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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엉감 님의 서재입니다.

먹어서 강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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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5.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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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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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7. 불닭을 잡아라 (2)

DUMMY

7. 불닭을 잡아라 (2)




딱 봐도 떡대 좋아 보이는 사내가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니 ‘어머, 안녕하세요’ 같이 인사치레 할 계제는 아닐 성 싶다. 나는 바로 엘레우시아 손에서 약병을 낚아챘다. 그와 함께 거구의 사내가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응했다.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이 미친놈아!”

“내가 뭘?”


“드랍된 인페르노 치킨이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데, 무슨 수작을 쓰길래 내 치킨이 거기까지 도망치냐고?”


한 마디로 개소리다. 각자의 구역을 넘지 못하는 것은 이 구역의 불문율이지만, 그렇다고 내 구역에서 남의 구역까지 넘어온 치킨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 생떼를 써서 삥을 뜯으려 들거나, 내 약을 나눠 가지고 싶다는 의도일 테지. 물론 내가 편법을 좀 쓰기는 했는데······


나는 당장이라도 내게 죽빵을 날릴 태세인 이 놈 앞에 엘레우시아의 물약을 들이밀었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이거 안 치워?”


꼬장 좀 피워 본 냄새가 났지만, 나도 진상 손님들 알바 시절에 지겹게 상대해 봤다, 이놈아. 나는 바로 회유 모드에 들어갔다.


“한 번 써보라고. 이 약 몸에 뿌리면, 1분 내에 닭떼 잡느라 옆사람 돌아볼 틈도 없다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걸 게. 효과 없으면 손모가지 가져가도 돼.”

“구라치지 마. 미친놈아! 이걸 그냥 확······!”


“내가 미쳤다고 구라를 치냐? 구라친다고 해서 나한테 득 될 게 어디 있어? 자, 형씨. 한 번 써 봐. 사방의 모든 불닭들이 당신한테 달겨들어서 임차지가 꽉 차는 광경을 보게 될 거야.”


그는 잠깐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생떼를 써 가면서 나한테 삥을 뜯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순순히 이 약을 받아들이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약을 순순히 받아들자니 모양이 좀 빠지고, 생떼를 계속 쓰자니 내 여유로운 표정으로 보아 먹혀들지 않는 놈이라는 걸 알아챈 것 같다. 그는 결국 꼬리를 조금 내렸다.


“이거 반칙이잖아.”


“에이, 땅밟기 해가면서 남 임차지 닭까지 싸그리 긁어가는 놈들에 비하면 이건 양반이지. 이건 어디까지나 합법적이야. 남의 임차지만 손 안 대면 되잖아. 게다가 이건 걸리지도 않는다고. 안심하고 써도 좋아.”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어제 시세를 맞춰보면서 헌터들의 땅밟기에 관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모든 개척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겠지만, 던전 내에서도 은근슬쩍 힘없는 하급 헌터들의 임차지를 차지하고는 거기서 드랍된 몬스터들을 다 잡아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벌어진 분쟁으로 사상자가 수시로 발생하는 통에 정부도 강력한 통제를 입으로는 외치고 있지만, 이그니스를 비롯한 이권에만 눈이 팔려 있는 정부 놈들이 통제를 제대로 할 리가 있겠나.


하지만 이 말을 하면서도 나는 내심 놀랐다. 내가 이렇게 현실에 찌든 놈이었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어쨌거나 회유는 먹혀들었다. 그는 결국 엘레우시아의 약을 받아들었다.


“써 보고 결정할 게. 쥐뿔도 없으면, 너 오늘 제삿날인 줄 알아.”

흥이다, 병신아. 애당초 삥 뜯을 거였으면 ‘써 보고 결정한다’는 멍청한 소리는 안 해.




내 멱살을 잡던 기세에 비해 대응이 아둔했던 그 사내가 내려간 후, 나는 엘레우시아의 연고를 상처에 바르기 시작했다. 엘레우시아는 시종 주제에 주인님의 약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둥, 그 놈 죽빵을 후리지 그랬냐는 둥 궁시렁궁시렁거렸지만 예의바르게 연고를 꺼내 내 상처에 약을 살살 펴발랐다. 나는 일부러 그런 그녀의 심기를 조금 더 긁어보았다.


