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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엉감 님의 서재입니다.

먹어서 강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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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5.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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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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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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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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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6. 크레이지 파티 (6)

DUMMY

26. 크레이지 파티 (6)




“어어?”


기쁨에 잠겨 있던 내 몸이 갑자기 바닥으로 풀썩 꺾였다. 엘르가 내 팔을 잡아 쓰러지는 꼴은 모면했다.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한 모양이다. 마나가 바닥이구나.”


그녀는 블링크로 성벽 일부를 떼어다 주었다.


“일단 이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거라. 슬라임 함량이 매우 높다.”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고갈된 야코를 보충하면서 공성전이 끝난 공터를 휘 둘러보았다. 바닥에 내던져진 라이더는 이미 응급구조대가 병실로 옮겼고, 드래곤은 이미 안전요원 쪽 마법사들이 시전한 그라비티에 짓눌린 채 우리로 실려 갔다.


사이먼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승리가 확정되자마자 재빨리 자리를 떴다고 한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더 묻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일단은 방으로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1차전이 끝난 다음 날 저녁까지 나는 침대에 누워 빈둥거렸다. 푹신한 베개를 베고 있는 내 옆에서 엘르와 희수가 1차전의 후일담을 전해 주었다.


방어팀 중에서 승리한 팀은 우리 ‘킹무성’ 뿐이었다. ‘킹무성’의 덕을 본 상대편 방어팀도 무임승차 식으로 1차전을 통과했다. 나머지 두 조는 공격팀 측이 승리했다.


‘리벤저’가 속한 1조는 성게와 해파리를 비롯한 온갖 독성 해산물로 가득 덮여 있는 방어팀의 성을 말 그대로 ‘썰어버렸다.’ 듣자 하니 회칼을 집어 든 사이먼이 성 전체를 깨끗하게 발라버리고, 내게도 써 먹었던 ‘페이퍼, 스톤’을 사용해 성벽 기단을 무너뜨렸다고 한다.


조창환의 ‘카르마’가 있는 2조도 방어팀 측에 완승을 거두었다. 창환은 슈리켄으로 방어 측의 의욕을 꺾어버리고, 단 한 번의 도약만으로 성벽 근처에서 깃발이 있는 곳까지 뛰어들어 방어 측의 데펜덴다를 부수고 깃발을 탈취해갔다.


우리가 쌓은 아이스크림 성은 녹아가는 와중에 불도저가 밀어버렸다. 기념비적인 아이스크림 성을 해체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이 꽤 많았다고 한다.


그 날 저녁부터 나는 다시 훈련을 개시했다. 2차전은 몬스터와의 듀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몬스터이든지간에, 지금의 나로서는 발릴 가능성이 높다. 전력을 더 끌어 올려야 했다.




“간격을 좁혀라! 상대는 반드시 우리의 빈틈을 노린다!”


예선 때 자신했던 것처럼, 그녀는 풍부한 전투 경험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를 전위에 세우고 희수가 가장 취약한 왼쪽 후위에 서고, 그녀는 오른쪽 후위에서 지속적으로 오더를 내렸다.


“전위는 페이크를 섞으면서 나흐라이젠을! 후위는 간격을 더 좁혀! 벌어지면 안 돼!”


전투에 있어 엘르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알아듣기 힘든 중세 독일의 검술 용어를 사용했지만 익숙해질수록 탁월한 전술적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더미 인형을 찔렀다. 인형은 검격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상체가 하체에서 분리되어 벽에 처박혔다.


콰앙!


나는 숨을 고르면서 벽에 박힌 칼날을 뽑았다.


“잠깐만. 물 좀 마시자······.”


나는 수건을 두 사람에게 건네주고 물통을 열었다. 두 번째 훈련부터는 엘르가 만든 비장의 약을 아예 물에 4~5 방울 정도 타서 마셨다. 마실 때마다 위장을 긁어내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통증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들이켰다. 근세포 하나하나가 찢어지면서 더 강해지는 느낌이 온몸을 휩쓸었다.


“후우······ 다시 하자.”




2차전을 치르기 전날, 나는 일부러 그 드래곤 라이더 병문안을 갔다. 접골을 마치고 대량의 야코 주입을 통해 중상을 어느 정도 회복한 그 라이더는 이제 팔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로 병실에 누워 링겔을 맞고 있었다. 같은 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복잡한 눈길로 나를 맞았다.


그는 곧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과일 세트를 탁자에 놓으면서 인사했다.


