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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099
추천수 :
106
글자수 :
153,173

작성
19.08.06 15:18
조회
65
추천
2
글자
8쪽

열네 바퀴

DUMMY

“그대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입니까?”


기계 같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며 눈을 감았다.


“듣고 있어?!”


앙칼진 목소리에 머리부터 지끈거린다.

그는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시끄러운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듣고 있어.”


그의 사업은 꽤 순조롭게 흘러갔다.

지난 몇 번의 경험으로 순조롭게 2018년까지 회사를 키워올 수 있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사업은.


수 없이 2008년으로 되돌아가는 동안, 한 번도 결혼을 한 적은 없었다.

결혼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유로 회사가 망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투자자산운용사라는 직업 특성상 아주 작은 이유로도 회사가 휘청이기 마련이었기에.


첫 만남은 설렜다.

밤새워 기업들의 정보를 분석한 후 직원들과 함께 간 카페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멍하니 감기던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순간 꿈인가 싶어 뺨을 꼬집을 정도로.


쑥스러움이 묻어나는 미소.

화장기가 옅은 얼굴.

향기로운 꽃향기.

단정한 용모.


뭐 하나 모자란 것 없이 충분한 여자.

그가 만나본 중에 가장 천사 같은 여자였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항상 웃고 있었다.


“우리 결혼하자.”


항상 무뚝뚝한 그가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는 건가,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얼굴을 붉히던 그녀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너무나도 기뻐하던 그녀는, 그의 프러포즈를 거절했다.


왜냐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자신의 가정 사정을 이야기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 밑에서 학대받고 자란 그녀.


“네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네가 필요한 거야.”


그의 아내는 소위 몸만 들어온 여자였다.

그래도 그는 행복했다.

그녀가 자신과 함께 하는 미래를 그리며 행복했다.

이제 다시는 그 문을 열 일 따윈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뭐하느라 이렇게 늦은 거야···?”


그녀는 정말로 완벽한 이상의 아내였다.

그가 꿈꿔왔던 따스한 가정의 형상을 만들어 주었다.

오로지 그만 생각하고 그만 사랑하며 그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는 그리 이상적인 남편이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일 특성상 자주 야근을 하는 그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서자마자 뻗어버리는 그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와 다툰 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그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여보, 제발 물건 쓰고 나서 제자리에 두라고 이야기했잖아!”


그녀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건 언제쯤부터였을까.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꽤 오래된 것은 확실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그녀는, 그녀의 완벽을 그에게도 강요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를 피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아내의 관심은 어느덧 집착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하나하나에 간섭하는 무서울 정도의 집착.

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어제 부탁했던 자료는 어디에 있죠?”

“아, 그건 아직 정리가···.”

“뭐 하는 겁니까! 어제 아침부터 정리해서 올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점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좋게 넘어갔을 일도 일일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는 자신이 그녀와 너무도 닮아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 얘기 좀 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녀는 다소 부루퉁한 얼굴이었지만 얌전히 그에게 차를 내주었다.

향기 가득한 라벤더 차.

그는 할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꼭 해야 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인 것 같아.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인 듯했다.

평소의 그라면 그녀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도망가기 일쑤였는데.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희망이 비쳤다.


“우리 헤어지자.”


1, 2년의 일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녀와 함께한 5년이 넘는 시간 중 그들이 행복했던 것은 겨우 3개월.

4년 6개월 동안 그와 그녀는 분쟁과 함께 살아왔다.


누구나 같을지도 모른다.

어느 가정이나 어느 정도의 불화는 존재하리라.

하지만 그에게 있어 그녀는 그저 아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천사’여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바뀐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과의 결혼생활이 그녀를 만족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고하려 했다.


“당신, 제정신이야?”


앙칼진 목소리.

지난 몇 년간 익숙해져 버린 그녀의 목소리.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상냥했던 목소리가 문득 그리워졌다.


“나는···.”


그가 입을 뗄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그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연애 때와 달라졌다.

매일 늦게 들어올 때 알아봤다.

어느 여자랑 바람이 난 거냐.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게 된 게 그 여자랑 바람나고 나서부터냐.


그녀의 얼굴은 마치 귀신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를 괴롭히는 귀신의 흐느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뒤로 그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말들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변기는 꼭 뚜껑 닫아 놓으랬잖아.’

‘요리할 거면 뒷정리해가면서 해야지.’

‘이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리해 줘.’

‘여자 사원이랑 출장을 간다고? 절대 안 돼!’

‘의자 끄는 소리 내지 마, 시끄러워.’

‘여보, 오늘부터 운동 나가. 내가 헬스 끊어놨어.’

‘차가운 거 적당히 먹어.’

‘영양제 꼭 챙겨 먹으랬잖아.’

‘오늘은 우리 첫 데이트 기념일이니까 집에 일찍 올 거지?’

‘이번 주말에는 꼭 여수 가자. 만날 여보 일 바쁘다고 못 갔잖아.’

‘몸 닦은 수건은 바로 세탁기에 넣어야지!’

‘뭐든 쓰고 나면 제자리에 두랬잖아. 널어놓으면 보기 안 좋다고.’

‘음식을 너무 짜게 먹으면 안 좋아. 건강식으로 먹어야 나랑 오래오래 살지.’

‘어제 여자랑 카페에 들어가던데, 뭐 한 거야?’

‘오늘 회식 자리에 여자 사원들도 와? 안 가면 안 돼?’

‘아무리 접대라지만 여자 있는 가게엔 안 갔으면 좋겠어.’

‘가방 아무 데나 팽개쳐 놓지 말라니까!’

‘컵은 여보 꺼 써야지. 여보 꺼 따로 표시해놨잖아.’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릴 시간은 있고, 나랑 함께 있을 시간은 없어?’

‘나는 당신만 믿고 결혼한 건데, 당신은 내가 1순위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입고 나가지 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촌스럽다고 욕해.’

‘당신은 꼭 라떼를 마시더라. 이제 우리 배 나올 나이야. 관리해야지.’

‘집 안에서라도 옷 입고 다녀! 나 아직 여보랑 그렇게 편해지고 싶진 않아.’

‘당신은 왜 내가 이야기하자고만 하면 피해?’

‘내 이야기는 대체 뭐로 듣는 거야!’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쌓여 그를 짓누른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로 바꿔놓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확실한 건 자신은 그녀가 원하는 남편이 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듣고 있어?!”


앙칼진 목소리에 머리부터 지끈거린다.

그는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시끄러운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듣고 있어.”


그는 귀를 막고 싶은 것을 참으며 찻잔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이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 절대 이혼 못 해줘. 절대로!”


그녀가 더 말할 필요 없다는 듯 뒤로 돌아섰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은 처음 만났던 그대로 아름다웠지만, 그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의 천사는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는 걸까.


그는 그만의 천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에 만난다면 그는 절대로 그 천사를 사로잡지 않겠다고.

천사가 인간의 옆에 내려오게 되면 더는 천사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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