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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숲에 사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하은수
작품등록일 :
2023.02.20 01:13
최근연재일 :
2023.03.29 03:39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068
추천수 :
39
글자수 :
126,367

작성
23.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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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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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 완(頑)-2

DUMMY

도감은 나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딱히 숨겨야할 만한 중요한 내용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나는 뭐가 있냐는 엘레나의 말에 순순히 보이는대로 대답해줬다. 이름과 나이, 분류번호, ID번호, 개인성향, 가족사항, 이능력 발현 날짜 등등이 보인다고 대답했더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왜 그러지? 도감창이 너무 코 앞에 나타나서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에 두사람의 표정을 살펴볼 수 없었다.


아까 내 신분증 같은거 볼때는 스마트폰 화면 터치할 때처럼 만지면 확대와 축소가 되던데 그러면 테두리를 잡아서 창 크기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두 사람과 원활하게 대화하기 위해서 시야를 가득 채운 도감창을 줄이려고 화면을 터치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눈에 훤히 보이는 화면이 만져지지 않아서 그렇지.


화면 크기를 줄이려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게 부국장이 물었다.


"국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도감창이 너무 커서요. 크기를 줄이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비가시모드로 보시는 화면은 AI칩이 망막에 전기자극을 보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만져지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좌표값이 있는 홀로그램 화면과 다르죠. 홀로그램처럼 화면을 조절하려면 따로 조정하면 돼요."


도감창 너머의 엘레나는 뭔가를 꺼내는 듯이 부시럭거리더니 내 관자놀과 손가락에 차가운 뭔가를 붙였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인체실험이라도 당하는 거 같아서 불안하다.


"저기, 수석비서님. 뭐하시는 겁니까?"


"비가시모드 화면 조절이 불편하시다고 하셔서 설정값을 조정하려고요. 눈에 보이는 화면을 만져보시겠어요. 확대랑 축소할 때처럼 손동작도 해보시고요."


나는 엘레나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 움직이다보니 화면이 내 손동작에 따라 의도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이, 만져졌어요. 이제 확대랑 축소가 됩니다."


"비가시모드의 창은 망막에 직접 흘려넣은 전기자극이라 만질 수 없어요. 원하시는대로 조절이 잘되나요?"


"네. 잘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도감창의 크기를 줄이고, 내 손가락에서 패치를 떼어내는 엘레나를 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도감창 때문에 앞이 잘 안보여서 몰랐는데 엘레나는 복잡해보이는 화면을 겹겹이 띄우고 탁상에도 정체불명의 기계를 올려뒀다가 정리하는 중이었다. 차곡차곡 물건을 모아 조그만 캡슐형태로 압축시키는 과정을 구경했다. 그 과정이 마치 마술쇼 같아서 정리가 끝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그런 나를 엘레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엘레나의 눈에는 내가 기초적인 상식도 잊어버린 치매노인과 다를 바 없는 걸까. 민망해졌다. 박수치지 말걸.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삭이는 나에게 부국장이 말했다.


"오늘부터는 실무에 들어가셔야해서 시간이 없습니다. 도감 구경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군요. 도감은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확실히 저희가 열람할 수 있는 범위보다 훨씬 넓네요. 분류번호와 개인 ID번호까지야 저희도 볼 수 있지만 이능력 발현 날짜까지 나온다는 건 정말... 놀랍네요."


"일단 도감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맨위의 분류번호가 보이십니까."


"네. A1907468이라고 써있네요."


"그건 굳이 읽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튼 그걸 한번 눌러보시겠어요. 제 이능력의 이름이 뜰겁니다."


시키는대로 얌전히 따랐더니 새로운 창이 열리면서 '금속염동력'이라는 제목과 함께 길고 긴 설명이 주르륵 나왔다. 개인정보 투성이었던 창보다는 훨씬 읽기 편했다. 엘레나가 내 비서라고는 해도 몇 살에 뭐를 했고 성향은 어떻고 하는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미주알고주알 적혀있는 건 읽고싶지 않았으니까.


"이능력 도감의 핵심은 그 능력에 대한 상세한 정보에요. 제 이능력이 어떤 것인지, 응용사례와 한계는 무엇인지 쭉 적혀있을 겁니다. 한번 쭉 읽어보시겠어요?"


