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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931님의 서재입니다.

황실기사가 사상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기하학
그림/삽화
기하학
작품등록일 :
2023.05.10 11:58
최근연재일 :
2023.05.26 03:16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009
추천수 :
24
글자수 :
77,835

작성
23.05.13 21:36
조회
56
추천
2
글자
10쪽

2. 그는 진급이 기쁘지 않다. - 3

DUMMY

1.


연철의 예상보다 ‘vip’를 만날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짐작키로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1황녀님이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대공 전하께서 자네가 최대한 빠르게 업무에 나서길 원하셔서.”


부기사단장님의 말과는 다르게, 부모의 마음은 속일 수 없는 법.


대공은 가족애가 강한 시스티아인 중에서도 특히 유별나다고 소문이 난 만큼 그의 딸에 대한 걱정은 진심일 터.


예상보다 1황녀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까?


연철이 기억하기로 황녀님의 외가 되는 현 황실은 대대로 건강한 신체를 타고난다고 다른 무엇도 소설의 설정으로 적혀있었다.


정작 황녀님의 조부도, 어머니 되시는 마리아 선황제도 원작 주인공 놈의 손에 암살당해 제 명을 다 하지 못했지만.


‘하지만 황녀님마저 건들은 것 같진 않은데.’


백작측이 그녀가 ‘건강한 상태’로 자신들의 손 안에 넘어오길 원한 걸 생각하면 그쪽이 장난질을 했을 확률은 낮은 것 같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2.


따라오라는 야노스 경을 따라 황궁 속의 요새라 불리는 기사단 건물을 나선 연철.


백작의 명령에 따라 낯선 황궁에 팔려 온 뒤 수년을 기사단 숙소와 훈련장, 단 두 곳만을 반복하며 살아왔던 그였던 만큼 이 외출은 꽤나 의미가 있었다.


“내가 듣기로 연철 자네가 기사단에 들어온 후 단 한 번도 요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하던데.”


“종자에게 주어진 임무에 좀 열중하느라.”


“좋은 태도야. 에휴. 요즘 젊은 기사들은 무슨 무도회니 파티니 연줄이니, 기사로서의 본질을 잃었단 말이야. 다들 자네를 본 받았으면 좋겠군.”


글쎄다. 자신으로만 이루어진 부대가 있다면 그것도 끔찍할 것 같았다.


참. 아무리 아는 사람도 없고 나갈 일도 없다지만 어떻게 사람이 7년을 그러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면 전생의 대학시절도 수업, 도서관, 기숙사만 돌고 돌았······.’


어째 두 번째 인생이 주어져도 하는 짓거리는 바뀌지 않는 스스로에게 한심함이 올라온 연철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저기 독특한 돔 형태의 건물 보이나? 저게 1황녀님이 거주하고 계시는 ‘이베리스 궁전’이라네.”


지금은 옛 봉신에게 권력을 빼앗겼다지만, 한때는 대륙 최강을 논하던 국가의 지배자의 거처답게 황궁은 고전적인 동시에 웅장했다.


연철의 전생은 삭막하기 짝이 없었기에 해외를 나가보진 못했지만, 처음 경복궁을 다녀왔을 때 느낀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심지어 황궁은 반쯤 타버린 경복궁에 비해 옆 나라의 자금성에 버금갈 만큼 거대했기에 이루 말 할 수 없는 경외감은 상상 이상이었고.


그런 황궁 속에서도 1황녀님이 머무신다는 이베리스 궁전은 이국적인 아름다움 역시 갖춘 장소였다.


부기사단장님이 말해주길, 백여 년 전 남쪽의 어느 왕조와 동맹을 맺으며 친교의 의미로 보내진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궁전의 아치형 입구에 다가서자 할버드를 든 두 기사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부기사단장님.”


“아, 신입이 와서 말이야. 황녀님께 얼굴 도장을 찍으러 왔지.”


“알겠습니다.”


과연, 할버드를 든 선배들의 모습은 그가 기사단 요새에서 보던 한심한 꼴과는 전혀 달랐다.


그만큼 저 안에 계실 황녀님이 요주의 인물이란 말이겠지.


그런 감상과 함께 통로를 넘어 햇빛으로 반짝이는 테라스의 한 여인을 마주한 순간.


따사로운 햇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가 연철을 바라본 순간.


가정이니 음모니 뭐니 하는 생각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황실을 지키는 두 번째 방패. 야노스가 마리안나 황녀님께 인사드립니다.”


“아, 반가워요. 야노스 경. 뒤에선 그 분이 제라드 경을 대신 할 새 호위이신가요?”


연철은 전생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히나 빙의 이후론 스스로 이성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번뇌를 극복한 성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세계의 여자들이 못 생겨서.


정확히는, 아포칼립스에 가까운 현실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버린 여인들에 별로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뒤지게 생겼는데 외모 같은 걸 신경 쓸 시간이 있을 리가.


그렇기에 황녀님의 얼굴에서 쉬이 눈을 땔 수 없던 것이다.


차가운 시스티아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백금발의 황녀님.


외모만으로 고귀한 핏줄임을 나타내는 그녀의 모습은, 백작가가 주장하는 혈통에 따른 고귀함을 증명하는 듯 했다.


