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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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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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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대도 애옹론멕 브레이브본

DUMMY

눅눅하고 낡은 항구 도시에는 더러운 몰골을 한 잡배들이 쥐 떼처럼 우글댔다. 그들은 희망을 품고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급급해 보였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귀족인 드워프가 지저성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영유하고 있을 때, 허우대만 남은 왕국에 버려져 할렘가를 진전하는 그들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일확천금의 행운뿐.


그것이 노름판에 특히나 사람이 붐비는 이유였다.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한 시궁창 속에서, 탁자 위에 판을 벌인 누군가의 고함이 항구에 울려 퍼졌다.


“자! 자!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단돈 동화 다섯 닢으로 당신들의 운을 시험해보십쇼! 구슬이 있는 컵을 맞추면 금화가 다섯 닢이나!”


호객 행위를 벌이던 노름꾼은 그가 입은 옷만큼이나 저렴한 광고 문구를 쉴 새 없이 읊어댔다.


그가 마련한 탁자 위의 컵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누가 봐도 싸구려 사기에 불과한 허접한 노름판. 하지만 루블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한 듯했다.


그들은 탁자를 중심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들 중 대개는 그것이 정당한 승부인지에는 하등 관심이 없는 불량배들이었지만, 노름꾼은 특히나 덩치가 큰 경호원 둘을 뒤에 세우는 것으로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한 지 오래였다.


“사기 없음! 공정성 보장! 자! 자! 구슬이 있는 컵을 맞추면 금화가 다섯 닢이라구요?”

-웅성웅성


그것은 확실히 인생 역전의 기회처럼 들렸다. 달콤한 노름꾼의 제안을 들은 루블란의 왕국민들은 틀림없이 주머니를 뒤져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돈을 꺼내 들었을 것이다.


“용기 있는 자가 전리품을 가져가는 법! 어서 이 단상에 나와 당신들의 용기를 증명하십...“

”씨발 브레이브본이다!!!“


싸구려 노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확천금의 기회가 누군가의 비명으로 들려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금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을 들은 불량배들이 다 함께 눈을 뒤집으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몸을 비틀었다.


”브레이브본이다!!! 브레이브본이 나타났다!!!“

”뭐? 어디? 어디야!“

”먼저 잡는 놈이 임자다!!!“


노름꾼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아연실색하여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실망할 틈도 없었다. 언제나 멍청한 자들의 돈을 수금해왔던 사기꾼이었지만 브레이브본이 이 항구에 나타난 이상 그는 비로소 모든 사람과 평등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그는 허둥지둥 품을 뒤져 조악한 새총을 꺼냈다. 삭아 빠진 고무줄이 그의 다급한 손짓과 함께 덜렁거렸다.


”브레이브본...? 브레이브본이 나타났다고? 저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제일 먼저 잡아야 해! 뭣들 하는 거야! 빨리 움직이지 못...“

”‘우리’?“


경호원 둘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노름꾼을 내려다보았다. 노름꾼은 겁에 질려 침을 삼킬 새도 없이 정수리에 몽둥이를 맞고 고꾸라졌다.


경호원은 그의 시체를 밟고 브레이브본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의 가치와 의미도 없는 피가 군중들의 거친 가죽 장화를 도장 삼아 바닥에 찍혔다.



= = = = =



같은 시각, 론멕은 그녀에게 달려드는 잡배들의 목을 그어낸 지 오래였다. 시체의 허리춤에서 금화 주머니를 되찾은 그녀가 귀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정황을 살폈다.


”아니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내가 알아?! 빨리 뛰어!“


론멕은 피아의 손에 이끌려 도심 속을 향했다. 폭력배들과 싸움꾼은 마치 타르타로스의 괴수처럼 우르르 그녀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은 남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욕과 음담패설을 입에 담았고, 그들의 손에는 개성 넘치게 생긴 녹슨 날붙이들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그들을 돌아본 론멕은 어째서 그들이 브레이브본이란 이름을 듣고 자신을 쫓는지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헉... 헉... 잡히면 끝이야!“

”아니 뭐...“


가장 큰 의문은 어째서 자신이 도망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잠시 눈을 깜박이며 피아의 손을 살짝 뿌리친 그녀가 멈춰선 피아에게 말했다.


