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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931님의 서재입니다.

황실기사가 사상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기하학
그림/삽화
기하학
작품등록일 :
2023.05.10 11:58
최근연재일 :
2023.05.26 03:16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025
추천수 :
24
글자수 :
77,835

작성
23.05.10 12:05
조회
151
추천
2
글자
11쪽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1

DUMMY

1.


달칵이는 시계 바늘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 바늘이 하루가 완전히 지났음을, 올해의 마지막 시간이 지나고 새해가 왔음을 알린다.


00시 00분.


끝내 이십대를 넘어 서른에 접어든 그 기념비적인 순간에도 조용하기 짝이 없는 핸드폰.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연철은 납득했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네. 인생 잘 못 살았어.”


연락이 없다는 사실 자체는 별 상관이 없었다. 올해만 그런 것도 아니니까.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다만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해진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어젯밤 자기 전 갑작스럽게 떠오른 탓에.


‘이게 뭐예요! 팔리지도 않는 헌책방에서 신선놀음, 선비놀음이나 하면서 어머니나 힘들게 하고, 쓸데없는 인간들을 신경 쓰다 남산에 끌려가 가족들 고생만 시키고!’

‘미안하구나. 철아.’

‘됐습니다. 저는...저는 아버지처럼 멍청하게 안 살 겁니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부끄럽네. 참,”


안 그래도 아픈 부모님에게 지랄을 한 거나, 성공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쳐놓은 주제에 이러고 사는 거나.


아버지는 남산에 끌려갔어도 최소한 안부 인사와 새해 선물을 보내는 지인들이 있었는데 말이지.


이기적으로 사는 한이 있어도 성공 할 거라 자신하던 못난 자식 놈의 한심한 집구석은 황량하기 짝이 없으니.


그렇다 해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현명한 머리도, 어머님의 빼어났던 행색도 물려받지 못했는지 이를 악물고 노력했음에도 서른 살이 된 그의 손안에 쥐어진 건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지방 빌라의 작은 방 하나.


“어머니 기일도 까먹을 뻔 한 놈이 무슨. 잠이나 자야지.”


궁상 떠는 건 이쯤에서 멈춰야겠지. 어차피 선택지는 이미 지나가버렸으니까.


스무 살 무렵까지만 해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단 마음이, 이제 다신 볼 수 없는 아버지께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도 다 옛 말.


활활 타오르던 소년의 심장은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눈을 감고 머리를 비웠다.


어찌됐든 내일의 해는 뜰 터.


출근을 위해서라도 일찍 자는 게 맞겠지.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연철을 기다리는 건 비슷하지만 다른 태양이었다.


달라진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손끝에 닿는 얼굴도, 서른 살의 몸도, 그를 둘러싼 세상도.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이런 미친.”


빙의.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 번 째 인생.


본인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긴 시간이 걸려선 안됐다.


그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는 상냥하지 않았으니까.



2.


‘연철 씨는 좀, 비사교적이시네요.’

‘이름엔 철이 들어갔는데, 정작 연철씨 본인은 아직 철이 덜 드신 것 같아요.’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온 말 두 가지다.


허풍이 아니라 그와 한 달 이상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은 저 말을 참지 못했다고 연철은 장담 할 수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별별 기구한 인생사가 뒤섞인 80,90년대 한국인들 중에서도 그는 상위 1퍼센트에 들어갈 만한 가정사를 가진지라, 사교적인 사람으로 자라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심지어 이름조차 이상하고 말이야.


물론 남들이 뭐라 한들, 그 자신은 별로 불편하지 않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하루아침에 낯선 태양과 인사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지.


“이런 씨발...”


친애하는 아버님의 영향으로 비속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빈민가로 보이는 낡은 거리 위에서 정신을 차린 뒤 처음 본 광경이 수십 개의 썩은 모가지가, 그것도 6살이나 채 됐을 까 싶은 목들이 장대에 걸린 채 효수 된 모습이었으니까.


까악, 까악 거리며 썩은 시체를 조아먹는 까마귀들.


어려저서 그런지 더욱 민감하게 울렁이는 후각까지.


인간으로서, 아니 생명체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짓밟아 누른 광경.


욕지기와 함께 울렁거림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흐,흡.”


하지만 내뱉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다.


21세기 한국인으로서 가진 가치관을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이 전생의 기억을, 그리고 연철이 새해를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정확하게 떠올렸으니까.


광장에 방치 된 아이들의 시체와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거리의 시민.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시민들의 반응을 감시하는 비밀경찰까지.


짐승의 탈을 쓰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정신 나간 세계관은, 그가 알기로 하나 밖에 없다.


[귀족으로 살아남기.]


사실 소재 자체는 그리 엄청 특이한 소설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배경에 판타지를 약간 섞고, 잃어버린 황권을 되찾으려는 황제와 권력을 유지하려는 탐욕스러운 귀족, 그리고 들고 일어서려는 빨갱이들 간의 대립을 그린 소설이었으니까.


다만 좀 독특한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정의의 편에 서서 허울 좋은 민주주의나 인권을 외치는 것이 아닌, 귀족으로 태어나 악행을 주저하지 않는 피카레스크 물이란 정도?


그런데 이 악행이란 것이 보통이 아닌지라.


