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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님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운명님
작품등록일 :
2019.07.29 17:02
최근연재일 :
2019.08.31 00:26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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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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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글자수 :
15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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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3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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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오늘이 이야기(完)

DUMMY

오늘은 가만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장상과 매일의 이야기는 이제 이것으로 끝났다.

아니, 그 둘의 이야기는 아마 영원히 계속되겠지만 오늘이 볼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끝났다.


“···.”


작게 한숨을 내 쉰 오늘은 책을 덮고 일어났다.

책은 마치 의지를 갖추기라도 한 듯 책장의 마지막 빈 곳에 스스로 가서 꽂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오늘은 책장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이 원천강의 주인이 된 그 날부터 채워온 책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었다.

자신조차도 최초의 한 권이 제대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전부터 오늘은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아기씨.”


할멈의 목소리에 오늘이 뒤를 돌았다.

반쯤 투명해진 할멈이 언제나의 생기있는 미소로 오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십니까.”

“예.”


백주 할멈은 웃었다.

이미 오래전 이 세상을 떠났어야 할 백주 할멈이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오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주는 처음 오늘을 만난 그 날을 떠올렸다.




“할멈, 할멈!”


거친 뱃사람의 목소리에 백주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또 배가 고프다고 찾아왔구먼. 싶어 아궁이에 불을 땠다.


“그래, 이놈들아.

잘 다녀 왔느냐.”


부엌에서 나와 마루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백주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 저 미친놈이 결국은 일을 쳤구나!


“이놈!

어디서 그리 어린아이를 잡아 왔느냐!”


내가 네 놈,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느니라!

라고 외치는 백주를 보며 남자가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할멈!

아직 열 살도 안 됐겠구먼. 내가 어찌 이리 어린아이를 취한단 말이오!

저기, 저 이름 없는 섬에서 데려왔소.”


사연인즉 풍랑을 만나 흘러간 무인도에서 만난 아이라 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섬에서 자라는 아이가 안타까워 백주에게 데려왔다 했다.


“에이, 우리 집이 무슨 탁아소더냐.”


다소 툴툴거리긴 했지만 사실 백주도 썩 나쁘지 않았다.

사랑하는 딸이 아들들을 천지왕의 곁으로 보내준 후 세상으로 나간 때부터 백주는 혼자였다.

정 없는 것.

어찌 늙은 어미 혼자 두고 떠난단 말이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백주는 딸을 이해했다.


그 천지왕의 아내가 된 사람 아닌가.

땅에 있는 모든 것의 어미가 되어야 하는 자가 어찌 이리 작은 마을에 얽매여 있을까.

알면서도 쓸쓸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어 길 잃은 자들이나 거둬 먹이는 중이었다.


“···어린 것아, 이름은 무엇이냐?”

“···.”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늘···.”


무슨 이름이 이리 해괴망측한고.

정말인가 싶어 뱃사람을 바라보자

놈은 왜인지 덩치에 맞지 않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사실은 이름이 없다 하지 않소.

그래서 내가 우리가 오늘 만났으니, 네 이름은 오늘이다라고···.

아니, 나는 장난이었소.

근데 이 아이가 꽤 그 이름이 마음에 든 건지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저리 대답하오.”


오늘이라.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 오늘이.

처음에는 해괴망측하다고 생각했건만 곱씹어보자 괜찮은 듯도 하다.

백주가 아이를 맡아주마 약속하자 놈은 안도한 듯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하고 사라졌다.

설마 저놈 애는 아니겠지···.


“···.”


아이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홀로 무인도에서 쭉 살았다니···.

이 작은 아이가 대체 뭘 먹고 어찌 살아왔단 말인가.

백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아이를 잡아끌었다.


“일단, 목욕부터 하자꾸나.”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처음에는 제대로 말도 못 하던 아이였으나 제법 영특한지 금세 말을 깨쳤다.

심지어 백주가 어물어물 가르쳐준 글도 깨나 통달하였다.

정말로 키우는 맛이 있는 아이였다.