“이둔의 황금사과입니다. 드시고 어서 기력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 팀원들의 눈빛이 삽시간에 돌변했다. 부르는 게 값인 이둔의 황금사과를 그것도 세트로 가지고 왔으니 안 그렇겠나. 하지만 라이더는 그 황금사과를 보고서도 미동이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대단하더군요. 이름이······.”

“이상협입니다.”


“공중에 떠올라 싸우면 무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당신이 내 고정관념을 깨 버렸어요.”

“성체도 아닌 드래곤을 그렇게 능숙하게 다루는 당신도 만만치 않지. 소속된 클랜 있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 관리하려면 한 달에만 몇 천씩 깨질 텐데?”

“그래서 여기 온 것 아닙니까. 엘릭서를 노리고 말이죠.”


“나 때문에 먹고 살 길이 막혔다는 얘기네. 죄책감이 드는데?”

“그 입 닥치세요. 그리고 당신이 나한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데 죄책감이 무슨 소용이요?“


“오빠······!”


옆에 앉아 있던 팀원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답했지만 나도 그도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 채회연······.”


나는 옆에 놓인 종이에 내 전화번호와 ‘킹무성’ 주소를 적어 그에게 건넸다.


“이번 크레이지 파티 끝나면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 내가 당신의 스폰서가 되어드리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채회연과 같은 팀인 여성 헌터가 다시 끼어들었지만 나는 빠르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내 재력은 황금 사과로 증명했는데? 그리고 채회연 씨. 나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있어요. 연락하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 당신을 끌어들일 겁니다.”




드디어 2차전의 날이 밝았다. 방어팀 두 팀과 공격팀 여섯 팀이 살아남아 총 8팀이 2차전을 치렀지만, 사실상 크레이지 파티의 대결 구도는 3파전으로 굳어진 상황이었다. 존재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리벤저’ 팀, 각광받는 슈퍼루키인 ‘카르마’ 팀, 그리고 무명이었다가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며 이번 시즌 최고의 언더독 소리를 듣고 있는 우리 ‘킹무성’ 팀.


“이제 크레이지 파티의 일정은 돌고 돌고 돌아 어느덧 중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다들 기분이 어떠세요?”

“시끄럽고 진행이나 해!”


이제 헌터들과 관객들도 저 진행에 반쯤 해탈했다.


“2차전에서는 2등 상품이 공개됩니다! 궁금하시죠? 바로 이겁니다!”


안내걸이 덮개를 벗겼다. 유리판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레고 비슷한 집과 사람의 형태였다.


“아게르! 근면 성실하고 농업에 특화되어 있는 종족입니다! 2등을 차지하신 분들께는 1만 헥타르의 농지와, 농기구, 그리고 아게르 1천 명을 증정하겠습니다!”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게르를 매매하는 것이 노예매매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적잖이 불편했다.


“그러면 이제 본선 2차전을 공개토록 하겠습니다! 2차전은 바로 ······ 두구두구두구두구······ 드디어 이게 나왔네요. 강자에게는 기회를! 약자에게는 시련을 줄 2차전은 바로! ‘눈늑대’ 잡기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내가 그렇게 강조하던 ‘눈늑대.’ 정식 명칭은 ‘화이트 웨어울프.’ 웨어울프 중에서도 가장 난폭하고 잔인한 종으로 B급 헌터와 A급 헌터를 가르는 척도로 일컬어지는 몬스터다.


“2차전에서는 총 여덟 팀이 출전해 그 중 세 팀에서 다섯 팀을 떨어뜨립니다! 적으면 세 팀, 많으면 다섯 팀이 통과하니 여유를 갖고 임해주세요! 그러면 선수 분들, 단상 위로 올라오세요!”


우리 여덟 팀은 각자 할당된 방의 번호표를 뽑기 위해 단상 위에 올라섰지만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각자가 뽑은 번호대로 던전에 입장하시면 됩니다. 한 마리부터 여덟 마리까지 랜덤하게 ‘눈늑대’가 소환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 상황에 처하시면 각자의 번호표에 부착된 붉은 버튼을 누르세요. 강제 텔레포트를 해 줄 겁니다!”


내가 뽑은 번호표에 적힌 숫자는 ‘5’였다. 우리는 번호표를 목에 걸고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자.”


나는 발도 자세로 던전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던전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발도만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으르르르······ 크오오오오!


선풍에 반응하듯 피에 굶주린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곧 수묵 위에 칠한 듯 새하얀 갈기에 회색 점을 눈동자에 그려 넣은 ‘눈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르르르······.


“강희수, 긴장 풀어라. 트라이앵글 대형만 안 무너지면 돼.”