"아, 네. '금속염동력'은 2종 이능력으로 염동력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나 1종 이능력인 염동력과는 다른 종류의 이능력이다. 이 이능력은..."


"좋아요. 거기까지. 시간이 없으니 필요한 부분만 속성으로 가르쳐드릴게요. 이능력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크게 기준을 나누면 1종, 2종, 3종으로 나뉘어요. 샘플을 비교하자면 2종은 저와 부국장님, 3종은 국장님이죠. 이 기준은 이능력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매개에 따라 나눠지는 유형이죠. 이능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매개가 자신뿐이면 1종, 사물이 필요하다면 2종, 타인이 필요하면 3종으로 분류되죠. 2종 이능력은 이런 거에요."


엘레나는 말을 마치며 손짓을 했다. 엘레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잘 안됐지만 그 손 끝이 가리키는 것을 보며 아직도 식기들이 위성처럼 엘레나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읽다 만 부분을 계속 읽어보시겠어요?"


"...이 이능력은 오로지 금속에 한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암석에는 발동되지 않는다."


"2종 이능력은 보통 이런 한계가 있어요. 특정한 사물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죠. 이번엔 3종 이능력 사례를 보죠. C9904811을 검색해보시겠어요."


"아, 예. 잠시만요."


나는 엘레나가 시키는대로 움직이기 위해 보던 창을 닫고 검색창을 찾으려 노력했다. 처음보는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도 한번도 헷갈린 적 없었는데 옆에서 나를 빤히 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기분이다. UI를 꼼꼼히 뜯어봐서 겨우겨우 검색창을 찾아냈다. 이까짓게 뭐라고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C9904811를 검색했더니 결과물이 뜬다. 검색결과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잡다한 설명들과 함께 내 사진이 곳곳에 떴다.


"어째 결과물에 제가 뜨네요. C9904811가 제 새로운 ID번호 같은 건가요?"


"아뇨. 그건 도감에 입력된 이능력에 붙여준 분류번호입니다. 분류번호로 검색한 결과에 뜨는 사진은 그 이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사진이에요. 저도 제 신원이 아닌 분류번호 A1907468로 검색하면 다른 사람의 정보도 함께 뜹니다. C9904811의 사례는 국장님 뿐이라서 그렇게 나오는 거에요."


내가 유일무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니 기뻐해야 하는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항상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말이다. 내가 대체불가한 엄청난 존재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좀 무섭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제 3종 이능력인 국장님의 이능력에 대한 설명도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나는 그제야 쓸데없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내 정보, 아니 내 이능력이라는 정보창을 들여다봤다. 그제서야 내가 지녔다는 이능력의 이름을 읽었다.


"이능력 '각인'은 사례가 하나밖에 없는 3종 이능력이다. 완이 있어야 발동할 수 있으며, 시전자가 아닌 대상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대표적인 3종 이능력이다. 상대방과 접촉해야 발동한다는 조건이 있으며..."


여기까지 읽다보니 새벽에 부국장에게 목이 졸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AI가 대상자를 강화한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나. 내 목을 더 세게 조르던 그 손길을 떠올리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 사람 지금 내 뒤에 서있잖아. 갑자기 마음이 바껴서 내 목을 조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하필이면 부국장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2종 이능력과 3종 이능력의 차이는 대상보다는 물리적인 변화를 보여주느냐의 차이입니다. '기억읽기' 이능력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습니다. 대표적인 3종 이능력인 기억읽기는 사물이나 사람의 기억을 모두 읽어낼 수 있지만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능력이 당장에 이끌어내는 변화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지에 초점을 맞추시면 구별하기 쉬우실 겁니다. 앞으로 도감을 관리하시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이능력 유형을 구별하는 방법을 적확하게 알아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네에. 그건 부국장님 말씀이 맞네요. 2종과 3종의 차이점은 부국장님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길어지는 부국장의 말을 수석비서가 끊었다. 어쩐지 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도는 거 같은데. 사이가 나쁜가.


