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931님의 서재입니다.

황실기사가 사상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기하학
그림/삽화
기하학
작품등록일 :
2023.05.10 11:58
최근연재일 :
2023.05.26 03:16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011
추천수 :
24
글자수 :
77,835

작성
23.05.10 12:31
조회
92
추천
2
글자
11쪽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2

DUMMY

1.


두 민족이 살아가는 대국.


시스티아-킵찬 연방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땅에 살아가나는 시민이나, 타국의 국민들이나 백이면 백, 연방 황제의 이름을 대지 않을 것이다.


라이머 백작가문.


30년 전, 황위계승 내전 당시 혜성처럼 나타난 검은 머리의 데릴사위를 필두로 이름을 떨친 명문가는 끝내 거대한 제국의 주인이 됐으니.


당장 라이머 백작이 거느린 친위기사단의 종자들 수준이 황실 근위대의 종자는 물론, 수습기사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는 사실만 봐도, 제국의 실세가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단 한 명.


그 악명 높은 ‘인간 도살자 백작’과 같은 검은 머리칼을 가진 근위기사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탕-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낡은 근위대 연무장을 붉게 물들인다. 오늘은 이만 일과를 끝낼 시간이라고 말하듯이.


하나 그 넓은 연무장 속 홀로 서있는 젊은 사내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긴 커녕, 더욱 거칠게 눈앞의 훈련용 인형을 몰아붙인다.


찰랑이는 검은빛의 머리칼을 따라 상단 하단 중단을 차례차례 파고들어가는 칼날.


그와 함께 움직이는 목검의 기세는 가희 진검에 비할 만큼 날카로웠지만, 기사단의 가난한 재정을 알고 있다는 듯 그의 검은 인형에 닿기 직전, 걸음을 멈췄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이제 막 종자에서 벗어난 듯해 보이는 수습 기사라곤 볼 수 없는 검격이 멈춘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오늘도 자네가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는군. 연철. 수고했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연철을 향해 미소 짓는 노검사.


“황실의 녹을 먹는 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부단장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어려운 법이야.”


거의 ‘연청’에 가까운 발음만 아니었다면 참 좋은 말씀이었을 텐데. 저 노인네는 처음 본지 7년이 넘도록 여전히 연철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연철이란 이름은 제국 내의 수많은 이민족과 소수민족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이질적이었으니까.


부단장의 입에서 울리는 저 어색한 ‘연철’발음을 들을 때마다, 그냥 얌전히 적당한 가명을 지을 걸 하고 후회했지만 선택의 기회는 10년도 전에 지나가버린 상태였다.


“다른 게 아니고, 오늘 밤 기사단 시험에 합격한 종자들을 위해 축하 연회가 있어서 그런데. 자네도 함께하지 않겠는가?”


“죄송합니다. 개인적 사정이 있어서.”


“이런, 아쉽게 됐군. 막시밀리안 그 놈이랑 자네가 참가 할지 안 할지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아쉽다는 표정으로 내일 보자며 등을 돌려 연무장을 떠나는 부단장.


내기라니. 그가 기사단에 들어온 이후 파티나 연회에 참석 해본 적이 손에 꼽힌다는 걸 생각하면 바보 같은 내기였다.


그럼에도 역배의 짜릿함에 눈이 먼 선배들이 분명 있을 터.


“또 한 소리 듣겠네. 검 말고 사람이랑도 좀 대화하라고.”


이제 막 사회에 나선 26살 대한민국의 연철이었다면 아마 무시했을 말.


하지만 서른에 접어든 연철은, 그리고 그 이후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곳에서 굴러온 그는 더 이상 무시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왜 그 많은 조직들이 별에 별 이유를 들며 친목을 다지는 지 이해했으니까.


문제는, 지금의 그는 친목을 다질 수 없는 상태라는 것.


“빈민가 출신이란 것만 해도 마이너스인데, 귀족원에서 심어놓은 첩자인 동시에 반동분자들에게 약점 잡힌 내가 무슨 깡으로······.”


첩보에 재능에 있다면 모를까, 자타공인 비사회적인 인간인 연철로선 표정관리 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안 그래도 이 세계의 주류는 도수가 강한데, 만약 술김에 허튼소리라도 한다면...상상하기도 끔찍했다.