“닭한테 그슬리고 관종 상대하느라 힘든데 잘만 보고 있더라, 응?”

그녀는 나를 쏘아보는 눈길로 보면서 앙칼지게 한 마디 날렸다.


“인페르노 치킨은 나에게 점심식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점심식사에 눈이 쪼일 뻔 했는데요? 응?


“그런 힘이 있으면 직접 잡으시던가요. 힘없으세요?”

“지금은 없느니라. 그러니 너에게 잡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


“왜 힘이 없는데?”


그녀는 새침한 표정으로 말없이 연고만을 내 상처에 바르고 있었다. 연고의 효과는 굉장했지만, 그녀는 내 질문에 처음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연고를 발라 상처를 다 치료하자마자 나는 바로 다른 곳에서 날아드는 닭을 잡아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호구같이 혼자 열내지 않았다. 이왕 파티인 거 엘레우시아를 철저히 부려먹어야지.


꼬꼬꼬꼬······.

“그래, 이쪽이다. 이쪽으로 오라고······.”


꼬꼬댁!

“왁!”


닭의 주의를 거의 끌지 않는 엘레우시아가 뒤에서 몰래 다가와서는 나와 함께 소리를 꽥 질렀다. 양쪽에서 갑자기 터진 고함 소리에 닭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나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목을 완전히 베어버리지 못한 탓에 닭은 덜렁거리는 목을 달고 도망치려 했지만, 나의 2격이 깔끔하게 나머지 부분을 손질해버리면서 모가지가 완전히 분리된 채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칼로 능숙하게 닭을 들어서는 어느새 준비해온 방화 장갑을 끼고 있는 엘레우시아에게 토스했다.


“잡은 닭들 손질 잘 해놔. 하나하나가 다 재산이니까.”


엘레우시아는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도 내가 시키는 일을 잘 했다. 티격태격거리지만 이런 쪽에서는 의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인페르노 치킨을 잡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닭의 무지막지한 생명력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에 토종닭을 손수 잡으시면서 이런 말을 해주셨지.


‘닭은 목을 베어도 죽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어. 심지어 목 없이도 몇 년을 멀쩡하게 살다가 주인의 관리 소홀로 갑자기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지. 그러니 목을 벨 때는 말이야······ 몸통에 뇌가 남지 않도록 정확하게 베어야 한다.’


내 어린 시절을 통틀어 그 말만큼 강하게 트라우마를 박아버린 말이 없다. 그날은 물론이고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치킨을 못 먹었다. 밤중에 잠들 때마다 목이 덜 베인 닭이 푸드덕거리는 악몽을 몇 번이나 꿨다고! 젠장! 잡다보니까 또 생각나네!


아버지의 잊지 못할 현장교육을 다시 떠올리면서, 나는 점점 닭 잡는 스킬을 체득해나갔다. 모든 새들이 그렇듯, 닭 또한 날다가 뛰어오르려는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 그 순간을 노려 단검을 목 같은 급소에 던지면 맥을 못 춘다.


꾸엑!


치명상을 입고도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이제 모가지 따는 스킬만큼은 완벽하게 익혔기에 피를 뿌리며 도망치는 닭 모가지 따기는 콩나물 대가리 따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다른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살기를 느낀 것인지 내 나와바리······ 아니 임차지를 피하려 했지만,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꾸엑!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던진 비수에 닭의 목이 꿰뚫렸다. 닭은 푸드덕 날아오르려던 그 포즈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이, 형씨! 이 물약 효과 죽이는데! 도대체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


다부진 체구와는 달리 좀 아둔한 그 거한은 나에게 약을 돌려주면서 내 등짝을 팡팡 두들겼다. 물약을 먹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겉모습만큼 막 나가는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등짝 때리지 마, 십새야’라고 말하려던 것을 참고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뭘······ 서로 돕고 돕는 게 좋은 거지.”


오고 가는 불법 속에 헌터 우정 깊어지네. 나는 등급 고시생들 사이에서 격언처럼 퍼져 있는 이 말을 되뇌면서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런데, 형씨는 이름이 뭐요?”

