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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102
추천수 :
106
글자수 :
153,173

작성
19.08.11 22:05
조회
52
추천
2
글자
10쪽

갈래길

DUMMY

처음 가보는 여행.

삼사는 아주 조금, 설렜었다.

하지만 여행 당일부터 시작된 비아냥은 삼사의 마음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와, 요즘은 그지 새끼들도 여행을 다니네?”

“야, 고아. 너 무슨 돈으로 가냐? 어디서 훔쳤냐?”

“이 새끼 옷만 챙겨왔네. 역시 거지는 거진가요.”


낄낄거리는 소리에 삼사는 차가운 눈초리만 돌려주었다.

얽혀봤자 삼사에게 별로 좋은 일은 없다는 걸 알기에 평소라면 무시했을 터였다.

하지만 좋은 기분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것에는 아무리 삼사라도 조금 화가 났다.


“뭘 야려, 새끼야.”


퍽, 하고 삼사의 뒤통수를 강타하고는 낄낄대었다.

삼사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시골의 별 볼 일 없는, 그저 시골을 벗어나고파 허둥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멍청이들.

삼사가 벗어나도 딱히 잡지는 않았다.

뒤에서 낄낄거릴 뿐.


“저 새끼 또 도망가네.”

“할 줄 아는 게 그것 밖에 없잖냐. X이나 제대로 달렸냐?”


마음대로 떠들어라.

그렇게 생각하며 삼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보이는 가게로 들어섰다.

뒤따라오며 비아냥거리던 무리가 지나치자 삼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오시게.”


낯선 목소리에 삼사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았다.

뒤에는 어딘지 인상 좋아 보이는 노파가 서 있었다.

재빨리 안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신기한 곳이었다.

가정집이라기엔 위화감이 느껴졌고 가게라기엔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렉 걸린 컴퓨터처럼 서 있는 삼사를 보며 노파가 웃었다.


“자자, 여기 앉으시게.”


엉겁결에 노파에게 이끌려 자리에 앉은 삼사에게 노파가 떡을 가져다주었다.

삼사는 ‘떡을 파는 가게인가?’라는 생각에 잠시 멈칫거렸다.

원장이 돈을 챙겨주긴 했지만 삼사는 그 돈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원장이 자고 있을 때 식탁 위에 돈과 메모를 남겨두고 일찍 집을 나서버렸다.

즉, 삼사는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돈이 없어서요. 가게인 줄 모르고 막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삼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가게 안쪽에서 한 여자가 나왔다.


“돈은 필요 없으니 앉으시게. 우리 아기씨랑 이야기나 좀 하시게나.”


아기씨라니.

꽤 고풍스러운 호칭이다.

하지만 여자는 노파의 호칭에 몹시도 잘 어울리는 생김새였다.


쌍꺼풀이 없는 긴 눈매는 묘한 색기가 흘렀다.

새하얀 피부는 그야말로 진주 같았으며 입술은 봉숭아 물을 들인 것 같은 색이었다.

거기에 새하얀 손끝은 가야금 현이라도 뜯으면 그림이 될 것 같은 생김이었다.

매일 보던 꼬꼬마 여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른의 매력을 풍기는 여자.

하지만 삼사는 왠지 모르게 여자를 경계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저는 이곳 원천강의 주인, 오늘입니다.”


차가운 목소리.

어딘지 넋이 빠진 것 같은 표정과는 다소 상반된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삼사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교복을 입은 걸 보아하니 아직 학생인 게로구먼.”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오오, 그렇구먼. 그럼 졸업여행을 온 게로구먼?”


삼사는 작게 ‘네.’라고 대답하고는 눈앞의 떡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삼사는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식사를 거르고, 점심때는 열 받게 만드는 동급생들 때문에 식사를 걸렀다.

그런 삼사에게 달콤한 향을 흘리는 떡은 꽤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드시게. 그대를 위해 내온 것이니 말이네.”


삼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노파에게 고개를 숙인 후 접시에 손을 뻗었다.

한 입 베어 물자 팥 향이 확 올라와 더욱 식욕을 당겼다.

어느새 허겁지겁 떡을 입안에 밀어 넣는 삼사를 보며 노파가 혀를 찼다.


“천천히 들게. 많이 배가 고팠던 게로구먼.”


노파가 느릿느릿 움직여 물을 가져왔을 땐 이미 접시 위의 떡을 모조리 다 먹어치운 뒤였다.

목이 메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삼사에게 노파가 물을 건넸다.


“어린 치가 고생이 많았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손길에 문득 삼사는 눈물이 났다.

