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용돌이 생산공장

우리 세계의 규칙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새글

Girdap
작품등록일 :
2024.06.01 21:52
최근연재일 :
2024.07.03 14:48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224
추천수 :
8
글자수 :
61,144

작성
24.06.30 15:35
조회
12
추천
0
글자
11쪽

2.중요한.(6)

DUMMY

“어······.”

그 대단한 광경에 청선은 입만 떡 벌리고 어버버거렸다.


“어이! 거기 마법사가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저쪽에서 들리는 외침. 그 외침에 청선은 환하게 웃었다. 스승님이 만든 이 멋진 길을 사람들이 발견한 듯했다.


“여기요!”


청선이 어서 오라는 듯 한 번 더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의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여기다!”

“의원님!”


달려온 젊은이의 등에 업힌 노인이 얼른 내려와 아이에게 다가갔다. 성은이 노인 곁에 가 상황을 설명했다.


“오! 토하게 했으니 다행이오.”


노인은 성은에게 잘했다고 말하며 아이를 추슬러 입에 약을 넣어주었다. 아이는 여전히 끙끙거리고 식은땀을 흘렸다. 왜 약을 먹었는데 괜찮아지지 않을까. 청선이 불안한 듯 저도 모르게 성은의 옷자락을 붙잡고 벌벌 떨었다.

어떻게 하지. 혹시 물을 마시게 하는 게 잘못되었다면. 토하게 하는 게 잘못되었다면. 내가 뭐라고 그런 이야기를 해서 아이를 더 잘못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가.”


그때 스승님이 청선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의 팔목에 있는 푸른색 구슬이 반짝였다.


“괜찮아. 약이란 건 금방 드는 게 아니야. 그리고 네 말을 듣고 판단한 것도 나고, 행동한 것도 나야.”


청선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감히 스승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었다. 울 것 같아서였다. 울음을 참으려면 입이 내밀어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으윽······.”


팔딱거리던 아이의 가슴팍이 조금 얌전해졌다. 그 모습에 의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가서 약 몇 번 더 먹고 좀 쉬고 하면 괜찮아질걸세.”


의원의 말에 몰려온 사람들 모두 아이고, 하이고,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제 마을로 데려가지.”


그 말에 젊은이 하나가 아이를 업었고, 마을 사람들도 얼굴빛이 밝아져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이의 할머니도. 그저 손자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젊은이의 뒤를 따라갔다. 아니, 따라가려 했다.

-딱.

성은이 지팡이로 할머니의 발 앞을 가렸다.


“아.”


그 순간 할머니의 얼굴은 몹시도 붉어졌다. 성은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가 봅니다.”

“아니, 제가 정신이 없어서······. 미, 미안합니다.”


마법을 이용해 아이를 찾아내고 간단한 응급 치료까지 한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나려 했던 이지만, 그래도 지적하니 미안하다는 말은 할 줄 알 만큼 염치는 있었나 보다. 아니면 마녀인지 마법사인지가 지적하니 두려워 그랬는지도.


“저,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허리를 깊숙이 굽혀 성은에게 감사를 표했다. 스승님이 노인에게 인사를 받자 청선의 입이 헤 벌어졌다. 기분이 좋았다. 아이도 찾았고, 무사했고, 스승님이 존경과 감사도 받았으니까.

그러나.


“사과도 하시고요.”

“네?”


뜬금없다. 무슨 사과란 말인가. 성은의 지팡이가 청선을 가리켰다. 청선은 그에 딸꾹질이 날뻔했다.


“환상에서 아이가 사라진 것이 아이 탓이라 다그치지 않았습니까? 사과하세요.”


성은의 엄격한 목소리에 청선은 두려워져 성은의 옷자락에서 손을 놓았다. 사과라니. 노인이 자신에게 사과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손을 휘휘 저어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영준이 청선의 손을 붙들었다.


“오빠······?”


청선은 영준을 올려다보았지만, 영준은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스승님 말씀을 막으면 안 되는 듯했다.


“아, 어, 어······.”


할머니는 당황하여 성은과 영준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냉랭한 눈빛들. 그리고 아이를 업은 채 멀어져가는 마을 사람들. 할머니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얘, 얘야 미안하다.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험하게 굴었구나.”


진심으로 미안한 걸까? 아니면 성은과 영준이 무서웠던 걸까? 아니면 이런 시비 따위 내버려 두고 얼른 아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사과의 진짜 연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튼 할머니는 더 다른 말 덧붙이지 않고 사과를 했다.


“아가야. 사과를 받을 것이니?”


청선은 그저 노인이 사과한 것 자체에 이미 놀라 아무 말 할 수 없는 상태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저, 저는 괜찮아요.”


사과.

자신의 인생에서 사과란 것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그래서 할머니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저, 그 사과 자체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 그 이상이었다. 생소한 경험. 문을 열자 다른 세계가 보이는 것 이상의 생소하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저, 전 그럼 이만.”

-딱

그러나 또다시 성은의 지팡이가 할머니를 막아섰다.


“아니, 또, 왜······.”

“도움을 받았으면 대가를 치르셔야지요.”

“네?”


아이를 찾아 숲에 왔다가 발견한 오두막집 같은 가게. 거기서 만난 마법사. 도와달라는 말에 흔쾌하게 일어선 사람들. 그래서 흔한 선의와 호의의 결과인 줄 알았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


자그마한 마을에 없이 사는 처지에 줄 것이라고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제, 제 영혼요?”


아이를 찾아 숲에 왔다가 발견한 오두막집 같은 가게. 거기서 만난 마법사. 그러니 당장 생각나는 것은 그것뿐. 그러나 성은은 그 말에 인상을 구겼다.