”근데 우리 왜 도망가는 거야? 왜 잡히면 끝인 건데?“


그리고는 몸을 돌려 날아드는 석궁의 볼트를 단검으로 쳐냈다. 론멕이 연이어 날아드는 화살들과 조약돌을 가볍게 쳐내는 동안, 그녀의 뒤에서 한숨을 푹 내쉰 피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끝장날 거라고. 네가 또 대량 학살을 저지르면 어떻게 해?“

”내가 그러는 게 싫어?“

”당연한 소리!“

”어째서?“


론멕은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피아를 으슥한 골목의 모서리로 이끌었다. 달리기가 익숙하지 않아 헉헉대는 왕녀의 앞에서 여유롭게 눈알을 굴린 론멕이 말했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너를 비롯해 이런 나를 걱정해준 동료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뭐 살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그런 순결한 사람들이라도 돼? 그건 아니잖아!“

”잡아라!!!“


그들이 몸을 숨긴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론멕은 피아의 앞을 가로막은 채 골목에 밀려 들어오는 부랑배들을 하나하나 베어 제압했다.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삼면이 가로막힌 공간을 등진 채 싸울 것. 용병들과 스승의 가르침이 몸에 밴 론멕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주인의 손길을 느껴 활어처럼 요동치는 참값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연인의 잔소리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럼. 그건 아니지.“

”그럼 뭐가 문제인 거야 대체? 넌 심지어 사악한 혈마법사잖아! 내가 너하고 다를 게 뭐야?!“

”달라. 아주 많이 달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는 뭐랄까...“


피아는 론멕과 등을 맞붙였다. 건물의 사이로 뻥 뚫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힌 그녀는 지붕 위에서 로프를 붙들고 하강하는 불량배들을 향해 송곳을 겨누었다.


그 즉시 잠에 빠져든 그들은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중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지지리도 운이 없는 몇몇의 생명력을 착취한 피아가 빙글 몸을 돌려 론멕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송곳을 겨누고는 말을 이었다.


”더 잔혹하다고 해야 하나? 더 가볍다고 해야 할까?“

”그게 방금 사람을 추락사시킨 혈마법사가 할 말이냐고!“

”달라! 설명하긴 어려워도 분명 뭐가 있다고! 너는 마치...“


론멕의 앞에 시체가 쌓여가자, 불량배들은 더는 그녀에게 달려들지 않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지붕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이들은 피아의 주변에 흐트러진 추락사한 시체들을 보고 슬금슬금 지붕 너머로 얼굴을 숨겼다.


숨을 고를 찰나가 찾아왔음에도 론멕의 가슴팍은 멈추지 않고 들썩였다. 산소를 갈구하듯, 그리고 심장의 고통을 잠재울 무언가를 갈구하듯 터질 듯한 숨을 몰아쉬던 론멕은 문득 자신도 모르게 히죽이는 입가로 손을 가져다 댔다.


”개미집을 허물고 개미를 짓밟으며 재미를 느끼는 어린아이처럼...“

”허억... 헉... 하하... 하.“

”너는 이걸 그저 유흥으로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뭐가 문제인지 정말 모르겠어?“

”...피아.“


론멕은 슬며시 피아를 뒤돌아보았다.


수많은 적수를 앞에 두고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두 얼굴의 거인을, 총리 볼베르 프리토스를, 마법공학자 머피 칼라미티를 상대하는 중이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루블란의 불량배들은 그녀에게 적수라 할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피아였지만, 론멕의 표정을 본 그녀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너는 그럼 이게 즐겁지 않다는 거야?“


론멕은 미소짓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맥락 없이 얼굴에 그려진 해맑고도 섬뜩한 미소가 피아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것이 일상이 된 위니로서는 그저 익숙하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위니는 얼어붙은 피아의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하여 씁쓸함을 입에 머금고 있었다.


그것은 대마법사조차 영문 모를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론멕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결함이었으니까.


”뭐...?“

”봐. 정말 약해 빠진 것들이야. 우리를 붙잡긴커녕 죽이지도 못할 거야. 지들 주제 파악도 덜 된 것들이 저렇게 죽여 달라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데, 그 누가 이걸 즐겁지 않게 여길 수 있겠어?“


론멕은 고귀한 결투를 하듯 팔로 반원을 그려 불량배들에게 단검을 겨누고는 말했다.