“황실을 지키는 101번째 방패. 연철이 고귀한 자에게 인사드립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연철 경. 제 궁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녀가 웃는 순간 차갑게 만 느껴지던 얼굴에서 따스한 미소가 떠오른다. 시스티아의 피와 더해 그녀의 핏줄에 섞인 캅차크인으로서의 피 덕분이겠지.


그것 말고도 테이블에 앉아있음에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긴 몸은 강인한 캅차크 대륙의 후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렇게만 보면, 어딜 봐도 아픈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오. 이번 신입은 확실히 쓸 만한 것 같습니다. 야노스님. 막내 놈은 호위라는 새끼가 황녀님 얼굴이나 빤히 보느라... 에휴.”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 녀석은 물건이라고.”


그녀의 뒤에 기립하고 있던 두 명의 기사들 중 선임으로 보이는 여자 쪽이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다른 기사.


막내라고 하는 걸 보면 호위대의 내 맞선임이라는 말인데, 썩 믿음직 해보이진 않았다.


물론 연철 본인도 좀 만 정신을 차리는 게 늦었다면 위험했겠지만.


“마침 오전 일정까지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함께 차라도 마시지 않겠어요. 야노스 경? 연철 경?”


어쩌겠냐는 야노스 경의 눈빛.


의외였다. 내가 이 시간 때쯤 훈련 루틴이 있다는 걸 배려해준 걸까.


눈치 없던 전생의 그라면 자기계발만이 답이라 여기며 이 제안을 거절했겠지.


약삭빠른 척하면서도 아둔한 면이 있던 연철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다시 태어난 그는 다르다.


“황녀 전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사회적 성공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연줄과 인맥이 중요하다.


그리고 눈앞의 젊은 아가씨는 귀족들은 물론 반역자들 역시 눈여겨보는 요주의 인물.


친해진다면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게 뻔 한 상황.


‘칼 밖에 모르는 멍청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연철이 사회생활 10년(반올림, 군복무 포함)간 쌓아온 처세술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2.


대화라는 건 의외로 결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연철이 기세를 잃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상대를 완전히 잘 못 파악했으니까.


“연철 경. 옛 철학자 중 한 사람은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라고 했다고 해요. 제가 알기로 제 아버지이신 대공 각하도, 라이머 백작 각하도 하루의 대부분을 업무를 처리하면서 보내는 걸로 아는데.”


그렇다면 세상 모두가 노예인 거냐고 묻는 황녀님의 질문에 연철의 자신감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당연한 것이, 어떤 미친놈이 자신이 앞으로 모셔야 할 인물에게 당신의 아비도,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도 모두 노예다,라고 말하겠는가.


문제는 이 티타임 같지 않은 티타임에서 저 질문에 대답할 인간은 연철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호위를 맡던 두 기사는 임무 중이라 죄송하다며 대답을 회피했고, 야노스 경은, 그냥 은근 슬쩍 연철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넘겼으니까.


“혹시라도 비밀경찰이 걱정되는 거라면 신경 쓰실 필요 없답니다.”


‘아니, 비밀경찰이 아니더라도 저 철학 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요.’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연철이 생각한 예상 화제는 이런 게 아니었다. 저 나이 대의 여인의 입에서 왜 철학적인 질문이 나온 단 말인가.


문제는 이게 철학적인 대화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


저 작은 머릿속에 무슨 지식이 그렇게 가득 차있는지. 철학부터 시작해 자연과학에 이르기 까지 그녀는 사고의 전환에 거침이 없었다.


대화 하면 대화 할 수록 그는 자신이 황녀님과 대화를 하는 건지, 대학 교수에게 수업을 듣는 건지 헷갈리는 수준. 그것도 이과와 문과, 양 쪽 모두에서 학식 높은 교수님과 말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잔잔한 말투. 입가에 은은히 맺힌 미소.


입을 여는 황녀님의 옆모습은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아니 잊고 싶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이 엄청 많다. 아빠는 이걸 다 읽은 거야?’


‘그렇지. 연철아. 책만 읽어선 세상을 알 수 없지만, 책은 세상을 관찰하는 적절한 도구 중 하나이니까.’


그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현명했던 아버지.


그럼에도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사라진 아버지.


끝내 연철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아버지.


연철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 까지도 그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옛 향수에 취해서 일까.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학자가 더 낫다, 흠. 관점에 따라 납득하지 못할 수 있는 이야기네요. 연철 경은 어떻게······.”


“개소리입니다. 진짜 배고픔이 무엇인지 겪어보지 못한 멍청이나 할 법 한.”


연철은, 일순간 자신의 진심을 감추지 못했다.


작가의말

후반을 좀 고치다 보니 연재가 늦어졌네요.

상급자를 향한 연철의 급발진. 상당합니다.

글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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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그는 진급이 기쁘지 않다. - 2 23.05.12 67 2 10쪽
4 2. 그는 진급이 기쁘지 않다. - 1 23.05.10 71 2 10쪽
3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2 23.05.10 92 2 11쪽
2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1 23.05.10 151 2 11쪽
1 0. 그는 근본이 없다. 23.05.10 173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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