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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계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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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24.06.01 21:52
최근연재일 :
2024.06.27 14:18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76
추천수 :
8
글자수 :
51,360

작성
24.06.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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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중요한.(4)

DUMMY

청선은 스승의 뒤를 따라 가면서 가게 안을 둘러보느라 정신 없었다. 여전히 뭐를 파는 가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신기했다.


“자아, 아가, 문을 열어보련?”


스승은 청선이 충분히 둘러보았다고 생각할 때쯤, 자신들이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청선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스승이 시키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우와와아!”


이미 겪어봤기에 스승의 방이나 집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았다. 그런데, 이건 기대하지 않았다.

숲이었다.

자신이 자랐던 마을에서 보던 것 같은 거대한 나무로 가득 채워진 숲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나가 보자.”


이번에는 영준이 청선의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청선은 영준의 손을 꼭 붙들고 숲을 바라보았다. 숲 사이에는 오솔길이 나 있었고,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청선은 숨을 깊게 들어쉬었다. 스승님과 오빠의 세계로 간 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편안 곳이긴 했지만 바람은 조금 메캐했으니까.


“굉장해요!”

“다음에 오면 또 여기는 바뀌어있을거야.”

“어? 네?”

“나도 여기는 처음이다.”

“정말요?”


그럼 이곳에 올 때마다 다른 광경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청선은 작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래, 이제 들어가자. 여기는 가을인가보다. 춥다. 감기 걸린다.”


공간만이 아닌 시간 역시 다른 곳이라 한다. 청선은 영준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힐끔힐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청선과 영준이 가게로 돌아왔을 때 스승은 가게 안의 창문을 모두 열었다.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그러자 공기 중에 동동 떠다니는 뽀얀 먼지가 너무 잘 보였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청소다.”

“우리가 아니라 저랑 얘겠죠.”

“이 다리로 청소하다가 걸레 물 쏟았다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 게 누구였더라?”

“네. 불민한 제자죠. 야, 받아.”


영준은 청선에게 작은 장갑을 내밀었다. 청선은 장갑을 받아 끼면서도, 이걸 왜 끼는 줄 몰랐다.


“청소하자.”

“그런데 장갑은 왜요?”

“손 다치고, 먼지 많이 묻으면 안 좋잖아.”


영준은 툴툴거리며 그도 제 몫의 장갑을 꼈다. 청선은 제 손에 딱 맞는 장갑을 끼고 주먹을 줬다 피면서 베시시 작게 웃었다. 세상에, 손이 상할까 장갑까지 주시다니. 너무 좋다. '스승님'과 '오빠'가 아니라 '마님'과 '도련님'이라도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일꾼을 챙겨주시는 분들이라면.


“감사합니다. 저, 저······. 청소 잘 해요.”


그 마을에서도 저주받는 새끼라던가, 개새끼 소리 듣고 사람 취급 못 받았어도 청소 하나만큼은 말끔하게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청선은 테이블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장갑 낀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이런 상태를 촌장님댁 사모님이 보셨으면 귀싸대기를 날리셨을 것이다.

영준은 익숙하게 한쪽의 장롱문을 열어 청소도구를 꺼냈다.


“쉬엄쉬엄 해.”

“네.”


그 청소 도구를 받아 든 청선은 청소를 시작했다. 뽀얀 먼지가 우수수 날리기 시작했다. 슥삭슥삭 테이블에 쌓인 것들은 한쪽으로 몰아 크기 순으로 치우고, 먼지를 털어냈다. 먼지를 털어내가며, 바닥에 쌓인 것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밀어내고 걸레로 닦고, 또 저쪽으로 몰려진 쓰레기들을 한쪽으로 모으고, 오빠가 벌려준 커다란 쓰레기 봉투에 담고. 그리고 다시 걸레질 슥삭슥삭. 청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먼지 한 톨 쓰레기 한 톨 남지 않았다. 더불어 청선의 얼굴의 그늘도 싸그리 사라졌다. 그걸 지켜보는 영준과 성은의 얼굴은 약간의 그늘이 남았지만.



**



“끝!”


여기 온 지 한참 지나고 창밖의 햇살도 중천을 지났을 무렵, 영준이 걸레와 함께 장갑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청선도 장갑을 벗었다.


“자, 착!”

“착?”


성은이 청선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청선은 뭐가 뭔지 모르면서 자기도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작게 짝 소리가 났다.


“으응?”

“일이 잘 끝났을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하지.”

“아.”

“착!”

“아, 네. 착!”


짝, 한 번 더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청소가 잘 끝난 것을 기념했다. 청선이 또 베시시 웃는다.


“이제 좀 쉬자.”


깨끗이 닦아 반들반들해진 소파 위에 성은이 늘어지듯 앉았고, 그 건너편에 청선과 영준도 앉았다. 어디서 나왔는지 음료수 세 병이 셋의 손으로 갔다.


“오늘은 간만에 청소해서 이 모양이지만, 다음에 청소할 때는 이렇게 더럽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아가,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


스승이 또 두 눈을 콧잔등과 함께 찡긋거린다. 청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베시시 웃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요, 여기는 무얼 파는 곳이에요?”