열둘이 지나자 깨나 계집애 태가 나기 시작했다.

아직 앳되긴 하지만 쉬이 보기 힘든 뽀얀 피부에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복숭앗빛 뺨.

길쭉길쭉한 팔다리에 하늘하늘한 속눈썹이 깨나 마음을 동하게 한다.


“오늘아.”

“네, 할머니.”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저 하늘의 별빛조차도 숨죽이게 만든다.

백주는 흐뭇하게 그런 오늘이를 바라보다, 돌연 안색을 어둡게 했다.


백주는 오늘, 오늘이를 밖으로 내보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밤마다 제 부모를 그리며 우는 아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옥황상제가 이 작은 아이를 무엇으로 만들려 하는지 알기 때문이었고

더 붙잡아 두었다가는 자신이 이 아이를 보내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보고 싶으냐.”


오늘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허둥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주가 콩, 하고 오늘이의 이마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예끼.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아느니라.

사람이 어찌 천륜을 끊겠느냐.

내가 아무리 너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한다 한들 네 부모만 하겠느냐.

내 천지왕께 부탁하여 네 부모가 있는 곳을 알아왔느니라.

네 부모는 지금 원천강에 있다.

옥황상제께서 네 부모를 어여삐 여겨 원천강을 관리하라 불렀다 하더구나.

원천강은 저승에 있는 곳이라 산자의 몸으로 가기는 힘드나

저 흰 모래 마을에 있는 장상이라는 도령이라면 알지도 모른다.

가보겠느냐?”


오늘이는 쉬이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금이야 옥이야 다소 입은 걸어도 깊은 속정으로 자신을 품어준 백주 할멈이다.

그 곁을 떠난다고 쉬이 말하는 것이 저 어린것에게 어찌 쉽겠는가.


“떠나거라.

내 이미 네 짐을 다 싸두었느니라.

험하고 힘든 길이겠지만 가거라.

그리고 네 부모를 찾거라.”


그리고 네 숙명을 찾아라.

그 말을 꾹 씹어 삼키며 백주는 짐보따리를 오늘이에게 떠안겼다.

떠밀려 싸릿문 밖으로 쫓겨나면서도 오늘이는 불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감사해요.”


그 말만 남기고 오늘이는 길을 떠났다.

보따리에 백주가 넣어둔 육포를 씹거나 근처에 있는 잡풀을 뜯어 먹거나

종종 마을에 들를 때면 밥 한 그릇 얻어먹게 해주십사 부탁하며 여행을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이의 마음은 밝고 경쾌했다.

이제 곧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더없이 기뻤기 때문이었다.

물어물어 도착한 흰 모래 마을은 하얀 모래사장이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여기 별층당이 어디입니까?”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별층당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화사한 외양의 작은 정자에는, 그 장소만큼이나 화사한 도령이 앉아있었다.


“장상 도령님?”


오늘이의 부름에 장상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이가 본 중 가장 햇빛과 가까운 남자였다.

따스하게 웃는 낯도 그러했고, 부드러운 말투도 그러했다.

엷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따사로웠고,

살랑이는 옷자락이 그러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아직 작은 아이인 것 같은데 여행이라도 다니는 것인가.”


오늘이는 사정을 설명했다.

아주 어릴 때 잃은 부모를 찾아 저승의 원천강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장상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승땅은 사람이 쉬이 밟을 수 없는 곳이오.

그대가 간다면 길은 알려줄 수 있으나 험한 길이 될 터인데 괜찮겠소?”

“네.

가르쳐 주세요.”


장상은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키며 가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마을 몇 개 지나고 산을 몇 개 지나면 연못이 나올 테니 그곳에서 바닷가로 향하라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가 그곳에 간다면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겠소?

사실 부끄럽지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소.

왜인진 모르지만 마을을 떠나려 하면 죽을 것 같이 괴로워지기 때문이오.

이 책을 놓고 오랫동안 지나면 그 역시 죽을 것 같이 괴로워지오.

