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여엉감 님의 서재입니다.

먹어서 강해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일반소설

구작가
작품등록일 :
2016.05.02 17:46
최근연재일 :
-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23,263
추천수 :
331
글자수 :
235,002

작성
16.05.11 18:03
조회
931
추천
14
글자
18쪽

8.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1)

DUMMY

8.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1)




집에 와서 장비를 풀고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치고 난 후에야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이 났다. 엘릭서 시세를 맞춰놨으니, 이제 엘릭서를 팔아넘길 사람을 찾아야겠지.


‘정보를 어디다 올려야 되나······.’


헌터들이 던전에 뛰어들면서, 던전에서 얻은 물품을 사고파는 인터넷 직거래 시장은 이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활발해졌다. 그만큼 사기가 판을 치고, 불과 한 달 전에는 직거래를 빙자한 인신매매 사건까지 발생해 여러 번 주의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거래 대상을 정해야 한다.


‘일단은 오늘 시세부터 확인해봐야겠지?’


나는 바로 오늘의 엘릭서 원액 시세부터 확인했다. 오르제알 산産 엘릭서 원액 오늘 시세가······.


‘오늘자 오르제알 엘릭서 원액은 100g에 524만 7496.3원······.’

“어제보다 18원 떨어졌잖아······.”


이게 은근히 기분이 더럽다. 팔지도 못했는데 시세가 떨어지면 술빨고 싶은 생각이 진해진다. 진짜 내 몸에 주식 갤러리인지 뭔지 하는 잉여들 영혼이 하나 월세 내고 들어오는 기분이라고!


시세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바로 JS 직영 거래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지자체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거래소는 절대 믿지 마세요. 인터넷에서 제 값 주고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시세표 날마다 체크하시고 근사치가 제일 비슷한 대형 클랜 직영 거래소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시세는 날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5%는 감안하셔야 됩니다.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은 텔레스크린 직영이고요, 그 다음으로는 한영, JS, 재버워크······.’


인터넷에서 거래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를 추려보면 위와 같은 말들이 나온다. 사람들은 항상 저 ‘4대기업’이라 불리는 대기업-클랜 연합체를 추천했지만, 나는 그 중에서 JS를 선택했다.


‘텔레스크린은 정부 보증서 없는 엘릭서 원액은 안 받아주잖아. 짜증나는 놈들······. 그렇다고 한영을 하기에는 시세를 좀 짜게 주고. 재버워크는 신용도나 신뢰성이 좀 낮지······.’


JS는 대기업임에도 폭넓고 유도리 있게 물품들을 받아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원 등급제야 당연히 있지만 초보 회원들도 자유롭게 물품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텔레스크린은 최소 글을 100개는 써야 한다). 나는 바로 FTB(Free Trade Board. 즉 자유 거래 게시판)에 글을 하나 적었다.




— [직거래] 엘릭서 원액 250g입니다. 선제시 환영입니다. —


정부 보증서는 없지만, 대신 제작자 보증서가 있습니다. 딱 한 번 개봉했습니다. 시세에 맞게 선제시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첨부하오니 보시고 구미가 당기시는 분들은 연락 주세요.




약병과 보증서 사진, 연락처와 메일을 적고 글을 올리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뻑뻑해진 눈을 몇 번 깜박거리려는 찰나······.


윙이이잉이이-


진동이 울린다. 폰을 들어보니 ‘물주’라는 이름이 보였다. 엘레우시아였다.


“무슨 일이야?”


— 지금 당장 위층으로 건너오너라. 너에게 보여줄 곳이 있노라.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이려는 거야?




“무슨 일인데······요?”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말끝에 존대를 붙였다. 그녀는 말없이 손짓만으로 따라오라는 지시를 취했다. 나는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 장소, 화장실로 먼저 들어섰다. 나는 별 생각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그만 헉! 소리를 내면서 뒤로 급히 물러섰다.


“이게 무슨 짓이야, 도대체?”

