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신화의 숲에 사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하은수
작품등록일 :
2023.02.20 01:13
최근연재일 :
2023.03.29 03:39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045
추천수 :
39
글자수 :
126,367

작성
23.02.24 12:00
조회
62
추천
2
글자
12쪽

5. 마천루

DUMMY

왜 그러는 거야. 총 못 쏜다는 게 그렇게 한심해? 난 군대도 안갔다고. 나이가 차기 전에 세상이...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분명히 거대한 사건이 있었어.


내가 나의 무능을 합리화하는 동안, 엘레나는 옷장에서 하네스와 함께 특이한 모양의 작은 가죽주머니를 가져와 나에게 채워줬다. 엘레나가 벨트에 주머니를 연결하고 부국장이 가슴에 하네스를 채우고 직사각형의 갑들을 세개 달아줬다. 일을 마친 부국장이 나에게 말했다.


"권총은 벨트에 연결한 총집에 넣으시면 됩니다."


엘레나가 채워준 주머니가 총집이었구나. 새로운 지식과 함께 권총을 수납했다. 부국장이 내 어깨에 외투를 덮어주는 사이에 부국장처럼 무표정이 된 엘레나가 나에게 말했다.


"중요한 기억은 남아있는 상태이신 줄 알았는데, 무기 다루는 법까지 모르실 줄은 몰랐네요."


입가에 주먹을 갖다대며 침음을 내는 엘레나에게 부국장이 말했다.


"저희가 다시 알려드리면 됩니다. 신체기억은 남아있어서 금방 배우실 겁니다.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경호를 더 철저하게 해야할 것 같군요. 지비냐. 국장님의 기억은 얼마나 남아있지?"


[국장님이 보유하고 계신 기억은 원본 기억의 26.8%입니다. 원본 자아를 구성하는데에 주축이 되는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제가 지비냐의 이 분석을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거든요. 자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니 별탈이 없을 것이라 믿었죠. 하지만 역시 기억의 73.2%가 소실되는 건 타격이 크네요. 국장님은 본래 스나이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저는 자아 기능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희망을 겁니다. 운동능력은 그대로 남아있을테니 잊으신 건 다시 배우면 그만입니다. 이제 준비가 끝난 것 같으니 보안국 사람들을 만나보도록 하죠."


부국장은 이마를 짚는 수석비서와 어리벙벙한 나를 데리고 밖으로 안내했다. 잿빛의 금속문이 열리고 고풍스러운 복도인지 휴게실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을 지나 또다시 금속으로 된 미닫이 자동문이 나타났다. 그 문이 열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엘레나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재카로프 안전보안국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차우진 국장님이십니다. 앞으로 안전보안국의 일에 앞장서서 저희와 함께 하실 국장님의 복귀를 환영해주세요!"


나를 쳐다보는 수십 명이 엘레나의 말을 듣고 일제히 박수를 쳤다. 민망했지만 나를 소개하는 자리이니,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차우진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람들은 내 간단한 자기소개를 듣고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갑자기 큰소리를 들으니 귀가 먹먹하다. 별볼일 없는 자기소개인데 반응이 너무 요란한거 아닌가. 그렇지만 내 직함이 국장인걸 떠올리면 이해못할 일도 아니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똑같이 행동했겠지. 그렇게 마음 속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에 누군가 외쳤다.


"국장님! 잘 생기셨습니다!"

"실물이 훨씬 멋져요!"


갑자기 쏟아지는 외모 찬사에 살짝 당황스럽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긴 한데 이 상황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직장인들은 사회생활을 위해서 다 이렇게 되는건가. 초면인 직장상사가 기분 좋으라고 다짜고짜 그런 말을 하고 말이야. 물론 잘생겼다는 칭찬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도 언제나 듣기 좋다. 하지만 그런 말들 속에 유독 이질적인 정보를 담은 말이 들렸다.


"전광판에서 보던 모습보다 인물이 아주 훤칠하십니다!"


전광판에서 나를 봤다고? 이건 무슨 말이지. 지금까지 수석비서와 부국장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나는 61년 전의 사람이다. 아마도. 신분증도 오늘 발급했다고 하는 걸 보면 나는 그 오랜 시간동안 캡슐인가 하는 그 기계장치에서 자고있었던 모양인데 나를 왜 전광판에서 봤다는 거지. 이런 내 의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해보는 말인지 헷갈리는 중에, 누군가 희한한 말을 꺼냈다.