하긴, 어차피 오늘은 다른 선약 때문에라도 불가능하지.


지난 밤.


황량하기 짝이 없는 그의 숙소 안 베개 밑에 놓인 한 쪽지.


낯선 종이에 적힌 글자는 짧고 단순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강제하기엔 충분한 글자였다.


[내일 9시. 상업지구 8번가. 천사의 노래. 마더.]


그의 눈에 족쇄나 다름없는 저주를 박아 넣은 후 9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반동분자들이 전한 일방적인 통보.


배려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태도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지만, 나갈 수밖에.


이세계에서 눈을 뜬지도 어느덧 10년.


현대인 연철은 비정상으로 가득 찬 세계와 동화됐다.


2.


연무장을 정리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연철의 눈앞에 펼쳐진 수도의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그야 당연한 것이, 수도의 거리엔 지방 도시의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효수된 시체들이 없었으니까.


물론 비밀경찰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긴 하다만, 지방처럼 장례식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작의 주인공이 원하던 대로.


쪽지에 적힌 선술집으로 향하는 연철의 얼굴은 무덤으로 끌려가는 시체와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말이다.


천사의 노래라는 간판을 찾아 들어가자 반기는 꼬마 종업원.


일행이 있다 말한 뒤 테이블을 확인 한 순간, 그는 예상치 못한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9년 만인가?”


“그렇지. 연철 네가 그때쯤 귀족 나리들한테 끌려갔으니까.”


건물에서 그를 기다리던 반동분자들의 끄나풀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빙의 직후 고향을 떠나 수도에 들어온 뒤. 반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옛 친구.


“...의외네. 패트릭.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조직에 몸을 담을 줄이야. 너는 마더 테레사를 살해한 놈들을 극도로 혐오하지 않았나?”


“맞아. 혐오했지. 아니, 증오했지. 하지만 누군가는 놈들 밑에서 일해야 하더라고.”


아하.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다.


자칭 혁명가들은 그와 패트릭이 살던 빈민가의 고아원에 쳐들어왔고, 마더를 죽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원수다. 그런데 그들이 마더를 대신해 고아원을 관리하겠다고 하면?


엿 같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총대매고 반동분자의 밑에서 일하며 밥값을 해야 하는 법.


잠깐의 침묵과 교차하는 시선.


그것으로 서로에 대한 입장 확인은 충분했다.


빨갱이들 사이에서 배신은 낯선 단어가 아니었고, 어린 시절의 얄팍한 우정을 믿기엔 서로의 위치는 너무나 달라졌으니까.


심지어 연철은 세 개의 세력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저 녀석으로서도 신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나를 안 찾아서 존재를 까먹은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이시리스의 눈’을 가진 너를 찾기 위해 비밀경찰들의 감시도 뚫고 너를 찾으러온 상부가 연철 너를 까먹었겠어?”


“역시나.”


그래. 그게 문제였다.


빈민가의 고아 출신답지 않게 그가 깃든 이 몸은, 너무 많은 재능과 축복을 타고났다.


그 결과, 조용히 원작의 내용을 통해 힘을 기르고자 했던 본래의 계획은 완전히 박살나고, 연철에게 주어진 두 번째 인생은 진창 속으로 빠져들어 갔으니.


“연철. 며칠 내로 라이머 가문이 너를 호출할 거야. 그들이 준비하던 무대가 마침내 완성됐고, 이제 남은 건 무대에 바칠 제물 하나니까.”


제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제물이란 것을 챙기게 될 것이 누구인지.


“...상부가 전달한 말은 하나야. 라이머 가문이 네게 내린 목표를 탈취하는 것.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목표를 제거해 놈들의 무대를 망치는 것.”


3.


‘나는 이후부터 한동안 황실 근위대에서 근무하는 하인으로 잠입해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또 하나의 쪽지를 건네는 패트릭.


다른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주어진 말을 조용하고 빠르게 쏟아낸 녀석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목표가 무엇인지, 무대는 무슨 말인지 궁금한 건 많았지만 그에게 되묻는 짓은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의심병자들인 빨갱이들의 윗대가리가 끄나풀에게 그런 상세한 정보를 알려줬을 리가 없으니까.


