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100
추천수 :
106
글자수 :
153,173

작성
19.08.24 22:37
조회
43
추천
3
글자
12쪽

메꾸다

DUMMY

시여는 사장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사장은 이게 뭐냐는 듯한 얼굴로 시여를 바라보고 있었다.


“들려드릴 게 있습니다.”


시여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웅성웅성하는 울리는 소리에 잠시 의아함을 품고 있던 사장의 눈이 이내 커졌다.


“···이건···.”


사장은 멍하니 시여를 바라보았다.

아마 눈치챈 모양이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영상도 아니고 그저 녹음본에,

그리 선명하지 않은 음질이라 증거라기엔 불충분해서 내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서···.”


시여는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려 했지만,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여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다.


자신은, 되돌릴 수가 있지 않은가!


설령 사장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의 말을 믿고 지나치게 팀장을 몰아붙여서 팀장이 자살하게 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만약 시여의 생각대로 팀장은 잘리고,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이 일이 쉬쉬 된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이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고 자신은 여기에 계속 남을 수 있다.

만약 잘못된다면 얼마든지 되돌리면 된다.

시여의 몸의 떨림이 멈췄다.


“이건···, 이 목소리는 누군가요···?”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사장이 시여에게 물어왔다.

시여는 잠시 사장의 눈을 바라보며 무언으로 되물었다.

정말로 모르시겠냐고.


사장의 눈이 흔들린 수조 안의 물고기처럼 헤엄친다.

자신이 편애하는 이의 목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할 정도라면 사업은 접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장은 한 번 본 사람의 목소리나 얼굴, 간단한 신상정보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사장이 단시간에 회사를 크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장 팀장이 이런 짓을···?”


사장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마치 퓨즈가 끊어진 전선처럼 잠시동안 사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시여는 물끄러미 사장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기다렸다.

덜컹, 하고 사장의 몸이 무너지는 것을 의자의 등받이가 막아주었다.


“장 팀장, 장 팀장···.

어찌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사실 팀장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실적을 꽤 잘 올리는 치들 중 하나였다.

특유의 느물느물한 성격으로 판로를 여러 곳 개척한, 어찌 보면 공신 중의 하나였다.

사장이 편애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사정이 허락하는 안에서는 계속 접대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장의 눈에 뜨거운 김이 모였다.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사장은 이제 됐다는 듯 시여에게 손짓을 했다.

아직 젊고 감정적인 사장이 사원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시여도

얌전히 인사를 한 후 사장실을 나섰다.


“후···.”


시여가 자리로 가는 동안 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강은 건너버렸다.

시여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비록 꽉 주먹 진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시여 씨, 이리 좀 와 봐요.”


팀장의 부름에 시여는 숨을 들이마셨다.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자신에게 되뇌며 시여는 팀장에게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팀장님.”


언젠가 팀장이 불렀을 때 ‘네, 팀장님!’이라고 대답했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감히 윗분이 부르시는데 어디 ‘네’라는 대답을 하냐는 것이 이유였다.

망할.

그 뒤 시여는 집에서 약 보름 정도,

매일 저녁 1시간씩 ‘부르셨습니까, 팀장님.’을 연습해야만 했다.

아주 혹시라도 무의식중에 ‘네, 팀장님.’이라고 하지 않기 위해서.

그래도 이제 그 날도 끝이다.

시여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났다.


“사장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평소라면 큰 소리로 시여를 갈궈댔을 팀장의 목소리가 유독 작았다.

거의 속삭이듯 묻는 것에 시여는 비웃지 않기 위해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이전 제가 올렸던 보고서의 문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시여는 평소대로 대답했지만, 고용한 사무실 안에서 그 소리는 꽤 크게 울렸다.

팀장은 인상일 찌푸렸지만 아쉬운 건 자기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다시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뭐라고 했는데요?”


시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쩔 수 없는 승리감에 번진 미소를 보고 팀장은 무엇인가 깨달은 듯 새하얗게 질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제주도에서 무슨 일 있었나?’

‘저번 주까지만 해도 미친개는 펄펄 뛰고 시여 씨는 쩔쩔매더니, 왜 오늘 분위기가 저래?’

‘저번에 문구라는 게 접대비 유용에 대한 거지?’

