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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엉감 님의 서재입니다.

먹어서 강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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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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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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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 버섯과 거미 사냥

DUMMY

3. 버섯과 거미 사냥




커플 캐주얼 헌터와 내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눈 후, 나는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웠다. 몸이 움푹 들어가는 푹신한 침대보가 우리집 원룸보다 나은 게, ‘그냥 여기서 살아?’라는 생각을 한 5초 하게 만들 정도였다.


나는 바로 종업원에게 받아든 영수증을 보면서 생각을 다잡았다. 대피소 숙박비는 진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가격이었다. 캐주얼 헌터가 사례비로 준다는 30만원만(금수저니?) 아니었으면 진짜 피눈물을 흘렸을 가격이다.


‘그것보다, 어차피 먹으면서 강해지면 내일 죽 던전이나 돌면서 잡은 몬스터들로 적당히 요리나 해먹고, 야코 축적하면서 사례도 받으면 되겠네.’


탐지대의 거의 모든 일정은 2박 3일로 잡혀 있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면 탐지대원은 양식에 맞춘 보고서를 작성한 후 팀장의 평가를 받고 그에 걸맞는 수당을 지급받는다. 흘려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탐지대는 아주 훌륭한 열정페이의 산실이다.


‘팀장 마음대로 수당이 정해지니까. 좆같은 팀장 만나면 개망하는 거지.’


내 팀장이 어떤 인성의 소유자인지는 앞에 다 나와있으니까 설명은 생략하겠다. 5분 단위로 쪼아대는 팀장 때문에 두 달 만에 그만두었다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내 팀장은 그 점에서는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근데 욕을 존나 하잖아. 안 될 거야 아마.


그리고 어차피 빵빵한 정규직이 생길텐데 대우도 거지같은 비정규직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다. 이번 일정 끝나면 보고서나 내고 때려쳐야지(수당 못 주겠다고 하면 바로 고용노동부에······). 그리고 프리로 어필을 하든 클랜에 들어가든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내일은 가이드 역할이나 좀 해볼까. 그러려면······.’


나는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박아두었던 초급 헌터 가이드북을 다시 꺼내들었다. 적어도 내일 가는 구역에 뭐가 나오는지는 확실히 다 알아둬야지.




던전의 일출은 석양 때와 똑같이 새파랗다. 나는 먼저 나와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끙끙대면서 출구 밖으로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다. 던전으로 다시 나온 커플은 일출을 보면서 폰을 꺼내 찍기부터 시작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다 찍었으면 출발하죠.”


나는 일부러 약간 건조한 말투로 한 마디 툭 던지고는 앞서서 걸었다.




아침나절부터 튜토리얼 던전에 와서 노는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것보다 어제의 배는 되어 보이는 버섯의 군단이 아침부터 꿈틀거리는 것이 어째······.


“우와. 버섯이 이렇게 많아요?”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 건드리지 않으니까 최대한 피해서 걸으세요.”


“지금 때려도 되나요?”

“여기 있는 애들은 잡아봤자 별 쓸모도 없으니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죠. 이왕 잡을 거 좋은 버섯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굴참나무가 그득한 숲을 가리키면서 답했다.




굴참나무 숲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나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다. 그 기척에 응답이라도 할 겸 바로 칼을 빼들자 오히려 뒤에 있던 커플이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30만 원짜리 영업용 미소를 지어보이며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나무 뒤에 숨어있는 애들이 있어서요. 저만 따라오시면 별 일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그 말과 함께 나는 다섯 발자국 정도 전진했다. 그러자 바로 뭔가가 불쑥 나타났다.


“······송이?”

“음란송이입니다. 맛은 일반 송이버섯하고 똑같은데, 특수한 버릇이······.”


송이가 달려들면서 설명은 거기서 끊겼다. 나는 오른발을 축으로 돌면서 가볍게 첫 송이를 휘둘러 썰었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점프하는 송이 하나를 가볍게 붙잡아서 팔꿈치로 기절시키고는, 뒤의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세 번째 놈까지 발로 걷어찼다.


“으으!”


