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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64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1 12:53
조회
4,011
추천
182
글자
9쪽

목걸이의 목소리

DUMMY

아침을 알리는 잔잔한 종소리가 성당에 울려퍼졌다.


아이들의 침실 앞에 선 론멕은 축축해진 소매를 걷어올린 채 한바탕 심호흡을 했다.


비명과 아우성으로 가득 찬 끔찍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직감한 수녀는, 머지않아 눈을 질끈 감고 침실의 문을 열었다.


“모두 기상! 일어납시다 다들!”


론멕은 미리 준비해둔 작은 종을 격렬하게 흔들며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


귀를 찢어놓는 듯 한 종소리에 아이들은 하나하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몽사몽한 표정을 지으며, 질렸다는 듯 울부짖었다.


“아으으우우...”


마치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던 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수녀니임... 오늘 아침은 뭐에요...?”

“아, 테드야. 오늘 아침은 감자 샐러드에...”

“아우우 젠장할...”


단말마의 유언을 남긴 소년이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너 그런 말버릇은 어디서 배운 거야? 젠장할! 빨리 안 일어나?”


졸음에 눈이 뒤집힌 테드를 사정없이 흔들던 론멕은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를 듣고는,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침실의 입구에는 성당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허리가 살짝 굽은 흰 머리의 노인이 서 있었다. 론멕은 뜻밖이라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노인에게 말했다.


“어라? 할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론멕 수녀님. 그게 말입니다요...”


침대 사이로 발걸음을 옮긴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게... 어디서 들어온 건지, 식자재 창고에 벌레가 들끓어서 말입니다. 먹거리들이 대부분 아작이 났지 뭡니까?”

“그러면 지금 먹을 게 없단 말씀이신가요?”

“다행히 성기사단이 굶기를 자처했으니 아이들이 아침을 거를 일은 없을 겝니다. 다만 아침이 준비되기까진 조금 기다리셔야...”


노인과 수녀의 대화를 엿들은 테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 모습에 눈동자를 굴린 론멕은, 이내 소년의 엉덩이를 발로 꾹꾹 밀기 시작했다.


“익... 아오... 그러면 다행이긴 하지만... 기사분들은 괜찮으실까요? 오전 내내 아무것도 못 드실 텐데.”

“그렇다고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기사단에 감사 인사나 한번 전하시지요.”

“그치만···”


잠시 머뭇거린 론멕이 노인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기사분들을 굶길 수는 없는 일이에요. 아이들이 아침 예배를 보는 동안에 제가 산딸기라도 따 오죠 뭐.”


그 말을 들은 테드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수녀님! 그러면 우리 아침으로 산딸기 먹는 거에요?”

“아니. 기사님들 드려야지. 오늘 아침 네 뱃속엔 무슨 일이 있어도 감자 샐러드가 들어갈 거란다.”


삐죽 튀어나온 소년의 입을 뒤로 한 채, 론멕은 바로 옆 침대에 얌전히 앉아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들었지 케이시? 나는 잠시 뒷산에 다녀올 텐데, 아이들을 예배당까지 잘 데리고 갈 수 있겠니?”


아직 졸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케이시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스러운 소녀의 모습에, 론멕은 미소지으며 조쉬 할아버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할아버지께서는 아이들 아침을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한 숨을 쉰 수녀가 말을 이었다.


“테드 녀석 접시에는 야채를 특히 더 듬뿍 담아주시구요.”



= = = = =



고요한 산속의 산들바람에는, 머지않아 수녀의 거친 숨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헉··· 헉··· ”


론멕은 다리가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소매로 이마를 쓸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소매에는 어느새 흙먼지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엉망이 된 소매를 털어내고는,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두 손을 허리춤에 문질러 흙먼지를 닦아냈다.


“후우우우···”


한 숨을 쥐어짠 론멕은 문득 팔꿈치에 걸린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바구니에는 탐스러운 빨간 산딸기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쉬지 않고 산딸기를 따러 다닌 론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정도면 다들 허기는 달래시겠지?”


잠시 수확물을 감상한 그녀는 후들대는 다리를 달래기 위해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탁 트인 산의 중턱에서, 론멕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평생동안 살아온 성당의 전경이었다.