‘근데 솔직히 우린 운영계획안이든 회계보고서든 다 미친개한테 컨펌받잖아.

대체 누가 유용을 할 수 있었던 거지?’

‘누구겠어, 당연히 미친개지!’


소리 없는 대화가 오간다.

여직원들의 타자 소리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팀장의 얼굴은 점점 더 질려갔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시여의 입술이 저절로 말려 올라간다.

시여가 입을 떼려는 그 순간,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 팀장, 제 방으로 좀 오세요.”


올 것이 왔다.

시여는 고개를 숙여 억지로 표정을 감추었다.




“오늘부로 장 팀장님께서 회사를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다들 놀라셨겠지만, 사정이 있어서 그리되었으니 다들 양해 바랍니다.

장 팀장, 마지막으로 인사하시겠습니까?”


사장의 눈에 살짝 독기가 흐른다.

독하게 마음먹기로 다짐한 것이 눈에 비치는 것이리라.

팀장은 고개를 내젓고는 힘없이 짐이 들어있는 상자를 가슴팍에 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는지 시여 조차도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팀장이 올 테니 그때까지만 팀원분들이 힘내서 팀을 이끌어 주세요.

아마 이 팀에 장 팀장 다음으로 경력이 많은 사원이 신 명화씨였죠?”

“네.”

“그럼 일단 신 명화씨가 팀장 대리해 주시고요.

어수선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다들 힘내 주세요.”


예상대로 사장은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장 팀장을 잘라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뒷소문까진 막을 순 없겠지만,

회사의 명예를 훼손할지도 모르는 일을 소문낼 용기가 있는 직원은 없을 것이다.

아마 회사 내에서는 이야기가 많겠지만.


“시여 씨, 어떻게 된 거야?”


여직원들이 시여를 둘러싼다.

시여는 글쎄요, 라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장이 간곡히 부탁한 때문이었다.


“시여 씨, 미안하지만 이 일은 비밀로 해 줄 수 있겠어요?

다른 직원들이 알면 동요가 심할 것 같기도 하고,

우리 같은 신생회사는 이미지가 중요한데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외부에서 알면···.

아마 뒤에서 수군거리기야 하겠지만

시여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외부에까지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진 않을 거예요.

시여 씨에겐 거짓말을 시키는 게 되어 미안하지만···.”


시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됐다!

시여가 원하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일로부터 3개월.

들리는 이야기론 전 팀장은 알게 모르게 소문이 돌아 재취업에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사장에게 장 팀장의 안부를 묻는 치들에게

‘자세힌 말할 수 없지만, 품행에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 해고했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 좁은 업계는 아니었지만, 입소문이 어디 넓이를 따지겠는가.

특히 인사담당자들의 소문을 주워듣는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

전 팀장이 재취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 가는 일이었다.


시여 나름대로 전 팀장을 동정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고소하다.

그러게 평소에 잘 했어야지.

그랬더라면 그런 식의 글을 장난으로라도 쓸 일은 없었을 것이고,

실수로 그대로 제출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밤길이 어두워서일까.

아니면 스산함이 느껴져서일까.

문득 떠오른 전 팀장에 대한 생각을 시여는 머리에서 내쫓으려 노력했다.

떠올려서 딱히 좋을 일도 아니고.

이런 인기척 없는 골목에서 떠올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전 팀장이 나간 이후 온 팀장은 사람은 나쁘지 않았지만 무능했다.

아무래도 급하게 채용한 관리직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사실은 신 명화에게 팀장을 맡기려 했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자리다.

그녀도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며 고사했고

그 외의 팀원들은 아직 팀장을 맡을 정도의 실적을 올린 이가 없었다.

그래서 경력직으로 뽑은 팀장이었지만 덕분에 일이 꽤 늘어났다.


“확실히 장 팀장이 일을 잘하긴 했었지···.”


시여가 핫, 하고 놀라 입을 막는다.

생각하지 말자고 해놓고는.

머리를 내저어 머릿속을 비운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본다.

벌써 10시 3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씻고 자야겠네···.


시여가 폭, 한숨을 내쉰 그때였다.


“윽···?!”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무언가가 시여의 배를 할퀴었다.

뜨끈한 감촉이 배를 타고 하반신으로 흐른다.


“이게 무슨···.”