그러니 그곳에 가면 그대의 부모님에게 물어봐 주오.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오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상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낮과 밤이 지났을까.

장상이 일러준 마을을 지나고 산을 넘자 거기엔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와···.”


오늘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그곳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생명이 흘러넘치는 것 같고, 그 기운이 연기처럼 연못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분홍빛 연꽃이었다.


“아름답다···.”

“후후···.

고마워요, 귀여운 아가씨.”


깜짝 놀란 오늘이가 주변을 둘러보자 한들한들 연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연꽃님께서 말을 하신 건가요?”

“그렇답니다.”


오늘이는 깜짝 놀란 나머지 장상이 일러주었던 길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망설이던 오늘이 연꽃에게 물었다.


“연꽃님, 혹시 원천강에 가는 길을 알고 계시는지요?”


한들거리던 연꽃의 움직임이 멎었다.

기분 탓인지 연꽃의 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곳에 가기엔 아가씨는 너무 작고 여립니다.

꼭 가야 하나요?”


오늘이는 부모님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연꽃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그런 사정이라면 알려드려야겠군요···.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어요?”


연꽃은 바닷가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 바다만 건너면 저승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상하게 윗줄기에는 꽃이 피었는데 아랫줄기에는 꽃이 피질 않네요.

아가씨가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오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꽃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산딸기도 따 먹고 산나물도 캐 먹으며 몇 날 며칠이 지났을까.

오늘의 눈에 파란 바다가 보였다.


“와아···.”


넓고 웅장한 바다를 보며 오늘이는 좌절했다.

이 바다를 어찌 건넌단 말인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오늘이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하나요, 작은 아가씨.”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것처럼 울리는 목소리.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아주아주 커다란 뱀이 있었다.

입에는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 있었는데,

그 뱀을 보며 오늘이는 입에 여유가 없으니 날 잡아먹지는 못하겠구나, 안도했다.


“바다를 건너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이러고 있었어요.”

“왜 바다를 건너고 싶은가요?”


오늘이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뱀은 말했다.


“이 건너편은 저승길이라 어린 아가씨가 혼자 가기는 위험할 텐데···.”

“그래도 저는 가야 해요.

제 부모님을 찾아야만 해요.”


잠시 고민하던 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비록 미물이지만 천륜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아가씨, 내게 업히시지요.

내가 아가씨를 바다 건너편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오늘이는 뱀의 등에 탔다.

뱀은 구불구불 하늘을 날아 순식간에 바다 건너편으로 오늘이를 데려다주었다.


“와아, 정말 감사해요, 뱀님!”


그 말에 뱀은 조금 화가 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뱀이 아니라 이무기랍니다, 아가씨.”


이무기, 이무기.

고개를 끄덕이며 이무기라고 되뇌는 오늘이를 바라보며 이무기가 미소지었다.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한참이나 일러준 이무기가 말했다.


“부탁은 다른 게 아니라 하나 알아와 줬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가씨가 보다시피 저는 지금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 있습니다.

남들은 하나만 물어도 승천한다는데 왜 나는 승천을 못 하고 있는지···.

아가씨가 물어봐 주겠어요?”


오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기가 알려준 길로 한참을 걸었는데 웬일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죽은 자의 나라라 음식이 필요 없는 것일까.

오늘은 배가 고프지 않음에 신이 나서 걸었다.


허허벌판을 걷던 오늘이의 눈에 작은 누각이 보였다.

장상이 떠올라 오늘이는 발걸음을 돌려 누각으로 향했다.


“누구 계시나요?”


오늘이의 목소리에 한 아가씨가 고개를 들었다.

어딘지 서글퍼 보이는 아가씨에게 오늘이는 물었다.


“아가씨는 왜 이곳에 홀로 계시나요?”

“저도 왜 제가 여기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책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습니다.”


홀로 있는 아가씨의 모습에 오늘이는 홀로 지내던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이는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 기다려주세요.

