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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숲에 사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하은수
작품등록일 :
2023.02.20 01:13
최근연재일 :
2023.03.29 03:39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046
추천수 :
39
글자수 :
126,367

작성
23.03.13 13:42
조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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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6. 옥묘아씨

DUMMY

"어때? 지켜줄 필요가 없지? 쟤는 너 가고 나서도 계속 다른 희생자 찾던 놈이야. 보름달 뜰 때까지는 열흘도 넘게 남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더 죽이려고."


"거듭 말하지만 죽이려던 게 아니오. 광한궁으로 초대를 할 뿐이오. 아직 갈 수가 없어서 용궁의 손님방으로 안내했을 뿐."


"그래그래. 강 밑바닥으로 안내했다가 죽는 꼴을 34번 봤었는데 계속 하겠다는 거 아냐. 보름달 뜰 때까지."


"정해진 관례는 바꿀 수 없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래~ 계속 말해. 그래야 보안국장도 네가 징그러워서 죽었으면 싶겠지."


"아니마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오. 삶과 죽음의 개념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소."


"그래 알았어~ 세상에서 소멸하게 해줄게. 이리와."


"나는 사명만 완수하면 저절로 소멸하오. 사명을 완료하지 못한 지금은 그럴 수 없소!"


옥토끼가 내 품에 안겨서 울부짖었다. 생긴 건 열 살 정도 된 어린애라서 매정하게 굴기가 힘들었다. 옥토끼에게 협박을 하는 불새는 하필이면 청소년의 모습이었기에 더 마음이 불편했다. 정신차리자. 이건 34명을 죽인 살인범이야. 반성하는 기색도 없어. 엄벌에 처해야 옳다. 하지만 나는 어떤 흉악범죄자에게도 사형을 시킬 생각은 없어. 그건 죄를 빌미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이 아이가 연쇄살인을 한 흉악범죄자지만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죗값을 치르고 교화해야지. 그게 범죄를 저지른 시민의 의무가 아니겠어. 그가 의무를 이행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는 합당한 죗값을 치를 기회와 교화할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범죄자도 결국은 사람이기에. 얘는 인간이 아니라니까 상관이 없나? 그래도 일단은 기회를 주고싶다.


"너 아까 전에 내가 구해주면 사명을 미루겠다고 그랬지. 네 사명이라는 건 뭐지? 사람을 반드시 납치해야 하는거야?"


"납치는 하지 않았소. 모든 손님들은 자발적으로 내 초대에 승낙했소. 나는 그저 일시적으로 경계심을 제거해서 배에 오를 것인지 물었을 뿐이오."


"...."


미치겠네. 생각보다 더 악질이다. 경계심을 제거해서 초대에 승낙하도록 만드는 거라니... 나도 아까 당해보니까 아무생각 안들고 상대가 말하는대로 따르게 되더라.


"그게 납치야. 이 덜떨어진 아니마 자식아. 어때? 감당 못하겠지? 다 이해하니까 쓸데없는 죄책감 갖지 말고 이리 넘겨. 내가 깔끔하게 없애줄게."


"아직 소멸할 수 없소! 당신에게도 당신의 사명이 중요하듯이 나에게도 그렇소!"


불새가 다시 협박을 시작하고 어린애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일단,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 너의 사명인가 하는게 대체 뭐야?"


"나의 사명은 인간의 영웅을 만나 그를 돕는 것이오. 만난 사람이 영웅인지 아닌지는 광한궁에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리로 가야하오."


"..."


너무 어린아이나 할 법한 유치찬란한 이야기에 잠시 말을 잃었다. 영웅을 찾는다니... 동화 속에 나오는 조력자도 아니고 그게 뭐야.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훌쩍이는 옥토끼는 동화 속의 등장인물보다는 그 동화를 읽고 즐기는 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보안국장. 겉모습에 속지 말고 본질을 봐. 정 어렵다면 쟤가 34명을 살해했다는 걸 잊지말고."


