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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엉감 님의 서재입니다.

먹어서 강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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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5.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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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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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18.뛰어들다 (4)

DUMMY

18. 뛰어들다 (4)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이 고생이냐고요······.”

“야, 토 달거면 꺼져, 시벌놈아. 나 혼자서 찾을 수 있으니까.”


“찾아도 못 잡잖아요. 오늘 저녁까지 잡아서 돌아가야 되는데······.”

“아, 좀 닥치라고! 그리고 너, 내가 만약에 찾으면 어쩔 건데?”


나와 희수가 이렇게 투닥거리는 이유를 찾으려면 오늘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어이 소대장 하나 살리겠다고 버티고 있는 나를 보고, 김민준 중대장은 딱 한 마디만 남겼다.


‘딱 하루 준다. 그 사이에 방법 못 찾으면 소대장도 죽고 너도 죽어. 나 빈 말 안 한다.’


그와 함께 그는 메스같이 생긴 단도를 던졌다. 단도는 정확히 내 관자놀이를 스쳐 지나갔다. 따끔함과 함께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소대장이 던진 단검보다 적어도 두세 배는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대답했다.


‘밤새면서 방법 찾아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까지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요.’




“그 중대장이랑 맞서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데······.”

“누군 몰라서 맞서냐. 너도 상이좀비가 얼마나 지옥 같은 지 알 거 아냐. 난 그 꼴은 못 봐.”


“사람들 분위기도 흉흉해요. 칼 들고 설치던 그 양아치 새끼들은 묶여 있으니 딴 짓 못한다지만, 바하무트 소속 중대원들도 왜 우리가 전력 외인 부상자 사정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요.“


“아, 그러면 넌 돌아가. 연석훈 소대장 곁에 있으라고.”

“아, 형님이 걱정되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야. 내가 널 보살피지 네가 날 보살피니? 그리고 그거 가지고 왔지?”

“가지고 왔는데, 그건 왜요?”


“잘 봐, 임마.”


나는 폐촌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 오크들의 전진 기지와 멀리 떨어진, 물이 졸졸 흐르는 습지로 향했다. 부레옥잠이 잔뜩 떠 있는 습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단검을 뽑아들고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서 습지로 천천히 들어갔다.


“뭐 하려고요?”

“잘 봐. 이제 몰려올 거야.”


잠시 동안 습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10초 정도가 지나자, 물풀 사이에서 뭔가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유리병에 물을 채우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놈의 옆 방향에 두고 있다가, 재빨리 병을 휘둘렀다. 그러나······.


띠요오옹!


“뭐야, 이거!”


내가 잡으려 했던 놈은 바로 젤라틴 거머리. 습지대라면 어디에서나 쉬이 볼 수 있는 녀석으로 당연히 흡혈을 한다. 이 녀석은 빨아들인 피 중 혈장은 배출하고 혈구만 콜라겐으로 바꿔 젤라틴으로 흡수하는데, 아직도 그 기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젤라틴이고 나발이고, 이 녀석의 무서운 탄성은 유리병에 닿자마자 튕겨낼 정도로 강력했다. 이런 미친!


“야. 강희수! 쟤 잡어! 저거 못 잡으면 너 국물도 없어!”

“아니, 저걸 어떻게 잡아! 옘병! 왜 이렇게 미끄러워!”


“안 물리게 조심해! 저기에 물리면 너 급성 빈혈 온다.”

“아이고, 옘병!”


젤라틴 거머리는 느긋하게 희수의 손을 빠져나가 다시 사라졌다.


“형! 발목에!”


나는 급히 발목을 들어올렸다. 어느새 대여섯 마리의 거머리가 내 발목에 붙어 있었다. 나는 급히 이 거머리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너무 미끄러워 잡히지 않았다. 잡힌 놈들도 주욱 늘어지기만 할 뿐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 망할 거머리 새애끼들이······ 강희수, 라이터!”


희수는 급히 라이터를 던졌고, 나는 재빨리 불을 붙여 라이터로 거머리를 지져댔다. 거머리들은 급히 움츠러들더니 내 발목에서 떨어졌지만, 이미 물린 내 발목은 피투성이였다.


“후우······.”

“괜찮아요?”


“괜찮아 보이니? 아니, 왜 이렇게 미끄러워?”


발목에 붙어 있던 거머리 세 마리를 잡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최소한 열 마리 내외는 잡아가야 했다.




“자, 간다······.”