“나? 아, 나는 이상협이라고 하고······ 이쪽은 엘레······ 아니, 현유······ 그래. 최현유.”


나는 그 자리에서 지어낸 이름으로 그녀를 소개했다. 그녀는 소개를 받자마자 무슨 여왕이라도 된 것처럼 팔짱을 끼고 도도한 자태를 취했다. 내가 봐도 정신 나간 포즈였지만 상대는 신경쓰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미소와 함께 자기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강희수요. 저 애들하고 여기서 닭이나 잡고 있는 신세지.”

“닭 잡는 것만으로는 수지가 안 맞을 텐데?”


“야코인지 개뿔인지, 뭐가 되어야 경비원 노릇이라도 하지. 저기 있는 애들도 나하고 엇비슷해요.”


‘사는 게 그렇지 뭐’라고 답해주면서도 좀 씁쓸했다. 헌터 세계의 양극화는 극심하다. 이곳도 소수의 금수저와 대다수의 흙수저로 나뉘는 게 눈에 선히 보였다. 돈 걱정 없는 캐주얼 헌터나 상위 1% VIP들은 외제차를 몰다가 사고가 나도 ‘그래? 그 차 질렸는데 다른 차로 갈아타면 되지’라고 돈지랄을 해도 될 정도지만, 나머지 99%는 한 달 치 월세에도 전전긍긍하고 스마트폰으로 쏟아지는 대출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그러다 못 버티는 놈들은 마포대교 가는 거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무렵에는 우리 주위에 대여섯 마리 정도 되는 치킨의 재료······ 아니 손질한 닭이 놓여 있었다. 엘레우시아가 정성껏 손질한 닭이었다.


“점심 먹자, 점심. 배고파······. 뭐를 만들어 먹을까······.”

“보이지 않느냐. 이것으로 탄두리 치킨을 할 생각이다.”


타안두우리이? 탄두리 치킨? 설마 그 탄두리 치킨?


“진심이야?”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오래 걸리잖아?”

“마녀의 조리기구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법이지. 음하하하······.”


“해리 포터에나 나올 법한 그딴 조리기구는 됐고요······.”

“일단 손질은 끝냈으니 칼집부터 내라. 오로지 모든 음식은 소스가 잘 배어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요······.”




사실 탄두리 치킨을 제대로 만들려면 인도식 향신료와 커리, 요거트를 섞은 소스에 잘 숙성시킨 후 탄도르에 제대로 구워내고 위에 고수를 뿌리고 처뜨니 소스를 곁들여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계제가 없으므로 그냥 탄두리 비스무리한 치킨에 이름만 탄두리가 되어버렸다. 뭐 어때? 맛만 좋으면 됐지.


엘레우시아는 들고 온 그 작은 가방에서 착하게도 이런저런 재료를 어떻게 잘 쑤셔박아서 가지고 왔다. 그녀의 가방에서는 요X레, 슈퍼에서 파는 탄두리 티카, 꼬치, 도마, 식칼, 거치대, 식기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꼴을 보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러왔니?”


잡소리는 그만하고 나는 바로 치킨 만들기에 돌입했다. 슈퍼에서 어제 산 것이 분명한 요X레와 탄두리 티카를 잘 섞어준다. 그리고 잘라낸 닭의 각 부위를 이 소스에 재워둔다. 적절하게 재우고 나면, 오븐이 없으므로 일단 꼬치에 끼워서 바닥에 이그니스 라피스를 깔고 굽기 시작하는데······ 이건 그냥 직화구이잖아!


어쨌거나 이렇게 노릇노릇 잘 구워진 인페르노 탄두리 치킨(?)이 완성되자 구워지는 광경을 침을 흘리면서 지켜보고 있던 나와 엘레우시아는 바로 시식에 돌입했다. 그녀는 닭다리를 한 입 베어물자마자 바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기쁨의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는 ‘이것을 깜빡할 뻔 했구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봉지에 든 무언가를 뿌렸다. 잘게 썬 고수였다.


“고수를 뿌려야 진정한 탄두리 치킨인 것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티만 낸 탄두리 치킨에 진주 목걸이 참 쩌네요.




치킨의 영원한 혈맹 맥주까지 까면서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고 있던 중, 엘레우시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 내 이름을 현유라고 둘러대던데, 그 이름에 무슨 뜻이 있느냐?”

