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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P의 서재

출근길부터 시작하는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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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P
작품등록일 :
2023.05.10 22:42
최근연재일 :
2023.05.30 18: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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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5
추천수 :
111
글자수 :
122,784

작성
23.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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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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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멸망한 도시의 밤(1)

DUMMY

부동산 안으로 들어가니 진태와 원진환 선배는 먼저 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진태가 나를 보자 반갑게 맞이한다.


“늦었네? 한참 기다렸어.”


“왜?”


진태는 냄비와 라면을 가리키며 손으로 라이터를 키는 동작을 한다.

아, 나 인간 라이터였지. 불피우라는 소리 구만.

그래도 그 덕에 순간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라면 몇 개 끓여?”


“6개?”


진태는 2리터 생수 한통 반을 들이 부어 큰 냄비를 가득 채운다. 서혜원과 원진환 선배는 각자 스팸과 참치캔을 준비하고 나는 진태가 구해온 식기를 알코올로 가볍게 소독했다.

재난 상황에서 엄청나게 호화로운 식단이 구성되고 있었다.


진태는 나무로 된 책장을 조용히 부수더니 나에게 손 짓 했다. 불을 키라는 것 이겠지. 나는 푸른 불꽃을 일으켜 나무를 태웠다. 한 10초 정도 나무를 만지고 있자 연기가 나며 손의 불꽃이 나무로 옮겨 붙었다. 부순 책상의 잔해를 장작 삼아서 일으킨 불에는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왔다. 어차피 부동산 유리문이 거의 깨져있어 야외나 다름 없어서 연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어느새 불 위에 올려 놓은 냄비에서 물이 끓자. 면과 라면스프 참치캔, 스팸을 대강 숟가락으로 긁어서 넣었다.

몇시간을 공복으로 보내서 인지 라면이 끓는 냄새를 맞고 있으니 식욕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내가 식욕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사이, 진태가 타오르는 장작더미를 보며 말했다.


“음, 꼭 캠프파이어 같네. 캠핑 온 것 같다.”


저 녀석은 어디까지 태평하려나 이제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일단 맛있을 것 같기는 한데, 상황에 비해서 너무 사치스런 음식 아니야 지금?”


나의 물음에

원진환 선배가 웃으며 대답했다.


“앞으로는 물도 더 귀해 질태고 불필 여유가 언제 될지 모르니 끓인 라면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늘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내가 그러자고 했어. 다들 방금 전까지 너무 힘들었잖아. 우리””


“아, 네 알겠습니다.”


일단 라면 싫어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으니 나도 당연히 라면을 좋아했다. 어차피 물자는 제한적인 것이기도 하고 지금 당장은 물자를 어느정도 더 구할 수 있으니 일단 먹고 생각하기로 했다.

라면이 익길 기다리며, 원진환 선배가 진태에게 말을 걸었다.


“진태씨는 어쩌다가 이렇게 생존관련해서 이렇게 잘 알게 된 거에요?”


진태는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사실 생존관련이라기 보단, 오지 캠핑을 좀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돌발 상황도 많이 만나서 경험이 자연스럽게 쌓인 거죠.”


그 장소가 보통 강원도 사람하나 안드는 산기슭 중턱이라 문제 였지만, 한번은 진태가 캠핑가자고 하도 때를 써서 따라간 적이 있었다. 캠핑이라고 해서 통상적으로 하는 BBQ 파티나 가벼운 야외놀이 정도로 갔다가 3일을 산기슭에서 직접 식량을 구해먹으며 지냈던 기억이 났다. 심지어 진태가 수렵면허도 가지고 있어서 맷돼지나 꿩을 잡아서 먹기도 했다. 그 다음부터 나는 진태가 캠핑 얘기만 꺼내면 펄쩍 뛰며 도망쳤다.

나는 진태의 말을 이었다.


“얘, 코리안 베어그릴스에요. 코리안 베어그릴스.”


“그럼 하대리님은 글램핑이나 캠핑카는 별로에요?”