"이제는 홀로그램이 아니라 직접 모델 촬영하시는 건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홀로그램? 모델 촬영? 어릴 때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패션 모델은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전광판에 걸릴 수준은 아니었는데. 나는 내 옆에 있는 수석비서와 부국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전광판에 나오고 있다는 말은 안했잖아. 부국장은 내가 쳐다보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고 엘레나는 싱긋 웃어주기만 했다. 안되겠다. 직접 말해야지.


"여러분의 환대는 감사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다들 제가 전광판에 등장하는 모델인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정말 제가 그런 곳에 나오고 있습니까?"


내 질문에 엘레나가 대답했다.


"그럼요. 재카로프 안전보안국의 국장이시자,아스트룸 시티의 대표자이신걸요. 도시 안내 책자는 물론, 전광판이나 잡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보안국에서는 기업에게 국장님의 홀로그램 이미지를 대여해주고 있거든요. 대여비는 보안국의 운영자금과 도시의 행정자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새 내가 모르는 도시의 대표자가 되어서 이곳 저곳에 얼굴이 팔리고 있었구나.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거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나름 인디가수로서의 인지도가 있긴했는데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대체 왜 그렇게 된거야. 내 초상권은?


"국장님은 공인이셔서 초상권이 없습니다."


"..."


부국장은 내 머릿속이라도 읽은 건지 금방 내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나는 초상권이 없구나. 갑자기 여든여덟살이 된 것도 무서운데 권리도 하나 잃었다니까 세상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 그냥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면 안되나. 아, 이젠 집에 가도 가족이 없겠구나. 슬퍼지려는 찰나에 엘레나가 말을 걸었다.


"보안국의 모든 직원이 모인 자리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저흰 이만 이동해야 겠네요. 직원분들도 식사하러 가시고 저희도 둘러볼 곳이 많으니까요. 인사는 잘 나누셨나요?"


엘레나가 웃으면서 상투적인 질문을 해서 나도 예의상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초상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긴 한데 뭐 어쩌겠어.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라는데. 내가 국장이고 대표고 공인이래잖아. 나는 그렇게 넋이 나간채로 두 사람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과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고, 그를 제외한 바닥과 벽들이 모두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에서는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시티뷰가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풍경보다 훨씬 높고 많은 건물들이 한눈에 보였다. 창의 테두리와 거울로 이루어진 면들에 눈부시게 광활한 시티뷰와 우리 셋의 모습이 반사되어, 복잡한 퍼즐처럼 보였다. 만화경 속 들어온 것만 같은 풍경에, 어쩐지 뉴욕의 써밋 전망대가 떠올랐다. 환상적인 시각자극에 우울함이 마비됐다. 빠르게 고도가 높아지는 도시풍경을 정신없이 구경하는 내게 수석비서가 말했다.


"멋진 풍경이죠? 정오의 푸른 하늘도 멋지지만 해질녘에 보시면 더욱 절경이랍니다. 저희 보안국이 사용하는 팬옵티콘 건물은 아스트룸 시티의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마천루입니다. 관광객들도 많이 다녀가는 곳이죠."


내가 지금 있다는 건물 이름이 이상하다. 팬옵티콘이라니. 그거 교도소 이름 아닌가. 최적의 형태로 수감자들을 모두 감시할 수 있다는 교도소 말이다. 건물 이름을 알고나니 엘리베이터에 탄 우리 모습이 시티뷰와 함께 거울에 반사되어 만들어지는 이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다양한 거울마다 비쳐지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미궁 속에 갇힌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풍경에 대한 흥은 식었지만 엘레나의 말은 이어졌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저희 보안국의 자랑스러운 건물, 팬옵티콘에 대한 설명을 들어주세요. 지비냐, 설명을 부탁해."


[네. 지비냐가 설명드리겠습니다. 팬옵티콘은 아스트룸 시티의 최중심에 있습니다. 아스트룸 시티에서는 가장 최고층의 건물이며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습니다. 팬옵티콘은 250층에 1523m 높이의 건물이며 지하는 5층까지 있습니다. 인공섬 위에 지어진 팬옵티콘은 본래 보안국 전용 시설로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중시하셨던 국장님의 뜻에 따라 일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까지는 쇼핑몰로 이용되고 있으며, 8층부터 30층, 121층부터 130층까지는 일반인들에게 사무실로 임대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지하 5층부터 지하 3층까지는 주차장, 147층부터 176층은 호텔로 운영되고 있으며, 177층은 일반인들을 위한 스타이로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망대는 144층부터 146층까지인 전망대 시두스와 245층부터 246층까지인 전망대 수페루스가 있으며 전망대 시두스가 상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용하시는 엘리베이터는 팬옵티콘의 전층을 오갈 수 있는 세 대의 엘리베이터 중에 한 대 입니다. 이 엘리베이터는 '루미나레'라는 이름을 지녔으며 다양한 고도의 시티뷰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팬옵티콘의 커다란 창 역할을 하는 엘리베이터 루미나레는 이용객들에게 관람료를 받고 공개하는 관광명소 중에 한 곳이며, 국장님의 직통 엘리베이터이기도 합니다.]