나는 거머리 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죽어라, 이 거머리 새끼들!”


파앙!


나는 물을 열파참으로 쳐서 거머리를 수면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활동사진처럼 느릿하게 허공으로 떠오르는 거머리를 잡기만 하면 되는······.


가아악, 가아악······.


“저 미친 왜가리 새끼가! 남이 개고생해서 잡은 거머리를 잡아 가!”


나는 분노가 치밀어 야코를 실은 돌을 전력을 다해 던졌다. 왜가리는 내 돌에 정수리를 정통으로 맞고 공중에서 피를 흘리며 추락했다.


“야, 식사 벌었다. 빨리 잡아 와!”




그런 고생 끝에, 나는 총 20여 마리의 거머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열 마리는 유리병 안에 밀봉해 두고, 나머지는 희수의 라이터로 말려 죽인 후 이그니스 라피스에 굽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먹으려고요?”

“왜? 젤라틴 거머리는 불에 구우면 기생충도 싹 죽어.”


“형 미쳤어요?”

“야. 어차피 전투식량 다 떨어져가잖아. 이거 안 먹고 너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다 구운 젤라틴 거머리 네 마리를 꼬치에 꽂아 그에게 건넸지만 그는 질색했다.


“먹어. 안 먹으면 너 버리고 나 혼자 축지로 가 버릴 거니까.”

“내가 미쳤지. 돈 몇 푼 벌겠다고 괜히 여기 와서······.”


“근데 너,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밑바닥에서 계속 돈 모으냐?”

“왜 그러겠수.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죠.”


“그 사정이라는 게 뭔데?”

“뭐긴 뭐요, 가족들 때문이지.”


희수는 꼬치를 받아들고는, 똥 씹은 표정으로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거머리를 씹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 어렸을 때부터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곤 하셨어요. 난 가난한 게 싫었어요. 돈 없는 게 싫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만만해 보이는 애들 패서 돈 뺏는 게 취미였지. 중학교 들어갈 때부터는 아예 떼로 몰려다니면서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하고 살았어요. 말 그대로 살인 빼고 다 하는 양아치였죠. 소년원까지 갔다 왔으니까······. 그때마다 어머니는 학교에 매일같이 불려다니면서 나 대신에 머리 조아리면서 사과를 하셨어요. 나는 그게 더 싫어서 더 깡패새끼같이 설치고 다녔어요.”


“개새끼였네.”

“그래요. 개새끼였죠. 근데 그렇게 일진 짓거리 하다가 집에 들어와 보니, 어머니가 숨을 헐떡이면서 방바닥에 쓰러져 계신 거예요.”


그는 이그니스 라피스가 타닥타닥 타는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일그러진 과거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었다.


“원래 기관지 확장증이 있으셨는데, 제 때 치료할 기회를 놓친 거예요······. 폐기종이 너무 심각해서 이제 호흡기 없이는 걸어 다니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요.”


사연 없는 사람 없고 굴곡 없는 인간 없다. 희수가 하는 얘기들은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이야기 중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너무 흔한 이야기라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나는 돼지껍데기와 비슷한 육감의 거머리를 씹으면서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야, 너 계좌번호 불러.”

“계좌번호는 왜요?”


“미친놈아. 너희 어머니 병원비 입금시켜드리려고 그런다.”

“아니, 님이 돈이 어디 있다고······.”


“십새키야. 나 돈 많으니까 빨리 부르기나 해!”




“야, 이상협 너 개새끼! 내가 풀려나면 너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알았어? 어!”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고함부터 쳐대는 그 양아치 세 놈을 무시한 채(결국 사람들은 그들의 입에 다시 재갈을 쑤셔 넣어야 했다), 나는 폐옥으로 향했다. 소대장의 혈색은 한결 나빠져 있었다. 병상에서 칼을 빼든 채 기다리고 있던 중대장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방법은 구해 왔니?”


나는 거머리가 든 유리병을 그의 눈에 들어보였다. 그 거머리를 본 그의 얼굴에 특유의 웃음기가 쫙 빠진 건조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한 마디 했다.


“너 잔머리 하나는 진짜 쩌는 구나.”




중대장은 바로 불에 달군 메스와 소독용 알콜을 준비했다. 나는 중대장이 가지고 있던 발렌타인을 마취제 대신 소대장에게 먹이고 그의 온 몸을 썩은 침상에 묶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대장에게 경고했다.


“존나 아프니까 긴장해라. 아니면 입에 물 재갈이라도 줄까?”