“일단은 촌하우로······.”


“그딴 거 모르고, 일단은 찌르고 베고 보는 거야!”


나는 도약만으로도 바닥에 자국을 남기며 뛰어오르는 ‘눈늑대’의 궤적을 놓치지 않으면서 반격까지 염두에 둔 진형을 짰다. ‘눈늑대’는 커다란 진동을 일으키며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사람 머리 하나는 거뜬히 날려버릴 앞발을 휘둘렀지만, 나는 그 앞발을 피하고는 오히려 ‘눈늑대’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슈트루츠하우로 그의 몸통을 찢었다.


크으오! 크르르······.


괴물은 민첩하게 물러섰다. 나는 포스 필드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혹시나 있을 부상을 막으면서 ‘눈늑대’를 찢으려던 검을 내렸다. 혈우성풍의 준비 자세였다.




‘성공할 수 있을까?’


훈련을 반복하는 동안 내 손바닥은 누더기가 되어갔다. 물집 잡힌 손이 다시 터지고, 가득히 박힌 피물집을 일단 실을 꿴 바늘로 터뜨리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2차전을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 박혀 있었다. 엘르는 여전히 위로 대신 조언을 건넸다.


‘잡념이 섞이면 실패하는 기술이다. 비워라. 빈 항아리가 되면 알아서 채워질 것이다.’




혈우성풍血雨腥風!




일단은 발도 그 자체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킨다. 깨끗하게 잡념을 날려보낸다는 느낌으로, 칼날이 된 바람과 바람이 된 칼날이 뒤섞여 상대를 찢는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대 또한 나를 찢을 기세로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나의 칼날은 바람이다. 바람은 흐름이 되어 강한 것을 감싼다. 그리고 그 흐름을 감싸서 부순다.


우둑- 뚜두둑-


바람에 닿은 ‘눈늑대’의 앞발에서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앞발가락이 하나한 기괴한 방향으로 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의 검은 방향을 틀어 괴물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골반까지 긴 검상을 그었다.


촤악!


‘마치 달을 베는 느낌으로, 살을 에는 느낌으로.’


1격이 들어가면 대각 방향으로 다시 올려 벤다. 그 다음에는 다시 약간 각도를 틀어 베고······ 그렇게 8격을 꽂아 넣으면, 상대는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다.


서걱! 서걱! 푸슉! 서걱! 푸욱! 우드득! 뿌득!


살이 베어지는 소리가 어느새 뼈를 으스러뜨리는 소리로 변해간다. ‘눈늑대’의 뼈를 직격으로 올려벨 때는 하마터면 손에서 힘이 빠질 뻔 했지만, 그렇게 되면 부러지는 건 오히려 내 손목이 된다. 찢기 시작하면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내 온 몸이 적의 피로 물들 때까지······.


촤아아악!


따뜻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눈늑대’는 온 몸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나도 피를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섬뜩하면서도 짜릿한 기분이 온 몸을 감싼다······.


“아직 더 있어!”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늑대’ 세 마리가 어느새 진형을 짜고 우리를 찢어발길 준비를 마쳤다. 나는 자세를 바로 바꾸어 폭렬공을 쓸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엘르가 나를 제지했다.


“기다려. 마법을 쓸 게.”

“어떻게······.”


“라이트닝 필드.”


따끔한 느낌과 함께 온 몸에 필드가 쳐졌다. 나와 희수의 머리카락이 솟아올랐다. 엘르의 눈동자 또한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가 간단히 영창했다.


“바이오 쇼크웨이브.”


엘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들고 있던 싹 난 지팡이가 눈부시게 타올랐다. 거기서 솟구친 거대한 전격의 덩어리가 곧 사방으로 뻗어나가 세 마리의 ‘눈늑대’를 직격했다. 벼락치듯 거대한 굉음과 함께 곧 새하얗던 ‘눈늑대’가 시커멓게 그을린 형체만 남겼다.


“죽었나?”

“아직 안 죽었어! 폭렬공을······!”


나는 그 전격을 직격으로 받고도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는 ‘눈늑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들었다. 세 마리가 동시에 내게 달려들어 어깻죽지, 옆구리, 허벅지가 찢겼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폭렬공으로 한 놈의 숨통을 끊고 희인요수로 나머지 두 놈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제발 좀 죽어라! 좀비 같은 새키들······!”


나는 이번에는 전위뢰 자세를 취했다. 곧 전격 없는 굉음이 던전 안을 흔들었다.




“하아, 하아, 하아······ 끝났나?”


