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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P의 서재

출근길부터 시작하는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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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P
작품등록일 :
2023.05.10 22:42
최근연재일 :
2023.05.30 18: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3,524
추천수 :
111
글자수 :
122,784

작성
23.05.17 18:00
조회
115
추천
6
글자
11쪽

역삼역(4)

DUMMY

무리의 리더격 남성은 손에 쥔 식칼을 손잡이 끝으로 쥐어 흔들며 서혜원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근데 이 X발, 그 표정 뭐야, 내가 너 좋아하면 안되냐? X같은 X이. 그래 안그래!”


그 남자는 위협적인 표정으로 서혜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댄다.

지금히 평범하게 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는 세상이 이렇게 변하자 참으로 우습게도 악귀같은 표정을 아무렇지 않게 짓는다.

순간적으로 격한 분노를 느끼며, 죽이지 않고 제압할 방법을 고민한다. 다리정도는 부려뜨려도 되겠지? 이 몇 개 정도는 꼭 부러 뜨려야 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주먹을 그 남자를 한 대 치려는 찰나 갑자기 서혜원의 오른손이 정면에 서있는 남자의 뺨을 때린다.

아 겁난게 아니라 화난 거 였구나.

서혜원에 손에 맞은 곳에서 으드득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의 왼쪽 얼굴이 함몰된다. 눈은 반쯤 튀어나오고 턱이 완벽하게 돌아간다.

혜원이한테 개기지 말아야겠다.

뺨을 맞은 남자는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그대로 쓰러진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우리를 둘러싼 다른 남자들은 쓰러진 남자와 서혜원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으아아!”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다른 남자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친다.

순간 맥이 빠져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상황 판단은 빠른 친구들이었다. 어디가서 쉽게 죽지는 않겠네 싶었다.

서혜원은 오른손을 바라보며 작게 떨고 있었다.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일 것이었다.


나는 서혜원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고는 쭈그려 앉아 남자의 목을 짚어 맥박을 확인했다. 뭉게진 얼굴은 이미 원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피를 분수처럼 뿜고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손의 감각에 집중하자,

다행히 작은 맥박이 확인되었다. 즉사는 면한 모양이다.


“혜원아 아직 안죽었어. 아까 그 치료 초상능력 사용할 수 있겠어?”


“네! 네! 쓸 수 있어요.”


나의 말에 서혜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다가온다.

서혜원이 기절한 남자의 얼굴에 손을 댔다. 서혜원이 눈을 감고 집중하니 손에서 녹색빛이 생긴다. 옅은 녹색빛이 남자의 머리를 감싸고 이내 망가졌던 얼굴이 점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몇 분정도 얼굴에 녹색빛을 투사하자 남자의 얼굴이 완전이 형체를 갖췄다. 나는 남자의 코에 손을 올려 호흡을 체크했다. 호흡이 안정적인 것을 보니 괜찮을 것 같아 서혜원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힘이 드는지 손이 땀 범벅이었다. 천천히 서혜원의 손에서 녹색 빛이 사라졌다. 서혜원은 잠시후 살며시 눈을 떴다.


“이 사람 괜찮을까요?”


“일단, 상처는 다 치료된 것 같아.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서혜원은 풀이 죽어 대답했다.


“네..”


나는 웃으며 서혜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폭력도 하나의 수단이야. 근데, 힘 조절은 좀 배워야겠다. 자칫하면 살인자 될 뻔 했어, 겨우 이따위 인간 때문에 살인자 되는 건 좀 그렇지.”


나의 의외의 말에 서혜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 상황에서나 도덕과 양심을 지키는 건 좋고 올바른 일이지만 항상 올바른게 정답인 것은 아니더라고. 내가 먼저 도덕과 양심을 저버릴 필요는 없지만 때에 따라선 폭력이 효율적인 방법 이긴해. 다만, 힘에 취하거나 폭력이 선행되면 안되니까 휘둘리지 않게 조심해. 어디까지나 폭력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돼.”


서혜원은 나를 크고 동그란 눈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 좀 챙겨서 가자, 어찌되었건 우리의 목적은 달성했네.”


“네!”


서혜원과 나는 진통·해열제 몇 박스를 챙겨서 편의점 밖으로 빠져 나왔다.

괴수가 세상을 부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선의와 악의는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편의점을 빠져 나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덧 하늘에 해가 건물사이에 걸리고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이 되었다. 부동산에 가는 길을 살펴보니 지난번에 급하게 방수포가 필요해서 근처에 와서 철물점을 들른 기억이 났다.


“혜원아, 이 근처에 간판 없는 철물점이 있었어. 아는 사람들만 가는 가게라 아마 아까 마트처럼 괜찮을 가능성이 높아.”


“네, 그럼 거기도 들렀다 가는거죠?”


“그래, 아직 로프 못 찾았잖아, 그 철물점 반지하에 있었던 걸로 기억해. 걸으면서 꼼꼼히 봐봐.”


서혜원은 다행히 기운을 차렸는지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잘 찾아볼게요!”


우리는 천천히 거리를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폐허가 된 풍경들 사이에 우리가 자주 가던 플라워 카페가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꽃 장식과 수제 쿠키들로 가득했던 그곳은 유리벽이 다 박살나 내부의 꽃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구르고 있었다.

서혜원은 몹시 안타까운지 말했다.