왜 울고 있는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노파의 그 위로가 어쩐지 눈물 나게 가슴이 따스해졌다.

당혹한 얼굴로 울고 있는 삼사에게 노파가 물었다.


“괜찮다면 자네의 이야기를 해주겠나.”


노파의 목소리에 삼사는 잠시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우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처럼 삼사는 속으로 억누른 눈물을 흘리며 공연히 손으로 눈만 비벼댔다.

오늘과 노파가 조용히 기다려주자 이내 삼사는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어렸을 적, 행복했지만 너무나 짧았던 부모님과의 생활.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그 이후 고아원에서의 삶.

그리고 원장의 양아들이 되어서 누린 삶.


“저는 반드시 성공할 거에요. 그야말로 개천에서 난 용이 되어서 더는 빼앗기지 않는 삶을 살 거예요.”


삼사의 눈동자에 독기가 이글거린다.

노파는 그런 삼사가 안타까웠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세상사 험난한 치가 저 아이뿐이겠는가.

그래도 노파는 언제나처럼 마음속으로 삼사를 응원했다.

부디 삼사가 진실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약, 그대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한 후에 다시 오늘 이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까?”


갑작스러운 여자의 말에 삼사는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가.

갑자기 몰려오는 창피함에 삼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삼사는 냉정하게 이야기한답시고 대답했지만, 그 목소리는 창피함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늘은 그런 삼사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 보게. 자네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네.”


노파가 짐짓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무당집 같은 곳인가?

삼사는 얼핏 스쳐 갔던 건물의 외관을 떠올리려 노력하며 조소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만약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삼사는 아마도···.

하지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삼사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그런 비과학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겠죠.”


어딘지 체념한 것 같은 목소리.

눈에 서린 독기는 여전하지만, 어딘지 기세가 꺾여있는 것 같았다.

오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생 단 한 순간, 단 한 번만 가능하다면 바로 지금이길 바랍니까?”


삼사는 쓰게 웃었다.

지금이라.

지금으로 돌아와서 뭘 할 수 있다는 걸까.


“자꾸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 줄래요? 난 그런 거 안 믿으니까. 정말로 가능하다면 해 봐요, 지금 당장.”


삼사치고는 꽤 드물게 말이 험하다.

오늘은 그런 삼사를 바라보다 노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제가 그대의 시간을 여기에 고정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파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여자는 가만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삼사가 가게 밖으로 나가려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갈 땐 가더라도 노파에게 인사는 하고 나가자 싶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노파가 분홍색 연꽃을 들고 나왔다.


이런 계절에 어디에서 연꽃을···.

여자는 노파에게서 연꽃을 받아들고 삼사에게 다가왔다.

삼사의 머리 위에 연꽃을 가져다 댄 여자가 입을 뗐다.


“玉皇大帝.

袁天纲的老闆想要它.

請停止時間.

現在在這裡.

時間和季節女神想要.

蓮花如意珠的承諾.”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그의 눈에 보이는 연꽃은 누가 봐도 그냥 연꽃인 것 같았는데 여자의 말이 한마디 한마디 끝날 때마다 꽃잎에 묘한 빛이 서렸다.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에 연꽃을 갖다 대었다.

분홍빛 연꽃이 거의 희게 보일 정도가 되자 여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하여 연꽃을 들었다.

그리고 삼사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연꽃을 가져다 대었다.


“根據蓮花和如意珠的承諾.”


삼사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로 숨을 내쉬었다.

하얗게 새어 나온 숨결이 꽃잎에 닿자 하얀빛이 연분홍의 은은한 빛으로 바뀌었다.

연꽃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여자는 삼사를 한 번 쳐다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가 보시게.”


노파가 고갯짓했다.

삼사는 다소 멍청한 얼굴로 노파의 말에 따랐다.

삼사의 인식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멍하니 여자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여자가 멈춰섰다.


“이 문이 그대의 문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자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오른손에 연꽃을 든 여자가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마치 순식간에 어둠이 걷히는 것처럼 눈앞이 맑아졌다.

그곳에는 아주아주 커다란, 높이가 10m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여자가 손에 든 연꽃을 문 앞으로 내밀자 꽃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문 전체에 흩뿌려졌다.

그러자 그 거대한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앞으로 그대가 이 시간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문을 연다면,

그 문이 어느 문이건 그대는 오늘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대의 시간은 이 문에 종속되어 있을 것이며

이 계약은 그대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신의 이름을 걸고.”


여자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삼사는 가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방향을 힐끔 보았다.

노파는 따라오지 않았다.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삼사는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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