“네가 먼저 물어보지 않았느냐? 강해지는 방법을 말이다.”


아······ 맞다. 그랬지. 불과 반나절 전에. 그런데 설마······ 이게 그 방법이라고?


“그렇다고 화장실에다 공혈을 뚫었어?”


그 때 왜 화장실에서 튀어나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공혈 들락날락 하느라 그랬구나!


“이 공혈, 훨씬 전에 뚫은 거지?”

“잔말이 많구나! 그러면, 내 호의를 거절하겠다는 것이냐?”


“······아닙니다요.”

그래. 나는 포기가 빠른 남자지. 수긍도 잘 하고.


“내일부터 이 안에서 수련을 할 것이다. 내가 정해준 프로그램에 맞춰 훈련을 반복하면, 한 달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우월한 시종이 되어 있을 것이니라. 음핫핫핫······.”

“그러면 나는 자러 간다.”


“잠깐만.”

그녀는 갑자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녀의 얼굴에 묘한 홍조가 떠오르고 있었다.


“사실 말이다······. 내가 방금 전 특가 세일 중이던 황금돼지고기를 사왔는데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짓궂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전 여자친구에게 썼다가 장렬하게 실패한 방법이었다. 나는 표정을 굳히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벽쪽으로 밀쳤다.


“왜······ 왜 이러는 것이냐······.”

나는 그녀를 벽에 기대 세운 상태에서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렇다면, 먹어드려야죠.”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어? 근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얼굴을 붉히지 않나?




“에휴. 결국 나만 피곤하지······.”


엘레우시아는 생각보다 고단수였다. 그녀가 사온 돼지고기는 만두를 빚는 데 쓰는 갈아놓은 고기였고, 나는 이 고기에 후추, 소금 등등의 양념을 하고 다진 배추와 숙주나물을 다져넣고 주물럭해 섞어서는 만두로 빚느라 내 저녁 시간을 다 날려버렸다. 그나마 그 만두를 싸들고 와서 이틀치 식사를 때울 수 있기에 망정이지.


위에서 포풍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내 거래글에 댓글이 몇 개 달려 있다. 댓글의 8-90%는 다음과 같았다.




‘구라치지 마라, 병신아. 누가 엘릭서를 그 가격에 파냐? 이 XX 밑장빼기 스킬 쓰네.’

“구라 아니야, 병신아. 진짜 엘릭서야.”


‘네, 다음 중X나라에서 오신 분.’

“너 같으면 거기 가고 싶냐?”


웃음이 헤프지 않은 나였지만, 이건 솔직히 피식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다들 의심이 많네.’


무신경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중, 드디어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났다. 그 댓글의 주인은 닉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Werenwulf'


‘이거 뭐라고 읽는 거야? 워렌······ 뭐?‘


어찌 되었건, 그 정체불명의 닉을 쓰는 이는 다른 댓글들과는 확연히 다른 내용을 적고 있었다.


‘베난단티 계열 마녀의 언어를 쓰는 보증서가 첨부되어 있군요. 이번 주말에 직접 만나서 내용물을 확인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격은 직접 보고 난 후 제시하겠습니다. 진품인 것이 확인되면 제 값을 치르고 살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9호선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연락처는 메일 주소로 알려드리죠.’


됐어. 관심 보이는 사람은 어디든 있다니까. 나는 바로 연락처를 확인하고 메일로 날짜를 잡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기름칠을 잘 해놓은 가슴받이와 검 <흑조>를 들고 그녀의 집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면서 나를 반겨준 엘레우시아는 귀여운 곰돌이가 수놓아진 잠옷 차림에 부스스한 자태, 그야말로 마녀의 위엄과는 한 백만 광년 떨어진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아하아암······ 집에 계란이 없느니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만두는?”


“아! 만두가 있었지······. 근데 더 자고 싶은데······.”

“안 돼. 빨리 잠 깨세요.”