“재갈은······ 괜찮아요······ 그냥 하세요······.”


그는 바로 천을 들추고 메스를 들어 수술을 시작했다.




“하, 시발. 수술은 다시 안 하려고 그랬는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유탄 파편을 제거하고 썩은 살을 거머리에게 먹여 제거한 후, 말린 젤라틴 거머리를 빻아서 지혈제로 발라주고, 마지막으로 실로 봉합했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수술이었지만, 여기서는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고통 속에서 수술을 마친 그의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통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어서 피가 터진 것이다. 하지만 곧 나아질 것이다.


“이 놈 한 절반 정도 살려 놨으니까, 이제 우리 살 방법을 생각해야지.”

“물론입니다. 그것 때문에 말씀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중대장은 눈썹을 들어올리며 ‘이 놈 보게? 뭐 숨기는 거 있나 보지?’ 하는 표정을 보였다.




중대장과의 격론을 마치고, 나는 나를 질시 반 무관심 반으로 바라보는 소대원들 곁을 지나쳐서 폐옥으로 들어갔다. 상처는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그의 표정도 한결 나아 있었다.


“빨리 나으쇼. 소대 이끌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

“참 고마운 말이네요······.”


“그런데 소대장 당신, 도대체 왜 다친 겁니까? 당신 실력도 좋잖아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다 그랬지요······.”


“그거 설마 그 양아치 새끼들이요?”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조소 어린 한 마디를 그에게 던졌다.


“당신도 참 멍청하구만. 그 새끼들이 당신 죽이려고 했던 거 알아요?”

“그래도 내 소대원이잖아요. 그리고 전력 외인 지금으로서는 그런 행동도 어쩔 수 없지요······.”


“하아, 뭐, 내가 거기에 대고 할 말은 없고······ 그런데 그 중대장, 인덕 하나는 있나 봐요. 무리한 명령이라도 투덜거리면서 다들 따르는 거 보니까.”


“대단한 사람입니다. 죽을 뻔한 사람 거의 열 명은 살려서 여기로 피신시켰으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의대 지망생이었다는데······.”


그는 말이 없었다. 지쳐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폐옥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다음 날 아침, 김민준 중대장은 중대원들 앞에 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 두었다. 그는 이제 나를 일종의 참모로 대하기 시작했다.


“다들 잘 들어라. 이제 우리는 이틀에서 사흘 내로 여기를 빠져 나갈 거다. 유격지원여단은 우리 중대 내에 배속해서 움직이도록 해라. 별동대는 네가 직접 이끌고. 다들 알았나?”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고 빠르게 움직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그가 나를 불러 물었다.


“솔직히 너는 유격지원여단 편제, 어떻게 생각하냐?”

“한 마디로 쓰레기죠. 그딴 식으로 전쟁하면 백전백패합니다.”


“왠지 우리보고 그냥 죽으라는 느낌은 안 드냐?”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습니다. 정체를 숨기고 있는 흑막이라면 모를까.”


나는 일부러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나도 웃고 그도 웃었다. 이심전심이었다. 그러나 대화는 거기에서 끊길 수밖에 없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중대장과 나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바하무트 소속 중대원 한 명이 소리쳤다.


“중대장님!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껏 발각 안 당하게 행동해왔잖아!”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제 부주의로······ 폐촌 근처까지 추적을 허용했습니다······.”


나와 중대장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하루나 이틀 정도만 더 시간을 벌면 될 것을······ 오크 부대를 감시하러 나갔던 척후병이 발각당한 것이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움직여야 했다.


굳어 있는 나와는 달리 그는 앞으로 걸어가 부상을 당한 채 눈물을 떨구는 병사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그 병사의 뺨을 후려치면서 소리쳤다.


“사내새끼가 질질 짜지 마라! 정신 차려! 추적 한 번 당했다고 전멸당하는 거 아냐.”


그리고 그는 바로 야코가 실린 전성으로 소리쳤다.


“1소대, 2소대는 지원여단 병력 절반과 뭉쳐서 집결해라! 3소대와 마법소대도 마찬가지! 앞으로 10분 내에 버릴 것은 모두 버리고 여기를 빠져 나간다! 빨리 움직여!”


나는 병사들과 함께 급히 움직이려는 중대장의 손을 잡았다. 그는 짐승의 본능이 살아있는 눈초리로 나를 돌아보았다.


“뭐야?”