어차피 목표에 대한 정보는 귀족 놈들이 호출 한 뒤 알려줄 테고.


그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름 앞으로 도착한 우아한 편지 한 장.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편지의 발신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라이머 백작이었다.


내용이야 뭐, 펴볼 필요도 없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곧바로 호출에 응하라는 것.


“빨갱이 새끼들도 첩자 귀한 줄 아는데, 이 빌어먹을 귀족 놈들은 자기 일 아니라고.”


이러니 그가 근위대의 다른 수습 기사나, 평기사, 종자들과 어울리지 못하지. 그 친구들이 보기에 연철은 백작가의 뒷배로 들어온 낙하산이나 다름없으니까


아무리 연철이 황실과 백작가 사이의 비공식적 합의에 따라 당당하게 근위대에 들어온 공식 첩자라지만...


하나 이런 사소한 고민 따윈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그들이 연철에게 내린 명령은 대담했다.


“오늘 이후로 1황녀의 호위대로 배치 될 거다. 그녀에게 접근하도록.”


오랜만에 만난 가면을 쓴 백작의 부하가 명령하길, 1황녀에게 접근한 후 친목을 쌓으란다.


그러고선 지시가 내려졌을 때 그녀를 멀쩡히 납치, 아니 모셔와야 한단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연철은 백작으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그녀를 납치하는 척 하다가, 백작의 기사들을 따돌리고 그녀를 빨갱이 친구들에게 넘겨야 한다는 말인가?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는 정신 나간 명령.


상식적으로 가능 할 리가 없다.


백작의 지시는 물론, 반동 놈들의 지시도.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공손한 대답.


“확인했습니다.”


차라리 그가 그저 그런 첩자였다면, 그냥 깔끔하게 제거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이연철이란 놈이 쓸데없이 유능한 탓에 두 집단 모두 자신에게 많은 기대와 관심을 하고있다는 점.


잔혹성 만큼은 원본을 뛰어넘은 연철의 두 상사. 유사 빨갱이들과 유사 나치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이미 충분히 확인했으니까.


당장은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아직, 저 두 개자식들을 엿먹이기 위한 준비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작가의말

이연철은 햄보칼수가업서...

극좌와 극우 대통합을 이룬 ?

글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황실기사가 사상을 숨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및 연재 사이트 변경. 23.05.28 30 0 -
공지 **22일 임시 휴재 23.05.19 9 0 -
공지 서술 시점에 관하여 독자 분들의 의견을 받습니다. 23.05.16 24 0 -
공지 5월 14일 연참 및 토요일 업로드 일정 변경. 23.05.13 17 0 -
공지 연재 시각 안내. 23.05.10 32 0 -
18 7. 그는 해결사다. - 2 23.05.26 12 0 9쪽
17 7. 그는 해결사다. - 1 23.05.25 12 0 10쪽
16 6. 그는 자신이 있다. - 3 23.05.24 18 0 11쪽
15 6. 그는 자신이 있다. - 2 23.05.23 24 1 11쪽
14 6. 그는 자신이 있다. - 1 23.05.21 29 1 10쪽
13 5. 그는 실패하지 않는다. - 3 23.05.20 34 1 10쪽
12 5. 그는 실패하지 않는다. - 2 +2 23.05.18 38 2 10쪽
11 5. 그는 실패하지 않는다. - 1 23.05.17 38 1 10쪽
10 4. 그의 주위엔 믿을 놈이 없다. - 2 23.05.16 42 1 11쪽
9 4. 그의 주위엔 믿을 놈이 없다. - 1 23.05.15 47 1 11쪽
8 3. 그는 반사회적이다. - 2 23.05.14 51 1 9쪽
7 3. 그는 반사회적이다. - 1 23.05.14 53 2 11쪽
6 2. 그는 진급이 기쁘지 않다. - 3 23.05.13 57 2 10쪽
5 2. 그는 진급이 기쁘지 않다. - 2 23.05.12 67 2 10쪽
4 2. 그는 진급이 기쁘지 않다. - 1 23.05.10 71 2 10쪽
»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2 23.05.10 93 2 11쪽
2 1. 극단주의자들의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 1 23.05.10 151 2 11쪽
1 0. 그는 근본이 없다. 23.05.10 173 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