“음. 야외에 나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아하긴 해서 싫어하지는 않는데, 뭐하러 캠핑하는데 돈을 많이쓰나 싶긴해.”


진태가 쓰는 사냥도구, 생존 장비, 보관식도 만만치 않게 돈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기로 한다.


“혜원이나 선배님은 라면을 푹 익히는게 좋아요. 아님 꼬들면이 좋아요?”


“꼬들면이요.”


“꼬들면이지.”


맛 잘알들이다.


나는 냄비의 뚜껑을 열어 아직 덜익은 면을 젓가락으로 몇 번 들었다 놨다 한다. 라면 특유의 매운 냄새와 참치와 스팸이 동시에 들어가 참치캔의 비릿한 향기, 햄의 가공육향기가 동시에 올라왔다. 라면의 냄새는 곱창 냄새와 함께 양대산맥으로 사람의 식욕을 자극한다. 냄비 안을 들여다보니 기름이 살짝 뜬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엄청난 고칼로리에 과한 나트륨 덩어리라 평소라면 성인병 걱정이 앞섰겠지만 재난상황에서는 높은 칼로리와 나트륨은 오히려 좋다. 높은 칼로리와 나트륨은 활동량이 많은 재난상황에서 가장필요한 영양소이다. 몇 차례 면을 들었다 놨다 하고는 뚜껑을 다시 닫고 2분 정도를 기다렸다.


나는 셔츠 단추를 풀어 손을 소매 속으로 집어넣고 팔목의 두꺼운 부분으로 냄비를 살짝 잡아 불 위에서 티 테이블로 옮겼다. 테이블에 아까 책장에서 꺼내 놓은 두꺼운 민법책을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놓았다. 냄비 뚜껑을 열어 부동산 사무실 안에 있던 종이컵으로 국물을 살짝 떠 호로록 하며 간을 보았다. 딱, 좋았다. 캠핑을 자주가는 진태의 라면 물 맞추기는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젓가락으로 면을 조금 건저 종이컵에 남은 국물에 몇 번 담궜다. 뺀 뒤 호호 불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었다. 약한 밀가루 맛과 쫄긴함이 남아있는 면을 씹어심킨다. 라면 완성이다.


“자 드세요.”


“잘먹겠습니다.”

“맛있게드세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행들은 라면 냄비로 달려들었다.

모두들 차례를 기다려 라면을 가져간 뒤 내 차레가 되어 종이컵 끝을 살짝 뽀족하게 해서 국자처럼 국물을 듬뿍 뜬다. 젓가락을 냄비에 넣고 휘휘 저어 면과 참치 덩어리를 꺼내 종이컵에 담고 내 앞으로 가져왔다.


먼저 컵에 입을 대고 국물을 조심히 마신다. 아까 간보면서 살짝 맛보긴 했지만 간이 정말 기가 막힌다. 3월 초의 추운 저녁 날씨에 살짝 얼어있던 몸이 라면 국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사르르 녹아간다. 아까 회사건물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속을 비웠더니 굉장한 허기가 느껴저 면을 한입 크게 넣었다. 꼬들한 면은 탱글한 저항감을 주며 이에 닿는다. 고소하면서 짭조름한 라면의 면에 중간 중간에 나는 스팸향과 참치향은 그 풍미를 배가시킨다. 역시, 야외에서 먹는 라면 각별히 맛있다. 라면을 한참 먹고있으니 나도 모르게 김치가 당겨 주위를 둘러본다. 그 모습을 본 진태는 알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작은 김치 팩을 꺼내 뜯는다.

역시, 맛 잘알이다.

나와 서혜원은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김치를 재빨리 집어 라면 위에 올려 후루룩 입에 넣는다. 옆을 돌아보니 원진환 선배가 우리를 바라보면서 입가의 미소를 띄운채로 라면을 떠 자리로 가져간다. 우리 모두는 잠시 지금의 상황을 잊고 조촐한 만찬에 집중했다.


식사에 집중하던 중 진태가 말을 걸어온다.


“아, 아까 둘이 무슨일 있었어? 표정 엄청 심각하던데?”