“급히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는 선두에 서서 <흑조>를 빼들고 뒤에 따라오는 서너 명의 소대원과 함께 움직였다. 나는 양아치 두 놈을 묶은 채로 끌고 가는 중이었고, 희수는 나머지 한 놈을 끌고 갔다. 하도 시끄러워서 재갈을 물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거진 수풀이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나는 시랑안으로 수풀 너머를 꿰뚫어보면서 전진했다.


"아, 돼지풀 장난 아니네······.“

“쉿.”


나는 희수에게 조용히 할 것을 지시하고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가 생각보다 많았다. 젠장, 발각당했나······.


“뛰어!”


나는 급히 달렸지만 곧 앞에서 지팡이와 쇠뇌로 우리를 겨누고 있는 오크 병사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포위당했다. 나와 희수, 그리고 그 양아치 세 놈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들은 웁웁거리는 양아치들을 보고 그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 양아치 중 한 놈이 오크 말로 소리쳤다.


“제 키라이 네흐툼! 제 키라이 네흐툼!”


곧 나보다 두 배는 더 큰 오크의 돌격대장이 나타났다. 그가 묵직한 저음으로 한 마디 했다.


“인간, 말, 할 줄 안다. 인간 말로 해라.”


그들은 눈치를 보다가 곧 외쳤다.


“항복하겠소! 본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말 할 게요!”

“야! 이 개······!”


나는 소리쳤지만 곧 오크의 도끼가 내 목에 겨누어졌다. 나와 희수는 입술을 깨물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로 우리의 작전을 그들에게 고했다.


“우리는 미끼입니다. 본대는 지금 북서쪽으로 도망치고 있소! 우리는 미끼에요! 그러니 제발 우리만은 살려주세요!”


그는 모든 것을 다 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들은 오크 돌격대장은 바로 신호용 부엉이를 자신들의 본대로 보냈다. 그는 바로 2m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도끼를 집어들고는······ 그 양아치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희수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외면했다.


“인간. 죽인다. 특히 배신하는 인간. 더더욱 죽인다.”


그는 젖먹던 힘으로 비명을 질러대던 나머지 두 놈의 머리도 그렇게 내리쳤다.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들고 소리쳤다.


“인간. 우리 죽였다. 인간. 내 새끼 죽였다. 인간. 우리 동족들 장식품으로 썼다! 인간. 장난으로 우리 여자들 사냥했다! 죽인다! 죽인다! 쇼어! 쇼어!”


“쇼어! 쇼어! 쇼어!”


아마 죽이라는 뜻이겠지. 나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면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엘르가 내 목덜미에 걸어둔 각인이 뭔지 안 물어봤네. 뭐, 그걸 굳이 물어볼 정도로 내가 머리가 좋지는 않았지. 대충 조종의 각인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흐흐······.


······ 그런데 왜 도끼날이 나한테 안 떨어지지? 희수한테 먼저 떨어졌나? 나는 눈을 떴다.


사방에 몰려있던 오크들이 모두 돌처럼 굳어 있었다. 아니, 돌처럼 굳어진 것이 아니라 전부 진짜 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와 오크 돌격대장 사이에,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면서 예의 흐물흐물하고 위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고, 시간을 너무 딱 맞춰서 도착했군요. 조금 늦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요.”




그 사내, 정호빈이 나에게 건네 준 명함. 그 명함은 플라스틱 재질의 특수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고, 열전도에 의한 신호전달 주술이 걸려 있었다. 나는 어제 저녁이 되어서야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명함에 신호전달 주술 문장이 새겨지는 것을 보고서야 이 명함의 진짜 가치를 깨달았다.


소대장의 수술이 끝난 직후, 나는 그에게 이 명함을 보여주면서 나의 작전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반응은 당연히 다음과 같았다.


‘그 클랜 마스터 놈이 안 오면 어쩔 건데?’

‘그는 반드시 옵니다. 애초에 이 명함을 내게 건네준 이유가 그것 때문인데요. 쓰라고 줬으면 이용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너, 생각보다 더 미친 새끼구나.’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작전을 승인했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그 세 놈을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위험인자라면, 내가 끌어안고 자폭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깨닫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셨군요. 저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루아침에 깨달아요?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 봐!”


“어쨌거나 이상협 씨, 내게 목숨을 빚지셨군요.”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석화된 오크들의 몸통에 균열이 가더니, 곧 수백의 조각으로 쪼개졌다. 그는 머리가 쪼개진 채 바닥에 쓰러진 세 놈을 무심히 바라보더니, 건조한 어조로 부활팀을 요청했다.