“별 생각 없이 지었는데? 굳이 끼워 맞추자면······ 나타날 현顯에 그윽할 유幽. 어둠은 그윽한 것이니, 지상에 현현한 그윽함이라고 하면 네 이름으로 잘 어울리지 않겠어?”


나는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얼굴은 갑자기 왜 붉어지는 거야?


“으흠······ 겉보기와는 달리 나름대로 쓸만한 아이로구나.”


내 인상이 어때서? 라고 따지려는 순간, 갑자기 밑에서 고성이 다시 터졌다.


“뭐야? 무슨 소리야, 이게?”


강희수 그놈이 또 깽판 치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최소 열 명은 되어 보이는 떡대들이 언덕 밑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이야, 닭 잡았는데? 팔아서 돈 좀 벌었겠어?”

“우리도 같이 맛 좀 보자. 응? 서로 상생하면서 먹고 살아야지. 안 그래?”


땅밟기만 전문적으로 하는 양아치 새끼들은 어디를 가나 있다고 하던데,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이때까지는 굳이 나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치킨을 취식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엘레우시아가 한 마디 했다.


“왜 나서지 않는 것이냐?”

“내가 뭐하러?”


“너의 눈은 이미 저들과 싸울 준비를 마쳤느니라.”


그녀는 내 속을 꿰뚫어 보았지만, 아직 내가 나설 타이밍은 아니었다. 깽판도 시간과 장소, 이유가 맞아 떨어져야 칠 수 있는 법.


“당신들 뭐야? 왜 여기 와서 행패야?”

“행패라니. 우리 원래 여기서 날고 기는 놈들인 거 모르셨나? 열 마리만 주면 순순히 물러갈게.”


“절대 못 준다고 해! 누구 맘대로 남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야. 못 준 댄다. 들었냐? 우리가 누구 명령 받고 이 일 하는 건지 모르나본데······.”


‘땅밟기를 실시하는 대부분의 용역업체 직원, 조직폭력배들은 사실 던전 곳곳의 이권과 얽혀 있는 대기업과 그 자회사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얽혀 봤자 피 보는 건 예사니까 되도록이면 얽히지 마세요. 뒷감당하기 정말 힘듭니다.’


어제 인터넷에서 본 땅밟기 관련 글에서 가장 기억나는 부분이다. 겉으로는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몬스터를 잡아 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대기업이나 거대 클랜들이 사적으로 고용하는 땅밟기 용역들이 워낙 깽판을 심하게 치는 탓에 자위권을 충분히 획득하지 못한 힘없는 헌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모범지대라고 일컬을만한 T-4 구역까지 저렇게 설치는 것만 봐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일이었다.


“야, 안되겠다! 누워! 웃옷 벗고, 바지도 벗어! 얼마나 버티나 보자고! 응?”


저렇게 대놓고 땅밟기 하는 놈들은 처음 본다. 저건 그냥 공갈협박이잖아. 여기가 너네 집이냐?


“저것이 보이느냐. 지금 아주 바지까지 벗고 누워서 난리가 났느니라.”


엘레우시아는 내게 친절하게 현황 중계를 해주었다. 이게 현실이다. 탐지대는 저 놈들 못 막는다. 경비대라고 해봐야 오는 데만 최소 30분은 걸릴 거고······ 한마디로 깽판을 치기 시작하면 저 수모를 그대로 당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야! 너네 너무하잖아! 대체 몇 번째 깽판을 치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희수가 그들에게 덤벼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묵직한 쇳덩이 부딪치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억, 으억, 하면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디서 주제를 모르고 깝쳐!’ ‘야, 떡갈비 될 때까지 조져!’ 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아마도 희수겠지) 무참히 짓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희수는 쓰러진 상태에서 얻어맞으면서도 ‘이 개새끼들!’ 하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는 이가 없었다. 아까 전까지 사람이 꽤 많던 이 근방이 조용해졌다.


나는 다 마신 맥주캔을 구겨서 바닥에 던진 후, 벌떡 일어서면서 엘레우시아에게 선언했다.