제가 가는 원천강은 세상의 모든 답이 있는 곳이라 하니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아가씨가 있는 누각을 뒤로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한시라도 빨리 아가씨에게 답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흑, 흐흐흐흑···.”


한참을 걷던 오늘이의 귀에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갈까, 하던 오늘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키워줬던 할머니는 사정이 없어서 자신을 도왔겠는가.

그 도움을 받았던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쳐서 되겠는가.

오늘이는 마음을 고쳐먹고 누가 우는가 싶어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우물가에서 화사한 의복을 입은 아가씨가 울고 있었다.

오늘은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왜 울고 있어요?”


울던 아가씨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아가씨는 말했다.


“저는 옥황상제의 시녀 중 막내 시녀입니다.

천하궁의 물을 긷는 것을 소홀히 하여 상제께서 대노하시어 이 우물의 물을 다 퍼야만

하늘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퍼도 물이 퍼지지 않고 밑으로 죄 흘러버려 울고 있던 참입니다.”


오늘이는 선녀가 가진 표주박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표주박을 보며 오늘이는 상제님은 심술쟁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오늘이는 정당풀을 뜯어 뭉쳐 구멍을 메꾸고 그 위로 송진을 덧발랐다.

시험 삼아 물을 떠보자 새지 않고 잘 떠졌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와아, 고맙습니다, 작은 아가씨!

정말 고마워요!”


물을 다 퍼낸 선녀는 오늘이에게 왜 산 자인 아가씨가 이곳에 있는지 물었다.

오늘이는 대답했다.


“제 부모님을 만나러 원천강으로 가는 길이에요.”


그럼 선녀는 자신이 데려다주마, 하고는 오늘이를 안아 올렸다.

눈 깜짝할 사이 선녀와 오늘이는 대궐 같은 저택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이 원천강이에요.

꼭 부모님을 만나길 바랄게요, 아가씨.”


하늘로 돌아가는 선녀를 배웅하고 오늘이는 원천강 안으로 발을 디뎠다.

거기에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다.


“아가야, 아가야!”


어머니의 품에 안긴 오늘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그리도 꿈에 그리며 눈물짓던 부모님을 만난 것이다.

어머니는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가야.

너를 낳은 그 날 상제께서 이곳을 지키라 우리에게 명하셨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너를 그곳에 두고 오며 얼마나 눈물지었던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오늘이를 품에 안고 울었다.

그 속에서 오늘이는 행복한 듯 미소지었다.


부모님은 오늘이에게 원천강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어 문을 열 때마다 각기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말했다.


이곳은 시간과 계절의 신전이라고.


그들은 원천강의 모든 것을 오늘이에게 보여주려 애썼다.

언젠가 이곳에 오게 될 오늘이를 위해서.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는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오늘이 떠나야만 하는 날이 되었다.


오늘은 부탁받은 질문을 부모님께 들려주었고, 그 답을 받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가야, 연꽃에게서 받은 연꽃과 이무기에게서 받은 여의주는 꼭 네가 가지고 있도록 해라.

네가 앞으로 상제께서 내리신 숙명을 이루어 나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란다.”


오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알아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오늘이의 앞에서 원천강이 사라졌다.

깜짝 놀라 한참을 살펴보던 오늘이는 결국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먼저 오늘이는 누각에 홀로 있던 아가씨에게 달려갔다.

아가씨는 여전히 지친 얼굴로 책을 붙들고 있었다.


“아가씨, 아가씨!”

“그대는 누구십니까?”

“원천강을 찾던 오늘입니다, 아가씨.”

“그 작던 아가씨가···.”


오늘이는 누각에 있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거기에는 열두셋 되던 어린 아가씨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고

묘령의 나이가 된 자신이 서 있었다.

아가씨가 말했다.


“본디 저승은 이승과 시간이 가는 것이 다르지요.

아가씨의 시간도 달리 간 모양입니다.”

“아가씨.

원천강에서 제 아비에게 물어봤더니 아가씨의 이야기를 알고 계셨습니다.