“갑시다. 목숨 값은 제가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본대는 모두 무사했다. 호빈이 나를 구하러 온 사이에, 서빈이 이끄는 빈즈 클랜의 주력부대가 본대를 습격하러 온 오크 부대들을 모두 전멸시킨 것이다. 나는 호빈의 텔레포트로 본대가 있는 곳에 바로 도착했다.


모든 것이 선명해지면서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서빈이었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짧게 목례했지만, 그녀는 내 목례를 못 본 것처럼 그냥 지나쳐갔다. 하지만 그걸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곧 강렬한 니킥이 내 발목에 명중했기 때문이다.


“크윽!”

“미친 새끼! 살아서 다행이다! 너 뒈지는 줄 알았어!”


김민준 중대장이었다. 그는 허허 웃고 있었다.


“소대장은요?”

“저기 보면 알잖아. 내가 업고 뛰다가 실밥 두어 번 터졌어.”


소대장은 김민준 중대장에게 업혀 탈출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또한 엷게 웃으면서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는 곧 의무대 차량에 실려 전장을 빠져나갔다.


“야. 네가 그 똥고집 안 부렸으면 난 저 소대장 거기서 죽여서 그냥 매장하고 갈 생각이었다. 네가 저 인간 살린 거야.”


어느새 뒤에 민준이 서 있었다. 호빈도 다가와 한 마디 했다.


“정말 대단한 배짱이었습니다. 자신을 미끼로 모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작전, 말은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거든요.”


“아, 미친놈이지. 미친 놈······. 근데 당신 누구요?”

“저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호빈은 민준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명함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바로 그 종잇장을 박박 찢어서 바닥에 버렸다. 나는 속으로 경악했지만 호빈의 표정에는 일점의 변함도 없었다. 민준은 혐오감과 증오가 서려 있는 눈초리로 호빈을 쏘아보면서 경고조로 말했다.


“내가 이 새끼한테 말은 안 했는데, 나 사실 빈즈 클랜 존나 싫어하거든? 특히 당신 같은 인간 제일 싫어해. 내가 제일 혐오하는 부류가 바로 깨끗한 척 하면서 뒤에서 온갖 더러운 짓 다 하는 당신같은 인간들이야.”


“말이 지나치시군요.”

“지나친지 아닌지는 시간이 알아서 말해주겠지. 그러면 나는 간다.”


순식간에 찾아온 냉랭한 분위기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중대장 대신 그에게 사과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 사람이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탓이지요.”


곧 불편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없는지 생각하다가, 곧 내 성에 찾아와 깽판을 치고 간 사이먼을 떠올렸다.


“혹시 정호빈 씨. 사이먼이라는 인간 아나요?”


그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조금 놀랐다. 그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이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사람입니다.”

“뭐······ 뭐라고요?”


“나는 내심 그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다보니······.”

“그게 도대체 무슨······?”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상협 씨.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알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육공에 타려고 희수와 함께 걸어가는데, 커다란 티크나무에 서빈이 기대 있었다. 나는 희수를 먼저 육공 쪽으로 보냈다. 희수가 사라지자, 그녀는 나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던졌다.


“분명히 경고하는데, 넌 헌터가 될 재목이 아니야. 지금 포기 해. 이게 내 마지막 충고야.”


나는 한숨을 후 내뱉고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나는 모르겠고, 나는 이 길을 포기할 생각이 아직 없어.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돌아서지 않아.”


그리고 나는 바로 짐을 육공에 집어던지고 올라탔다.




“야, 강희수.”

“왜요?”


“이제부터 너 나랑 같이 일하자.”

“진짜요? 맡겨만 주세요! 형님이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할 테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현실 세계로 향하는 진흙탕 길을 덜컹거리면서 갔다. 우리의 반대편으로는 죽음의 길로 향하는 수많은 헌터들이 우리와 같은 육공을 타고, 우리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전투를 마치고, 나는 예비역으로 역이 변경되어 정해진 수령액을 받고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내가 킹무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엘르는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왜 덩어리 하나가 늘었느냐?”

“응. 앞으로 얘 우리 킹무성에서 살 거야.”


“안녕하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저런 잉여 하나 줏어와서 무슨 전략 보강이 된다고!”