”미안. 나는 늘 이래 왔어.“

”...“

”나는 언제나 이렇게 불행을 불러 왔힉!“


나름 분위기를 잡은 몸짓과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을 흐렸다.


당황한 피아와 그녀보다 더 당황한 불량배들의 시선 속에서 론멕의 몸은 무언가에 밀려나듯 덜컥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위니에게 밀려난 론멕은 붉은 형체가 되어 허공에 떠올라 하늘빛 눈을 한 자신의 몸을 하릴없이 내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왜?]

<제가 말하는 도중이었잖아요.>


날이 잔뜩 서 있는 동반자의 말에 텅 빈 하늘빛 눈동자로 슬쩍 론멕을 곁눈질한 위니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들어줄 가치가 없는 말을 끊은 걸 과연 문제라 할 수 있으려나?]

<아. 진짜 당신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이하동문이야.]


하늘빛 눈의 고양이가 한숨을 쉬며 단검을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단검을 검집에 넣기 전에 늘 그것을 한 바퀴 돌렸던 론멕의 능숙한 손놀림과는 다르게, 위니는 검집의 구멍과 단검의 끝을 맞추기 위해 허리띠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래도 뭐. 확실히 이게 더 낫다 야! 약해 빠져서 질질 짜는 계집애보다야 살인에 미친 또라이 살인광이 훨씬 낫지.]

<난 살인에 미친 또라이 살인광이 아니에요.>

[아무렴 그러시겠지. 그리고 말이야. 도대체 언제부터 네가 불행을 불러오는 쪽이 된 건데?]


위니는 완벽하게 검집에 꽂힌 참값의 손잡이를 흡족하게 두드리고는 불량배들을 노려보았다. 그 사이에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중형 발리스타를 힘겹게 장전하는 불량배들의 앞에서, 위니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건 언제나 마법사의 역할이었다고.]


그리고는 한 손으로 마법진을 펼쳐 주문을 외웠다.


”<디스인티그레이트>“


피어나듯 모습을 드러낸 하늘빛 오망성, 그것이 완성됨과 동시에 골목에 울려 퍼진 마법 주문. 그리고, 그 즉시 가루가 되어 우수수 떨어져 내린 발리스타.


마법과 마법사를 마주한 불량배들의 반응은 타르타로스와 에르딘에서 무뎌진 론멕의 현실 감각을 일깨웠다.


”으허억... 허억!“

”마법... 마법사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신음한 이들은 그나마 용기 있는 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럴 만한 용기가 없는 이들은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바짝 얼어붙어 휘둥그레 눈을 뜬 채 마법진을 구경했다.


마법 도시를 제외한 그 어디에서나 마법사의 출현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가 주문 하나로 무기를 가루내는 대마법사라면 특히나 더 그랬다.


마나의 파장은 공포와 함께 뻗어 나갔다. 항구 도시의 사람들은 오금이 저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의 주체인 위니가 하늘빛 날개를 펼쳐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마법사이자 대도의 제자, 애옹론멕 브레이브본 데이드림이다.“

<오. 시발.>


이마를 탁 친 붉은빛 형상의 탄식을 무시한 채, 위니는 론멕과는 다른 의미로 주체할 수 없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억눌러 대마법사의 위엄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들의 행색은 언제나 그래 왔다. 가까이서 보면 코미디였지만, 멀리서 보면 그야말로 심각한 대마법사의 강림이었다. 그리고, 한낱 루블란의 불량배들 따위가 영혼이 결속된 둘의 이야기를 눈치챌 리는 없었다.


그들은 전율했다. 무기를 내리며 잠자코 마법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또한 그들의 유일한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생존 본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쓸데없는 살상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현명한 자들과 빠른 대화를 나누는 것뿐.“


위니의 목소리에는 메아리가 살짝 깃들어 있었다. 여유롭게 골목의 모퉁이를 지나친 그녀가 더러운 대로를 가득 메운 불량배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말해라. 죽음 앞에 현명한 자들이여,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뭐지?“


그 누구도 쉽사리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방금 그녀를 가리키며 마법사라 비명을 지른 특히나 용기 있는 자가 옷에 가득 묻은 발리스타의 가루 파편을 털어내며 그 말에 답했다.