음,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하고 고민을 하던차에 옆에서 서혜원이 대답했다.


“음, 친절하신분도 만났고 무례한 사람도 만났고, 절망에 돌아가신 분도 뵜어요. 30분 남짓한 시간에 사람의 여러면을 갑자기 봐버렸다고 해야하나요.”


그 말에 원진환 선배가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극한 상황에서는 인간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죠. 직업 특성상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는데, 그중 형사소송건도 있어요. 가끔 의뢰인중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는 부정하는 사람도 겸허 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저항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오늘 겪은 일도 그 연장 선상이 지 않을까요?”


그 말에는 나도 공감한다. 더군다나 죽음 앞에서는 더욱 깊은 인간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순간 몰려오는 어두운 기억을 뒤로하고 내가 말했다.


“일단, 다른 생존자들 한테 큰 선의는 기대 하지 말고 저희 살길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벌써 몰려다니는 갱단 비슷한 젊은 남자무리도 있더라구요.”


“갱단이라.. 생존자집단과 충돌하게 되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겠네. 우리 넷 중 셋이 초상능력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조심해야겠다.


원진환 선배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말고 초상능력자를 만났는데 적대적인 존재면 정말 피곤했다. 당분간은 최대한 마찰을 피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김수혁 후배나 서혜원씨중에 신동인 변호사님 못뵜어요? 중년의 나이에 살짝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으신데.”


원진환 선배의 물음에 나와 서혜원은 표정을 굳혔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실은 같이 건물을 빠져나오던 길에 돌아가셨습니다.”


“어쩌다가?”


서혜원이 힘겹게 내 대신 대답했다.


“같이 탈출하던 사람이 신동인 변호사님을 괴수 미끼로 쓰고 도망쳤어요.”


“자세히 말해주세요.”


원진환 선배가 굳은 얼굴로 묻자. 나는 천천히 오늘에 엘리베이터에서 부터 일행을 만나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망가진 일. 그 안에서 소란이 났던 일. 괴수가 엘리베이터에 반쯤 들어와 사람을 잡아먹은 일.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던 일. 제동장치덕에 구사일생으로 살 수 있던 일. 중년의 여성을 버리고 온 일. 그리고 한상수로 인해 차영우, 신동인 변호사가 죽고 서혜원도 죽을 뻔 했던일.

나의 모둔 얘기를 듣자 진태가 분노하며 말했다.


“내가 그딴 X끼를 도왔다니 스스로가 한심하다 진짜 아! X발!”


원진환 선배는 굳은 얼굴을 왼손으로 한번 쓰윽 훑고는 말했다.


“하, 우리사무실 대표님이시기도 하고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이자. 나한테는 친삼촌 같은 분이었어.”


라면을 먹으며 들떴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고 현실감이 들었다.

살육과 광기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지인을 잃을 수 있고 그게 우리 중에 있을 수 있다. 더 이상 관계된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김수혁 후배나 서혜원씨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았고, 한상수 그 사람을 보면 꼭 말해주세요. 어떻게든 콩밥을 먹여 복수하고 싶습니다.”


항상 여유로웠던 원진환 선배의 가시 돋힌 말에 우리는 모두 긴장한다.

진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변호사님 그놈 만나면 제가 꼭 남자 구실 못 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일단, 저희는 한숨자고 아침 일찍 출발할까요? 날이 어두워서 지금 움직이긴 위험하고 일단 우리부터 살아야 그 놈을 잡을 수 있을 태니까요.”


원진환 선배는 마음을 가다듬었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우리의 첫 회식은 이걸로 마무리하고 안전한 곳에 가서 한번 더 성대하게 하죠. 제가 크게 쏘겠습니다. 빈말 아니에요.”


그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면을 끓인 식기를 정리하기 위해 일어났다.

사무실 바깥 하늘을 보니 어느덧 노란 무언가에 가려진 달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래도 몇 번의 사선을 넘어 오늘은 생존해 냈다.

우리는 지옥 속을 표류하는 부표처럼 불안했지만, 어지쩌지 모여 일행이 되었고, 어느새 서로를 조금씩 의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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