내 뒤에 서 있던 마법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자 화염구 대신 일렁이는 공기가 튀어나갔다. 나는 몸을 숙여 구르면서 그 공기를 피했다. 뜨거운 공기는 앞으로 퍼져나가 곧 식으면서 흩어졌다. 나는 그 마법사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하나 치켜들고 주의를 주었다.


“마법을 쏠 때는 사람이 맞을 것 같으면 그냥 쏘지 마세요. 그리고 웬만한 몬스터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가만히 계세요. 어차피 여기서는 마법 쏠 일도 없을 겁니다.”

“네······ 죄송합니다······.”


이것도 사실 무료 강의에서 들은 내용이다. 하, 내 임기응변 실력이란······ 공부만 잘했어도 지금쯤 노량진에서 1타 정도는······.


“도와주세요······!”

나는 급히 힐러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몸을 웅크린 채 버섯의 공격을 받고 있는 그녀······ 잠깐, 저 버섯, 지금 도대체 어디를 공격하고 있는 거야!


“이 음란버섯 새끼가! 지금 어디다 박치기를 하는 거야!”


나는 웅크린 그녀의 그······ 아니 등짝을 공격하는 버섯을 바로 발차기로 날려버리면서 힐러녀를 일으켜세웠다. 가까이서 바라다 본 그녀는 긴 생머리에 길게 늘어뜨린 속눈썹이 인상적인 미소녀였다.


“괜찮아요?”

“네······ 덕분에······.”


“자기야, 괜찮아?”

“으응······. 괜찮아······.”


“미안, 자기야. 지켜주지 못해서······.”

“아니야.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는 걸······.”


“그만 갑시다.”


닭살 커플 옆에서 솔로는 암울해집니다.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당신들 몇 년도를 살다가 온 양반들이야? 무슨 TTL 시대 살다 왔어요?




굴참나무 숲을 한 바퀴 죽 돈 후, 나는 두 사람에게 점심을 먹자는 제스추어를 취했다. 그루터기 아래에서 물을 나눠마시고 남은 물을 코펠에 전부 붓고는, 이그니스 라피스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나이프 하나를 꺼내 접이식 도마 위에 씻은 송이를 올려놓고 최대한 가늘고 얇게 썰었다. 두 사람 모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둘 다 라면 끓이는 거 처음 봐요? 하려던 것을 나는 참았다.


“스프는 얼마나 넣으시나요? 붇은 라면 좋아해요?”

“라면은 당연히 붇은 라면이죠!”


내성적일 것만 같던 힐러녀가 처음으로 자기주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나는 옆의 마법사에게도 무언의 동의를 구했다. 그 마법사도 끄덕임으로 동의의 뜻을 표했다.


“네, 그러면······.”


미지근한 물에 미리 담가놓은 버섯육수에 일단 라면 건더기를 넣고, 푸라면의 상징인 양념스프를 넣은 후, 마지막으로 면을 투척하면 끝. 이것으로 대피소에서 산 푸라면으로 끓인 버섯라면이 완성되었습니다.


“드시죠. 시장하실 텐데.”


나는 휴대용 그릇을 두 사람에게 나눠주면서 라면을 권했다. 잘 먹겠습니다는 소리도 없이 젓가락부터 가지고 덤벼드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나 보다. 나도 말없이 코펠로 젓가락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맛있어!”


버섯육수가 들어간 라면이라 그 깊고 그윽한 맛이 다른 라면과는 차원을 달리 했다. 물론 ‘감히 라면 따위에 버섯을 투척하다니!’라고 분개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차피 여기 널린 게 버섯이라 하나 정도 넣는다고 딱히 흠될 것도 없잖아?


나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 라면계의 혁신을 혀로 느끼면서 코펠을 비워나갔다. 면을 거의 다 건져먹었을 즈음, 힐러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바로 라면의 영원한 친구 김치와 찬밥!


“헤헤······ 김치를 꺼내는 타이밍이 좀 늦었네요.”


나는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면서 찬밥을 투하했다.




라면을 먹고 나니 몸이 나른했다. 힐러녀가 나눠주는 민트초코칩을 먹으면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으레 던지는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했네. 이름이 뭐예요?”