“탄두리도 다 먹었겠다, 소화 좀 시켜야지. 내 야코 측정 좀 해 줘.”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혹시 마나를 말하는 것이냐?”


“아마 그거겠지? 사실 나 그런 거 정확히는 몰라.”

“굳이 재 볼 필요가 있느냐.”


“오케이. 그러면 소화 좀 하고 올 게.”


닭 잡으러 와서 사람 잡고 가게 생겼지만,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드디어 왔다.




“거 밥 먹고 있었는데 조용히 좀 합시다. 체해서 소화도 못 시키겠네.”


희수를 포함한 헌터 몇을 빠따와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있던 땅밟기 용역 놈들이 내 말 한 마디에 잠시 하던 짓을 멈추었다. 대빵처럼 보이는 놈은 ‘넌 뭐냐?’라는 표정으로 나를 꼴아보고 있고, 팬티만 입고 빠따를 든 대갈빡(정말로 그렇게밖에 안 보였다)은 희번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하, 진짜 겉모습부터 대놓고 진상을 표방하시네.


“야, 넌 뭔데? 정의의 사도라도 되냐?”


대빵 놈이 그렇게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아니. 나 여기 치킨 먹으러 왔는데?”

“형······ 씨! 이놈들한테 개기면 안 돼! 이놈들······ 으윽!”


“빠가새끼는 가만히 짜져 있어. 야. 너 얘 친구냐? 친구 새끼가 맞으니까 기분 더러워?”

“친구 아닌데? 나 쟤 구해주려는 거 아냐. 뭐 하나 알려주려고 그래서.”


“그게 뭔데?”

“공갈치러 온 놈들이면 이번에 새로 입법한 공혈 외 구역 조례 잘 알겠네? 여기서 터지는 분쟁은 한 쪽의 과실이 100%가 아닌 이상 정당방위가 폭넓게 적용되어 고소 및 고발이 매우 엄격하게 제한된다는 것도 알지? 한 마디로 여기서는 쎈 놈이 법이야. 내가 아무리 즈려밟아도 너네 나한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한다?”


“개지랄 하고 있네. 야, 조져!”

그래. 너네 오늘 잘 걸렸다. 한 번 신나게 밟아보자!


그 동안 섭생을 통해 축적해온 야코를 처음으로 발휘할 시간이었다. 아까 전부터 닭을 잡으면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내가 닭을 잡을수록 닭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그만큼 내 반응이 빨라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감할 만큼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 엘레우시아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동물을 잡는 것만큼 체력과 운동신경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닭이라고 생각하자. 지금 나는 닭 잡으러 온 거야······.’


여기서 용역을 하는 놈들은 대개 F급, 잘해봤자 E급이었다. 이 놈들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첫 놈이 쇠파이프를 직선으로 휘두르는 것이 느리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약해 그 놈 얼굴에 내 왼발을 그대로 박아버렸다. 뭔가가 우지끈 부러지는 감각이 내 발끝에 전해져 온다.


“씨발! 저 새끼 뭐야!”


공중으로 도약해 있는 나를 잡으려고 두 놈이 내 위치에 쇠파이프와 무딘 칼을 휘둘렀지만, 나는 빈틈을 보고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면서 바닥에 안착했다. 그리고 내려치는 빠따를 뽑지 않은 검으로 올려 막은 후, 힘으로 그 빠따를 밀어내고 옆으로 굴러 자세를 다시 잡았다.


콰악!


쇠사슬을 감고 있던 놈이 내 목과 상체를 쇠사슬로 감아버렸다. 무슨 SM 플레이냐?


“큰 형, 잡았어! 내가 저 새끼 잡았다고!”


저런, 잡았다고 방심하면 쓰나. 나는 바로 그 놈의 쇠사슬을 내 쪽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끄는 대로 땅바닥에 질질 끌려왔다. 쇠사슬을 놓치지 않기 위해 팔에 쇠사슬을 친친 감았으니 이걸 풀 수 있을 리가 없다.


“으아아아······!”


나는 적당한 거리까지 그 놈을 잡아끌자마자 바로 쇠사슬을 돌리기 시작했다. 질질 끌려다니기 시작하던 그놈은 어느새 바닥에서 붕 떠서 소용돌이를 그리며 돌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소용돌이에 가속력을 붙였다. 어느새 쇠사슬과 그놈은 인간 훨윈드가 되어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어억! 하면서 내 훨윈드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놈들의 비명은 덤이었다.