”그... 어... 브레이브본이 뭔지 모르십니까?“

”그럼. 아주 잘 알지.“


목가의 머리띠를 손으로 감싼 위니가 말했다.


”내 스승님의 이름이자, 이제는 내가 갖게 된 일자 전승의 이름. 내가 바로 브레이브본이다.“

”혹시 그 스승이란 분 이름이 넬포 아닙니까?“

”어. 맞아. 그런데 왜...“


그 말에 대답은 딱히 필요가 없었다. 점차 잦아드는 웅성거림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자 위니는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높고 허름한 울타리가 건물과 길의 경계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울타리에는 갖가지 벽보와 현상 수배 포스터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채 바닷바람에 모퉁이를 휘날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보들의 산, 그것의 정상을 차지한 누군가의 현상 수배 포스터였다. 다른 이들의 것과는 비교적 최근에 다시 붙여진 듯한 벽보를 천리안으로 한눈에 들여다본 위니가 경악을 하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론멕.]

<왜요?>

[네가 이걸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론멕은 그 즉시 눈 하나를 차지해 천리안의 시야를 넘겨받았다. 그렇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누군가의 삐죽머리를 정확하게 그려낸 현상 수배 포스터의 몽타주였다.



(넬포 브레이브본)

(금화 1만 닢, 살려서 데려오는 자에게는 지저성의 영주권을 부여함.)

(시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면 팔다리를 자른 채 이송할 것)

(머리띠로 올린 삐죽머리, 마흔여덟 개의 단검, 자신이 브레이브본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음, 최근 목격지는 테플로 왕국이며 이는 계속 갱신되고 있음을 알림.)

(죄목 : 살인, 약탈, 방화, 고성방가, 부녀자 추행, 폭동 지휘, 왕국 재화 탈취, 탈옥, 국왕 모독과 암살 시도, 일련의 반역 행위가 있으나 지면이 모자라 생략함.)


성국의 흉악범 론멕으로서는 영문 모를 존경심까지 느껴지는 화려한 현상 수배 포스터였다. 론멕은 스승의 사생활을 엿본 배덕감에 꼬리를 세우고는 슬며시 그녀의 몸에서 물러났다.


그녀가 본 위니의 옆모습은 흡족하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쓰다듬은 그녀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반역 행위가 제일 마음에 드는데?]


론멕은 ‘당연히 그러시겠죠’라는 말을 꾹 삼켜냈다. 심장의 통증과 함께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론멕이 천연덕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전 부녀자 추행이 가장 마음에 드네요.>

[너 그런 취향도 있··· 아니,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불량배들은 위니가 파리를 쫓듯 신경질적으로 눈앞을 휘저은 데에 굳이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돈과 마법사, 그리고 자신들의 목숨에 쏠려 있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돈과 목숨을 내심 저울질하던 그들은 금화 1만 닢이 가진 값어치를 몸소 느끼고는 그들 자신의 하찮음에 전율했다.


아니, 어쩌면 1만 닢도 부족했다. 마치 신처럼 날아오른 마법사들을 본 이들의 생각은 모두가 그러했다. 겁에 질린 그들이 침묵했기에 위니는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일방적인 의사 전달에 전념할 수 있었다.


”금화 1만 닢이라. 확실히 큰 액수로구나. 제아무리 타르타로스에서 광부 노릇을 한다 해도 저만한 돈을 벌기에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 않더냐?“


팔을 잃었음에도 활짝 미소지었을 뿐이었던 광부들을 문득 떠올린 론멕은 그 말에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금화 1만 닢은 여전히 엄청난 양의 돈이었다. 이 정도의 돈이라면...