아가씨는 본래 하늘나라 선녀님이셨는데, 맡은 일을 게을리하여 옥황상제께 벌을 받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제가 아가씨를 두 번 뵐 때 그 벌이 끝나기로 되어있었다고 하니 나와 보시지요.

아가씨께 꼭 소개해 드려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아가씨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가씨는 누각에서 내려와 오늘이의 앞에 설 수 있었다.


“세상에···.”

“이리 오시지요.”


아가씨, 매일이를 데리고 오늘이는 바닷가에서 이무기를 불렀다.


“이무기님, 이무기님!”


그러자 바닷가 건너편으로 돌아가 있던 이무기가 한달음에 오늘이에게 달려왔다.


“아니, 그 작았던 아가씨가 이리 커졌단 말입니까?

저승과 이승의 시간이 다름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 직접 보니 신기하군요.”


오늘이는 일단 자신과 매일이를 바다 건너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오늘이는 바닷가에 닿자마자 이무기에게 일러주었다.


“이무기가 하나가 넘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면,

그것은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 하여 하늘에 오를 수 없다고 합니다.

이무기님이 가져야만 하는 하나의 여의주만 남기고 뱉어버리시지요.”


한참을 고민하던 이무기가 본래 자신의 것이어야 했던 여의주를 남기고 모두 뱉어버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환한 빛이 내려오더니 이무기는 그 빛을 타고 승천할 수 있었다.


용이 된 이무기를 한참 배웅하던 오늘이는 다시 길을 걸어 연못가로 돌아왔다.


“연꽃님, 연꽃님!”


오늘이가 돌아오지 않아 슬퍼하던 연꽃이 한들한들 움직였다.


“여기입니다, 작은 아가씨.

어머, 이제 작은 아가씨가 아니게 되었군요.”


오늘이는 연꽃에게 일러주었다.


“위에 있는 가지의 꽃이 햇빛을 가려 아랫가지에 있는 꽃이 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꽃을 가장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면 다른 꽃이 필 수 있다고 합니다.”


연꽃은 하나뿐인 꽃을 꺾어 오늘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은은한 향기와 함께 모든 가지에서 꽃이 피어났다.

연신 감사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연꽃을 뒤로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몇 개의 산과 몇 개의 마을을 지나자 흰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오늘이는 바로 어제 갔던 길처럼 선명한 기억을 따라 별층당으로 갔다.


“장상 도령님, 장상 도령님!”


장상이 정자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대는 뉘신지요?”

“저는 오늘입니다!

부모님을 뵈러 원천강으로 간다 했던 오늘입니다!”


장상은 놀라 눈을 씻고 다시 오늘을 바라보았다.


“저승의 시간이 이승의 시간과 달라 이리 커져서 돌아왔어요.

그보다 도령님의 질문에 답을 가져왔습니다.

도령님은 장차 큰일을 하실 분이라 그 준비를 시키기 위해 상제께서

도령님이 이곳에서 자신을 가다듬도록 숙명을 내리셨다 합니다.

이제 도령님처럼 오랫동안 홀로 책만 읽어온 처녀를 짝으로 삼으면

앞으로 영화를 누리실 수 있다고 합니다!”


장상은 쓰게 웃었다.

평생을 책만 읽어온 여자라니.

그런 여자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여자가 어디 있겠소.”

“여기 계신 이 매일님께서 장상님의 짝이 되실 분입니다.”


오늘의 말에 장상은 고개를 돌려 매일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그 둘은 알았다.

서로가 서로의 운명임을.

서로가 서로의 인연임을.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영혼의 짝임을.


서로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둘을 남기고 오늘이는 길을 떠났다.

자신이 떠나기 전의 그 집으로 돌아가며 오늘은 기쁘면서 슬펐다.


“할머니, 할머니!”


익숙한 싸릿문을 지나자 오매불망 오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백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오늘이더냐.”

“네, 할머니.

저 돌아왔어요.”


백주의 얼굴에 슬픔이 돌았다.

오늘이의 얼굴에도 슬픔이 돌았다.