나는 그녀의 신축성 있는 양 볼을 꾹꾹 누르면서 잠을 깨웠다.




공혈은 정확히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를 하고 있었다. 손을 대서 느껴지는 공혈 특유의 부유하는 느낌도 느껴졌다. 나는 아침상 앞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제 저거 보면서 느낀 거지만, 저거 진짜 어떻게 해결하려고 그래? 당신 힘없다면서.”


“그래. 여기 떨어지고 나서 최소한의 힘을 제외한 나머지 힘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래도 힘만 찾으면 공혈 봉인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근데 님, 나한테는 각인 잘만 걸었잖아요.”

“그거야 마광석에 따로 모아놓은 힘이고······.”


뭐요?


“그러면 지금까지 어떻게 먹고 살았어?”

“뭐······ 친구들이 도와줘서 이것저것······.”


“당신 친구도 있었어? 친구가 집도 사줬어?”

“으응······.”


“이런 기만······.”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아침나절을 보낸 후, 나는 그녀와 함께 공혈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 나는 다른 세계에 와 있다······.


······ 근데 이틀에서 3일 정도는 있을 텐데, 별 일 없겠지? 뭐, 굳이 저 사람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엘릭서 원액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마음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볼 일은 없다 이거야.




“이건 예상 못했다고!”

“강해지고 싶다지 않았느냐.”


“나보고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엘레우시아는 힘을 잃고 나서도 여기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여기를 들락날락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내 앞에는 지옥개 케르베로스가 최소 세 마리는 보인다. 셋 다 내 머리를 뜯어낼지 아니면 팔다리를 뜯어낼지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고민이 끝나자마자 바로 실천에 옮길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였다.


크왕! 컹! 컹!

“달려든다!”


나는 바로 그녀를 안고 뛰기 시작했다. 진짜 돌겠네! 여기서 죽으면 내 엘릭서는 부장품으로 묻어주······ 이딴 생각 할 때가 아니라고!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품속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서는 꽉 쥐었다.

크왕!


케르베로스 한 마리가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어 이빨을 박았지만, 그와 함께 나와 그녀의 몸은 파스스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지옥개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와 엘레우시아가 있던 곳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후우, 후우, 후우······.”


마광석에 모아놓은 그녀의 힘을 이용해 텔레포트를 마친 후에도 나는 도저히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비록 물리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진짜로 지옥개의 이빨이 목덜미로 파고드는 느낌만큼은 뇌리에 확연히 각인되어 버렸다.


“후우······.”


침착하자, 침착해. 앞으로 수천, 수만 번 겪어야 할 일이잖아. 나는 그녀가 건네주는 물병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녀는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내 옆에 털썩 앉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감정의 고저라고는 느낄 수 없는 냉정한 목소리였다.


“강해지고 싶느냐?”


나는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녀는 그런 나를 횃불이 환하게 켜진 동굴로 이끌었다. 그리고 동굴 끝의 널찍한 공동空洞에서 내가 본 것은······.


“저거야? 저 좀비들 잡으면 되는 거임?”

“저게 내가 자주 먹던 주식이다.”


“······ 저 좀비를?”

님 프레데터세요? 좀비가 주식이었다고?


“저 녀석들을 잡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서는 좀비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력으로 움직인다고 해봤자 몸이 썩어있는 언데드가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


“으어어······.”

휘익-


“이크!”

빠르잖아! 좀비들은 생각보다 민첩하게 나를 공격해왔다. 나는 바로 콤파스 스텝을 밟으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준비를 마치고 <흑조>로 가장 가까운 좀비의 한 팔을 잘라냈다. 잠깐만, 그런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퍼석!


좀비는 퍼석한 자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한 팔이 잘려나갔다. 자갈처럼 절단면이 바스러진 좀비의 팔은 그 노르스름한 단면을 드러내면서 땅바닥에 굴렀다. 잠깐만, 잠깐만. 이건 뭔가······.


“으어어······.”


빠각!


“크읏!”


