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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104
추천수 :
106
글자수 :
153,173

작성
19.08.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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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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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이야기하다

DUMMY

“···.”


멍, 하니 앉아있는 시여를 보며 남자는 걱정이 되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시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호랑이의 등 위에서 내릴 수도, 그대로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시여는 자신이 너무 안일했음을 인정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으로 생각했다.

만화나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소위 회귀물이라고 해서 시간을 계속해서 되돌려 사건을 해결하는.

시여는 그런 부류의 글이나 만화를 볼 때마다 웃었다.

자신이라면 좀 더 요령 좋게 사건을 해결할 텐데, 라고.


실제로 해보고 시여는 자신의 무른 생각을 후회했다.

물러도 너무 물렀다.

괜히 소설의 주인공이 죽을 고생을 하면서 회귀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기억도 지워지면 좋을 텐데.


아니, 그러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도 안 되나···.


“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여의 빛을 잃은 눈동자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에 찌들지 않은 육체는 몹시도 가벼워서,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다.

하지만 머리에 얼기설기 엮여버린 생각은 풀릴 줄을 모른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대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입에서 지난번에도 들었던 대사가 흘러나왔다.

마치 고장 난 카세트 같다.

계속 같은 부분만 반복 재생하는.

그렇게 생각하던 시여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다른가?

마치 렉이 걸려버린 동영상 같다.

기괴함으로 가득 찬 화면만을 계속해서 내보내는, 벗어날 수 없는 렉에 걸린.


“소망···.

모르겠어요.”


처음엔 나를 괴롭히는 팀장을 쫓아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남을 저주할 때는 무덤 두 개.

다른 사람을 떨어뜨릴 것이라면 자신도 떨어질 각오를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좋지 않은 꼴에 처하게 하면서 나만 멀쩡해지고 싶다니,

그런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 했다.

더 이상의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러나 이미 일어난 풍파는 절대 가라앉지 않았다.

그 풍파의 여파는 끊임없이 시여를 괴롭혔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어요···.”


시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항상 술로 붉게 달아올라 있던 얼굴이 감정으로 흘러넘친다.

아직 멀쩡히,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났다.

이 느낌을, 이 감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끝낼 방법을 모르겠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는 거죠?

어떻게 해야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가만히 시여의 말을 들어주었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던 오늘이 입을 열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여행을 하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는 갈래길 옆 우물에서 슬피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슬피 울고 계신 가요?

여자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저 하늘의 왕, 세상의 왕이신 옥황상제님의 시녀입니다.

천하궁의 물 긷는 일을 소홀히 한 죄로 여기서 물을 푸고 있지요.

이 우물물을 다 퍼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데 퍼도 퍼도 그대로라서 울고 있어요.

여자아이는 시녀가 가지고 있는 두레박을 살펴보았습니다.

큰 구멍이 뚫려있는 두레박을 본 여자아이는 말했습니다.

제가 도와줄게요.

여자아이는 주변에 있는 풀을 뜯어 뭉쳐 구멍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송진을 녹여 틈새를 메꾸었습니다.

그 두레박으로 물을 푸니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았습니다.

기뻐하며 물을 다 퍼낸 시녀는 여자아이를 도와준 후

하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대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건가.

시여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세 번째 만나지만 상대는 자신을 처음 만나는 것 아닌가.

그런 상대에게 저런 걸 물어서 뭐가 된다는 것인가.

한숨을 푹 쉬는 시여를 가만히 바라보던 오늘이 이야기했다.


“그대는 어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내려 합니까.”


시여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혼자서 해내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


“그대는 혼자가 아닐 터.”


자신의 말은 이제 끝났다는 듯 오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그런 오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셔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어딘지 맥이 탁 풀렸다.

시여는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따스하다.

시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가게를 나섰고, 남자는 조용히 시여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미친 거 아냐?”


성여가 뜨악한 얼굴로 시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 위약금까지 물고 그대로 서울로 돌아온 시여는 성여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그야말로 민폐 그 자체인 시여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주었던 성여라면

상담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 어떻게 하지···?

증거를 주자니 분명 팀장한테 원한 사서 해코지당할 것 같고,

가만있자니 나만 신뢰를 잃고 팀장은 날 더 괴롭힐 것 같아.”


