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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생산공장

우리 세계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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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24.06.01 21:52
최근연재일 :
2024.06.24 14:42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58
추천수 :
8
글자수 :
45,991

작성
24.06.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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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중요한.(2)

DUMMY

와글와글, 오늘 밖에서 본 사람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곳은 문을 연 곳에 펼쳐진 세상에는 작은 집들이 모여있었다. 아니, 아니, 집이 아니라 방이었다. 문은 없는 색색의 방이 있었다. 각 방은 생긴 것도 다 달랐다. 까만 가구로 채워진 방, 하얀 가구로 채워진 방, 파랑, 노랑, 초록, 색색이 다른 방들.

“여기는······?”

청선이 놀라 자신이 나왔던 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른 다시 열어보았다. 하지만 집이 아니었다. 스승의 방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어두운 공간에 회색빛 계단만이 있을 뿐이었다. 청선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문을 여러 번 열었다가 닫았다. 하지만 같은 광경만 반복될 뿐이었다.

“놀랐구나.”

“놀라겠죠.“

영준이 툴툴거리며 말했고 스승은 입술을 삐죽였다.

“이게, 어떻게, 문이······.”

자신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문은 그저 벽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전혀 모르고 다른 공간이 나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청선아. 세상은 말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만이 아닌 수많은 세계로 중첩되어 있단다. 보통은 그 공간은 이동할 수 없고, 간섭하면 안 된단다. 하지만, 때때로 그걸 간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 내가 그렇고, 영준이는 부족해도 조금은.”

이번에는 영준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걸 응용하면 같은 세계에서도 문을 통해 간섭할 수 있고 이동할 수 있지. 지금 그렇게 여기로 금방 온 것이고.”

청선은 스승이 하는 말을 깊이 새겨듣기 위해 애썼다. 스승님이랑 오빠가 자신은 똑똑하다고 했으니까. 이해할 수 있으니 설명하신 걸거야.

“그럼, 언제든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걷지 않고 이렇게 문만 열만 되는 건가요?”

“이해했네. 하지만 자주 쓰면 힘들어서 가끔, 이렇게 우리 아가 예쁜 거 사주고 싶을 때만.”

영준이 어쩐지 우웩하는 소리를 낸 것 같지만, 청선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스승이 저를 위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문을 열어주었다는 소리만을 온전히 귀에 담았다. 가슴이 또 간질거리고 웃음이 날 것 같아 입을 꾹 닫고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해한 것 같으니 출발!”

스승은 지팡이로 그 복잡하고 신기하고 화려한 세상을 향해 지팡이를 한 번 휘하고 휘저었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주문하자.”

스승은 지팡이를 따닥따닥 짚으며 앞서 나갔다. 사람들은 각각의 방을 들여다보며 자기들끼리 이야기 나누었다.

“어우, 저건 우리 집에는 너무 안 어울려.”

“그래도 내 취향인데.”

그런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청선의 귓가에 스쳤다.

“여기, 방이 많아······.”

청선이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영준이 쥐고 있던 손을 더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

“방이 아니라 그냥 전시해 둔 거야.”

“전시?”

“저기 가구들 다 파는 거야. 예쁘게 전시해야 더 잘 팔리니까.”


청선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보이는 것들이 예쁘고 화려해 눈을 뗼 수 없었다.


“저기, 어린이용은 저쪽에 있는 것 같은데요?”

“어엉, 그래.”


영준의 말에 성은이 길을 꺾어 갔고, 그곳에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 보다 더 화사하고 예쁘고 작은 가구로 채워진 방이 있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부모인 듯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같이 구경하고 있었다.


“나, 이거, 이거어!”

“안 돼.”

“저거 싫단 말이야아!”


아웅다웅 하며 지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소리 없이 가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청선은 가구에서 처음 눈을 떼고 그런 아이들을 눈에 담았다. 다 예쁘고 깨끗했다. 마을에서 보았던 아이들보다 더. 청선을 힐끗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스승님이 깨끗하게 씻겨주고 새 옷을 입혀주어서 저 아이들같이 만들어 주었지만, 정말로 저 아이들 같아졌을까? 그냥 겉모습만 그렇지 자신은······.


“야, 이건 어떠냐?”


그때 영준이 손을 잡아 당기며 한쪽을 가리켰다. 청선의 몸이 돌아갔다. 거기에는 나무색의 작은 의자와 책상이 있었다.


“예뻐요.”

“여기 한번 앉아보렴. 크기가 맞는지 봐야 하니까.”


예쁘다는 청선의 말에 스승은 냉큼 아이를 책상에 앉혔다.


“아.”


청선은 이게 뭐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책상 앞에 앉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오늘 배운 숫자들도 단번에 외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반들반들한 책상 면도 한번 손으로 쓸어보았다.


“예쁘다······.”


청선이 홀린 듯 중얼거렸다.


“이거 밑에 의자랑 책상은 높이 조절도 되나 본데요? 음, 서랍도 있고 좋네요.”


옆에서 꼼지락꼼지락 책상을 만지던 영준이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아가 이거 살까?”


스승이 청선에게 묻자 청선은 화들짝 놀랐다. 지금 이 예쁘고 귀한 책상을 자신을 위해 사준다는 건가? 그때, 청선의 눈에 책상 앞에 붙어있는 '숫자'가 들어왔다.

