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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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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103
추천수 :
106
글자수 :
153,173

작성
19.08.22 21:44
조회
45
추천
2
글자
7쪽

민시여

DUMMY

민시여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부모님은 옳게 힘쓰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시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지만,

한문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요즘 세대에게는


“민시녀! 야! 시녀가 공주님한테 안 붙어있고 어디 가냐!”

“시녀야~. 미안한데 이것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이름이 뭐라고? 시녀? 웃기다, 이름.”


‘시녀’로 받아들여졌다.


세상에, 시녀라니.

귀한 딸에게 저런 이름을 붙여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론 개명도 생각해봤지만, 개명의 ‘ㄱ’자만 나와도 펄쩍 뛰어대는 바람에 개명도 하지 못한다.


이래저래 놀림당하긴 했지만 그나마 학생 때는 나았다.

지금의 시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시여 씨.”


날 선 목소리.

시여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이 또 뭔가 실수를 했는지 반추해보았다.

하지만 생각날 리 없었다.

시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뭐 하는 거예요?

내가 이거 폰트, 본문은 크기 10으로 다 통일하랬죠?

여기, 이 괄호 안에 들어간 거 왜 글자 크기가 다른 것보다 작아요?”


어이가 없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면 트집을 안 잡는 날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트집잡힐까 봐 미리 물어보기까지 했다.


“팀장님, 여기는 주석 같은 부분인데 글씨 크기를 10으로 하면 좀 너무 크지 않을까요?”

“음, 뭐 그렇겠네요. 그럼 8 정도로 줄여요.”


녹음해놨어야 한다.

친구인 성여가 매일매일 시여에게 강력하게 주장하던 것처럼.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인간의 성격상 녹음해놨다고 해도 아마 ‘사생활 침해’니, 이런 거 할 시간에 보고서나 똑바로 쓰라느니 궤변을 늘어놓으며 도망갈 것이 뻔하니까.


“···수정하겠습니다.”


시여는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힘없는 목소리가 팀장의 심기를 또 거슬렀나 보다.


“시여 씨.

지금 제가 말하는 게 짜증 난다, 뭐 그런 항의인가?

목소리가 왜 그렇게 작아요?”


짜증 나는 놈.

그렇게 생각하며도 시여는 얌전히 팀장의 말에 따라 해당 문구를 수정했다.

그리고 수정한 페이지를 인쇄해서 가져가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여 씨.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전체 보고서를 다시 출력해서 가져와야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서 전체 보고서를 가져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와, XX.

시여의 얼굴에 욕이 쓰여 있었기라도 한 걸까.

팀장은 갑자기 시여의 표정을 꼬투리 잡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시여의 얼굴 생김새의 문제에서부터,

표정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던 그는,

그녀의 업무 태도에서 성실함을 볼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그녀의 부모님이 대체 그녀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곧 점심시간인데도 팀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이었다.

아무도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팀장의 이야기는 점점 탄력을 붙여갔다.

속으로 15번 정도 심한 욕설을 내뱉은 시여지만, 이내 얌전히 포기하고 표정 관리를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점심시간 때쯤 필을 받으신 팀장님 덕분에 식사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시여가 아마도,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약 30여 번 째의 사과를 했을 때쯤 팀장은 사그라 들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휴, 끝났다.

시여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팀원들의 안도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 시여는 마음이 무거웠다.


직장 동료들은 언제나 시여의 편이었다.

솔직히 시여가 아주 잘못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시여가 잘못한 것에 비하여 팀장이 따지고 드는 정도의 비율이 너무나 높았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오늘도 팀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여직원들이 시여를 둘러쌌다.


“시여 씨, 괜찮아?”

“어쩜 저래.

요즘 여자친구랑 잘 안된다더니 그거 시여 씨한테 화풀이하나 보다.”

“진짜 싸가지가 바가지야.

어떻게 저런 놈이 팀장이 될 수가 있지?”


시여는 그저 괜찮다고 웃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망할 놈한테는 얌전히 사과의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동료들에게는 확실히 사과의 말이 잘 나왔다.

정말로 미안했기 때문이리라.


순간 또 울컥 짜증이 올라왔다.

미친놈.

저번에 실수로 전체 보고서를 재출력했더니,


“시여 씨는 부잣집 아가씬가 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종이를 이렇게 낭비하는 걸 보면.”


이라고 이야기한 게 바로 엊그제다.

그 엊그제의 일은 대체 어디에 팔아먹고 오늘 저러는 건가.

이쯤 되면 그냥 시여가 만만해서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잊어버리자!”

“그래그래, 오늘 시여 씨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요.”


그나마 동료들이 있어 다행이다.

시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과 사무실을 나섰다.




"민시여 씨."


아, XX.

이번엔 또 뭘로 시비를 걸려고···.


"네, 팀장님."


애써 방긋 웃어보이는 시여를 마치 더러운 오물 쳐다보듯 쳐다보며 팀장이 이죽였다.


"참 대단한 분 나셨어, 민시여 씨.

 아주 정의롭고 멋진 사람이야."


불안하게 왜 성까지 붙여 부르고 난리야.

개다가  싸가지 없는 무늬만 존댓말은 또 어디다 팔아먹은건지.


시여는 곰곰이 오늘의 행동을 반추했다.

하지만 애초애 알고 있었다면 실수를 할 리 만무하다.

시여는 결국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오늘 민시여 씨가 사장님께 올린 보고서의 한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팀장의 말에 불안이 엄습해 온다.

오늘 올린 보고서라면 아마 팀장이 시킨 운영계획안 보고서였을텐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시여 씨의 제안 및 건의사항에 따르면, 우리 팀 내 예산안 중에서 불필요한 예산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아, 뭔지 알 것 같다.

시여는 얼굴이 창백해 졌다.


"접대비 중 일부를 개인 사비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적었군요."


동료들의 시선이 모두 시여에게 향했다.

팀장의 갈굼을 들으며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내가 언제든 너 엿먹일 수 있는 거 모르지? 라는 심정으로 적었던 문구였다.


분명 수정해서 제출했는데···!


"민시여 씨 의견대로면 우리팀에 범죄자가 있다는 소린데···.

 근데 이거 책임 질 수 있겠어요?"


팀장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난다.

망했다.

시여는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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