방심한 사이에 좀비 하나가 내 등짝을 후려쳤다. 물론 가슴받이가 망가진 것은 아니지만 아프다고! 나는 바로 검을 휘둘러 그 좀비의 목을 따 버렸다. 역시 살덩이가 잘려나가는 느낌은 없고, 무슨 자갈 부수는 느낌이······.


설마!


나는 떨어진 좀비의 살점을 하나 집어 베어 물었다. 겉보기에 딱딱해 보이던 그것은 침에 의해 녹으면서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그 맛이 났다. 나는 바로 엘레우시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거 빵이잖아!”




나를 상대하던 좀비는 바로 죽은 곡식, 즉 발효된 곡식이 뭉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놈들, 이름이 뭔데?”

“바게트 좀비니라.”


“기가 막힌 작명센스이옵니다.”

“열심히 잡기나 하거라.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그러시든지요.”

나는 바로 좀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굉장히 효율적인 던전이야.’


바게트 좀비는 나의 사각, 빈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지만, 나의 빈틈을 정확히 알려주는 빨간펜 선생님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거기다······.


‘굳이 던전에서 소비할 식량을 구비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어느새 내 배낭과 한 손에는 바게트 좀비의 살덩이······ 아니 빵덩이가 들려 있었다. 좀비 수십 마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이 녀석들은 내가 가장 취약한 자세, 취약한 지점을 일부러 노리고 공격해온다. 그러면 나는 그 점을 보완하면서 이 녀석들을 잡으면 된다. 그리고 잡다가 지치고 배고프면 이 녀석들을 먹으면 되고······.


‘마늘 맛이 좀 지나치게 강한데? 나중에 새로 만들 때는 마늘 좀 적당히 치라고 엘레우시아한테 이야기를······.’


그 순간, 나는 등 뒤로 뻗어오는 살기를 느끼고 재빨리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휘익!


역시 그러면 그렇지. 여기 있는 몬스터들이 그렇게 날로 먹기 좋을 리가 없다. 갑옷에 녹슨 검까지 치켜든 바게트 좀비 전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줘야지!”


나는 패싱 스텝을 밟으면서 그 좀비를 사선베기로 올려쳤다. 보기 좋게 목이 잘려나갔다. 나는 잘린 목을 다른 손으로 잡고 머리통을 한 입 베어물었다. 이러니까 내가 진짜 괴물이 된 느낌이다.


“다 덤벼! 전부 다 빵가루로 만들어 주마!”




“엘레우시아, 어디 있어?”


백여 마리는 되 보이는 주위의 바게트 좀비들을 전부 다 빵가루로 만들어 버린 후, 나는 공동 한 켠 의 광천수에서 얼굴을 씻어내고는 바로 그녀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동의 다른 쪽 끝에는 또 다른 좁은 동굴이 있었고, 그 동굴에서는 약하게나마 유황 냄새가 났다. 그녀가 이쪽으로 갔으리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솔직히 여기 말고는 출구가 없기는 하다.


“엘레우시아?”


동굴은 공동으로 들어오는 동굴과는 다르게 비좁고 어두웠다. 횃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나는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온다던 사람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동굴 안은 뜨겁고 습했다. 하지만 사우나와는 다르게 짙은 유황 냄새 때문에 손으로 입을 막고 가야 했다.


‘더워······.’


팔다리를 전부 걷어부치고 한 1km 정도 걸었을까. 먼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저기인가 보다, 나는 그 생각과 함께 그녀를 다시 불렀다.


“거기 있는 거야?”


그러나 내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대신, 내 등 뒤에서 피시시-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지만 아무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피시시- 하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그리고 가까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닥쳐왔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내가 미쳤지!”


나는 <흑조>를 검집에 꽂고 미친 사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내 100m는 되어 보이는 후면에서 나를 삶은 통닭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한 간헐천이 치솟았다. 간헐천은 빈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간격을 벌리면서 나를 향해 쫒아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불빛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커졌지만, 그보다 간헐천이 내게 달려드는 속도가 더 빨라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삶은 통닭이 되어버릴 판이다.