던전의 끝에는 여전히 눈부신 햇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9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물론 8-90%가 ‘눈늑대’의 피다) 세 사람이 던전 밖으로 나서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헐떡임도 이전보다 적어지고 심장도 더 이상 심하게 쿵쾅거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힘이 풀렸다. 희수가 나를 일으켜주었다.


“다른 팀은 어떻게 되었지?”


곧 ‘카르마’ 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 명이 아니었다. 적어도 대여섯 명은 되어 보이는 안전요원들이 창환을 부축하고 있었고, 팀원 중 한 명은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카르마’가 떨어졌다. 창환도 부상당하고, 팀원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나는 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비켜 주세요! 부상자를 이송하겠습니다!”


“조창환 당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그는 입술을 깨물면서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부축을 받아 그곳을 떠났다.




통과한 팀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유일한 주제는 한때 우승 후보로까지 꼽혔던 ‘카르마’ 팀의 탈락 소식이었다. 나는 부상을 치료하러 의무실에 왔다. 거기에는 사이먼도 있었다. 팔에 입은 열상裂傷을 치료하러 왔다나.


“들으셨습니까? ‘카르마’ 팀이 탈락했다고 합니다.”

“직접 보고 오는 길이야. 너는 당연히 통과했겠지?”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답지 않게 표정이 무거웠다.


“방심은 금물인데······ 안타까운 헌터 한 명이 여기서 헌터 생명이 끝나겠군요.”


중상을 입은 헌터는 팔 한 쪽이 완전히 찢겨 없어져 있었다. ‘눈늑대’가 그 팔을 먹어치운 것이 분명했다. 검을 잡는 오른손이 찢겨 나갔으니, 이제 다시는 검을 들 수 없을 것이다.


이왕 만난 차에, 나는 품고 있는 의문도 해소할 겸 블러핑도 걸 겸 그에게 송곳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 뭐 숨기고 있는 거 있지?”

“그런 거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왜 1차전 끝나고 서둘러서 사라지셨을까?”

“2차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일정이라도 보고해 드릴까요? 그리고 남을 모함할 생각이면 그럴 듯한 물증을 들고 오시죠. 더러운 블러핑이나 치지 마시고요.”


“그런 적 없는데요?”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우위를 점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부러 내색하지는 않았다.




여덟 팀 중 네 팀이 2차전을 통과했기 때문에, 5등 상품은 추첨으로 선발하게 되었다. 추첨과 함께 사회자는 우리에게 3차전 종목을 공개했다.


“3차전은 바로 미궁! 라비린투스입니다! 라비린투스 안에 포진한 몬스터들을 무찌르고 탈출한 순서대로 1등부터 4등 상품이 정해질 것입니다! 이제 3차전까지 남은 시간은 꼬박 사흘! 모두들 마지막 스퍼트! 잊지 마세요!”


‘······ 저 말을 글래머 여자 사회자가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사회자 양 옆에 포진한 안내걸들 가슴 사이즈를 흘끗 살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89, 94······.




“이제 사흘 남았네.”

“여기까지 왔어.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당연하지, 형! 이제 절대 물러설 수 없어!”


우리 앞에는 쉬림프 스콜피온으로 튀기고 빚은 라조새우와 사오마이가 놓여 있었다. 저번에 못 치른 자축 파티도 치를 겸, 내 야코도 충전할 겸 엘르가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만든 진수성찬이었다. ‘떼렛데 데떼 뗏- 엘르는 오늘 사오마이 요리사랍니다-’ 같이 괴이한 외계어를 나불대면서 만든 음식이긴 했지만 맛은 광대가 승천할 정도로 뛰어났다. 당연히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가장 좋아한 사람은 엘르 본인이었다.


“으음! 여기에 공부가주 한 잔이면······.”


“천 년 묵은 마녀 같은 소리는 그만 하시고, 자, 우승을 한 발짝 앞에 남겨놓고 치르는 자축 파티! 3차전까지 통과해서, ‘리벤저’ 놈들을 눌러버리고 우승 한 번 해 봅시다! 씨앗 쟁취를 위하여!”


“위하여!”




초가을의 바닷바람은 세차게 머리를 흩날린다. 짙은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끝없는 어둠 속을 응시하면서, 나도 엘르도 쉬이 잠에 들지 못해 결국은 베란다로 나왔다. 물론 2차전에서 격렬하게 야코를 소비해 눈꺼풀이 제대로 뜨이지 않을 정도로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호기심과 두근거림이 더 강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구나. 한 잔 하겠느냐?”

“아니. 모든 일정이 끝나면 마실 게. 헌터에게는 술을 입에 대지 말아야 할 때가 있으니까.”