청소를 하면서 유리병도 가까이서 보고 가득 쌓인 책도 보고, 여러 그림도 봤지만, 도통 뭘 하는 곳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여기는, 음······.”


스승은 알려주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청선은 새콤달콤한 과일 맛이 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스승의 말을 기다렸다.


“길을 잃은 존재에게 길을 찾아주는 곳?”


말을 고르고 골라 설명해 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말을 고르던 스승의 정성을 생각해서 청선은 반문하기 보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오빠는 여기는 처음이래요. 우리도 처음인데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본질적인 질문이구나.”

“······.”

“그런데 아는 척 가르쳐 주는 거야.”

“······그럼 또 길을 잃지 않나요?”

“그러면 또 찾아오겠지.”

“아.”

“그때 또 같이 찾아가는거지.”

“음.”


아닌 척 해도 아직 이해 못하는 티가 가득나는 청선의 얼굴에 성은은 킬킬 거리며 웃었다.


“아가도 여기 있으면 뭔지 알게 될 거야.”

“곧 손님이 오나 보네요.”


스승이 말이 끝나자마자 영준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 마신 음료수 병을 착착 집었다.


“어? 버리게?”

“어질러질 때마다 바로 치우면 오늘 같이 여럿 청소할 일도 없습니다, 스승님.”

“흥.”


이제는 청선도 조금은 익숙해진 스승과 제자의 투닥거림이 시작될 쯤.

똑,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계시나요?”


끼이익, 하며 문이 열리고 노년의 여자가 나타났다.


“어서오세요.”

“어서 오십시오.”


영준과 성은이 인사하자 청선은 허둥지둥 말은 못하고 허리만 접어 인사했다. 노년 여성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그녀도 곧 허둥지둥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청선은 그녀의 옷차림이 스승님의 세계보다 자신이 살던 마을 사람들과 더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보다는,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았지만.


“저기, 혹시······죄송하지만 이 근처에서 아이 하나 못 보셨나요?”

“아이요?”


여자는 청선을 가리켰다.


“저 아이보다 조금 더 작은 사내 아이인데. 제 손주가 사라져서······.”

“이곳으로 오지는 않았는데······.”


성은의 말에 여자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조금 비틀거렸다. 영준이 그녀의 팔을 가볍게 붙잡아 소파로 이끌었다.


“좀 앉으세요.”

“아아, 고마워요.”


여자는 풀썩 쓰러지듯 소파에 앉았다.


“손주를 잃어버리셨나요?”


성은의 질문에 여자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아이가 열매를 따러 숲으로 간다더니 이 시간까지 오지 않았어요. 항상 점심 때에는 알아서 돌아와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런.”

“그런데, 여기, 여기는? 제가 여기 평생을 살았는데 여기는 처음 보는데.”


그녀의 말에 성은이 빙그레 웃었다.


“정말로 바라는 것이 있으면 보이는 곳이지요.”


성은의 설명에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주춤, 몸이 뒤로 물러섰다.


“마······녀?”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고, 마법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잡상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생각하고 싶은데로 생각해요.”


여자만큼이나 청선도 굳었다. 소문으로만 들어보았던 존재다. 마법사. 아기의 간을 빼먹는다는 마법사! 히익!


“제발, 제발, 마녀든 마법사든 괜찮아요! 제가 평생 소원이란 놈이 없었는데 지금 바라는 것은 그 녀석을 찾는 거예요!”


여자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성은 앞에 냉큼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울부짖었다. 그녀의 비명 같은 울음에 청선은 정신을 차렸다.


“마법사님, 마법사님, 우리 아이 좀 찾아주세요.”

“진정하세요. 아이는 찾을 겁니다. 문(門)은 어린 것들에게 친절하니까. 영준아.”

“네, 알겠습니다.”


스승이 그저 이름을 부르기만 했는데, 영준은 저쪽 유리병이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그곳에서 무얼 찾는 것 같다. 청선은 두 사람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모르다가 아까 청소할 때 봐두었던 작은 상자 쪽으로 갔다. 냉장고가 있는 집과 달리 여기에는 자신이 살던 곳처럼 상자 안에 먹을 것을 보관했다. 그곳에서 물병을 찾아 깨끗이 닦은 컵에 따라 한 구석에 놓여있는 쟁반에 올렸다.

예전에 일을 도와주러 갔다가 그 댁에 일하는 사람이 손님 접대를 한 것을 보았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 했다.


“저기, 드세요.”


청선이 물을 내밀자 여자는 울부짖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청선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청선의 얼굴에서 손자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쓴 웃음을 지으며 물을 받았다.


“고, 고맙구나.”

“드시면, 진정 될 거에요.”

“그래······.”


여자는 물을 달게 마셨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때 영준이 손에 등불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아직 해가 있는 시간임에도 등불은 눈에 띄게 빛나고 있었다.


성은은 영준에게서 등불을 받아 들었다. 절뚝거리며 일어나자 여자도 황급히 뒤따라 일어났다. 청선은 그들을 따라나서도 되는지 몰라 쟁반을 든 채 우물쭈물했다.


“아가도 따라가자꾸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눈치 챈 성은의 말에 청선은 반색하며 얼른 그들의 뒤에 붙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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