“그런 쓸모없는 것을 왜요?”


사과도 감사도 모르는 영혼 따위 왜 가져가게요, 하고 중얼거리는 듯 덧붙이는 말에 할머니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제, 제가 어떤 것을 드리면 될까요? 도, 돈이라면 제가 없어서 천천히 드릴······.”


성은은 손을 휘휘 저었다.


“꿈 한 조각.”

“네?”

“아니다, 한 조각은 아니고 한 일주일 치?”


자고 나면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서서히 흩어지는 꿈이 대가라. 할머니는 당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가져가세요!”


성은은 피식 웃었다. 톡톡, 지팡이로 그녀의 발치 아래를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황금빛 안개가 그녀의 주변을 휘감았다. 할머니는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청선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를 휘감았던 황금빛 안개는 다시 풀어져 가며 글자로 변하기 시작했다.


“허어억!”


청선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는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는지 모르겠다. 글자는 흘러 흘러 영준에게로 향했다. 정확히 영준이 들고 있는 공책에. 공책에 글자가 정렬되기 시작했다.

휘리릭! 그런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황금빛 안개가 만든 글자가 모두 공책에 자리하자 영준은 공책을 닫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저, 저게, 저게······!”

“그대가 꿀 꿈 일주일 치입니다.”


정말일까? 정말 꿈 일주일 치일까. 그러나 할머니는 그것을 따져 물을 기력도 무엇도 남지 않았다.


“아주머니! 안 오세요?”


이미 저 앞에 간 이들이 노인을 찾아 부르는 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노인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났다. 힐끔,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성은과 영준을 보더니, 고개를 꾸벅거리다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오늘 일은 끝났네, 이제 돌아가자꾸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안한 웃음을 짓는 성은을 청선은 조금은 두려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여태껏 이 사람에게 보지 못했던 아주 냉정한 모습에서 기이한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아가?”

“네, 네, 가요.”


성은의 부름에 청선은 허둥지둥 걸음을 옮겼다. 성은은 청선이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다른 쪽 손은 영준이.

사박사박, 어린 청선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느긋하게 걷는 발밑에 낙엽 밟히는 소리가 난다.


“오늘 아가가 큰일을 했구나. 아가 아니었으면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 뻔했어.”


성은이 다정한 목소리로 청선에게 말했고, 청선은 고개를 저었다. 성은이 말했던 것처럼 제 생각을 판단하고 행동한 것은 성은이었으니까.


“맞아요. 얘가 오늘 큰일 했어요.”


그러나 영준도 매번 토 다는 성은의 말끝에 덧붙이는 것 없이 깔끔하게 인정했다. 영준까지 인정하자 청선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감히 아니요, 하고 말대꾸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앞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몸이 먼저 튀어 나가서는 안 된단다. 나나 영준이에게 허락을 받으렴.”


그 엄격한 목소리에 청선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못했어요!”


그리고 입으로도 대답했다. 큰 소리로. 한 것도 없는데 받는 어색한 칭찬보다는 꾸중이 더 익숙하고 친근해 반갑기까지 했다. 아니, 사실은 비난이나 욕설이 더 친근하긴 하다만. 이 정도는 꾸중도 아니지.


“그래, 알면 되었어.”


성은이 청선의 머리를 가볍게 흐트러트렸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잘한 것이 있으면 칭찬받고. 그건 어느 세계를 가도 통용되는 '규칙'이지.”


끄덕끄덕, 청선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잘 한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칭찬받았고, 잘못한 게 있으니 사과도 했다. 그러나.


“그러니 아가야. 누군가가 너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과를 받으렴.”


그 말에 청선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성은을 올려다보았다. 성은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청선을 바라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게 '규칙'이지.”

“어······.”


당연한 일인데. 규칙인데.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았다.


“네······.”


스승의 말에 토를 달지 않은 채 청선의 작은 머리통 속에 많은 생각이 굴러다녔다.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규칙. 그런데, 저는 이곳에 오기 전, 원래 살던 곳에서 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지 않았던가.


“영준아, 오늘 저녁 메뉴는 뭐니? 배고프다.”

“간만에 치킨 어떻습니까?”

“아, 좋지. 아가에게 치킨 맛 한번 보여줘야지.”

“치킨요?”

“튀긴 닭.”

“우와.”

“스승님, 그게 그냥 튀긴 닭입니까?”


가게를 향해 돌아가는 길. 청선은 치킨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규칙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왜 꿈 조각을 가져가는지도 묻지 않았다. 성은이 말한 세상 이치에 대해 또한 묻지 않았다.


가게를 향해 돌아가는 길. 스승은 치킨에 대해 설명을 했다. 청선이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청선이 물을 날을 기다리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세계의 규칙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3.일반적인.(1) NEW 8시간 전 10 0 11쪽
» 2.중요한.(6) 24.06.30 13 0 11쪽
11 2.중요한.(5) 24.06.27 14 0 12쪽
10 2.중요한.(4) 24.06.24 14 0 10쪽
9 2.중요한.(3) 24.06.19 17 0 10쪽
8 2.중요한.(2) 24.06.16 25 0 10쪽
7 2.중요한.(1) 24.06.13 13 0 10쪽
6 1.소소한(5) 24.06.10 16 0 10쪽
5 1.소소한(4) 24.06.07 13 1 12쪽
4 1.소소한(3) +2 24.06.05 21 2 12쪽
3 1.소소한(2) 24.06.03 19 2 12쪽
2 1.소소한(1) 24.06.01 22 2 12쪽
1 0.만남 24.06.01 28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