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101
추천수 :
106
글자수 :
153,173

작성
19.08.28 02:24
조회
46
추천
3
글자
9쪽

선매일

DUMMY

선매일의 부모는 한 송이 매화나무처럼 기품있는 여자아이로 자라라는 뜻으로 매일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러나 아쉽게도 매일은 그런 부모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선매일은 어릴 적부터 묘한 아이였다.

어딘지 넋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있는 일이 많았다.

누가 불러도 알아차리지 못 하는 일도 종종 있었고,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서 뭘 하는가 하면 대부분 책을 읽고 있었다.

글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하는 나이 때부터

서른둘이 된 지금까지도 매일은 한결같았다.


부스스하게 까치집을 지은 머리카락,

약간 창백하면서도 기미가 살짝 낀 얼굴,

둥그런 뿔테안경,

색이 엷은 입술.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복에서 사복으로 바뀐 정도일까.


사복도 딱히 교복과 다를 건 없었다.

소위 말하는 스쿨룩을 주로 입었는데,

서른이 넘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 덕에 그냥저냥 어울렸다.


매일의 부모는 매일이 어렸을 때는 솔직히 그런 매일의 모습을 좋아했다.

책 한 권 쥐여주면 칭얼거리지도 않고 조용한 매일은 다루기 편한 아이였다.

심지어 친구들과 모임에 빠져 점심, 저녁 모두 밖에서 보낸 매일의 어머니가

급하게 귀가했을 때도 어둠 속에서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책을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매일의 부모님을 부러워했다.

어쩜 저렇게 손이 안 가는 아이냐고.

게다가 책이라니!

만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는 아이.

어쩌면 천재인지도 모른다.

주변의 호들갑에 매일의 부모님도 뿌듯해했다.

어디까지나 유치원 때까지였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매일은 변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어머니에게 떼밀려 억지로 학교에 가기는 했지만, 수업엔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동화책만 계속 읽고 있는 매일은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혔다.


-어머님, 죄송하지만 수업시간에는 책을 보지 못하도록 해주시거나

학교에 책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짜증 섞인 담임의 말에 매일의 어머니는 수화기 너머의 선생에게 보일 리도 없건만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매일에게 손을 들었다.


“너 대체 왜 학교에 책을 가져가는 거야?

이건 다 압수야!

앞으로 책가방 아침마다 검사받고 가져가!”


매일은 맞은 뺨을 감싸지도 않고 멍하니 자신의 어머니를 올려보고 있었다.

아프지도 않은 걸까.

아니면 감각이 없는 걸까.

그 날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딸을 두렵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책을 가져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매일의 손에서 책이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매일은 학교 도서관이나 시립 도서관을 돌며 책을 빌렸다.

교사들도 처음에는 매일을 말리려 노력했다.

학교 도서관의 책이야 교사가 압수해서 다시 반납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시립 도서관의 책까지 어떻게 처분할 수가 없어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매일은 선생들에게까지 따돌림당하기 시작했다.


따돌림이라 해도 물리적인 것은 없었다.

다만 마치 썩어 문드러진 과일 조각이라도 보는 것처럼 매일을 보며,

매일의 근처에 다가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매일을 따돌린 것이 아니다.

매일이 모두를 따돌린 것이다, 라고.


어쩌면 맞는지도 모른다.

매일은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괴롭히는 사람이 질려버릴 정도로.

매일의 세계에는 아마도 책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이 이쯤 되자 매일의 부모님은 매일을 소아정신과로 데리고 갔다.

혹시나 자폐증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의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검사 결과 눈 맞춤이 어렵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상호작용은 수행할 수 있고,

정서 반응의 경우 이 또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없는 건 맞습니다.

또한, 감각 반응에서 다소 둔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방은 정상수준입니다.

신체사용이나 물체사용, 변화에 대한 적응, 신경과민 등의 항목에서도

모두 정상수준의 점수를 보입니다.

의사소통도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언어 지연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는 아니고

활동수준, 지적기능의 수준, 일반적 인상 모두 유의미할 정도의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자폐증이라기보다는···.”


솔직히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잊어버렸다.

사실 매일의 어머니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일부러 잊어버렸다.

자폐증이라면 차라리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이해할 수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의 어머니는 매일을 방치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녀와 마주치면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몰려와 그녀를 때리곤 했다.

매일의 아버지는 딸과 아내 사이가 파탄 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매일이 같은 애가 얼마나 되겠어.

당신은 행운인 줄 알아.

얌전하고, 말 잘 듣고.

요즘 저런 애 잘 없다.”


친구들과 만나면 매일의 어머니는 이를 갈며 남편 욕을 했다.


멍청한 놈.

뭐라는 거야.

그 기분 나쁜 아이와 있으면 어떤 기분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돈만 벌어오면 단 줄 알지, 그 멍청한 놈은!


매일은 점점 자신의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매일의 아버지는 그런 매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매일이 학교에조차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3개월이 지나서였다.


