호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전제부터 잘못 되어 있었다.

혁명단이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옛말의 아이가 태어난 시점부터 혁명단이 세웠던 계획의 목적지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가장 오래된 파편에게 사로잡힐 넷을 구출하는 것.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넷이 파편에게 몸을 빼앗기는 일은 확정적으로 벌어질 미래라는 뜻이었다.


"애야. 우리는 모두 영혼에 죽음의 조각을 안고 있단다."


용으로부터 비롯한 존재.

파편.

장로가 파편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의 조각이다.


"꼭 넷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이 죽음의 조각과 싸워야 한단다."


파편은 자라기도 하지만 반대로 줄기도 한다.

사람은 영혼에 박힌 죽음의 조각에 대항하여 이기기도 하지만 조각의 유혹에 넘어져 지기도 한다.

이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의 여지도 없이 해당하는 일이었다.


"넷이 겪을 일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야. 방식이 좀 더 힘들고 거칠 뿐이지 그 아이 역시 죽음의 조각과 싸우는 과정을 겪는 것이란다."


설령 넷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아무리 파편이 넷을 노리고 있다고 넷에게 알려준다고 한들 그녀의 영혼 속에 품은 파편은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크기를 키울 것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시간의 문제이지 결국 파편에게 몸을 넘기게 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파편은 그렇게 파편에게 넘어간 넷을 차지하는 것이고 말이다.


"영혼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조언?

할 수 있다.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옆에서 힘을 보탤 수도 있다.


실제로 그녀에게 힘을 보태는 자 중에는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라는 엄청난 존재도 있다.


하지만 결국 싸우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다.

파편과 싸우는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잠에서 깨어난 넷은 몸이 개운했다.

지독한 양의 훈련으로 자고 일어나면 항상 몸 구석구석이 뻐근하니 아팠는데 지금 그녀의 몸 상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얼마나 잔 거지?"


넷은 보좌에서 내려와 밖으로 향했다.

복도에 시립해있는 호위군을 지나 그녀는 성전 밖으로 나갔다.

피부를 베어내는 것처럼 차가운 한기가 그녀의 코를 파고 들었다.


이제 막 큰빛이 떠올랐는지 한대륙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 상태만큼이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넷은 절벽으로 향했다.

절벽 아래 멀리 카밀로테가 보였다.


"아 맞다. 심문."


넷이 전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카밀로테로 이동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녀보다 한발 먼저 환한 빛무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도착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듀시아였다.


"넷."


데클락 정상에 도착한 듀시아는 밖에 나와있는 넷을 보고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이거 놔."

"나중에 해.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듀시아의 심각한 표정에 넷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5 155. 눈높이 교육 +1 23.02.22 34 2 12쪽
154 154. 이거 죽이면 나랑 사귀는 거다 23.02.21 42 2 11쪽
153 153. 하지 말라면 하지 마 23.02.20 40 2 12쪽
152 152. 비호감 행동 +1 23.02.16 34 2 11쪽
151 151. 나쁜 자식 내 마음도 모르고 23.02.15 52 2 12쪽
150 150.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1 23.02.14 42 2 12쪽
149 149. 바보 아니다 23.02.13 31 2 12쪽
148 148. 서른마흔다섯 번 +1 23.02.09 31 2 11쪽
147 147. 따끔해요 +1 23.02.08 35 2 11쪽
146 146. 나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해 +1 23.02.07 38 2 11쪽
145 145.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너희도 떨어져라 +1 23.02.06 38 2 11쪽
144 144. 너의 여정에 내가 함께할게 23.01.05 49 2 12쪽
143 143. 대화가 필요해 23.01.04 45 2 12쪽
142 142. 빨간 머리 대현자 23.01.03 61 2 12쪽
141 141. 보아라 파국이다 23.01.02 57 2 13쪽
140 140. 띠링 기만을 기만한 자 칭호 획득 22.12.29 48 1 12쪽
139 139. 기만 +1 22.12.28 48 2 13쪽
138 138. 침잠 22.12.27 50 2 12쪽
137 13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22.12.26 49 2 12쪽
» 136. 됐어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22.12.22 53 2 11쪽
135 135. 길을 잃거든 그에게 길을 묻거라 22.12.21 48 2 12쪽
134 13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2.12.20 46 2 12쪽
133 133.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22.12.19 56 2 11쪽
132 132. 낚시 +1 22.12.15 55 2 12쪽
131 131. 쑥쑥 자라렴 22.12.14 47 2 11쪽
130 130. 이게 다 얼마야 +1 22.12.13 53 2 12쪽
129 129. 발 22.12.12 40 2 12쪽
128 128. 한 대만 제발 한 대만 때리게 해줘 22.12.08 51 2 11쪽
127 127. 참고로 뚝배기는 머리입니다 22.12.07 51 2 12쪽
126 126. 이변 22.12.06 50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