그들은 이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알았다.


“할머니, 이 여의주는 할머니께 드릴 것이에요.

이제 오늘이는 상제님께서 내리시는 숙명을 받들러 갑니다.”


오늘은 한 손에 연꽃을, 한 손에 여의주를 든 채로 빛에 휩싸였다.

백주는 막고 싶었지만 참았다.

딸이 떠나던 그 날처럼,

손주들이 떠나던 그 날처럼,

사위가 떠나던 그 날처럼.


그저 안타깝고 쓸쓸한 눈으로 그 빛덩어리를 배웅할 뿐이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 원천강의 주인이 된 오늘은 시간과 계절의 여신으로써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신의 힘도 약해지는 법.

오늘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숙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백주에게 도움을 청했다.

또 하나의 여의주를 가진 백주에게.

그리고 이제 백주가 떠날 날이 온 것이다.


“···할머니.”


언젠가의 소녀와 같은 눈동자를 한 저것은 이미 그 소녀는 아니었다.

상제의 시련을 건너뛰어 신이 된 아름다운 여신.

자신이 떠나면 이제 저 여신은 홀로 남게 되는가···.


“아기씨.

아니, 오늘아.

다시 만날 그때까지 건강 하렴.

또 만나자꾸나···.”


백주가 엷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늘의 눈동자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차가운 얼음과도 같은 그 눈물을 바라보던 백주는 점점 옅어져서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은 홀로 남았다.

오늘은 더없는 피로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제 더는 이곳의 문이 열릴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는,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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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Personacon [탈퇴계정]
    작성일
    19.08.31 04:40
    No. 1

    와 ...완결 축하드려요!! 좋은 엔딩이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8.31 04:44
    No. 2

    에르테님, 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모자란 글 완결까지 봐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김자몽자몽
    작성일
    19.09.28 02:39
    No. 3

    뒤늦게 읽게 되어 아쉽네요.. 분위기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너무 취향이에요. 에피소드 하나 하나 살아가는 캐릭터들도 좋았구요.. 짧은 완결이 아쉽지만 적당히 여운도 남고 저한테는 너무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8 07:54
    No. 4

    김자몽자몽님!
    부족한 작품에 대해 칭찬의 말씀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 쓸 수 있도록 더 정진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힘찬연어
    작성일
    19.09.28 22:39
    No. 5

    여운이 남는 글이였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울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소설을 보며 운 첫 소설이 생겼네요.

    캐릭터들의 생생한 모습과 전생으로 이어진 인연, 오늘님이 들려주는 설화, 그 모든 것들이 제 마음을 떨게 했네요.

    이런 작품이 잘 알려지지않아서 슬프지만 외로울때 의지가 되는 집이 하나 더 생긴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작가님들 중 한분이시니, 앞으로도 많은 글로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운명님
    작성일
    19.09.28 22:46
    No. 6

    play님!
    살궁에 이어 오늘이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ㅜ.ㅜ
    사실 제가 많이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 칭찬해주시니 너무 기쁩니다^^
    항상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힘이 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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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하나의 엔딩 19.08.20 50 2 9쪽
23 여파 19.08.19 42 2 7쪽
22 눈사태 19.08.18 58 3 10쪽
21 고우리라는 여자 19.08.17 64 2 8쪽
20 바랄 것 없는 여자 19.08.16 49 2 11쪽
19 원천강의 하루 19.08.16 50 2 9쪽
18 개천에서 난 용 19.08.14 66 2 10쪽
17 法蛇 19.08.13 50 2 10쪽
16 醫蛇 19.08.12 59 2 10쪽
15 갈래길 19.08.11 53 2 10쪽
14 백삼사 19.08.10 52 2 8쪽
13 장상이 이야기2 19.08.09 59 2 7쪽
12 멈췄다 19.08.08 68 2 8쪽
11 서른다섯 바퀴 19.08.07 59 2 8쪽
10 열네 바퀴 19.08.06 67 2 8쪽
9 한 바퀴 19.08.05 7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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