믿을 수 없어 흐르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여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칼을 두 손으로 든 채 파들파들 떨고 있는 추레한 남자가 서 있었다.


“너, 너 때문이야.”


툭, 가방이 떨어진다.

가방이 이렇게 무거웠었나.

시여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화끈거리는 배를 부여잡았다.

그제야 통증이 몰려왔다.


“아아아악···!”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

남자는 패닉에 빠진 시여를 보며 웃더니 그대로 어둠 속으로 도망갔다.

소리를 질러봐도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그럴 것이다.

시여 자신이라도 밖에서 비명이 들린다면 오히려 못 들은 체 귀를 막아버릴 테니까.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래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비명으로 가득 차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시여의 체감으로는 30분정도가 지난 것 같았고

실제로는 10분쯤 지난 후가 돼서야 시여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동안 피는 멎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깊게,

비스듬히 찔린 상처는 내장을 건드리기라도 한 것인지 울컥거리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생리도 아니고, 라고 멍해진 머리로 생각하던 시여가 머리를 내저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병원, 병원을 가야 하는데···.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찾지만,

떨어뜨릴 때 빠져버린 것인지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누가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큰소리로 외쳐보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사실 시여도 알고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비명을 질렀는데도 경찰조차 오지 않는다.

구급차라고 불러줄 리 없다.


“안 돼, 안 돼···.”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인생에 즐거운 일 한번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죽을 순 없다.

시여는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손을 배에서 떼어보았다.

그러자 울컥, 하고 터져버린 댐에서 물이 쏟아지듯 피가 쏟아져 나왔다.


죽는다.


그때 시여의 머릿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앞으로 그대가 이 시간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문을 연다면,

그 문이 어느 문이건 그대는 오늘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대의 시간은 이 문에 종속되어 있을 것이며

이 계약은 그대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신의 이름을 걸고.”


그래, 돌아가면 된다.

시여는 필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주택인 주택가였지만, 딱 하나 원룸 건물이 보였다.


저기까지만 가면···!

시여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었다.

이미 차갑고 감각 없는 다리는 시여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시여는 억지로 다리를 끌어 움직였다.


“제발, 제발···.”


점점 힘이 빠진다.

눈이 흐려진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평소라면 10초도 걸리지 않을 거리인데도 너무나 멀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먼 거리를 지나 시여는 겨우 문손잡이를 부여잡았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그때로 돌려주세요···!”


끼이이.

시여는 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오늘이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 감사합니다!! 19.09.28 44 0 -
37 오늘이 이야기(完) +6 19.08.31 120 4 22쪽
36 장상과 매일 19.08.30 43 2 7쪽
35 귀결 19.08.29 37 3 9쪽
34 해후 19.08.29 41 3 11쪽
33 동거 19.08.28 47 3 11쪽
32 선매일 +2 19.08.28 46 3 9쪽
31 어느 남자의 이야기 19.08.27 45 3 9쪽
30 이야기하다 19.08.27 46 3 10쪽
29 흘러내리다 19.08.25 41 3 12쪽
» 메꾸다 19.08.24 44 3 12쪽
27 깨어진 항아리 19.08.23 45 3 14쪽
26 민시여 19.08.22 45 2 7쪽
25 장상이 이야기3 19.08.21 42 2 8쪽
24 하나의 엔딩 19.08.20 50 2 9쪽
23 여파 19.08.19 41 2 7쪽
22 눈사태 19.08.18 58 3 10쪽
21 고우리라는 여자 19.08.17 64 2 8쪽
20 바랄 것 없는 여자 19.08.16 48 2 11쪽
19 원천강의 하루 19.08.16 50 2 9쪽
18 개천에서 난 용 19.08.14 66 2 10쪽
17 法蛇 19.08.13 50 2 10쪽
16 醫蛇 19.08.12 59 2 10쪽
15 갈래길 19.08.11 52 2 10쪽
14 백삼사 19.08.10 52 2 8쪽
13 장상이 이야기2 19.08.09 59 2 7쪽
12 멈췄다 19.08.08 68 2 8쪽
11 서른다섯 바퀴 19.08.07 59 2 8쪽
10 열네 바퀴 19.08.06 66 2 8쪽
9 한 바퀴 19.08.05 77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