오늘 배웠다. 10을 배우면서, 0이라는 숫자의 개념을. 이게 많이 붙을 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그리고 물건을 사는 법도 배웠다. 그러니 저게 아마 가격이겠지.

0이 너무 많다.

오늘 배웠던 숫자 80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다.

엄청난 숫자다.

청선은 화들짝 놀라 책상에서 얼른 내려와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싫어? 그럼 다른 걸 볼까?”


스승은 또 건너편의 다른 책상을 가리키고 거기에 청선을 앉혔다. 청선의 눈에는 이제 책상이 예쁘고 좋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0의 개수만이 보였다.


“이거는 어떻니, 아가?”


청선은 또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스승은 또 다른 책상을 가리키고 거기에 청선을 앉히려했다. 이번에는 0이 더 많아 청선은 앉지도 않았다. 스승님은 아무래도 이 걸 계속 반복할 것 같았다. 지팡이를 집고 걸어야 할만큼 다리가 아픈 스승님께 못할 짓 같았다.


“괜찮아요, 안 사도 돼요.”


청선은 얼른 스승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니, 안 괜찮아. 넌 앞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상을 사야 해. 자아, 다음 걸 볼까?”

“그, 그럼 처음에 본 거요!”


그게 0의 개수와 맨 앞의 숫자가 제일 작았다.


“그럴까, 그럼?”


청선의 답에 성은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영준아! 주문 해 놓으렴.”

“네, 알겠습니다.”


열 번을 시키면 열 번은 투덜거리며 답하는 제자가 이번에는 아무 덧붙임 없이 잽싸게 대답한다. 스승은 또 웃으며 청선의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어린 피부가 보들보들하다.


“어휴, 우리 복덩이.”

“아.”


영준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무언가를 쓰더니 금세 돌아왔다.


“사흘 안에 배달 온다고 합니다.”

“그래. 이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집에 갈까?”

“아이스크림······.”


청선은 당연히 아이스크림이 뭔지 몰랐다. 그저 영준이 약간 신이 난듯 둘보다 앞서 다른 쪽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사람은 엄청 많았다. 그리고 식당 같은 것이 있었다.

마을에서 봤던 것보다 더 큰 식당. 신기한 것은 이곳은 손님들이 직접 식사를 받아 자리에 앉아 먹는다.

스승과 청선이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곧 손에 컵 세 개를 든 영준이 왔다. 컵에는 작은 스푼이 하나씩 꼽혀있었다.


“여기.”


청선이 손에 쥐어준 컵은 무척이나 차가왔다. 컵은 심지어 종이로 만든 듯했다. 그 안에 하얗고 까맣고 그런 둥근 것이 있었다. 청선이 어찌할 바 모르고 오빠와 스승님을 한번 씩 쳐다보았다.


“이렇게 먹으면 된단다.”


스승은 스푼으로 하얀 것을 한번 음식을 뜨듯 떴다. 그리고는 입에 넣었다. 청선도 조심스럽게 그대로 따라하고 입에 넣었다. 차갑다. 그런데 맛있다! 진짜 맛있다! 너무 달고 맛있다! 그 단맛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입에서 부드럽게 흩어져 사라졌다. 청선은 얼른 또 한 스푼을 떠서 먹었다. 이번에는 검은 거. 맛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하얀 거와 달리 다른 맛이 나지만 여전히 차고 달콤했다.


“맛있어?”

“맛있어요!”


청선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떠올랐다.


“아가, 더 먹을 래?”


청선의 컵이 금세 바닥을 보이자 스승이 제 몫의 컵을 내밀었다. 청선이 알아서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기도 전에 영준의 손바닥이 둘 사이를 막았다.


“갑자기 자기 전에 찬 거 먹이면 배탈 납니다.”

“이 정도로?”

“이 정도로도 충분히요.”


영준이 청선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다.


“이거 갑자기 많이 먹으면 배탈 나니까 또 다른 날 먹어. 알았어?”

“네!”


이 달고 맛있는 것을 다른 날 또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청선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청선은 불안했다. 이 집에 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 그 동안 스승님과 오빠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샀던 그 비싼 책상 앞에서도, 매일 하루 한두 시간 산책에서도, 식사 시간에도, 씻고 먹고 자면서도.


이제 청선은 숫자 1,000까지 쓸 수 있었으며, 글자도 간단한 것을 쓸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스승님과 오빠의 이름도 쓸 수 있었다. 두 분의 이름을 써서 보여줬을 때는 오빠는 자신을 번쩍 들어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러웠지만, 기뻤다.


음식이 나오는 상자는 항상 음식을 차갑게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라는 것도, 그릇을 씻는 물이 콸콸 나오는 곳은 '싱크대'라는 것도,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는 청선이 써도 된다고 허락받았지만, 가스레인지는 더 자랄 때까지는 사용하면 안 된다고도 배웠다. 불은 위험하니까.


이제 청선은 혼자 밖에 나갔다가 문을 열고 들어올 수도 있었으며 아래층과 위층을 오가는 상자인 '엘리베이터'도 자유자재로 탈 수 있었다.


그러자 슬슬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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