불새가 그런 나를 다그치듯이 말했다. 불새의 말이 맞다. 훌쩍이고 있는 이 조그만 아니마는 연쇄살인마였다. 정신차리자.


"옥묘아씨. 나는 불새가 너를 잡아먹도록 두지 않을거야. 하지만 너를 좌시하지도 않을 거야. 너는 34명을 죽였으니까. 너에게는 죗값을 치를 의무가 있어."


"그 죗값 죽음으로 치르면 되잖아."


불새가 부처를 현혹하는 마라처럼 나를 꼬드겼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내가 그런 말에 넘어갈 거 같냐.


"살인자를 사형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아. 물론 세상에는 사회에서 격리되는 편이 나은 자도 있겠지. 그렇다면 격리시설에서 지내게 하면 그만이야. 국가가 생명이 소중하다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모든 국민에게 적용해야 옳아. 죽어야 마땅한 자를 국가가 판단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거야."


자꾸 못된 말을 하는 불새에게 내 가치관을 직구로 전달했더니 불새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지? 쟤도 국가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런가. 시민이라고 바꿔서 다시 설명해줘야 하나. 미래세계는 너무 어렵다. 벙쩌있던 불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너는... 그런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 이어졌구나."


불새도 다른 사람들처럼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군. 미래사람들은 다 이런가. 내가 기억을 잃어서 그런건가. 혼자 딴생각 하느라 정신팔린 나를, 옥묘아씨가 고사리손으로 건드리며 말했다.


"선생. 불새를 물러주어 고맙소. 선생이 덕망 높다고 믿는 이가 많아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은혜까지 입게 될 줄은 몰랐구려. 이 은혜. 갚기위해 최선을 다하겠소."


어린 소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감사를 표하자, 조금 민망해졌다. 나는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을 뿐이지, 상대에게 마음의 빚을 지우려던 게 아니었으니까. 은혜를 갚는다니. 그런 거 안해도 돼. 하지만 불새는 나와 의견이 다른지, 싸늘한 눈으로 옥묘아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옥묘아씨. 네가 은혜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는 내가 지켜볼거야. 갚으려면 제대로 갚아. 네가 보안국장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넌 그날 바로 소멸한다."


뭐야. 쟤 왜 저래. 어린애 겁박하는 것 좀 그만해. 옥묘아씨도 불새에게 잔뜩 겁을 먹었는지, 내 옷깃을 잡으며 불새에게 항변했다.


"차우진 선생이 날 소멸하지 말라고 했잖소! 당신은 그 말에 약조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약조? 난 그런 거 안했어. 보안국장이 널 소멸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난 그 말에 대답한 적이 없는데?"


불새가 얄밉게 이죽대며 옥묘아씨의 말에 대꾸했다. 하긴, 불새를 옥토끼를 죽이지 말라는 내 말에 그러겠다고 답한 적이 없다. 뭐, 대답했다고 해도 그게 무슨 효력이 있겠어. 구두계약도 쉽게 깨지는데 말이다. 매정한 불새는 울먹이는 옥묘아씨에게 매섭게 말했다.


"결계를 열고 너의 쓸모를 증명해. 네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네 능력에 따라 판단하겠어. 네 스스로 보안국장을 능력껏 비호해라. 그게 너의 은혜를 갚는 방법이고 내가 주는 시험이야. 먹히지 않으려면 네 가치를 증명해."


"...알았소. 당신의 말을 따르리다."


불새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듣고 난 옥묘아씨는 비장한 얼굴로 그것을 승낙했다. 그리고는 앙증맞은 손바닥으로 박수를 두 번 쳤다. 손뼉 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나니 사위가 아지랑이가 이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곧이어 시끄러운 소음들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국장님. 비서실과 부국장실의 부재중 연락이 78건이 있습니다.]


"국장님! 안에 계십니까! 곧 열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쇼!"