‘난 여기서 죽기 싫어! 아니, 절대 안 죽을 거라고!’


그 순간, 나는 내 발치에서 튀어오르는 돌이 느려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였다.

생각할 틈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달리고자 했을 뿐. 나는 내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 발 밑의 땅이 뒤로 빠르게 밀려나는 것을 직접 보고 겪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축지를 사용한 것이다.


콰앙!


마지막 간헐천이 크게 치솟았고, 나 또한 동굴 출구에 거의 도달했다. 나는 뛰던 자세에서 크게 도약해 아슬아슬하게 간헐천의 범위를 벗어났다. 간헐천의 수증기가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도약력과 간헐천의 압력을 더한 힘으로 공중에 한 5초 가량 떠올랐다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 직전에 간신히 낙법을 취한 덕에 데굴데굴 굴렀어도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뜰힘도 없이 헉헉거리고 있자니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바로 엘레우시아였다.


“하악, 하악, 하아······.”

“마나를 써서 무탈하게 빠져나왔구나. 성장 속도가 아주 마음에 든다.”


나를 대견스러워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뭐라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 네 마나를 제대로 사용할 시간이 된 것 같구나.”

“하아······ 너는 내 꼬라지 보고서도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냐?”


나는 땅바닥에 드러누워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한 마디 했다.


작가의말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먹어서 강해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2 16.06.07 587 0 -
28 27. 크레이지 파티 (7) +2 16.06.07 506 4 22쪽
27 26. 크레이지 파티 (6) +2 16.06.06 361 4 21쪽
26 25. 크레이지 파티 (5) +2 16.06.03 291 4 19쪽
25 24. 크레이지 파티 (4) +2 16.06.02 316 4 20쪽
24 23. 크레이지 파티 (3) +2 16.06.01 350 4 20쪽
23 22. 크레이지 파티 (2) +2 16.05.31 294 4 21쪽
22 21. 크레이지 파티 (1) +2 16.05.30 394 6 20쪽
21 20. 지하수의 운디네 +2 16.05.27 636 9 19쪽
20 19. 일상으로 돌아오다 +2 16.05.26 444 8 17쪽
19 18.뛰어들다 (4) +2 16.05.25 469 8 25쪽
18 17. 뛰어들다 (3) +2 16.05.24 419 8 20쪽
17 16. 뛰어들다 (2) +2 16.05.23 406 7 18쪽
16 15. 뛰어들다 (1) +4 16.05.20 510 8 18쪽
15 14. 비박Bivouac 수련 +2 16.05.19 826 7 19쪽
14 13. 변곡점 +2 16.05.18 537 5 18쪽
13 12. 수맥이 흐르는 성 (2) +2 16.05.17 663 9 15쪽
12 11. 수맥이 흐르는 성 (1) +2 16.05.16 652 10 17쪽
11 10. 전을 부쳐먹기 위해 필요한 것 +2 16.05.13 820 14 18쪽
10 9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2) +6 16.05.12 892 12 21쪽
» 8.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1) +2 16.05.11 932 14 18쪽
8 7. 불닭을 잡아라 (2) +3 16.05.10 1,081 15 22쪽
7 6. 불닭을 잡아라 (1) +2 16.05.09 1,145 19 17쪽
6 5. 전골 국물에 라면사리를 +3 16.05.06 1,529 20 13쪽
5 4. 전골이나 해 먹자 +2 16.05.05 1,413 23 14쪽
4 3. 버섯과 거미 사냥 +4 16.05.04 1,426 22 20쪽
3 2. 개미지옥 대피소 +3 16.05.03 1,799 26 16쪽
2 1. 왜 초고수가 튜토리얼 던전에 +7 16.05.02 1,897 28 18쪽
1 0. 프롤로그 +4 16.05.02 2,252 29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