산과 바다의 사이에 위치한 성당은 마치 외로운 거인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이 곳에 처음 당도한 모험가라면 넋을 놓고 바라보았을 것이 분명한 광경이었지만 론멕에게 이곳은···


“··· 모든 게 익숙한 곳···”


아련한 눈빛으로 성당을 바라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 모두가··· 나를 알고 있는 곳···”


성당은 론멕에게 집이자 고향이었다. 수녀는 이곳에서 행복했으며,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법을 익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진 무엇인가 꺼림찍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답답한 느낌. 모든 것이 지루하다는 감정이 가끔씩 론멕의 마음속에 갇힌 채 휘몰아쳤다. 마치 이곳에서 꺼내달라는 비명처럼 말이다.


그런 론멕의 알 수 없는 불편함은 그녀가 매우 아끼는 ‘용사 다리온의 모험’ 을 펼쳐볼 때마다 조금씩 누그러지곤 했다.


무려 13년 동안, 론멕은 ‘용사 다리온의 모험’ 과 갖가지 모험 소설들을 읽어보며 기분을 달래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에게 사탕을 쥐여주는 것이나 다를 게 없었다.


지친 수녀가 고개를 숙이자, 잡초 사이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나르는 개미의 행렬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기 시작했다.


“너희는 저곳을 평생동안 돌아다녀도 지루하지 않겠구나."


론멕의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은 개미는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너희가 부럽···

···어···어···?“


순간, 그녀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론멕은 자신이 꽤나 마르고 가벼운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산의 중턱에 자리잡은 작은 바위의 생각은 달랐다. 바위와 론멕은 머지않아 비탈길을 따라 동시에 구르기 시작했다.


“으아, 아, 아, 아, 악!!!”


바위와는 다르게, 론멕은 한참을 더 구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온 몸이 흙으로 뒤덮인 그녀는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아야···”


꼴사나운 모습을 누가 볼 새라, 벌떡 일어난 론멕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할. 적어도 오늘은 지루할 틈이 없네.”


어깨를 마저 털어내던 중, 그녀는 풀숲에서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자욱한 흙먼지를 손사래를 치며 몰아낸 수녀는, 이내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라? 목걸이?"


산과 목걸이,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모습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풀숲을 뒤져 목걸이를 들어올렸다.


빛바랜 금줄에 마름모꼴로 세공된 자수정이 달린 목걸이는 론멕의 손 안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이런 곳에 왠 목걸이지?”


론멕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흔들리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수녀인 그녀에게 욕심은 금기였지만, 작은 자수정 목걸이에 대한 호기심은 그녀에게 있어 또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누군가 잃어버린 거라면 반드시 찾아줘야겠지만···”


론멕은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한 번 정도는···”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미소지은 수녀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론멕은 손 위에 놓인 자줏빛 수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목걸이는 이런 곳에 방치되기에는 꽤나 호화스러운 장신구 같았다.


그런 목걸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던 그녀는 퍼뜩 겁이 나 그것을 벗으려 하였다. 그러나···


“어···”


목걸이는 그녀의 목에서 벗겨지지 않았다.


“어···?”


뒷목에 뿌리를 내리다시피 달라붙은 금줄은 떨어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것의 힘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수녀는 계속해서 자수정을 잡아당겼다.


“어··· 어어···??”


도무지 벗을 수 없는 금줄은 마치 그녀의 목을 거세게 붙잡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한바탕 목걸이와 씨름을 하던 론멕은...


갑자기 얼어붙은 듯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뭐야, 누구냐 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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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비장의 한 수 +6 21.10.12 293 11 56쪽
229 미친 신의 성기사 +8 21.09.28 188 11 29쪽
228 소리라는 이름의 저주 +4 21.09.10 145 10 32쪽
227 국왕시해자 +5 21.08.31 163 10 37쪽
226 고해성사 +9 21.08.17 164 11 28쪽
225 신이 보는 곳 +2 21.08.09 153 10 22쪽
224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9 21.08.04 161 12 16쪽
223 대도 애옹론멕 브레이브본 +11 21.08.02 126 15 24쪽
222 도적들의 항구 +3 21.07.27 134 8 23쪽
221 뿌리내린 예언 +6 21.07.23 140 10 24쪽
220 최악의 상견례 +3 21.07.19 167 11 24쪽
219 예언자 왕과 고대의 존재 +4 21.07.15 183 10 21쪽
218 불편한 조우 +6 21.07.13 137 9 13쪽
217 녹아내린 시간 +5 21.07.08 160 14 18쪽
216 피아의 일기 +5 21.07.06 177 8 23쪽
215 그리고, 길잡이 +8 21.07.04 154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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