AI의 설명을 듣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상단의 숫자판에는 25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무채색으로 만들어낸 정갈함과 벽 한면을 가득 메운 창들로 화려함을 현대적으로 이끌어낸 펜트하우스가 나타났다.


[팬옵티콘의 최상층인 이곳은 국장님의 전용 거주실입니다. 부국장실과 비서실의 승인없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오늘 오전 7시부터는 승인 권한이 국장님께 넘어갔습니다. 국장님의 전용 숙소이니 편하게 이용하세요.]


이 펜트하우스가 내 숙소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무려 층 세 개를 터서 높게 자리한 천장과 화려한 샹들리에, 그리고 밑에 자리한 고급스런 소파가 있는 공간이 내 전용 공간이라니. 내가 뭘 했다고 이런 걸 다 받는거지. 이런 곳에 거주한 경험이 없진 않지만 대가없이 이런 고급숙소를 받으니 심히 부담스럽다. 못 박힌 것처럼 자리에 가만히 있는 나와 달리,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펜트하우스 내부 깊숙히 들어갔다. 오지 않고 뭐냐는 듯이 뒤돌아보는 모습들이 나보다도 훨씬 집주인 같았다.


나는 그들이 서있는 샹들리에 아래로 주인을 쫓아가는 강아지마냥 따라갔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창으로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수많은 고층건물이 만들어내는 지평선이 펼쳐졌다. 건물들 너머에는 공원으로 보이는 녹지나 강이 푸르름을 뽐내고 있었다.


첨단문명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 엘레나가 말했다.


"아스트룸 시티의 가장 높은 마천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어떠신가요? 저희 도시의 최고 권력자이자, 최강의 사냥꾼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랍니다."


멘트가 왜 저래. 환하게 미소 짓는 표정과 함께 부담감을 가중시킨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먕코
    작성일
    23.03.10 14:07
    No. 1

    기억이 23%밖에 안남아서 이름이랑 나이밖에 기억 못하는 사람한테 상황 설명은 안해주고 다자고짜 건물 자랑이라니...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화의 숲에 사는 사냥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일수 공지 23.03.27 13 0 -
공지 공지사항. 이번주 목, 금은 쉬어갑니다 23.03.16 13 0 -
23 23.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23.03.29 14 1 12쪽
22 22. 불새-2 23.03.27 14 1 11쪽
21 21. 만다라-2 23.03.24 15 1 12쪽
20 20. 고상현 23.03.21 15 1 12쪽
19 19. 비밀 23.03.20 14 1 12쪽
18 18. 재카로프 안전보안국-2 23.03.15 18 1 12쪽
17 17. 만다라 23.03.14 22 1 12쪽
16 16. 옥묘아씨 23.03.13 20 1 12쪽
15 15. 뱃놀이 +1 23.03.10 28 2 12쪽
14 14. 아니마 +1 23.03.09 27 2 13쪽
13 13. 수족관 23.03.08 27 1 13쪽
12 12. 폭우 23.03.07 26 1 13쪽
11 11. 여우비 23.03.06 27 2 12쪽
10 10. 외근 23.03.03 37 1 12쪽
9 9. 불새 23.03.02 41 2 11쪽
8 8. 울게 하소서 23.03.01 43 2 12쪽
7 7. 완(頑)-2 +1 23.02.28 47 3 13쪽
6 6. 완(頑) 23.02.27 51 3 12쪽
» 5. 마천루 +1 23.02.24 63 2 12쪽
4 4. 玉手箱 23.02.23 73 3 12쪽
3 3. 재카로프 안전보안국 23.02.22 86 2 12쪽
2 2. 반갑습니다 국장님 23.02.21 134 2 12쪽
1 1.안녕하세요, 국장님 23.02.20 203 3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