비현실적인 일그러짐이 가라앉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국장실은 쿵쿵 울려대는 소음과 나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어, 정신없고 추웠다. 하나 둘 셋 하는 구호가 들리더니 자동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열댓명의 사람들이 굴러들어왔다. 누군가 뒤에서 새치기를 하듯, 밀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성인 남자들이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넘어지고 구르고 난리가 났다. 맨 앞에 있던 사람 괜찮나? 제일 먼저 넘어져서 사람들한테 깔렸는데... 걱정돼서 다가가려는 데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렸다.


{깔린 사람은 무사하오. 신체가 타인보다 튼튼한 이능을 지닌 자들이군.}


옥묘아씨의 목소리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던 건 항상 AI였었는데 옥묘아씨가 하니까 신선하다.


"국장님! 무사하신가요?"


엘레나가 쓰러진 사람들 위를 넘어서 내게 다가왔다. 아니,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는 저 사고현장을 저렇게 지나쳐도 괜찮은건가.


"저보다는, 저기 넘어진 사람들을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직 사람 깔려있는 거 같은데..."


"엄청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국장실이 반파되었군요. 괜찮으신가요? 무슨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엘레나는 내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내 걱정을 우다다 쏟아냈다. 그런데 국장실이 반파되었다고? 나는 그제서야 큰소리가 났던 내 뒤편을 돌아봤다. 고급스러운 원목책상은 하얀 쪽배 밑에서 산산조각이 나,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얀 쪽배 주변에서 산산히 조각난 물체들은 책상만 있는게 아니었다. 책상 뒤편에 있던 유리창은 물론이고 창 주변의 벽까지 죄다 무너져 있었다. 창 밖에서 쪽배가 날아와 부딪혔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저 파편에 맞고 다친 곳이 없다는 게 천운이었다.


{내 어찌 도움을 청하러 왔으면서 선생을 다치게 하겠소. 선생께서 몸이 둔해, 배와 정면으로 부딪혔어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오.}


옥묘아씨가 다시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나를 정면에서 받아버려도 상관없었다는 생각으로 돌진한 거였구나.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책상은 아주 가루가 되었던데.


{아니마로서 나의 고유한 이능은 공간을 물리세계와 단절시키는 것이오. 때문에 공간 안에서의 우리는 사사로운 법칙들에서 벗어나 안온하게 이상을 펼치고 밖에서 선생을 흔드는 자들과 멀어질 수 있소.}


옥묘아씨가 사이비 교리 같은 설명을 덧붙였지만 핵심만 파악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옥묘아씨가 현실공간과 단절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불새와 옥묘아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옥묘아씨가 계속 말하는 걸 보면 근처에 있는 거 같은데.


"국장님. 왜 그렇게 두리번 거리세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옥묘아씨가, 방금까지 함께 있던 아니마가 보이질 않아서요."


"역시 이런 사고를 치는 건 아니마 뿐이네요.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고층이라 기온도 낮고 바람도 세서 위험합니다."


옥묘아씨가 뚫어놓은 거대한 구멍을 보던 엘레나가 한숨을 쉬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내가 난장판 속에 홀로 주저앉아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하다. 나는 불새한테서 옥묘아씨를 뺏고 그러느라 계속 서있었는데.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다. 나는 엘레나가 내민 손을 잡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보다 이십센티는 작은 여성에게 몸을 기댈만큼 염치없진 않다. 일어나고 보니 엘레나의 손을 잡지 않았던 나의 왼손에는 뭔가 쥐어져 있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옥이다. 컴퓨터 마우스처럼 둥글고 넓적한 옥의 세공을 살펴보니 마치 토끼같았다.


{이것은 물리법칙을 따르게 된 나의 모습이오. 품에 지니고 다니면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소. 지니고 다니는 걸 깜빡하셔도 괜찮소. 내 알아서 선생을 따라가리다.}


옥을 세공해서 만든 주먹만한 토끼가 내 머릿속에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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