그녀는 피식 웃었다.


“안 그럴 것 같이 생겼으면서, 넌 의외로 중세 수도사 같은 말을 잘 하는구나.”

“칭찬이야, 욕이야?”


나는 그 말과 함께 밤바람 속으로 갈앉는 엘르의 머리칼을 훑어넘겼다. 그녀는 씨익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손에는 가벼운 샴페인 한 잔이 들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 약속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구나.”

“무슨 약속?”


“바게트 좀비를 잡을 때 한 약속 말이다. ‘나의 약함과 두려움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구하겠습니다······.’”

“그럴 기회가 없었잖아. 아직까지는.”


엘르는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속눈썹이 보이는 위치까지 가까워졌다. 역시 금빛을 띄는 그녀의 속눈썹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그녀의 눈동자를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너를 전적으로 믿고 가도 될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비★밀.”


그 한 마디에 나는 기운이 쪽 빠져버렸다. 그리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휴. 노친네 분위기 못 타긴. 난 자러 간다.”

“뭐, 뭐라고! 노, 노, 노친네! 네 이 노오옴!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 흐허허헝······.”


그녀는 방방 뛰면서 나를 쫓아왔지만, 곧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앙. 넘어졌느니라······.“

“괜찮아?”


“피가 나느니라······ 아앙······.”

“괜찮아. 호 해줄게······ 라고 할 줄 알았지?”


“이······ 이게······ 으아앙······.”

“알았어. 업혀. 약 발라야지.”




어설픈 밀당이 있었던 밤은 물러가고, 이제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네 팀의 팀원 분들은 모두 단상 위로 모이십시오! 이제 마지막 1등 상품을 공개하겠습니다! 1등 상품은 바로, 전설적인 유니크 아이템이지요. 무려 22년 간의 추적 끝에 비로소 저희가 입수해 공개하는 상품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안내걸이 마지막 덮개를 벗겼다. 1등 상품은 돋보기를 대야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상품에 대해 지겹게 들어왔던 나는 그 크기를 보고 씨익 웃었다.


“바로 이겁니다! 전설적인 대지의 신, 이오스케하의 혼이 깃든 옥수수 씨앗! 무려 1천만 명을 동시에 먹여살릴 수 있다고 하는 엄청난 씨앗이지요!”


나는 예의상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순간, 증오 어린 살기가 내 목덜미를 찔러왔다.


“!”


나는 바로 뒤돌아 주위를 살폈지만, 살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왜 그러느냐? 포스 필드까지 켜고······.”

“아, 아니야, 아무 것도······.”


나는 포스 필드를 끄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도대체 누구였지? 누가 대체······.


“이제 라비린투스 문을 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으신 네 팀의 팀원 분들은 모두 일어서 입장해주십시오!”


네 팀의 팀원 12명은 라비린투스 입구에 섰다. 미궁의 문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그 미궁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가의말

또다시 일주일의 시작이군요. 모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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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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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Klous
    작성일
    16.06.06 20:10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4 구작가
    작성일
    16.06.07 09:12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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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뛰어들다 (2) +2 16.05.23 406 7 18쪽
16 15. 뛰어들다 (1) +4 16.05.20 510 8 18쪽
15 14. 비박Bivouac 수련 +2 16.05.19 826 7 19쪽
14 13. 변곡점 +2 16.05.18 537 5 18쪽
13 12. 수맥이 흐르는 성 (2) +2 16.05.17 663 9 15쪽
12 11. 수맥이 흐르는 성 (1) +2 16.05.16 652 10 17쪽
11 10. 전을 부쳐먹기 위해 필요한 것 +2 16.05.13 820 14 18쪽
10 9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2) +6 16.05.12 892 12 21쪽
9 8.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1) +2 16.05.11 932 14 18쪽
8 7. 불닭을 잡아라 (2) +3 16.05.10 1,081 15 22쪽
7 6. 불닭을 잡아라 (1) +2 16.05.09 1,145 19 17쪽
6 5. 전골 국물에 라면사리를 +3 16.05.06 1,529 20 13쪽
5 4. 전골이나 해 먹자 +2 16.05.05 1,413 23 14쪽
4 3. 버섯과 거미 사냥 +4 16.05.04 1,426 22 20쪽
3 2. 개미지옥 대피소 +3 16.05.03 1,799 26 16쪽
2 1. 왜 초고수가 튜토리얼 던전에 +7 16.05.02 1,897 28 18쪽
1 0. 프롤로그 +4 16.05.02 2,252 2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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