“제 이름은 안재유에요. 제 친구는······ 홍영희고요.”


“저는 이상협입니다. 두 분, 어디서 왔어요?”

“저희요? 저희는 분당에서 왔어요.”


“아······ 분당······ 우리집이랑 가깝네. 전 용인 삽니다.”

“검사······ 아니 이상협 씨는 언제부터 여기 오신 거예요?”


어제부터요.


“얼마 안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초보라서······.”

“그래도 꽤 검을 능숙하게 다루시던데요.”


당신. 진짜 검사들이 검 어떻게 쓰는 지 본 일 없지?


그건 그렇고, 버섯육수로 끓인 라면을 먹으니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이게 바로 양생법이라는 건가?


“이제 어디로 갈까요?”

“거미를 잡으러 갈 겁니다.”


“거미요?”

“요즘 통조림 업계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캡틴 크라운’ 사에서 내놓는 주력 통조림이 뭔지 아시나요?”


“오렌지 스파이더 통조림이잖아요.”

“맞습니다. 맛과 영양, 그리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모범적인 식가공품 중 하나죠.”


오렌지 스파이더 통조림. 귀엽게 데포르메한 거미 캐릭터가 소라게마냥 오렌지 껍집을 뒤집어쓴 채 뽈뽈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그림을 박아넣은 통조림이다. 거미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획기적인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에도 자주 나오고는 한다.


실제로도 오렌지 스파이더는 몸집이 좀 큰 게 비슷하게 생긴 외형으로 잡는 데 거부감도 적고 헌터들도 많이 사냥해서 먹고는 한다. 나는 오렌지 스파이더 꼬치만 십여 개를 사서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전사도 보았고, 말린 오렌지 스파이더 포를 질겅질겅 씹고 다니는 여마법사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개미지옥 대피소에 계시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어느 정도 숙련된 헌터들만 아는 곳인데······.”

“아! 저희들이 동굴 던전 탐험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보쇼. 대피소가 동굴 던전은 아니잖아?


“어제 무슨 경계경보가 내려진 것 같던데, 괜찮을까요?”

“아. 그건 오늘 아침부로 해제되었습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네요.”


대피소 식당에 앉아 아침 뉴스를 보다가, 뉴스 꼭지에 달린 허들드롭 해제를 확인하고 나오기를 잘했다.




거미들은 보통 먹이가 풍부한 오렌지나무 근처에 머문다. 오렌지나무가 많은 T-3구역, 속칭 ‘과일촌’에 도착하자, 꽤 많은 헌터들이 모여 여기저기서 오렌지 스파이더를 잡고 있었다. 오렌지를 따는 헌터들은 덤이었다.


“여기가 과일촌입니다. 두 분 다 공격 및 치료할 준비를 하세요.”


재유는 기다렸다는 듯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나는 나무에 매달린 커다란 오렌지 같은 것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소리에 반응한 오렌지 껍질이 벌어지더니 오렌지 스파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소라게를 닮은 외양만 보건대, 거미와의 공통점이 어디 갔나 싶다.


오렌지 스파이더는 표적을 확인하자마자 내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고, 나는 정확한 타이밍에 거미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칼을 들었다. 그리고 거미는 보기 좋게 오렌지 꼬치가 되었다.


“한 마리 잡았네요.”

“상협 씨, 뒤에!”


“이크!”


동료가 공격당한 걸 본 오렌지 스파이더들이 집단행동을 개시했다. 오렌지나무에 달려 있던 거미떼가 삽시간에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두 걸음 정도 물러나 침착하게 하나씩 거미들을 썰고 발로 차고 손으로 쳐냈다. 거미들은 키익, 키익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뒹굴었다.


“어때요. 이런 식으로 잡으면······.”


키에에에엑!

갑자기 굉음과 함께 주위의 헌터들이 갑자기 우리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쳐! 다들 도망치라고!”