"아마 국장님 스스로의 이능력이 뭔지도 모르실 것 같은데, 시간나실 때 도감에서 찬찬히 읽어보세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상세한 자료라서 도움이 많이 되실 겁니다. 지금은 일이 많으니 정리하고 이동해볼까요."


말을 마친 엘레나가 손을 까딱하니 주변을 두둥실 떠다니는 포크와 숟가락들이 한 곳에 정렬했다. 한자리에 모이게 된 식기들의 모습은 뭐랄까, 처참했다. 라면 면발처럼 이리저리 꼬인 모습들이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엘레나는 금속염동력인지 하는 자신의 이능력을 사용하는 중인지 표정이 심각했다. 꼬부라진 식기들이 펴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어느정도 곧게 펴친 식기들은 엘레나의 손짓에 따라 본래의 자리로 날아갔다.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유도탄처럼 수저통에 꽂히는 모습이 어쩐지 살벌하게 느껴졌다. 날아가는 속도가 되게 빠르던데 잘못해서 사람 맞으면 위험한거 아니야?


엘레나는 식기 정리를 끝내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먼저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부국장이 내게 귓속말을 했다.


"각인하지 않은 완에게 함부로 이능력 사용을 허가하지 마십쇼. 위험합니다."


의미심장한 귓속말을 한 부국장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엘레나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버렸다. 덕분에 나만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마치 엘레나가 날 공격하려고 했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실제로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 농담으로 넘기기도 어려웠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가 따라올 때까지 쳐다보는 두 사람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 하긴 펜트하우스 내부에 도망칠 곳이 어딨겠어.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심정으로 두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


걱정한 바와 달리 내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이끄는 대로 건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설명만 잔뜩 들을 뿐이었다. 기획실, 전략실, 동력실, 전산실, 연구실, 의무실, 기타등등 굉장히 많았는데 연구실이나 전략실 같은 곳은 하나가 아닌 여러 곳이라 정말 많은 곳을 걸어다녔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열심히 다닌 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에 나는 국장실로 돌아왔다. 나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던 부국장과 수석비서는 이제 서류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라면서 나를 두고 가버렸다. 닫힌 문을 보면서 혼자 덩그러니 국장실에 서있었더니, AI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장님. 오늘 안에 처리해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확인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오늘 일이 많다고 그 두 사람도 계속 말했지. 국장이라고 불리면서 받는 혜택이 많으니 그에 주어진 일을 해야할 것이다. 나는 AI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책상에 앉았다.


"내가 처리해야 하는 서류가 얼마나 되는지 보여줘."


[A4용지에 출력했다는 것을 가정하고 홀로그램화 하겠습니다. 기한이 급한 순서대로 정렬해서 보여드릴게요.]


AI의 말이 끝나고 책상 위에 서류들이 한가득 탑을 쌓았다. 괜히 보여달라고 했나. 벌써부터 사기가 꺾인다. 이 원목책상 되게 넓어보였는데 내 앞에 책 한 권 놔둘 공간을 빼면 빈틈이 없네. 이걸 언제 다 하냐.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옛말이 있죠. 차근차근 하다보면 끝이 보일 거에요. AI.지비냐가 힘껏 돕겠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다보면 끝은 나겠지. 나는 그 말만 믿고 AI가 골라주는 열심히 서류를 읽었다. 하다보니 어느새 해는 완전히 지고 창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방 안의 밝은 불빛 속에 계속 일을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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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먕코
    작성일
    23.03.10 14:22
    No. 1

    전반적으로 굉장히 불친절하네. 부국장은 왜 주인공 목을 조른건지, 불로 변했던 인간은 뭔지 주인공은 안궁금한가. 아직 기억회복이 전혀 안된 사람을 데려다놓고 일부터 하라는것도 얼척없는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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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불새 23.03.02 43 2 11쪽
8 8. 울게 하소서 23.03.01 44 2 12쪽
» 7. 완(頑)-2 +1 23.02.28 50 3 13쪽
6 6. 완(頑) 23.02.27 51 3 12쪽
5 5. 마천루 +1 23.02.24 66 2 12쪽
4 4. 玉手箱 23.02.23 75 3 12쪽
3 3. 재카로프 안전보안국 23.02.22 8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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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안녕하세요, 국장님 23.02.20 206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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