“너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애를 학교에도 안 보내!

네가 그러고도 엄마야?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고!”


우당탕하는 소리.

그 안에서도 매일은 흔들림 없었다.

그저 오로지 책만을 손에 들고 있었다.


열을 내던 매일의 아버지는 매일의 손을 잡고 그대로 본가로 돌아갔다.

더는 매일의 어머니에게 매일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너 같은 여자랑은 도저히 못 살겠다.”


진짜 이혼할 마음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만 약간 위협할 생각이었다.

소위 말하는 버릇 들이기였다.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살자, 라는.

쪽팔리게 학교에서 전화 오게 하지는 말자, 라는.


매일의 어머니는 서류를 보자마자 웃었다.

광기 어린 그 웃음에 그제야 그는 그녀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까지 찔끔 이며 웃던 그녀의 웃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혼?

좋아, 해줄게.

근데 애는 네가 키워.

난 그거 절대로 못 키우니까.”


싸늘한 그녀의 반응에 얼결에 정말로 도장을 찍었다.

일이 이쯤 되니 매일의 아버지 역시 매일에게 원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 사랑스럽고 예쁘던 아내가 변해버린 것은 매일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매일이 이상한 아이이기 때문에 아내는 변해버린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매일은 이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종종 매일의 아버지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저 소름 끼치는 아이는, 정말로 네 핏줄이냐고.


아내의 정숙함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매일의 얼굴 생김은 누가 봐도 자신과 닮아 있었다.

그런데도 반복되는 하소연에 매일의 아버지는 매일을 볼 때마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게 정말, 내 딸인 건 맞을까?


자연히 매일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이야기에는 다소의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매일의 아버지는 매일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매일의 아버지가 새로운 여성과의 미래를 꿈꿀 때가 되자 매일은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렇다고 버리거나 방치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매일의 아버지는 매일을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매일의 할머니는 매일을 기분 나빠했다.

툭하면 매일을 때렸으며 매일에게 집안일을 시키곤 했다.

매일은 다소 넋이 나간 얼굴로 언제나 시키는 일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지낸 지 23년.


매일의 할머니는 94세의 나이로 바로 어제 하늘나라로 떠났다.


“쟤는 이제 어떻게 한대?”

“글쎄.

아빠가 데려갈 생각은 없는 것 같던데.

초등학교도 안 나온 애가 뭘 해 먹고 살겠어.

큰일이지.”


장례식장의 제일 큰 화두는 단연 매일의 거취였다.

이미 재혼한 여성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매일의 아버지가 매일을 거둘 리는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이구나.”


어색하게 말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매일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손에는 여전히 책 한 권이 꼭 쥐어져 있었다.


“네 새엄마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너만 괜찮다면 집으로 들어와서 살아라.”


매일은 잠시 생각에 빠진 것인지 넋이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매일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1 주공자
    작성일
    19.08.28 11:15
    No. 1

    이거 진짜 좋은글인데...
    마법판타지가 아닌 글이 문피아에서 받는 대우... ㅠㅠ
    꼭 발굴되어 조회수가 폭발하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8.28 13:41
    No. 2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봐주시는 몇몇 독자분이 계셔서 너무 행복하네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오늘이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 감사합니다!! 19.09.28 44 0 -
37 오늘이 이야기(完) +6 19.08.31 120 4 22쪽
36 장상과 매일 19.08.30 43 2 7쪽
35 귀결 19.08.29 37 3 9쪽
34 해후 19.08.29 41 3 11쪽
33 동거 19.08.28 47 3 11쪽
» 선매일 +2 19.08.28 47 3 9쪽
31 어느 남자의 이야기 19.08.27 45 3 9쪽
30 이야기하다 19.08.27 46 3 10쪽
29 흘러내리다 19.08.25 41 3 12쪽
28 메꾸다 19.08.24 44 3 12쪽
27 깨어진 항아리 19.08.23 45 3 14쪽
26 민시여 19.08.22 45 2 7쪽
25 장상이 이야기3 19.08.21 42 2 8쪽
24 하나의 엔딩 19.08.20 50 2 9쪽
23 여파 19.08.19 41 2 7쪽
22 눈사태 19.08.18 58 3 10쪽
21 고우리라는 여자 19.08.17 64 2 8쪽
20 바랄 것 없는 여자 19.08.16 48 2 11쪽
19 원천강의 하루 19.08.16 50 2 9쪽
18 개천에서 난 용 19.08.14 66 2 10쪽
17 法蛇 19.08.13 50 2 10쪽
16 醫蛇 19.08.12 59 2 10쪽
15 갈래길 19.08.11 52 2 10쪽
14 백삼사 19.08.10 52 2 8쪽
13 장상이 이야기2 19.08.09 59 2 7쪽
12 멈췄다 19.08.08 68 2 8쪽
11 서른다섯 바퀴 19.08.07 59 2 8쪽
10 열네 바퀴 19.08.06 66 2 8쪽
9 한 바퀴 19.08.05 77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