”대대손손 배를 굶주릴 일은 없겠지. 드워프처럼 귀족 대우를 받을 수도 있을지도 몰라. 돈은 그 자체로 권력이오, 저 현상금을 거머쥔 자는 그만큼의 권력을 휘두르며 마치 산처럼 이 세상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몇백의 부랑배들이 연이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듣기 좋은 박자를 만들었다. 그것에 불협화음처럼 끼어든 위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이 나를 제압할 수 있다면 말이지.“

“···”

“너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내게서 도망치던가, 아니면 싸우다 죽던가.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검지와 중지를 접어 주먹을 쥔 위니가 팔찌처럼 손목에 마법진을 두르고는 말했다.


“난 도전자는 언제든지 환영이야. 자! 나서볼 사람?”

“···”


물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무기를 꼭 붙든 손은 아직 그들이 미련을 떨쳐내지 못했음을 드러냈지만, 루블란에서 여태껏 살아남은 이들 중 불가능한 일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멍청한 이는 남아있지 않았다.


겁쟁이들은 도망쳤다. 기가 약한 자들은 마치 처음부터 생각이 없었다는 듯이 능청스레 일상의 터전으로 복귀했다. 강자들은 침묵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자는 얌전히 뒷걸음질쳤다.


길가에서 그 모든 광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던 한 노인은 그가 끌고 온 수레에 시체를 담기 시작했다. 루블란에서 시체 청소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싸움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함과도 같았다.


“브레이브본이 마법사라고···?”

“우리 마을에 불행이···”

“쉿! 뒤돌아보지 말고 어서 달아나세!”


미적미적 움직이던 그들의 발걸음은 점점 전력질주가 되었다. 그들은 마법사의 불행이 옮을 세라, 애옹론멕 브레이브본의 금화 1만닢짜리 얼굴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길목에서 도망쳤다.


위니는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날개를 접어 가볍게 길 위에 착지했다. 소금기 가득한 흙탕물이 철벅이며 그녀의 신발을 기분나쁜 습기로 적셨다.


[너와 내가, 용병들과 네가, 파아와 네가 뭐가 다르냐고?]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든 길목에서, 덤덤히 시체를 수거해 가는 노인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던 위니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야 간단하지. 우리는 사람을 죽이고, 너는 벌레를 죽여.]

<정작 벌레 같은 것들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건 당신 아닌가요?>

[그게 사실인걸 뭐 어쩌겠어? 이 세상엔 원래 벌레 같은 인간들 천지야. 다만··· 그렇다고 다 죽여 버리나? 저들보다 내가 더 강함에 감사하고, 그들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껴야 할까?]

<···>

[그러는 놈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다만 우리는 그들을 악당이라고 부를 뿐.]


위니는 오른손의 마법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주먹쥔 손을 펼치자, 손목에 감긴 마법진은 나선을 그리며 사라졌다.


[장담컨대 론멕. 그렇게 사는 것보다는 영웅으로 사는 게 훨씬 낫더라. 어깨가 무거워지는 만큼 나 자신 또한 무게를 갖게 되는 거라고.]

<난 영웅이니 악당이니 좆도 신경쓰지 않아요. 난 내가 재밌으면 그만이에요.>

[어디 그렇게 합리화하고 도망쳐 봐. 그래봤자 네가 너 자신을 가볍게 여긴다는 증거밖에 더 돼?]


위니를 떨리는 입가를, 그것보다도 더욱 떨리는 왼손으로 지그시 억누른 붉은빛 형체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내가 왜 진실 멸망의 쐐기를 막아냈는지 생각해 봐.]

<···>

[난 이 세상 모두를 짊어지고 있어. 나는 그런 만큼 내 자신이 소중한 거야.]

<나는 어떤데요?>


영문 모를 론멕의 물음에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던 위니의 말이 멈추었다. 위니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고, 론멕은 퀭한 눈을 끔벅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소중한가요?>

[···]

<나와의 이야기는 어떤가요? 나와의 시간은 당신에게 가치가 있었나요? 나는 당신에게 무거운 사람인가요 가벼운 사람인가요?>

[···론멕. 그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야?]


위니는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복수. 그것만 생각해.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칭얼댈 생각인데?]

<하. 당신이 나처럼 모든 걸 잃었다 쳐도 그렇게 초연할 수 있으시겠어요?>


론멕은 코웃음쳤다. 그녀의 언행에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위니는 진저리를 치며 울타리에 붙은 브레이브본의 벽보를 신경질적으로 뜯어냈다.