“살려주세요! 초대형 거미가 나타났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경우의 수가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다. C급 던전에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그야말로 집채만한 그레이터 스파이더가 나타나 헌터들을 쫓고 있었다. 사방으로 달아나던 캐주얼 헌터들 중 한 명이 붙잡혔다. 거미는 집게발을 뻗어 그 캐주얼 헌터를 잡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줘요!”

‘이런 젠장. 여기서 허들드롭이······!’


그런데 내가 나서기도 전에, 힐러녀 영희가 갑자기 나서서 돌을 거미에게 던지는 것이 아닌가! 거미는 캐주얼 헌터를 놓고는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거미의 시선으로부터 돌려놓기도 전에 재유가 덤벼들었다.


“상호야! 안 돼!”


저 미련한 마법사는 지팡이를 지켜들고는 화염구를 쏘려 애를 썼지만, 불길도 일지 않는 뜨거운 공기로는 거미의 몸집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저 인간이 처음 듣는 이름을 부른 것 같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주제도 모르고 덤벼들지 마!“


나는 재유를 몸통박치기로 밀쳐내고 그를 대신해 거미 집게발에 부딪혔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찢어지는 격통이 온 몸을 강타한다. 나는 그 아찔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낙법을 해 바닥에 구르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나는 거미의 주의라도 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단단한 돌을 찾다가 적당한 크기로 부숴진 화강암을 집어들고는 던졌다. 하지만 이런 돌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퍼엉!


거미가 화염에 휩싸이더니, 흡사 대포를 쏘는 타격음과 함께 온몸이 부서져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내 몸에도 폭발의 열로 달궈진 거미의 살점이 묻었다. 흡사 대게를 삶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대체 누가 이런 참격을······?


뒤를 돌아보니 제복과 수트를 입은 일군의 착검한 사내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비켜서면서 그들의 제복에 붙은 배지를 보았다. 최소 B급 이상 되는 프로 헌터들이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그가 ‘도련님’이라 부른 사람은 바로 내가 방금 전까지 가이드를 하던 재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저 두 사람은 최소 금수저가 확실해 보인다. 그는 재유를 일으켜 세우고는 그의 몸 곳곳에 묻은 거미의 노릇노릇 구워진 살점과 껍데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온 몸이 그 아드민 놈한테 당했을 때처럼 쑤시고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흙수저도 다쳤는데 좀 봐 주면 안 되나.’


재유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경호원은 재유의 상태를 살피더니, 갑자기 그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옆에 서 있던 힐러녀가 두 손으로 자기 입을 감쌌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잘못되면······ 몬스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어쩔 뻔 했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뻔한 결말이 있은 후, 갑자기 그가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재유가 그를 급히 뒤따라 붙은 것으로 보아 ‘수고하셨습니다. 사례금이라도······.’ 같은 고운 말은 아니리라. 이런 사태를 겪어본 일이 있는 나는 최대한 공격 의사가 없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두 손을 어깨 위로 들었다. 재유는 ‘아니에요, 김원창 씨. 제가 오자고 한 거예요. 이 사람은 잘못 없어요!’라고 외쳤지만, 그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바로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면서 소리쳤다.


“너······ 도대체 도련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김원창 씨!”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인간한테 한 대 맞았다고 해서 내가 뭐 쓰러지거나 비틀거릴 일은 없지만,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는 을이었다. 여기서는 행패를 부린다고 해서 중재해줄 공권력도 희박하다.


나는 ‘들으셨죠?’ 하는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비록 행적은 허접해보이지만, 그래도 내 키 180cm은 된다) 재유를 흘낏 쳐다보았다. 재유는 아까 전과는 달리 아주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비서(나중에 재유가 귀띔해 주었다)를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분은 저를 보호해 주신 분입니다. 당장 사과하세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윗선에 보고 드리는 수밖에요.”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똥 씹은 얼굴로 변했다. 그는 죽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슬쩍 숙였다. 하지만 재유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제대로 사과하세요.”


그는 다른 사람들이 다 보이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나는 일부러 그가 들으라는 듯 피 섞인 침을 옆에 뱉었다. 재유 또한 붉어진 얼굴로 내게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역시 대단하신 분이셨네. 그런데, 저기······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요?”