“으으으······.”

“어어어······.”


쇠사슬 들고 설치는 놈은 곱게 다져진 채로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몇 놈은 내 훨윈드에 맞은 채 입에 거품을 문 채로 바닥에 뒹굴었다. 나는 쇠사슬을 풀고 <흑조>를 허리춤에 동여맨 후 손을 탁탁 털었다.


“니네가 누군지는 대충 알겠는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솔직히 재미없잖아? 어쨌거나 소화 잘 시켜줘서 고맙다.”


하지만 여기 오래 있어봤자 좋을 일 없다. 도망간 놈들은 자기편일 경비대를 부르러 갔을 테니 곧 쏜살같이 이 현장에 당도할 것이다. 공혈출입소로 가려면 지금밖에 없다.


“형······님?”


희수의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우디르급 태세 변환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나는 그의 어깨를 탁탁 치면서 썩소를 지어보였다.


“야. 나중에 보자고. 근데 내가 아까 전부터 궁금하던 게 있는데 말이야······.”

“말씀만 하십쇼, 형님!”


“너 나이 몇 살이냐?”

“여기는 쎈 놈이 형님 아닙니까? 그러니 형님이 형님······.”


“응, 그래. 알았어. 그러면 나 간다.”


나는 이미 상황 판단을 모두 마치고 짐까지 전부 싸 놓은 엘레우시아의 손을 붙잡고 그 장소를 재빨리 빠져나갔다.




다행히 공혈에서도, 공혈을 빠져나온 후에도 따라붙는 놈들은 없었다. 나는 원룸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아탄 후에야 그녀에게 말을 건넬 여유가 생각났다.


“나 인제 찍힌 것 같아. 어쩌면 좋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것이냐?”


“아니, 그냥······ 앞으로도 잘 부탁할 게. 마녀님.”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해라.”


“근데 말이야. 나 강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기는 인제 못 갈 것 같아서.”

“내게 미리 해 둔 생각이 있느니라. 내일부터 그곳으로 가도록 하자.”


미리 준비를 다 해두셨군요. 참 성실하십니다. 대단하세요.


작가의말

요즘 <역사 속의 나그네> 보는데 이 책 재미있네요.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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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지하수의 운디네 +2 16.05.27 637 9 19쪽
20 19. 일상으로 돌아오다 +2 16.05.26 444 8 17쪽
19 18.뛰어들다 (4) +2 16.05.25 469 8 25쪽
18 17. 뛰어들다 (3) +2 16.05.24 419 8 20쪽
17 16. 뛰어들다 (2) +2 16.05.23 406 7 18쪽
16 15. 뛰어들다 (1) +4 16.05.20 511 8 18쪽
15 14. 비박Bivouac 수련 +2 16.05.19 827 7 19쪽
14 13. 변곡점 +2 16.05.18 538 5 18쪽
13 12. 수맥이 흐르는 성 (2) +2 16.05.17 664 9 15쪽
12 11. 수맥이 흐르는 성 (1) +2 16.05.16 652 10 17쪽
11 10. 전을 부쳐먹기 위해 필요한 것 +2 16.05.13 820 14 18쪽
10 9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2) +6 16.05.12 892 12 21쪽
9 8.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1) +2 16.05.11 933 14 18쪽
» 7. 불닭을 잡아라 (2) +3 16.05.10 1,082 15 22쪽
7 6. 불닭을 잡아라 (1) +2 16.05.09 1,145 19 17쪽
6 5. 전골 국물에 라면사리를 +3 16.05.06 1,529 20 13쪽
5 4. 전골이나 해 먹자 +2 16.05.05 1,413 23 14쪽
4 3. 버섯과 거미 사냥 +4 16.05.04 1,427 22 20쪽
3 2. 개미지옥 대피소 +3 16.05.03 1,799 26 16쪽
2 1. 왜 초고수가 튜토리얼 던전에 +7 16.05.02 1,898 28 18쪽
1 0. 프롤로그 +4 16.05.02 2,255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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