희수는 뻔뻔하게 인사를 했지만, 엘르는 말 그대로 방방 날뛰면서 희수의 킹무성 입주를 반대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X니하니 팬사인회 티켓 줄 게. 입주시켜 줘.”

“그, 그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고, 우리 마녀님 뭐가 더 필요하세요? 저한테 다 말씀하세요. 그러고 보니 자이로 드롭 타고 싶어 하셨죠? 갑시다!”

“그게 정말이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 애들 꾀는 데에는 놀이공원만한 곳이 없구만.


“갑시다, X데월드! 가서 자이로 드롭 탑시다!”

“지, 진짜?”


얼굴은 굳어 있으면서도 자유의지에 따라 귀엽게 엉덩이춤을 씰룩씰룩 추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자이로 드롭을 타고 싶었나 보다. 나는 바로 희수에게 돌아서면서 말했다.


“자. 이제부터 너 우리 킹무성 소속이다.”




그 날 저녁, 전투에서 입은 상처와 때를 모두 씻어내고 믿겨지지 않는 평온한 저녁 식사 자리에 앉자마자, 엘르는 늘 그렇듯 가벼운 어조로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현실에서 격돌하고 온 느낌이 어떠하냐.”

“죽을 맛이지, 뭐. 사실 사는 게 전쟁인데, 못 버티면 죽어야지. 별 수 있나.”


희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내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인간과 유사한 몬스터를 뎅겅뎅겅 베다 보면 감정이 무뎌진다. 하지만 감정을 무디게 쳐내지 않고서는 살풍경한 전장에서 버틸 수 없다. PTSD가 오는 헌터가 부지기수고, 그 중 다수가 약물에 중독된다. 낄낄거리는 몇 안 되는 순간은 동료들이 저속한 섹드립을 칠 때 뿐. 그렇게 사람이 무뎌져 가면서 내면에서부터 어딘가 비틀리는 것이 전장의 현실이다.


실제 전선은 내 현역 시절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훈련은 유혈 없는 전투고, 전투는 유혈 있는 훈련이라는 판에 박힌 말보다 더 비틀린 채로 다른 현실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유혈과 살육의 전장이 현실을 불과 한 꺼풀 벗겨낸 곳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보고 온 진실이었다.




일주일이 흘렀을까. 헌터 연합군이 에크퓌로시스 버튼을 사용해 오크들이 사는 곳을 모두 멸절시켰다는 기사가 떴다. 그 기사를 보니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기껏 전면전으로 피를 흘릴 거, 왜 저런 방법을 안 썼냐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고, 무수한 생명체도 그저 버튼 하나로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생각이 두 번째로 들었다.


전화와 종이로 지시하는 자격 없는 인간들이 평범한 시민들을 총검이 난무하는 전장으로 내몰아 죽이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의 본질이다.


작가의말

오늘은 조금 빨리 올립니다. 내일은 정상적인 제 시간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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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뛰어들다 (4) +2 16.05.25 469 8 25쪽
18 17. 뛰어들다 (3) +2 16.05.24 419 8 20쪽
17 16. 뛰어들다 (2) +2 16.05.23 406 7 18쪽
16 15. 뛰어들다 (1) +4 16.05.20 510 8 18쪽
15 14. 비박Bivouac 수련 +2 16.05.19 826 7 19쪽
14 13. 변곡점 +2 16.05.18 537 5 18쪽
13 12. 수맥이 흐르는 성 (2) +2 16.05.17 663 9 15쪽
12 11. 수맥이 흐르는 성 (1) +2 16.05.16 652 10 17쪽
11 10. 전을 부쳐먹기 위해 필요한 것 +2 16.05.13 820 14 18쪽
10 9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2) +6 16.05.12 892 12 21쪽
9 8.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1) +2 16.05.11 931 14 18쪽
8 7. 불닭을 잡아라 (2) +3 16.05.10 1,081 15 22쪽
7 6. 불닭을 잡아라 (1) +2 16.05.09 1,145 19 17쪽
6 5. 전골 국물에 라면사리를 +3 16.05.06 1,529 20 13쪽
5 4. 전골이나 해 먹자 +2 16.05.05 1,413 23 14쪽
4 3. 버섯과 거미 사냥 +4 16.05.04 1,426 22 20쪽
3 2. 개미지옥 대피소 +3 16.05.03 1,799 26 16쪽
2 1. 왜 초고수가 튜토리얼 던전에 +7 16.05.02 1,897 28 18쪽
1 0. 프롤로그 +4 16.05.02 2,252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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