“저기 딸기라떼 맛있는데...”


서혜원이 저 카페의 1L짜리 딸기라떼를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며 마시던 것이 생각나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맞다. 혜원이 너 그때 저 카페 딸기라떼 엄청나게 큰 거 몇 번 들고 다녔었지.”


순간, 서혜원은 얼굴이 벌게지며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엄청 큰 건 아니고 가성비가 좋아서. 한 두번?”


“그래? 내가 당장 기억나는 건 다섯 번이고, 가성비가 좋아서 였나? 큰거 만천원이었나?”


“히잉,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 하지마세요.”


편의점에서 한 블록 정도 걸어 가보니 지하에 숨어 있는 철물점이 보였다. 나는 철물점을 가르키며 말했다.


“어 저기 있다. 철물점”


간판도 없는 철물점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좁은 입구계단을 내려 가보니 철문으로 된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 고리를 살며시 열자 문이 끼이익하며 열렸다. 다행히 잠겨있진 않았다. 문을 반쯤 열고 고개를 살짝 넣어 위협을 확인했으나 철물점 내부는 고요했다.

계단 중턱에서 있던 서혜원이 조용히 말했다.


“대리님, 거기에 아무도 없나요?”


나는 서혜원을 돌아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괴수는 없는 것 같아.”


우리는 천천히 철물점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 된 철물점은 마치 시골 할머니집 다락방처럼 잡동사니 천국이었다. 나는 입구 바로 앞에서 무기로 사용할 만한 빠루를 발견하고 벨트와 바지 사이에 검처럼 꽂았다. 그리고 어지러히 물건이 쌓인 진열장을 천천히 찾았다.


페인트나 시너, 방수비닐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시너는 내 불꽃과 조합해서 무기로 써볼까 고민했지만 부피 문제 때문에 넘어갔다.


좀 더 내부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묵직한 정글도를 발견했다. 원진환 선배에게 호신용으로 전달하면 좋을 것 같아 집어 들어 가방 물병 집어 넣는 곳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한참 잡동사니 속을 이것 저것 뒤지면서 찾다보니 진태가 주문한 로프를 발견했다. 로프를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하는 찰나에 안쪽 너머에서 희미한 피 냄새를 맡아 서혜원에게 잠시 멈추라고 수신호를 보낸뒤 내부로 천천히 들어갔다.


가게의 벽 끝에는 십자가와 예수상이 걸려있었고 그 아래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고 안쪽을 비췄다. 플래시로 밝힌 곳에는 80대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시체가 있었다. 먼저, 몸을 살펴보니 별다른 공격에 흔적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을 비춰보니 목이 졸린 흔적은 없었다. 팔목을 향해 플래시를 비춰보니 오른손옆에 나이프가 떨어져 있었다. 바로 옆 왼손에 플래시를 비췄다. 왼손은 나이프로 거칠게 자른 듯 커다란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왼 손 밑에는 커다란 피 웅덩이가 붉은 호수처럼 고여 있었다.


아마, 할아버지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운명하신 듯 했다. 그냥 돌아서 나갈까하다 회사 빌딩에서 서혜원이 시체의 잔해를 모아 간이로라도 장례를 치른 것이 기억났다. 플래시를 끄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할아버지의 시체를 반듯하게 눕혔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고 사후경직이 시작되지 않은 것을 보니, 돌아가신지 30분이 채 되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마트가 아니라 철물점부터 왔다면, 이분을 아직 살아 있을까 라는 생각을 애써 지우고 손을 곱게 배에 올리고 시신을 바르게 놓았다. 지독한 분변냄새와 진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구토를 해서인지 다행히 고인에게 실례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두 번 절을 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벽에 걸린 예수 상에 고개를 숙이며 기도했다.


신이시여 거기 있다면, 힘든 선택을 한 이분을 용서하소서.

이분이 마지막으로 목도한 것은 산자의 지옥이었습니다.

부디, 당신이 약속한 하늘의 왕국으로 그 지친 영혼을 인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괴수가 당신이 내린 심판이라면 저는 그것을 당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 보겠습니다.

다만, 바라옵건데. 저같이 당신을 믿지 않는 자는 그렇다 치고 적어도 당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을 굽어 살피소서.


동시에 에피쿠로스의 역설을 생각했다.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사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믿음과 의심 뭐가 오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순간 만큼은 진심으로 신이란 존재가 정말로 있어 나의 기도를 들었으면 했다.


인간은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여러 가지 선택을 한다. 특정 종교에 따라서는 자살이 씻을 수 없는 죄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이 도시는 80대 노인이 홀로 살아남기에는 너무 가혹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고인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했다.


더군다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고인의 가시는 길 마지막이 너무 길거나 지나치게 고통스럽지 않았길 바랐다.


나는 근처에 있는 담요로 조용히 고인을 머리부터 덮었다.

언젠가 나와 이 동네 어디선가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어느새 다가온 서혜원은 내가 고인을 수습하는 것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


“가자.”


“네.”


우리는 로프를 챙긴 다음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반 블록 앞에 있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거리는 전기가 끊겨 시골의 저녁처럼 어스름한 빛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삶의 기운이 넘쳐나던 이 곳은 단, 하루 만에 인간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산자의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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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멸망한 도시의 밤(1) +3 23.05.18 11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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