이미 가본 길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말까지 믿어주기엔 성여가 너무 이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렵네.”


한참을 고민하던 성여는 그 말만을 남기고 맥주를 들이켰다.

가장 좋은 것은 없던 일이 되는 것이겠지만 그것만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경찰에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

“글쎄, 회사 이미지에 관련된 부분이라···.”

“하긴 너희 회사 요즘 좀 나가볼까 하는 시긴데 그러면 좀 그렇겠지···.”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성여가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당분간 장 팀장님은 해외로 발령 나가게 됐습니다.”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는 현지에 있는 현지회사와 거래를 할 때,

통신을 이용하거나 출장을 나가는 형식으로 거래를 해왔다.

그런데 발령이라니.

한 번도 없었던 파격적인 인사였다.


“장 팀장님이 스스로 자진해서 나서주셨습니다.

우리 회사가 더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 위해 큰 결심을 해 주신 장 팀장님께 손뼉 쳐

주세요.”


똥 씹은 표정을 하던 팀장이 어설프게 웃었다.

시여의 뇌리에 어제의 대화가 떠올랐다.


“장 팀장이···.”


사장은 잠시 충격을 받은 듯 굳어 있더니 이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등받이가 사장이 넘어지는 것을 겨우 막아주었다.

그런 사장을 바라보던 시여가 입을 열었다.


“제가 회계장부를 다시 비교해본 결과 최근 4년 사이,

약 3천여만 원을 유용하신 거로 보입니다.”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회사의 연 매출이 200억 남짓.

접대비 한계는 년에 6400만 원 정도.

4년 동안 3개의 팀이 나눠 가져서 한 팀당 약 8500만 원 정도가 접대비로 예산 책정된다.

그중에 3000만 원을 횡령했다는 것은 중소기업에 있어서 적은 돈은 아니었다.


“후,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힘없는 사장의 손짓에도 시여는 나가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시여의 모습에 사장이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이런 건 어떠실지요.”


성여와 시여가 생각해낸 방법은 간단했다.

원래는 아시아 지역을 중점으로 수입 및 판매를 하던 회사에서

최근 화젯거리인 독일의 주방용품 브랜드, ‘쉬 셸’과의 계약 성사가 목전까지 다가왔다.

다만 아무래도 독일과는 시차도 있고 깐깐한 독일인들의 성미 상 계약이 성사되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독일어가 가능한 유능한 직원이 독일에 당분간 체재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제가 알기로는 팀장님께서는 독일어, 러시아어 가능자이신 거로 압니다.”


어차피 회사가 움트기 시작하는 지금,

횡령이라는 범죄로 회사의 이미지를 더럽히기는 꺼림칙하다.

그렇다면 해외로 보내 손해 본 만큼 영업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물론 생활비는 지급해주되, 월급을 일부 삭감해서 횡령한 금액을 채워 넣는 것이다.


“···내가 이제 장 팀장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요···.”

“장 팀장님, 지금 많이 두려우실 겁니다.

사장님께서 아량을 보여주신다면 어쩌면 개심하실 수도 있으실 거에요.

애초에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신 사장님께서 믿고 의지하시던 분이잖아요.”


사장의 자부심을 건드렸다.

성여의 생각이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지만 이 일로 사장은 자부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부심을 되찾을 방법이 있다면 어쩌면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젊은 사장인 만큼 어쩌면···.


“···일단 처분은 제가 생각해보겠습니다.

민시여 씨는 자리로 가서 업무 보세요.”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팀장은 사장실로 불려갔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못 먹을 것이라도 먹은 얼굴의 팀장과 싸늘한 얼굴의 사장이

나타나 팀장의 해외발령을 공표했다.

과연 예리한 사원 몇몇은 수군거리긴 했지만, 대부분은 첫 해외발령에 자신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둥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첫 해외발령이란 선례가 없는 만큼 힘들고 고독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후···.”


시여는 그 날 이후 처음으로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늘부터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사무실 문이 보였다.

두 번, 저 문을 열었을 때를 기억한다.

시여는 피식 웃고는 업무로 돌아갔다.


아마도 이제 자신이 저 문을 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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