“네. 그러시죠.”

“방금 전에 영희 씨를 보고 상호라고······.”


“아······ 그게······.”


그는 갑자기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남들 듣는 것이 부끄러운지 내 귀에 조심스레 속살거렸다. 그리고 이름의 비밀을 깨달은 나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여······여장······.”

여장남자라고? 여자가 아니었어?


“그럼 당신들······ 혹시 게······.”

“절대 아니예요!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쪽 절대 아니에요! 맹세할 수도 있어요!”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려는 인간들이 여기 있습니다. 서로 ‘자기’라고 불러놓고 뭐가 아니야! 지금 내 지성과 판단력을 시험하려는 거야?


하, 잠깐 동안이나마 저 여장남자를 예쁘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쳤지.




재유는 헌터들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면서 그 여장남자와 함께 공혈로 이동했다. 남아서 상황 정리를 하던 그 비서 놈은 개에게 뼈다귀 던져주듯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도련님이 직접 주시는 사례금이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


먼 훗날, 내가 그에게 그때 나에게 한 하대와 폭언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에 이자를 조금 붙여 갚아주었다. 뭐, 그거야 먼 훗날 일이고······.

내 표정과 감정을 읽은 탓인지,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차피 도련님 뜯어먹으려고 달라붙은 거잖아. 너 같은 양아치 새끼들 유치장에 안 처넣는 게 다행인 줄 알아. 헌터들한테 뒤지기 싫으면 그냥 받아.”


나는 미소를 가장한 썩소를 지으면서 그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요?”


뒤돌아서던 그가 우뚝 멈춰섰다. 그는 고개만 돌린 채로 답했다.


“내 이름은 김원창이다. 명함이라도 필요해?”


“아니요. 명함은 됐습니다. 그 이름,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고이 잘 기억해두고 있지요.”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래. 네 이름. 잊지 않아주지. 오래오래 기억해 주지. 최소한 환갑 잔칫날까지.




재유와 영희······ 아니 상호도 사라지고, 거미를 일격에 해치운 호위 헌터들과 지부 헌터들도 사라지고, 캐주얼 헌터들도 다들 지부 헌터들의 지시를 따라 대피소나 공혈로 가 버리고, 홀로 남은 나도 터덜터덜 과일촌 던전을 걸어 내려가면서 뒤에 푸른 석양이 따라붙었다.


“후······ 힘든 하루였다.”


거미한테 한 대 맞은 충격으로 온 몸의 삭신이 쑤셨지만, 막판에 벌어진 좆같은 일로 상처입은 자존심이 더 아팠다. 에휴, 누굴 원망하겠어. 오판의 대가인 셈 쳐야지, 뭐. 그리고 오늘은 꼭 공혈 근처의 할매 대피소에서 쉬어야겠다.


그래도 몸의 회복력이 빨라지는 게 느껴지는 건 수확이라고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뭐야, 이거?”


어깨에 아직도 노릇노릇한 거미의 살점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살점을 뜯어서 땅바닥에 버리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그 살점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나는 이 살점을 김원창이라는 놈의 살점으로 치환하면서 아주 잘근잘근 씹었다.


‘당신, 사람 잘못 봤어. 내가 이 일을 이자 쳐서 어떤 식으로 갚는지 똑똑히 잘 보라고.’


나는 살점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분노를 삭였지만, 어느새 씹을수록 분노는 천천히 가라앉고 오히려 새우의 맛이 나는 거미의 살점을 음미하고 있었다.


“맛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며 과일촌을 걸어 내려갔다.


작가의말

실제로 거미 살이 맛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뭐, 사람마다 다르고 아주 이상하다는 평도 적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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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전골이나 해 먹자 +2 16.05.05 1,413 23 14쪽
» 3. 버섯과 거미 사냥 +4 16.05.04 1,427 22 20쪽
3 2. 개미지옥 대피소 +3 16.05.03 1,799 26 16쪽
2 1. 왜 초고수가 튜토리얼 던전에 +7 16.05.02 1,898 28 18쪽
1 0. 프롤로그 +4 16.05.02 2,254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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