죽은 동료의 모습이 그려진 벽보를 내려다보는 동안, 위니는 론멕의 표정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의미를 잃을 것이라는 예언을 도저히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었던 위니가 넬포의 현상 수배 포스터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해. 다 죽여 버리던가. 빌어먹을.]

“···론멕.”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피아의 목소리에 위니의 귀가 하늘로 솟았다. 당황한 그녀가 채 저지를 하기도 전에,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피아가 그녀의 등에 고개를 파묻었다.


“···고마워. 자비를 베푸는 네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몰라.”

“어! 아으! 이런 진짜 빌어먹을!”


위니는 화들짝 몸부림치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 어느때보다 공포에 질린 위니가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피아는 평소답지 않은 그녀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니는 마음 속으로 주도권을 넘겨 받으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론멕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위니는 이제 마음 속으로 오만가지 욕설과 저주를 내뱉기 시작했다.


“다··· 네가··· 원해서··· 한··· 일이지 뭐···”

“헤헤.”


입 밖으로 내뱉은 위니의 마음에도 없는 말에 피아는 미소지었다. 그에 화답하여 애써 미소지은 위니는 그녀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그래. 이렇게 변해가는 거야.”

“어 어! 그렇지 뭐! 어으으 어우!”


피아가 안겨들자, 위니는 가슴이 맞닿지 않도록 등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피아는 더욱 가까이 몸을 붙여 왔다.


[너 진짜 이러기야?! 너 진짜 이러기야?! 너 진짜 이러기야!!?]

<왜요. 그림 좋은데요 뭘.>

[이 씨발년! 이 씨발년! 이 씨발년!]


론멕이 고통스러워하는 위니를 보며 피식 웃는 사이에, 대낮의 길목에서 몸을 붙인 두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골목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시체 청소부들의 께름찍한 시선을 만끽하던 위니는 전적으로 그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음과 음의 조화는 드래곤보다도 더한 조물주의 실수였다. 피아를 안은 채 아드득 어금니를 깨문 위니가 시체 청소부들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그들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그들의 일거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넬포씨는 도대체 루블란에서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포옹을 마친 피아의 물음에, 길목을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이다 새로운 인기척을 감지한 위니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곧 알게 되겠지.”


위니가 턱을 까닥이자, 피아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대형을 맞추어 골목으로 진군하는 한 무리의 난쟁이 병사들이 있었다. 일제히 바닥으로 내리찍히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는 항구 도시에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불러왔다.


작가의말

I‘m still alive!


이 글을 보러 오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업무가 많아 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 공지를 남기는 것은 이미 연재 주기가 많이 박살이 나 있는 상태라 의미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완결까지 어림잡아 20화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제 조회수는 신경쓰지 않으려 합니다. 언젠간 사람들이 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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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국왕시해자 +5 21.08.31 163 10 37쪽
226 고해성사 +9 21.08.17 162 11 28쪽
225 신이 보는 곳 +2 21.08.09 152 10 22쪽
224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9 21.08.04 161 12 16쪽
» 대도 애옹론멕 브레이브본 +11 21.08.02 126 15 24쪽
222 도적들의 항구 +3 21.07.27 133 8 23쪽
221 뿌리내린 예언 +6 21.07.23 139 10 24쪽
220 최악의 상견례 +3 21.07.19 167 11 24쪽
219 예언자 왕과 고대의 존재 +4 21.07.15 183 10 21쪽
218 불편한 조우 +6 21.07.13 137 9 13쪽
217 녹아내린 시간 +5 21.07.08 160 14 18쪽
216 피아의 일기 +5 21.07.06 177 8 23쪽
215 그리고, 길잡이 +8 21.07.04 154 9 20쪽
214 그리고 꿈 +2 21.07.01 162 9 26쪽
213 +5 21.06.26 188 12 32쪽
212 마법사의 기억 +3 21.06.23 166 9 17쪽
211 도시의 기억 +2 21.06.20 184 9 22쪽
210 엑시온 더 드래곤 +7 21.06.17 187 10 35쪽
209 어머니는 밟혔다 +3 21.06.14 166 10 20쪽
208 의미의 붕괴 +6 21.06.11 213 1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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