‘나도 진짜 사이다 패스지만, 저 놈은 못 참겠다.’

‘저 호로자식 죽는 것만 기다립니다. 작가님.’


사이다에 절여진 독자들조차 차마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귀족으로 빙의한 주인공의 행보가 어찌나 매콤했는지.


공산주의자를 도와준 것 아니냐는 혐의만으로 직접 만삭의 임산부와 여섯 살 배기 어린 아이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나 않으며 한다는 말이.


‘시민들의 눈빛을 보니 아직 공포가 부족한 것 같은데. 좀 더 담가야겠어.’


...이딴 대사나 치고 있으니. 읽는 독자로선 사이다와 동시에 고구마를 같이 느낄 수밖에.


21세기 대한민국 시민이 보기에는 물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신의 축복 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혈통에 따른 고귀함이 정해져있어 평등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은 이 미개한 세계의 주민들이 보기에도, 주인공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작가 양반이 선택한 엔딩.


분명 마지막 화 직전까지만 해도 해피엔딩으로 내겠다며 작가의 말을 적었다,


끝자락에 도달한 소설 내용 역시도 혁명군과 손을 잡은 황제의 군대가 귀족원의 사병, 주인공의 군대를 밀어내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단 한 화만에 갑자기 작가는 급발진하며 주인공에게 뜬금없는 사기 능력을 부여했고, 아무튼 어떻게 저렇게 주인공이 이기고 세계는 답도 없는 귀족들의 굴레에 떨어졌다며 병신 엔딩이 난 것이다.

그래.


연철이 마주한 이 현실은 그 미친 엔딩의 결과.


박살난 개연성에 모든 독자들이 작가에게 글 때려치우고 상하차나 하라는 와중에 소신 있는 엔딩이었다며 격려의 댓글을 올린 연철이란 악질 독자에게 돌아온 업보인 걸까?


불타는 댓글을 막은 채 업로드 된 무성의한 에필로그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른다.


‘...죽음을 직감한 공작은 마지막으로 아들과 함께 광장에 나섰다. 자신이 만든 지옥과 권좌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아들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축복과 신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만큼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의 직감이 떨리는 목을 붙잡은 채 축하했다.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순간이라고. 두 번째 인생을 환영한다고.



3.



귓가에 들려오는 그 정체모를 조소에 멍하던 머리가 순식간에 요동친다.


혼란과 공포, 그리고 두려움이 섞여 만들어진 감정의 폭풍


그야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니까. 편의주의적인 소설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었으니까.


제정신이라면, 현명한 사내라면 빠른 죽음을 택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야 이 엿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뻔하고, 또 살아남아 권력을 잡은 다 한들 짐승뿐인 세계에서 무엇을 지배하겠는가.


그의 아버지와 같은 지식인이라면 무엇이 효율적이고 올바른지 정확히 판단했겠지.


하지만 연철은 지독하리 만큼 우둔하고 고집스러웠고, 집요할 만큼 삶에 집착했기에.


조용하던 생존본능이 고개를 든다.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볼 비밀경찰의 존재를 느끼며, 표정을 갈무리한다. 시체에 겁먹은 평범한 고아 소년과 같이, 스스로를 꾸민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소설의 내용을. 주인공이 만든 세상의 규칙을.


떠올릴수록, 그 놈이 한 행위와 그로 인해 변한 세상을 떠올릴수록 절망감이 깊어진다.


‘이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고.


그럼에도 죽음을 선택 할 용기가 없었으니까.


고향의 자랑이라며 소문이 자자했음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허무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하나 뿐인 자식을 홀로 먹여 살리다 쓰러진 어머님처럼 덧없이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이연철의, 아니 이제는 이름 하나 없는 고아 소년의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가 하늘을 주시했다.


시체를 태운 재가 강물처럼 흐른다. 암울한 미래를 나타내듯, 가려진 틈 사이로 간신히 내리쬐는 햇빛.


“그래. 오히려 잘 됐어.”


그을린 하늘 아래 살아가는 억눌린 반동분자들과 오만한 인종차별주의자들? 오히려 좋다. 이런 사회일수록, 혼란한 사회일수록 이름을 남기기 쉬웠으니까.


지옥 같은 세상? 하, 남산에 끌려가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자신이다.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아버지께 증명 할 것이다.


.

.


라는 연철의 자신감이 무너지는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지독한 스탈린도, 모택동도 한 수 접어야 할 만큼 이 판타지 세계의 혁명가들은, 아니 빨갱이들은 과격했으며.


그들을 억압하는 귀족들은, 원작 주인공이 만들어낸 기득권 세력은 일말의 자비조차 없었으니까.


환생 직후 정확히 3달.


내 목표는 ‘증명’이 아닌, ‘생존’이 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 소속은 더 이상 빈민가의 고아가 아니었다.


황실 근위대의 수습기사이자 귀족원이 심어둔 세작, 동시에 반동들에게 목줄 잡힌 첩자.


그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작가의말

반갑습니다 독자여러분.

글을 읽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글 속의 모든 단체는 현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가상의 세력이며, 이 글은 그 어떤 정치적 메세지도 담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근본없는 세계의 이야기일 뿐.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글을 선물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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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1 23.05.10 152 2 11쪽
1 0. 그는 근본이 없다. 23.05.10 176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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